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6일.(토요일)
1.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전시회 참관.
대구 동구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아양아트센터에서 2023년 4월 24일 부터 5월 13일 까지 20일 동안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작품전을 전시하고 있는데, 몇일 전 부터 방문하여 보겠다고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가 오늘 많은 비가 내리므로 비 오는 날에는 실내 전시장을 방문하는 것이 최고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마침 아양아트센터에서 나와 같이 돈이 없는 사람도 불 수 있도록 무료로 전시회를 개최하는데, 이왕 없는 돈에 운동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우리부부는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여 동촌역에서 내려 해맞이다리를 건너 11시 경 아양아트센터에 도착하니 물에 빠진 생쥐와 같이 옷이 폭 젖었다.
< 비 속에 머물고 있는 '아양아트센터' 의 입석 >
아양아트센터 앞에 도착하니 그 넓은 주차장에 수 많은 자가용이 빽빽하게 주차하고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나와 비슷하게 비 오는 날 전시회 참석이 최고이라고 생각하는지 전시실로 들어가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관람에 열중하고 있다.
< '아양갤러리' 전시실의 입구 >
< '빈센트 반 고흐' 의 자화상 >
전시실로 입실을 하면 오른편으로는 어린이 또는 미술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반 고흐 작품에 대하여 채색 체험을 하고 있고 왼편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작품은 반 고흐의 일생을 나타내고 있는 일대기를 그림과 함께 너무나 세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 전시실 오른편 '빈센트 반 고흐' 의 작품에 대한 채색 체험 >
< '전시실' 내부의 전경 >
< 또 다른 '전시 부스' 전경 >
< '빈센트 반 고흐' 의 일대기 >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네델란드 남부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개신교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엄숙하고 종교적인 분위기의 집안에서 성장하였다.
그래서 열여섯 살 때 미술품의 딜러(Dealer)였던 삼촌의 소개로 헤이그의 구필화랑(口筆畵廊)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 '성경이 있는 정물' >
몇년 후 그가 평생 동안 경제적이고 정신적으로 의존하던 동생 '테오' 도 같은 화랑에 취직하여 함께 일을 하였는데, 그는 구필화랑의 런던과 파리 지점에서 근무하여 약 7년 동안 딜러로 활동하므로 그는 매년 수 많은 화가로 부터 다양한 그림을 접하였다고 한다.
특히 사실주의 회가 '밀레' 와 근대 풍경화를 개척한 '카미유 코로' 의 영향은 평생 동안 지속이 되었는데, 하지만 미술 작품이 상품(商品) 처럼 취급되는 것을 싫어했던 반 고흐는 손님과 크게 다툰 사건으로 인하여 화랑에서 해고를 당한다.
1877년 아버지와 같이 목회자(牧會者)가 되려고 신학을 공부하였으나 교수와 의견 대립이 잦아 목회자 자격을 얻지 못하고 벨기에 남부에 있는 한 광산으로 가서 선교 활동을 하였는데, 그곳에서도 교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므로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1885년 까지 벨기에와 네델란드 등 각지를 떠돌면서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 등을 그리면서 드로잉, 수채화, 유화 기법을 거의 독학으로 터득하였는데, 이 시대 대표작이 되는 '감자 먹는 사람들' 등을 그렸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크게 항의를 받는다.
< '감자 먹는 사람들' >
< '감자 먹는 사람들'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1886년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위하여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미술학교에 입학을 하였지만 학교 교육이 맞지 않아 석달 만에 그만 두고 동생 테오가 있는 파리로 갔는데, 그때 툴루즈 로트레크, 고갱, 피사로, 쇠라 등 뛰어난 화가들과 교류를 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 '파리의 7월 14일 기념 행사' >
< '파리' 로 떠나는 빈센트 반 고흐 >
< 해바라기가 있는 헛간' >
< '탕기 영감의 초상화' >
< '케이사이 아이센 모사' >
< '자포니즘'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1888년 도시 생활에 지친 반 고흐는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프랑스 남부에 있는 '아를(Arles)' 로 이주하여 사망 할 때 까지 그곳에 머물었는데, 전형적인 반 고흐 스타일의 그림들이 대부분 이때에 그려졌다고 한다.
< 아를에서 그린 '추수풍경' >
< '노란집' 거리 >
< 노란집'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반 고흐의 '침실' >
< '밤의 카페테라스' >
< '해바라기' >
그때 빈센트 반 고흐는 '폴 고갱' 을 아를로 초대하였지만 예술관과 성격 차이로 자주 다투었는데, 결국 두 사람은 석달 정도 함께 머물다가 1888년 12월 고갱과 심하게 다툰다.
< '반 고흐와 고갱' 과의 성격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그림 >
< '반 고흐와 고갱' 과 다툼을 나타내고 있는 편지 >
그후 빈센트 반 고흐는 극도로 예민한 상태로 면도 칼로 자신의 귀를 자르므로 몇일 후 고갱은 파리로 돌아가고, 다시는 반 고흐와 대면하지 않았다고 한다.
