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문화와 산행.

백봉회 제349봉 산행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병산서원 및 화산' 의 산행.(1)

용암2000 2021. 11. 14. 09:24

 

2021년 11월 13일.(토요일)

 

1, 산행의 개요.

금월(2021년 11월) 제349봉 백봉회 산행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하회마을의 뒷산이 되면서 남동쪽으로 병산서원을 품고 있는 '화산(花山)' 으로 산행을 하겠다는 집행부 연락으로 오전 8시 15분 동대구 종합터미널 3층으로 올라가는데, 금일은 평소에도 많이 참석하는 동문 대부분이 불참하므로 단지 4명만 참석을 한다.

8시 30분에 출발하는 우등고속 버스에 몸을 의존하면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1시간 30분 정도 달려간 버스는 아침 10시 경에 안동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는데, 정류장 입구에 안동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명의 동문이 차량을 가지고 마중을 나와 있다.

 

< 안동 '시외버스 정류장' 전경 >

 

< 시외버스 정류장과 함께 하는 '안동역' >

 

이 동문은 안동에서 교편으로 정년을 끝내고 안동에서 거주를 하고 있는데, 나와는 인연이 없어서 그런지 내가 백봉회에 참석할 때 참석하지 않다가 내가 불참하는 동안에는 열심히 참석하였다가 내가 다시 참석하는 시점에서 부터 불참하므로 상호 연락의 두절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50여 년 동안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은 친구이다.

또한 상주에서 거주하는 한명의 동문이 합류하겠다는 사전 연락이 있었지만 불참하므로 승용차의 정원이 되는 5명이 오늘 산행의 들머리로 선정한 '병산서원(屛山書院)' 으로 달려가는데, 한 50분 정도 달려가 10시 50분 경 병산서원 입구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2. 병산서원의 관람.

일행은 상주에서 출발하는 동문을 위하여 병산서원을 먼저 관람하기로 하는데, 나는 제일 최근 경북대학교 기계과 동문 중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2명과 함께 2018년 12월 23일에서 부터 24일 까지 안동시내에 숙박을 하면서 안동지역에 산재하고 있는 유적지를 탐방하는 과정에 병산서원을 관람한 경험이 있는 문화재가 된다.

그 때와의 차이점은 이곳 병산서원에 대하여 소개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데, 먼저 병산서원이 한국에서 다른 8개의 서원과 함께 총 9개의 서원이 2019년 7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이라는 이름으로 등재가 되었다는 내용과 더불어 병산서원에 대한 세부적인 내력을 기술한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 '병산서원' 의 조감도 >

 

<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으로 등재된 서원 내역 >

 

안내문에 따르면 병산서원은 고려말 부터 이어져온 풍산류씨(豊山柳氏) 가문의 서당이 되는 풍악서당(豊岳書堂)이 그 전신(前身)이 되는데, 선조 5년(1572년)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 1542-1607년) 선생이 31세 때에 후학 양성을 위해 풍산에서 병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당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병에 의해 불태워 졌었는데, 1607년 류성룡 선생님이 타계하자 광해군 6년(1614년) 선생의 제자가 되는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 1563-1633)공이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유림과 뜻을 모아 사당(祠堂)이 되는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여 선생님의 위패(位牌)를 봉안하고 병산서원으로 개칭하면서 위상이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광해군12년(1620년)에 유림의 공론에 따라 퇴계 선생님을 모시는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위패를 옮기게 되었는데, 그 뒤 인조9년(1629년)에 별도의 위패를 마련하여 존덕사에 모셨으며 선생의 셋째 아들 수암(修巖) 류진(柳袗 : 1582-1635)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철종 14년(1863년)에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고종 5년(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보호가 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인 보수가 행하여 졌으며 강당은 1921년에 사당은 1937년 각각 다시 지어졌으며 매년 3월 초정일(初丁日)과 9월 초정일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 '병산서원'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병산서원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다소 넓은 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병산서원의 첫관문이 되면서 '복례문(復禮門)'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솟을대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몇 단의 돌 계단으로 올라서서 솟을대문을 통과하면 작은 마당이 자리하고 있다,

 

< 병산서원의 첫관문이 되는 '복례문' >

 

작은 마당의 왼편에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고 불려지는 직사각형의 연못 속에 원형의 작은 섬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 연못을 '광영지(光影池)' 이라고 불려지는데, 광영은 주자의 관서유감(觀書有感)이라는 시(詩)에서 나오는 '하늘빛과 구름이 함께 노닐다(天光雲影共徘徊)' 에서 인용을 하였다고 한다.

