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회.(대학교 69학번 모임)

천사같이 해맑은 웃음을 간직한 한센인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전남 "소록도" 를 찾아.(1)

용암2000 2011. 10. 10. 21:49

2011년 10월 8-9일.(1박2일)

 

* 첫째날 : 10월 8일.(토요일)

 

오늘 2개월에 한번씩 식사모임을 가지면서 우정을 쌓고 있는 "이목회" 회원들이 1박2일 일정으로 가을철 나들이 모임을 가지는데, 회원 중 1명이 평소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나병 환자촌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수녀님을 방문하기로 한다.

방문지는 전라남도 고흥반도 끝자락에 있는 소록도(小鹿島)로 출발하기 위하여 대곡지역에 있는 한 아파트 앞에서 오전 9시에 집결하는데, 사전 약속으로 인하여 몇 명의 불참으로 총 9명이 출발하게 된다.

2대의 승용차는 주말마다 교통 체중이 심하기로 유명한 남해고속도로를 겨우 탈출하여 순천시내를 벗어나 휴식과 더불어 남해의 별미가 되는 짱뚱어탕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는데, 고흥반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순천만 자연생태 공원 방향으로 길을 잡아본다.

좁은길 따라 조금 운전하여 12시40분 경 순천만으로 들어서서 입구에 있는 원조 짱뚱어탕 식당이 되는 "흑두루미가든" 으로 들어가 반주와 더불어 짱뚱어탕을 주문하여 주린 배를 충진하여 본다.

일전에 한번 먹어본 여수의 별미가 되는 "서대회" 를 추가로 시킬려고 하니, 주인장이 아직 재료가 준비 되지 않아 손님 요구를 들어주지 못 함에 죄송하게 생각하다고 한다.

 

< 원조 짱뚱어탕 식당의 "흑두루미가든" 전경 >

 

< 짱뚱어의 품귀로 엄청 고가가 되고 있는 "짱뚱어탕" 그릇 >

 

< 서대회가 빠진 "짱둥어탕" 가격표 >

 

이어 순천만 자연 생태계 보고가 되는 순천만 갈대 숲 공원으로 들어가 보는데, 작년까지 징수하지 않은 입장료 2.000원 요구함으로 다소 실망을 가진다.

 그래도 공원 내부로 천천히 걸어가 보지만 아직도 갈대가 활짝 피지 않고 잎도 또한 푸른색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도 한폭의 운치를 보여주고 있다.

 

< 입장권을 요구하고 있는 "순천만 자연생태 공원" 입구의 인파 >

 

< 순천만 갈대 숲을 걷고 있는 "행락객" > 

 

좀 빠르게 소록도에 도착하기 위하여 순천만의 대미가 되는 전망대 까지 가는 것을 생략하고, 갈대밭을 조금 걷다가 뒤돌아 나와 순천만 "자연생태관 및 천문대" 로 들어가니 여기에서는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도록 입장료 징수방법을 변경시켜 놓았다.

 

< 입장료를 받지 않은 순천만 "자연생태관 및 천문대" >

 

예전과 같이 입장료 징수방법을 대폭적으로 변경하여 방문객이 원하지 않는 곳도 무조건 입장료를 받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횡포에 다소 실망을 느끼면서 에둘러 공원을 탈출하는데, 정문을 통과하여 다시 남쪽으로 달려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있는 "녹동항(鹿洞港)" 에 이른다.

녹동항에서 소록도로 넘어가는 아름다운 현수교를 넘어 소록도 중앙으로 만들어진 도로 따라 조금 가다가 언덕 아래에서 급격한 회전을 하여 안내소 입구를 통과하면서 관사지대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는데, 천사와 같은 수녀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인사와 더불어 숙소 내부를 안내하여 준다.

 

< 사장교로 건립되어져 있는 "소록도 대교" 전경 >

 

< "폐교 유치원" 을 개조하여 성당 및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건축물 >

 

< 수녀님이 직접 운행하고 있는 성당의 "봉고차" >

 

소록도는 하늘에서 내려보면 아기사슴을 닮아다고 하여 소록도라고 불려졌다고 하는데, 현재 거금도를 넘어가는 중앙도로 동쪽으로 일반인들과 더불어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거주하는 관사지대와 섬의 서쪽 방향으로 한센들이 거주하는 병사지대로 구획하여 2분화로 되어져 있다.

