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시 문화와 산행.

물돌이 마을로 유명한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에 있는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를 건너 보면서.

용암2000 2017. 5. 8. 21:45

2017년 5월 3일.(수요일)

 

오늘은 부처님이 오신 사월초파일 공휴와 더불어 연속적인 짐검다리 휴무에 따라 대부분 사람들은 장거리 또는 해외여행 계획을 수립하여 떠나가므로 나도 몇 번이나 방문하고 푼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경북 북부지역에 있는 "무섬마을" 을 돌아보기 위하여 길을 나선다.

경상남북도를 가로 지르면서 흘러가는 낙동강 줄기에는 강물이 산에 막혀 물돌이를 만들어 낸 장소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고 불려지는 "무섬마을" 을 선택하여 본다.

승용차는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기 위하여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너무나 많은 나들이객 차량으로 거북이 운전으로 겨우 대구광역시 다부동 터널을 통과하니, 정체가 풀리면서 다소 원만하게 달려가 안동휴게소로 들어가니 여기에도 만원의 차량으로 겨우 휴게소 진입이 가능하게 만든다.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지고 나서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조금 달려가 예천 Toll gate를 벗어나 928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영주시 방향으로 약 30분 정도 운전하여 가는 길의 중간지점에서, 네비게이션 오작동으로 육감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문제는 예천 방향에서는 무섬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없어 석탑교를 지나 한 20분 정도 달려가면서 이상한 예감이 발동하여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한 농부에게 길을 물어보는데, 농부는 석탑교를 건너지 말고 바로 제방 따라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최신형 네비게이션 하나 구입하지 못하는 빈털털이 신세를 원망하면서 한 20분 정도 되돌아서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수도교(水島橋)를 건너자 마자 동네 입구에 있는 작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많은 차량으로 적당하게 도로변에 주차하고 나니 벌써 점심식사 시간이 훨씬 지나가 버렸다.

 

               < 수도교를 건너면 만나는 "무섬마을" 내에 있는 작은 주차장 >

 

그래서 무섬마을에 적당한 식당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마을 앞에 있는 제방 따라 왼쪽 방향으로 걸어가 보기로 하는데, 안동 하회마을에서 물돌이가 마을의 왼쪽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흘려가므로 이곳 무섬마을도 당년하게 왼쪽이 상류지역 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걸어 보지만 하회마을과 정반대로 물이 흘려가므로 결론적으로 하류로 걷는 길이 된다.

 

              < 무섬마을 앞에 있는 "제방" >

 

무섬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감쌓고 있는 제방 위에서 왼편 방향에 자리하고 있는 동네 전체를 구경하여 보는데, 동네 뒤편으로 조그마한 야산을 뒤로 하면서 무섬마을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대부분 기와집으로 이루어지면서 곳곳에 초가집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촌락이 매우 목가적(牧歌的)인 풍경을 만들고 있다.

 

                < 조그마한 야산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 "무섬마을" 전경 >

 

              < 텃밭과 함께 하고 있는 "무섬마을" 의 돌담 >

 

                            < "대통령 선거 벽보" 로 장식하고 있는 초가집 >

 

제방 오른편으로는 넓은 백사장이 펼쳐지고 있으면서, 강의 중심에 "S자" 형태의 외나무 다리가 놓여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강을 건너가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이 모든 것도 배에서 우려 나는 소리로 크게 관심을 두지 못하고 오직 식당을 찾아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걸어가니, 마을의 제일 끝지점에 초가집과 더불어 입구에 민박 및 국수 등 분식을 판매한다는 작은 글씨가 보인다.

 

               < 제방의 오른편으로 펼쳐지는 "백사장과 외나무 다리" >

 

                    < 무섬마을 제일 아래쪽 민박과 분식을 판매하는 "초가집" >

 

         < 초가집 모퉁이에 붙어있는 " 민박 및 음식" 을 판매하는 현판 >

 

일단 초가집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분식의 칼국수 보다 떡국을 주문하고 나서 요리를 하는 동안 인접하게 있는 무섬마을 "전통한옥체험수련관" 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는데,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정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ㄱ자" 형태의 전시관과 더불어 왼편으로 넓은 마당과 함께 수련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무섬마을 제일 하부에 있는 "전통한옥체험수련관" 안내표시 >