<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화상' >
< 붕대를 감고 있는 또 다른 '자화상' >
그래서 사람들은 반 고흐를 '붉은 머리 정신병자' 이라고 욕을 하면서 그를 마을에서 추방하여 달라고 경찰서에 신고하므로 한때 경찰서에서 그의 집을 폐쇄하기도 하였는데, 동료 화가 '폴 시냐크' 의 도움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 '아를의 붉은 포도밭' >
< '아를의 붉은 포도밭'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1889년 정신 발작이 점점 심하여 아를 근처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인생의 마지막 1년을 보냈는데, 이곳 정신 병동에서 유화(油畵) 그림 150여 점을 남길 정도로 많은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 주치의 '가셰박사' 초상화 (경매가 : 958억원) >
< 정신병원 간병인 '트리뷔크' 의 초상화 >
반 고흐는 10여 년 동안 작품 활동을 통하여 무려 900여 점의 유화와 1,000여 점의 드로인(Drawing) 및 스케치를 남겼는데, 그 작품들이 이후 인상파. 야수파. 독일 표현주의, 초기 추상파 등 유파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화가에게 지대한 영향으로 끼쳤다고 한다.
< 우체부 '조셥 룰랭' 의 초상화 >
< '아이리스' >
< 경매가 630억원의 '아이리스' >
< '아이리스'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별이 빛나는 밤에' >
1890년 7월 27일 반 고흐는 들판으로 걸어 가다가 가슴에 총을 쏘아 자살을 시도하였지만 바로 죽지 않고 치명상을 입었는데, 이틀 후 그의 동생 테오가 바라보는 가운데 1890년 7월 29일 37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더불어 그의 가족 및 친구들과 주고 받는 900여 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이 편지들은 빈센트 반 고흐를 '불행한 예술가' 의 아이콘(Icon)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평생 그의 경제적 및 정신적 후원자가 되는 동생 테오도 형의 죽음에 따른 충격으로 6개월 후가 되는 1891년 1월에 사망하는데, 동생 테오는 그의 형을 너무나 존경하여 그가 출생한 아들 이름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형의 이름 '빈센트 월럼 반 고흐' 로 지였다고 한다.
< '꽃피는 아몬드 나무' >
< 동생은 아들의 이름을 '빈센트' 로 작명한 이유 >
큰 아버지의 작품 전부를 상속 받는 빈센트 월럼 반 고흐는 한 작품도 판매하지 않고 모든 작품을 잘 관리하다가 1962년 '빈세트 반 고흐' 재단을 설립하여 모든 것을 기증하였는데, 이후 네델란드 정부는 1973년 6월 3일 '반 고흐 미술관' 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루고 있다고 한다.
< 조카가 되는 '빈센트 월럼 반 고흐' 의 기증 내역 >
빈센트 반 고흐는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20세기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평생 900여 점의 작품을 그렸고 동생과 함께 미술에 관련되는 일을 하였지만 그가 살아있는 동안 팔았던 작품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 딱 한점 뿐이라고 한다.
< 자살을 예언하고 있는 '나무뿌리' >
<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 '까마귀가 있는 밀밭' >
사망 후 10여 년이 지난 1901년 파리에서 열린 회고전을 계기로 작품을 재 평가되었고 이후 현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라는 명성을 얻었는데, 절묘한 색채, 열정적인 붓 놀림, 독특한 윤곽 형태 등으로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림과 더불어 빈센트 반 고흐의 일생 대부분을 읽으면서 출입문 방향으로 나오면 많은 어린이와 미술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반 고흐 작품에 대하여 채색 체험을 하고 있는데, 나도 채색 체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지만 노령의 눈총으로 조용히 자리를 뜬다.
< 채색 체험을 하기 위하여 비치하고 있는 '그림' >
2, 빈센트 반 고흐 박물관 및 안네 프랑크의 집을 생각하면서.
아양아트센터를 떠나면서 나는 지금으로 부터 45년 전 1978년 어느 봄날 독일과 네델란드 및 룩셈브르크,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를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네델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우리들에게 '안네의 일기' 로 잘 알려져 있는 '안네 프랑크' 의 집과 함께 '빈센트 반 고흐' 박물관을 구경한 경험이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 박물관을 구경한 그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단지 키가 큰 서양사람 속에서 그림을 구경하였다는 자부심만 가졌는데, 이젠 이렇게 늙고 나서야 비로서 진품의 그림이 아니지만 그래도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을 45년 만에 만났다는 것에 대하여 무한한 감동이 일어난다.
< 1978년 어느 봄날 '빈세트 반 고흐 박물관' 에서 >
< 키가 큰 '서양사람' 속에서 >
< '빈센트 반 고흐' 의 작품 >
< '안네 프랑크' 의 동상 앞에서 >
< '안네 프랑크의 집' 으로 들어가는 입구 >
그래서 집에 돌아와 그때에 찍은 사진이 있는지 찾아보니까 사진을 거의 없고 박물관과 더불어 안네 프랑크의 집에서 판매한 그림 엽서만 수두록하게 나오는데, 그것이라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하여 옛 생각을 회상하게 만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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