 

< 아기사슴을 닮은 "소록도" 모양과 섬의 생태계 >

    

배정(配定)하여 주는 숙소로 들어가 여장을 풀고 나서 수녀님이 손수 봉고차를 몰고 소록도 병사지대로 들어가 안내를 시작하는데, 먼저 한센인들이 살고 있는 거주촌으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변에 정차하면서 설명한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형성하고 있는 이곳의 장소가 "수탄장(愁嘆場)" 이라 불려지는데, 여기가 한 때 환자가 되는 한센인과 정상적인 자녀들이 1개월에 한번씩 만남의 장소이라 한다.

만남의 형태는 도로의 양편으로 일렬로 줄을 서서 먼발치에서 상호 바라만 보면서, 혈육의 정을 나누는 애환의 장소이라 하겠다.

 

< 병사지대로 들어가는 입구 "수탄장" 현장 >

 

여기서 바다 옆으로 나 있는 포장길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먼저 하얀 건축물 "국립 소록도병원" 이 나타나는데, 소록도병원 뒤편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가능한 중앙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지만 수녀님은 봉고차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한센촌으로 바로 들어가 마을 전체를 관람 시키면서 설명이 이어진다.

 

< 한센인을 치유하고 있는 "국립 소록도병원" 모습 >

 

이곳 한센촌은 대부분 중환자들이 많이 기거하는 중앙리와 함께 동서남북의 4방향으로 동생리, 서생리, 남생리, 녹생리의 집성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때 한센인이 최고 많이 거주 할 때 약 8.000명 까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600여 명 정도가 각각의 마을에 분산하여 살고 있으며 평균 년령이 75세가 넘는다고 한다.     

특히 마을 이름에 생(生)자를 쓰는 것은 꼭 병을 완케하여 살아서 사회로 복귀(復歸) 하라는 염원의 뜻이 숨어있다고 하는데, 옛날 한센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장소이다.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산마루 길로 올라가면 야산 기슭에 한센인이 죽어 한줌의 재가 되어 안치한 원형 모양의 만년당(납골당)이 나타나고, 더 내부 산속으로 들어가면 화장터 건물이 나타난다.

 

< 고향 선산에도 묻히지 못하고 한줌의 재로써 보관하고 있는 "만년당" >

 

더욱더 깊숙하게 "십자봉" 봉우리 방향으로 들어가니 도로변에는 거대한 삼나무들이 무리지어 자생하므로 암흑 천지를 만들고 있는데, 이렇게 울창한 삼나무들이 많이 서식하는 것은 일본인들이 자기들의 수목이 되는 삼나무 조림을 많이 한 결과라고 한다.

또한 능선 마루에 붉은 벽돌집 한채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 건물은 한 때 수녀님들이 머물면서 기도 드린 곳이라고 하며 건물 옆으로 돌아서 산속으로 조금 들어가면 잡초가 무성하게 우거진 숲속에 폐가 한체가 으슥하게 움추리고 있으며 이 건물이 나환자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법무부 소속의 형무소이라고 한다. 

 

< 깊은 산속 한센인 범죄자를 감금하고 있는 "형무소" >

 

또 다시 되돌아 나오면서 바다가로 접근하면 먼저 서생리 마을이 나타나고 이어 남생리 마을로 들어서면 거대한 현수교 다리가 눈 앞에 머물고 있는데, 이 다리가 아직 개통을 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개통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거금도로 넘어가는 연육교이라고 한다.

 

< "거금도" 로 건너가는 2층의 연육교 다리 >

 

2층 구조의 다리에는 아래층으로 사람이 걷어가는 인도교(人道橋교)로 되어 있는데, 만약 걸어서 다리를 걷는다면 몇 시간이 걸리는 기나긴 다리인 것 같지만 주변 경관이 일품이다.       

