영주시 문화와 산행.

경북 영주시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한국 최초 사액서원이 되는 '소수서원' 의 관람.(3)

용암2000 2022. 1. 2. 21:59

 

2021년 12월 27-28일.(1박2일)

 

2. 둘째날 : 12월 28일.(화요일)

 

1) 소수서원의 관람.

선비촌에서 하룻밤 고택(古宅) 체험을 끝낸 일행은 주차장 인근에 있는 저잣거리로 나아가 전일 저녁식사를 하였던 식당으로 다시 들어가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끝내고, 선비촌 앞에 자리하고 있는 사적 제55호 '소수서원(紹修書院)' 을 방문하여 보기로 한다.

소수서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서원 앞에 있는 정문을 사용하지만, 선비촌 또는 소수박물관을 관람한 방문객은 소수서원 후문을 이용하면서 서원의 관람 동선(動線)을 선정할 수 있도록 양쪽 방향으로 진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일행은 후문을 이용하여 소수서원을 탐방하였지만 원활한 서원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하여 탐방기(探訪記)를 정문 방향에서 기술하기로 하는데, 소수서원을 관람하기 위한 입장료 3.000원을 징수하고 있지만 선비촌에서 숙박한 고객이나 65세 이상의 경로(敬老)에게는 무료 입장이 가능하게 한다.

서원의 정문 앞에 있는 넓은 주차장 뒤편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 단지를 형성하고 있으면서 숲 단지의 가장자리에 일반적으로 사찰에서나 불 수 있는 보물 제59호 '당간지주(幢竿支柱)' 가 있다고 하는데, 이곳 소수서원의 자리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숙수사(宿水寺)' 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 '소수서원' 정문 방향에 있는 소나무 숲 >

 

하지만 숙수사 사찰이 소실되면서 방치가 되어져 내려오는 땅에 풍기군수이었던 '주세붕(周世鵬)' 선생님이 고려 말에 유학자가 되시는 문성공 회헌(晦軒) '안향(安珦)' 선생님의 출생지에 조선 중종 37년(1542년) 사묘(祠廟)를 세워 안향 선생님의 위패(位牌)를 봉안하였다.

다음 해가 되는 중종 38년(1543년)에 학사를 건립하면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을 창건하였는데, 명종 5년(1550년) 퇴계 '이황(李滉)' 선생님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나라에 건의하여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사액(賜額)을 받게 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립고등교육기관이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서원은 유생들이 공부를 하는 강학공간(講學空間) 및 성현의 위패를 모시면서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祭享空間)으로 구획하고 있는데, 이곳 소수서원은 동쪽에 강학공간을 두고 서쪽에 제향공간을 두는 동학서묘(東學西廟)로 나누어져 있다.

 

< '소수서원' 의 조감도 >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품어내는 향기를 느끼면서 조금 걸어가면 소수서원으로 들어가는 정문 입구에 무덤과 비슷하게 약간 볼록하게 생긴 4각형의 둔덕을 만나면서 이곳 둔덕을 성생단(省牲壇)이라고 하는데, 성생단에는 제사에 쓸 제물(祭物)로 사용하는 소나 돼지를 잡기 전에 흠집 여부를 검사하는 장소이라 한다.

 

< '소수서원 정문 앞에 있는 '성생단' >

 

이 성생단을 지나면서 일단의 계단으로 올라서면 소수서원으로 들어가는 지도문(志道門)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정문이 자리하고 있고, 정문으로 들어가기 전 오른편 죽계천(竹溪川) 옆으로 경렴정(景濂亭)이라는 정자와 더불어 수령 500년 정도의 은행나무 한그루가 서원의 역사를 대변하여 준다.

 

< 소수서원의 정문이 되는 '지도문' >

 

<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와 함께 하는 '경렴정' >

 

경렴정은 소수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의 유식공간(遊息空簡)으로 시(詩)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장소로써 중종 38년(1543년) 주세붕 선생님이 백운동서원을 건립하면서 세운 정자인데, 정자 앞으로 흐르고 있는 죽계천을 내려 불 수 있는 절경을 가지고 있다.

 

< 다양한 '시와 문' 의 현판이 붙어있는 경렴정 >

 

< 소수서원 옆으로 흐르고 있는 '죽계천' >

 

죽계천 건너편 암벽에 주세붕 선생님이 직접 쓴 흰색의 '백운동(白雲洞)' 과 붉은색 '경(敬)' 자를 새긴 경자바위 및 '취한대(翠寒臺)' 이라는 정자가 내려 보이고 있는데, 주세붕이 저술한 서책에 따르면 묘원(廟院)은 오래 보존하기가 어렵지만 이 각석(刻石)은 마멸이 되지 않아 천년 후에도 보존할 것이라 기술하고 있다.

 

< 경렴정에서 내려보는 '경자바위' >

 

< 경자바위 바로 아래에 있는 '취한대' >

 

정문이 되는 지도문을 통과하면 넓은 마당의 중앙에 강당이 되면서 건물의 측면에 백운동(白雲洞)이라는 현판에 붙어있는 보물 제1403호 '강학당(講學堂)' 건물이 동향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강학당은 정면 4칸에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중앙의 대청과 온돌방 및 마루방으로 되어 있고 각방 주변으로 툇마루를 둘려 있다.