 

            <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전통한옥체험수련관" 전경 >

 

사무실 입구에서 수련관을 관리하는 관장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면서 전시관 내부로 들어가면 방명록과 더불어 전시실이 만들어져 있는데, 전시실 내부에는 무섬마을에서 수집한 유물과 더불어 지역 주민들의 삶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생활용품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수련관 입구에 있는 "사무실" >

            < 전시관 입구에 있는 "방명록" >

                     

              < "무섬마을" 을 만든 사람들의 얼굴 >

 

특히 영상물을 통하여 전통성을 가지고 있는 무섬마을에서 보유하고 있는 가옥의 형태 및 가옥 마다 보유하고 있는 현판, 주련, 문집, 책, 고서에 대하여 연속적으로 설명하고 있고 작은 시골마을에서 전시관과 더불어 자료의 수집 및 비치하고 있지만, 예약한 점심식사를 위하여 횡하니 돌아보고 전시관을 떠나기로 한다.

 

                       < "영상물" 을 통하여 홍보하는 무섬마을 >

 

         < 무섬마을에서 내려오고 있는 "규방가사" >

             < 무섬마을에 있는 고택의 "현판 및 고서" >

 

                     < 무섬마을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내역 >

 

사전 예약한 식당으로 돌아와 들깨를 갈아서 만든 시원한 떡국 요리를 먹으면서 주인장과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하는데, 주인장은 다소 많은 나이를 가진 분으로 왠만한 도시로 가면 노인회장을 하는 나이지만 어느 농촌과 동일하게 이곳에서도 아직 젊음이로 취급하면서 청년회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 민박집에서 만든 "떡국" >

 

더불어 무섬마을 내력을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무섬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 강원도 영월의 선암마을 및 청령포와 같이 3면(三面)이 물로 쌓여 있는 한국에서 대표적인 마을이 되고, 이곳 무섬마을 뒤편으로 소백산에서 흘려 내려오는 "서천(西川)" 과 태백산에서 흘려 내려오는 "내성천(乃城川)" 이 합수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 무섬마을의 "조감도" >

2개의 물이 합수하는 내성천은 다시 무섬마을의 뒤편에 있는 야산을 거의 270도 이상 휘감아서 예천 방향으로 흘러 내려가 예천의 삼강 나루터 지점에서 낙동강과 합수하므로 무섬마을 자체는 태백산 지맥에서 뻗어 내려오는 영역이 되어지고 강의 건너편 농지와 임야는 소백산 영역이 된다고 한다.  

마을 앞으로 펼쳐지는 넓은 백사장과 더불어 강 건너편으로 울창한 숲을 형성하므로 무섬마을은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데, 무섬마을에서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헌종 7년(1666년)에 반남박씨(潘南朴氏)가 되는 "박수(朴燧)" 씨가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선 영조 때 그의 증손녀 사위가 되는 예안김씨(禮安金氏)의 "김대(金臺)" 씨가 이곳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여 지금 까지 반남박씨와 예안김씨 두 집안이 집성촌을 이루면서 살고 있지만, 최근 사업을 하기 위하여 타성(他姓) 한 가구가 들어왔다고 한다. 

한 때 거의 120여 가구가 되었지만 현재는 48가구에 1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가옥 중 38동이 전통가옥으로 형성하고 있으면서, 그 중 16동은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 된다.

초기에는 반남박씨가 번창하여 큰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반남박씨 대부분은 대도시로 이주하므로 1/3도 되지 않는 약 10여 가구가 살고 있고, 나머지 2/3가 되는 30여 가구는 예안김씨가 독점하고 있어 숫적으로 예안김씨들이 우선하고 있으며 또한 예안김씨는 "선성김씨(宣城金氏)" 이라고 불려지기도 하나 종친회에서의 정식 명칭으로는 예안김씨 이라고 한다.

맛 있게 점심식사를 끝내고 나서 청년회장의 명함 한장을 교환하고 나서 무섬마을을 관람하기로 하는데, 식당에서 동네의 마을 안길 따라 걸어가면 먼저 예안김씨의 부잣집이 되는 한채의 집을 만난다.