조금 더 바다로 접근하면 방파제 인근에 창고 한채가 바다에 기둥을 내리면서 건축되어져 있는데, 그렇게 건축한 것은 바다물로 인하여 곡식이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이라고 한다.

 

< 바다 위에 세워진 "식량 보관창고" 건물 내역 >

 

다시 해변 따라 이동하면서 동생리 마을을 통과하여 원점인 중앙리 마을로 넘어오는데, 마을 상부에 육영수여사의 지원금으로 지어진 "양지회 기념관" 이 고즈늑하게 자리하고 있으나 지금은 내부 수리중이라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 육영수여사가 지원하여 건립한 "양지회 기념관" 건물 전경 >

 

고개 바로 아래 좌우편으로 "중앙교회 및 병사성당" 건물이 나타나는데, 도로 모퉁이에서 봉고차를 주차하고 나서 성당으로 들어가 보니 성당의 마당 가장자리에는 거묵의 나무들이 너무나 잘 조성되어 있다,

 

< 독립문 같은 형상의 나무로 단장하고 있는 "성당" >

 

성당의 마당 가장자리에는 약 10여 미터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는 "후박나무 및 목나무" 가 둥근 원형을 형성하고 있는데, 나무를 관리하는 조경사의 노력이 대단한 것 같다.

 

< 약 10m 높이 까지 잘 조성하고 있는 "후박나무" >

 

< 번식을 위하여 산림청 보호수로 관리하고 있는 "목나무" >

 

성당 뒤편으로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가능한 중앙공원 뒤문이 자리하고 있어 일반인들과 반대 방향에서 공원 내부를 들어가 본다.

일제시대인 1940년 부터 중앙공원을 조성하므로 인하여 일본인들의 취향에 부합한 나무들이 너무나 잘 조림되어져 있어 구경거리가 풍만한 공원이다.

 

< 소록도 "중앙공원" 의 조감도 >

 

< 성당에서 관리하고 있는 "중앙공원" 일부분 >

 

먼저 성당에서 관리하는 공원의 가장자리 연못 속에 예수님 동상과 더불어 성모상이 서 있고, 성모상 옆으로 돌아서 조그마한 언덕으로 올라가면 거대한 "반송(盤松)" 군락지에 이른다.

 

< 공원 가장자리 연못 속에 만들어져 있는 "예수님" 동상 >

 

< 예수님 동상 뒤편 야산에 자리하고 있는 "성모상" >

 

반송은 높이 1-2m에서 7-8개의 나무 가지가 분리되므로 마치 부채와 같은 아름다운 형상을 간직한 나무로써 우리나라에서 쉽게 대면하기가 어려운 나무인데, 이곳에서 일렬로 군락을 이루면서 자라고 있어 공원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 일렬로 도열하고 있는 "반송" 군락지 >

 

그 반송 앞에 일제시대에 나환자를 최고로 악독하게 군림한 제4대 "수호원장" 동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동상은 철거되고 밑부분의 받침대만 남아 있다.

그 받침대에는 수호원장의 이름과 더불어 공적이 새겨져 있는데, 원장으로 부터 한센인들의 받았던 고행의 순간을 기억하게 만드는 장소이라 하겠다.

 

< 제4대 "수호원장" 동상은 살아지고 받침대만 남아 있는 곳을 통과하는 일행 >

 

그 앞에 소록도의 시인 "한하운" 선생님이 쓴 "보리 피리" 이라는 시(詩)를 새긴 거대한 바위가 편안하게 누워있는데,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라는 모습이 너무나 얇밉게 보인다.

 

< 한하운 선생님이 쓴 "보리 피리" 시비가 쓰여 있는 바위 앞에서 >

   

여기서 수녀님을 잘 알고 계시는 중증의 한센인 한명이 사진을 찍고 있는 나에게 수녀님과 함께 기념사진 한장을 찍어 보라고 하는데,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좋은 배경 선정하여 정성들려 찍어주는 해맑은 웃슴을 대면하는 순간이 지나간다.