 

< 정문을 지나면 만나는 '강학당' 건물 > 

 

강학당 건물 뒤편에 한채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 한채의 건물에는 일신재(日新齋) 및 직방재((直方齋)이라는 현판이 나란하게 붙어있는데, 각각 현편의 아래 건물은 동재(東齋) 및 서재(西齋)로서 다른 서원에서는 강당 좌우에 대칭으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소수서원에서는 하나의 연속된 건물로 건립하여 편액(扁額)을 달아 구분하고 있다.

 

< 강학당 건물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일신재 및 직방재' >

 

이 일신재 및 직방재 건물의 오른편으로 학구재(學求齋) 및 지락재(至樂齋) 건물이 약간의 간격을 두면서 'ㄱ' 자 형태로 건립되어져 있는데, 학구재와 지락재는 유생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특히 학구재에서는 어린 학동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집으로 일명 동몽재(童蒙齋)이라고도 불려진다고 한다.

 

< 일신재 및 직방재의 건물 오른편에 있는 '학구재' >

 

< 학구재와 함께 하고 있는 '지락재' >

 

일신재와 직방재 건물의 왼편에는 매우 작은 규모의 장서각(藏書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장서각은 오늘날 도서관과 같은 기능을 가진 건물로 임금님이 직접 하사하신 '어제 내사본' 을 비롯하여 많은 경서나 문집 등을 보관하였던 곳이라 하겠다.

 

< 일신재와 직방재의 건물 왼편에 있는 '장서각' >

 

장서각 건물의 왼편 별도의 담장으로 구획하고 있으면서 보물 제1402호 '문성공묘(文成公廟)' 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안향 선생님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나중에 안보((安輔)와 안축(安軸) 및 주세붕의 위패를 추가로 모시면서 매년 음력 3월과 9월의 초정일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 장서각 왼편 별도로 구획하고 있는 '문성공묘' >

 

문성공묘는 정면 3칸에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집으로 장대석의 낮은 기단 위에 원형의 주좌(柱座)가 있는 다듬은 초석이 있고 그 위에 배흘림 두리 기둥을 세웠는데, 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내부 관람이 불가능하며 담장 뒤편으로 제사를 지내 때 사용하는 제기를 보관하는 전사청(典祀廳)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전사청 건물과 함께 하고 있는 '영정각' >

 

< 해시계로 알려져 있는 '일영대' >

 

전사청 건물의 오른편으로 영정각(影幀閣) 건물이 함께 하고 있는데, 영정각 건물 내부 중앙에는 주자(朱子) 및 국보 제111호 '안향(安珦)' 선생님의 영정을 모시고 있고 왼편에는 보물 제717호 '주세붕(周世鵬)' 및 이덕형(李德馨) 선생님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오른편으로 허목(許穆) 및 이원익(李元翼) 선생님 등 총 6분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 영정각 건물 중앙에 모시고 있는 '주자 및 안향' 영정 >

 

< 영정각 건물의 왼편에 모시고 있는 '주세붕 및 이덕형' > 

 

< 영정각 건물의 오른편에 모시고 있는 '허목 및 이원익' > 

 

여기 까지 서원의 중추적 역활을 하고 있는 강학영역 및 제향영역이 되며 그 뒤편으로 서원에 관련되는 부속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제일 먼저 사료관(史料館)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사료관 내에는 우리나라에서 존재하고 있는 서원의 역사에서 부터 주자학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 소수서원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사료관' >

 

< 사료관 내에 기술하고 있는 '서원' 의 역사 >

 

< 우리나라 도학의 '계통도' >

 

특히 이곳 소수서원은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 이라는 명칭으로 다른 8곳의 서원(도산서원, 병산서원, 옥산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필암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과 함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소수' 이라는 뜻을 풀이하고 있는 한자 숙어 >

 

시료관 뒤편으로 돌아가면 넓은 마당과 함께 소수서원을 돌보는 관리사무소를 비롯하여 거대한 충효교육관 건물이 'ㄱ' 자 형태로 자리하고 마당의 한쪽 담장 면에 밖으로 나아가는 쪽문이 있는데, 이 쪽문을 벗어나면 서원의 뒤편에 또 다시 울창한 소나무 숲과 더불어 아담한 연못 탁영지(濯硯池)가 함께 하고 있다.

 

< 사료관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관리사무소' >

 

< 소수서원 뒤편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숲 >

 

< 소나무 숲과 함께 하고 있는 '탁영지' >

 

이곳 서원의 뒤편에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면 소백산에서 흘려 내려오는 죽계천을 건너기 위한 3개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상부의 다리는 선비촌으로 건너가는 콘크리트 다리이며 중간지점에는 경자바위 및 소수박물관 뒤편으로 넘어가는 나무다리가 되며 하부에는 큰 바위로 만든 징검다리가 된다.

 

< 소수서원에서 '선비촌' 으로 건너가는 다리 >

 

< 소수서원에서 '소수박물관' 뒤편으로 넘어가는 다리 >

 

< 중간지점 다리 인근에 있는 '정자' >

 

< 죽계천 하부에 있는 '징검다리' >

 

< '취한대' 옆으로 만들어져 있는 산책로 >

 

< '취한대'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일행은 중간지점에 있는 나무다리를 건너면서 다리 주변에 만들어져 있는 산책길 따라 경자바위와 함께 하고 있는 취한대 까지 걸어보는데, 아침이라서 그런지 얼음이 살짝 얼면서 죽계천에서 뿜어내는 냉기가 옷깃을 더욱더 여미게 만든다. - 둘째날 1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