이 가옥은 완전히 밀폐형(密閉形) 타입의 "ㅁ자" 건물로 되어 있고, 사랑채의 대문을 통과하면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더불어 좌우 건물들이 일체형(一體形)으로 건축되어져 있다.

 

               < 밀폐형 건물이 되는 "ㅁ자" 형태의 김위진 고택 >

 

이렇게 건물 자체가 완전하게 밀폐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겨울철 추위를 방지하면서 내부에서 가능한 움직이는 동선(動線)의 길이를 짧게하면서 효율적 에너지를 관리하기 위함인데, 이러한 건물의 형태는 강원도 또는 울릉도 너와집에서 불 수 있는 형태로써 이곳 무섬마을에서도 강원도 못지않은 추위를 대비하는 건물이라 하겠다.

무섬마을 전통가옥은 사랑채와 안채로 드나드는 문이 따로 있으면서 안채를 사랑채 보다 약간 높게 건축하여 햇볕이 잘 들면서 통풍이 잘 되게 하는 것이 특징으로 유교적 격식을 엄격하게 거주 환경을 적용한 결과이라 하겠고, 안채와 달리 사랑채는 밖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무섬마을 전통가옥은 그 집 주인의 신분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사랑채의 기둥을 차별되게 지었는데, 같은 양반이라도 벼슬을 한 사람이 거처하는 집의 사랑채에는 원형의 기둥을 사용하고 벼슬을 못한 사람은 사각형 기둥으로 건축물을 건립하면서 집주인의 신분에 따라 사랑채 모양을 달리 하였다고 한다.

또한 대부분 고가(古家)의 건물은 서남향으로 건축하므로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흐르는 내성천과 더불어 태백산과 소백산 산맥의 정기를 고스란히 이어받기 위하여 가옥을 배치되는데, 자연적으로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에 적합하게 자리하게 되어져 영남에서 최고의 길지(吉地)가 된다고 한다. 

연속하여 동네 안쪽으로 걸어가면 초가 삼간 및 무섬마을에서 제일 마당 넓은집 등 다수의 집들이 밀폐형 "ㅁ자" 집을 형성하고 있어 구경을 하면서 마을의 중심지로 들어가는데, 무섬마을에서 반남박씨 입향조가 되는 박수씨가 건축한 민속 문화재 제93호 "만죽재(晩竹齎)" 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곳 집도 전형적 밀폐형 가옥이다. 

 

                  < 무섬마을 내부에 있는 동네 "안길" >

 

           < 무섬마을에서 제일 "마당 넓은집" >

        < ㅁ자 형태의 "무송헌" 종택 >

 

                  < 무섬마을 입향조 박수씨가 건립한 "만죽재" >

 

              < 만죽재 내에 함께 하고 있는 "장독대" >

문화재 자료 제380호 무섬마을의 대표적 부잣집 김위진 가옥, 문화재 자료 제362호 딤장없이 지어진 김정규 가옥, 실학자 박규수의 글씨가 남아 있는 박재연 고택, 민속자료 제118호 만운고택 등 다수의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와 민속 문화재를 돌아본다.

그 중에서 만운고택은 만운 김휘걸 선생님의 고택이 되는데, 만운고택은 시인 조지훈의 처갓집으로 조지훈 선생님이 쓴 "별리(別離)" 라는 시(詩)를 통하여 무섬마을의 슬픈 추억을 기억하게 한다. 

 

             < 조지훈 시인의 처갓집이 되는 "만운고택" >

 

              < 전통고택 체험을 할 수 있는 "섬계고택" >

 

      < 민박을 하는 "초가집" >

 

김규진 가옥은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361호로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까치구멍집으로 강원도와 경상북도에 주로 분포하는 산간 벽촌의 가옥이며 지붕마루 양단 하부에 만든 까치구멍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고, 모든 방이 황토 온돌방으로 자고 나면 피로가 싹 사라지고 기분도 상쾌하여 진다고 한다.

 

                   < "까치구멍집" 이 되는 초가집 >

 

이 밖에 무섬마을에는 일제 강점기에 세운 아도서숙(亞島書塾)은 1933년 일제가 강제로 폐숙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살아졌지만 현재는 복원하고 있다고 하며, 아도서숙은 주민들의 계몽과 더불어 민족교육을 했던 장소이면서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5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곳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마을 중심지를 돌아보고 수도교를 지나 상부로 올라가면 아름다운 정자와 더불어 경북 민속 문화재 제92호 "해우당(海愚堂)" 건물을 만나는데, 해우당은 19세기 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낙풍 선생님이 지은 집으로 김낙풍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조언자 이었다고 한다.