카메라 잡은 손가락도 허락하지 않는 불구의 몸으로 만사 근심걱정을 다 내려놓고 땅을 의지하면서 까지 전심전력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한센인에게 감사의 인사도 크게 드리지 못했지만, 인터넷을 통하여 만수무강 함을 기원합니다.    

 

< 수녀님과 함께 "구라탑" 앞에서 한센이 촬영한 사진 >

 

< 아름다운 "소나무" 아래서 배경을 잡아주면서 찍은 사진 >

 

공원 주변 곳곳에 동상과 각종 조각품이 만들어져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파견된 2명의 수녀 "마리안느 및 마가렛" 공적비가 서 있다.

그녀들의 헌신적인 봉사 내용을 듣고 있으니. 분명하게 그분들이 천사가 아니고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임이 자명하게 만든다.

 

< "마리안느 및 마가렛" 수녀님의 선행을 표현하고 있는 공적비 >

 

또한 야산 기슭에는 한센인들의 고통을 담은 제1 및 2관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자료관" 이 자리잡고 있는데, 내부로 들어가면 일제시대 한센인들의 비극적 현장과 함께 1945년 해방을 맞지하여 한센인 상호 세력을 잡기 위한 권력 다툼으로 인하여 84명의 한센인이 희생당한 비극의 역사 자료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 제1자료관에 진열하여 놓은 한센인 "유품들" >

 

< 제2자료관에 진열하고 있는 "생체실험 기구" >

 

공원 입구 쪽으로 나오면 붉은 벽돌의 건물을 만나는데, 이 건물들이 나환자들을 고문하는 감금실과 검시실 및 생체 해부를 통하여 병의 경로를 연구하는 실험 장비들이 그 당시 모습으로 재현하여 놓아 한센인의 인권유린 현장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 "감금실" 내부를 돌아보는 일행 >

 

< 감금실 내부에 걸려있는 한센인의 "시" >

 

< 당시 "검시실" 현실을 설명하고 있는 수녀님 >

 

봉고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가기 위하여 다른 방향의 숲으로 돌아가니 고가의 나무들이 너무나 잘 조성되어 가격으로 표현 할 수 없는 나무들이라고 소개하는데, 방금 이야기하는 나무의 이름도 완전하게 잃어 버리는 나의 머리가 멀리 소록도 까지 와서 고생하게 만든다. 

 

< 수억의 값을 가진 "솔송" 모습 >

 

< 잘 가꾸어진 "나무와 조림" 숲을 보면서 >

 

수녀님 기도시간의 촉박으로 인하여 수박 겉 핥키 관광이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다소 아쉬워 하면서 병원 입구에 서 있는 84명의 휘생자를 추모하는 "추모비" 만 건성으로 돌아보고, 도로 반대 방향의 관사지대로 넘어와 숙소에 이른다.

 

< 국립 소록도병원 입구에 있는 84명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 >

 

간단한 휴식을 취하고 나서 저녁 노을도 구경하면서 푸짐한 저녁 만찬식을 거행하기로 하는데, 일행은 녹동항으로 나가 회와 더불어 생선을 구입하기 위하여 승용차에 오른다.

고흥반도 끝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녹동항은 여러 지방으로 왕래하는 도서민들과 여행을 즐기려는 행락객을 싣고 오가는 여객선이 운항하는 항구가 되는데, 매우 활기찬 항구도시이라 하겠다.

 

< 많은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는 "녹동항" >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항구에는 수 많은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는데, 부두가에 있는 한 어판장으로 들어가 파시(波市)가 열리고 있는 한 수산집에서 푸집한 회를 구입하여 본다.

 

< 생선을 판매하고 있는 "어판장" 전경 >

 

< 낙조가 내리고 있는 "소록도 대교" >

 

< 어둠이 내리는 "녹동항" 전경 >

 

아울러 주변에 있는 낚시꾼들의 고기잡는 녹동항구와 더불어 일몰을 감상하면서 부두가를 조금 배회하다가 숙소로 들어가는데, 밤새도록 푸짐한 회와 더불어 수 많은 소주잔을 운전하면서 소록도의 밤은 깊어간다.  - 첫째날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