 

< 작은 마당의 왼편에 있는 '광영지' >

 

마당의 오른편 구석에는 재래식의 통시(便所) 한개가 자리하고 있고 또 다시 일단의 축대 위에 7칸의 거대한 '만대루(晩對樓)' 이라는 루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만대루는 서원에서 향사를 지내거니 행사를 할 때 개회와 폐회를 알리는 곳이며 주로 강학공간(講學空間)으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 병산서원의 두번째 문이 되는 '만대루' >

 

< 내부에서 바라보는 '만대루' 전경 >

 

이곳 만대루는 자연을 그르지 않으면서 목재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장식과 기교도 없이 꼭 필요한 요소만을 갖추면서 건축하였는데,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기둥과 더불어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및 커다란 통나무를 깍아서 만든 계단 등은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한국 전통의 빼어난 멋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 자연에 순응하면서 지어진 '만대루' >

 

옛날에는 이곳 만대루로 올라가 해설사의 해설을 경청하고 또한 병산서원 앞으로 흐르고 있는 낙동강과 더불어 낙동강을 휘감고 돌아가는 앞산(屛山)의 풍경을 감상하였는데, 어느 시점인가 만대루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출입 통제를 하고 있다.

 

< 만대루에서 내려보는 '낙동강 및 병산' >

 

만대루 뒤편으로 넓은 마당과 함께 정면으로 대청마루에 '입교당(立敎堂)'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병산서원(屛山書院)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좌우측으로 동재 및 서재 건물이 함께 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서원에서 서재 건물에는 평민의 자제들이 기거하는 곳이라 4각 기둥을 사용하지만 이곳 병산서원은 동재와 서재 모두 동일하게 원형 기둥을 사용하고 있다.

 

< 강학공간의 중심지가 되는 '입교당' >

 

< 양반 자제들이 기거하는 '동재' >

 

< 평민 자제들이 기거하는 '서재' >

 

여기 까지 유생들이 머물면서 공부를 하였던 강학공간이 되고 입교당 건물의 뒤편으로 제사를 모셨던 제향공간(祭享空間)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제향공간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약 400년의 수령을 가지고 있는 배롱나무 군락지이다.

이곳에서 자생하고 있는 배롱나무는 7월 초에서 부터 9월까지 거의 100일 동안 붉은색으로 무성하게 꽃을 피우므로 매우 아름다원 정원을 만들고 있는데, 현재는 겨울철 준비를 하기 위하여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어 매우 쓸쓸한 정원이 된다.

 

< 제향공간 내에서 자라고 있는 '배롱나무' >

 

배롱나무와 함께 하는 제향공간에는 3개이 영역(領域)으로 나누어지는데, 중간에 있는 제향공간에는 높은 계단의 끝지점에 담장으로 구획하면서 담장 중앙에 내삼문(內三門)이 자리하고 있지만 내삼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내부 관람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곳 내삼문 안에는 서애 류성룡 선생님과 그의 셋째 아들이 되는 수암 류진 선생님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존덕사(尊德祠)' 이라는 사당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사당에서는 일년에 두차례 향사례를 올릴 때 문을 연다고 한다.

 

< 옆에서 찍어보는 '존덕사' >

 

제향공간의 왼편에는 각종 서적을 보관하는 장판각(藏版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오른편에는 별도의 담장으로 구획하고 있는 작은 문을 통과하면 내부에 향사례 때 사용하는 각종 제기를 보관하고 있는 전사청(典祀廳)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제향공간 왼편에 있는 '장판각' >

 

< 제향공간 오른편에 있는 '전사청' >

 

< 병산서원 밖에 있는 '달팽이 뒷간' >

 

이 밖에도 병산서원의 오른편으로 나아가면 서원을 관리하는 관리사 건물과 더불어 병산서원에서 유명한 '달팽이 뒷간' 이 만들어져 있어 또 다른 구경거리를 만들고 있지만, 산행을 위하여 모든 것을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관람을 끝내고 산행의 들머리로 이동한다. - 1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