 

           < 무섬마을 상부지점에 있는 "정자" >

        < 수도교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해우당" 건물로 들어가는 대문 >

 

집으로 들어서면 사랑채 처마에 해우당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데, 이 현판은 바로 흥선대원군의 글씨가 되면서 안채의 처마에도 역시 흥선대원군이 쓴 "대은정(大隱亭)" 이라는 현판에 붙어있지만 안채에는 사람이 기거하므로 출입이 제한되어 불 수가 없지만 전통한옥수련관 전시실에 탁본이 있어 그곳에서 불 수 있다.

 

             < "해우당" 현판이 붙어있는 사랑채 >

 

이 해우당 건물 앞으로 무섬마을을 홍보하는 관광안내소가 자리하고 있어 한장의 팜플릿을 얻고 나서 안내소 뒤편으로 돌아서 가면 무섬마을에서 유일하게 음식을 판매하는 한식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 먼저 상부방향으로 관람하였다면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 속담과 같이 점심식사를 끝내고 나서 푸근한 마음으로 관람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 해우당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 >

        < 관광안내소 뒤편에 있는 "한식당" >

 

여기에서 부터 다시 무섬마을을 휘감고 돌아가고 있는 내성천 중앙지점에 있는 외나무 다리를 한번 건너 보기로 하는데, 외나무 다리는 무섬마을이 생기고 나서 부터 만들어진 다리이라 하겠다.

이곳 외나무 다리는 350여 년의 긴 역사를 간직하면서 강 건너편 농토 및 외부와의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가 되지만, 1979년 수도교가 건설하므로 다리의 수명은 끝나고 현재는 관광객을 위한 상징적인 다리로 남겨진다.

 

         < 상징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외나무 다리" >

 

이곳 무섬마을에는 수도교가 만들기 전 현재의 위치와 수도교가 있는 자리 및 마을 뒤편으로 학교를 다니는 장소 등 3곳에 외나무 다리가 만들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상징적으로 마을 중앙과 하부 전통한옥수련관 앞에 외나무 다리를 만들어져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추억을 만들기 위한 체험의 다리가 된다. 

 

           < 무섬마을 제일 하부 전통한옥수련관 앞에 만들어져 있는 "외나무 다리" >

 

백사장으로 한참 걸어가면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출발점에 서는데, 외나무 다리의 전체 길이는 약 150m가 되고 푹이 30C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다리를 건너는 관광객들은 가능한 동일한 방향으로 건너가다가 다리 중간 중간지점에 교행용 보조 다리가 만들어져 있어 그곳에서 교행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다리를 건너는데 다소 원활한 교행이 되지만, 그래도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체험객과 어린이들은 상대방의 건너는 것을 무시하고 무차별 건너오므로 많은 기다림이 발생하게 만든다.

 

       < "외나무 다리" 를 건너는 관광객 >

 

매년 10월이면 이곳 백사장에서 "외나무 다리" 축제를 개최하므로 더욱더 많은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외나무 다리를 건너 마을 반대편에 서서 무섬마을 풍경을 돌아보고 온다.

정말 명당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라서 그런지 6.25 전쟁 때 그렇게도 영주지역에 많은 폭격을 당하여도 무섬마을은 한번도 폭격을 당하지 않고 온전하였다고 하는 한 민박집 주인장 이야기를 상기하게 만든다. 

 

          < 외나무 다리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무섬마을" 전경 >

 

오늘 무심코 찾아왔던 무섬마을이 되지만, 이렇게 한국 전통의 미(美)를 간직하고 있으면서 친절하게 이야기의 상대가 되어주는 동네 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게 만든다.

현대의 문명으로 살아지고 있는 옛 조상들의 혼(魂)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기회를 가지면서 언젠가 민박집에 하루 머물면서 더욱더 추억의 시간을 가져보겠다는 마음을 간직하고, 다음 관광지가 되는 경북도청을 방문하기 위하여 떠나기로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