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로 도전하여 보는 전남 해남군의 제일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달마산" 종주 산행.
2011년 3월 12일.(토요일)
대구에서 그리 녹녹치 않은 길을 가야만 만나는 한반도의 끝 땅끝마을 인접하게 있는 "달마산" 을 찾아 새벽 일찍 부산을 떨면서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까 2대의 버스가 정차하면서 산행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1호차에는 전부 두륜산 방향으로 가는 산행 차량이고 2호차에는 두륜산과 달마산 산행을 혼재하면서 승차하고 있다.
2대의 버스는 구마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순천 Toll gate를 벗어나, 또 다시 2번 국도를 이용하여 남도 들판과 남해 바다 따라 약 4시간 달려 해남 땅으로 들어선다.
달마산으로 가는 좌우 길가에는 아름다운 산들이 펼쳐지는데, 대부분 한번 씩 산행하여 본 산들이라 차창가로 비치는 산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 난다.
보성군에서는 숨은 비경을 간직한 두방산과 진달래 꽃으로 유명한 일림산과 제암산이 손짖하고 있으며, 강진군으로 꺽어 들어서니 다산초당(茶山草堂)이 있는 만덕산의 깃대봉을 지난다.
연이어 거대한 암릉 능선을 자랑하는 덕룡산 및 주작산의 하얀 바위들이 도열하면서 창문을 스쳐 지나가고 있으며, 해남군으로 넘어가면 두륜산이 주작산과 연계하여 "호남 정맥" 이라는 기다란 산맥으로 연결된다.
조금 더 남도로 달려가면 두륜산으로 종주하기 위한 시발점이 되는 야타마한 고개 "새놋재" 에 이르는데, 여기서 1호차 전원과 2호차 1/2이 점유하고 있는 두륜산 팀을 먼저 하차시키고 2호차는 나머지 인원 19명만 달랑 싣고서 남쪽으로 10여 분 더 달려 달마산 종주코스 산행을 시도하는 들머리 "송촌" 마을에 11시 20분 경 도착한다.
< 일반적으로 달마산 종주를 시작하는 "송촌마을" 표시석 >
오늘 산행은 이곳 송촌마을에서 시작하여 "미황사" 쪽으로 내려오는 달마산의 1/2만 종주하는 산행으로 계회되어 있어 산행에 임하는 모든 준비를 마치면서 하차하여 마을 입구로 진입 할려고 시도하니 할머니 2명이 기다란 작대기 들고 출입을 통제하면서 길을 막고 있는데, 사유는 아직도 '구제역" 여파로 인한 피해 예방차원에서 마을 통과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Guide가 먼 곳에서 왔다고 아무리 설득하여도 막무가내의 억지로 약 10분 정체하여도 통과가 불가능하므로, 일행과 긴급하게 조율하여 달마산 미황사로 가서 원점회귀 산행으로 변경하여 다시 버스에 승차하여 미황사로 들어가니 11시 40분 경이 된다.
나는 2006년도 송촌마을로 올라가는 코스로 달마산 산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는 산행 도중 비를 만나 조망도 구경하지 못하는 악조건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달마산(불썬봉) 정상까지 갔다가 그 곳에서 미황사로 바로 내려온 적이 있었다.
또한 작년 2010년도에 Wife와 아들을 대동하면서 보길도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미황사로 잠시 들렸지만, 그때도 너무나 많은 비가 내리므로 사찰만 들어갔다가 돌아선 곳이다,
오늘은 좋은 날씨가 된다는 사전 일기예보를 경청하고 나서 산행에 재 도전하여 보는데, 왕복 11시간 이라는 적지 않은 정거리 버스를 타고와 종주 산행을 시도할려고 하니 예기치 못한 구제역으로 인하여 반쪽짜리 산행이 이루어지므로 맥이 빠지는 산행이다.
미황사 일주문을 통과하여서 조금 오르막 길로 올라서면 한국의 남도 땅이나 섬에서 많이 자생하고 있는 거대한 동백나무 숲이 길가에 도열하고 있지만, 아직도 봄의 언저리에 있는 이른 봄이다 보니 나무마다 동백꽃이 몇 개씩 피어 있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동백꽃을 보지 못함이 아쉽다.
< 달마산 미황사로 들어가는 "일주문" >
< 간간히 피어있는 "동백꽃" 을 보면서 >
이어 미황사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에 이르면서 사찰로는 들어가지 않고 좌측 방향에 서 있는 달마산 등산 안내도를 보면서 Guide의 산행 방향과 방법을 간결하게 협의하고, 동백 숲으로 들어가 달마산 정상을 향하여 산행을 시작하여 본다.
< "달마산" 산행길을 나타내고 있는 등산 안내도 >
< 거대한 "동백나무" 숲 밑으로 이루어진 산행초입 길 >
처음에는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오솔길 따라 조금 걷다보면 이내 너들바위 길로 이어지는 가파란 길로 이어지므로 이내 땀으로 번벅이 되어 무겁게 입고 간 겨울 등산복 한벌 벗고, 가벼운 몸으로 바위를 붙잡고 모든 힘을 동원하면서 고도를 상승하여 본다.
이내 젊은이들은 저 만큼 앞으로 나아가고 뒤쪽으로는 세월의 년식이 오래된 사람 순서되로 길을 점유하여 걷지만, 예외적으로 나의 앞에는 75-6세 된 한 모임의 단체 회장님이 동료들의 응원에 힘을 받으면서 가뿐하게 올라가고 있다.
내가 그분도 못 따라가 제일 꽁무니에서 쩔쩔 해메고 있는 모습 보니까 나의 육체(肉體) 년령은 80세가 넘었는지 회장님 따라 가기도 부담이 되면서 온몸으로 피로가 전파 되어지는데, 이렇게 육신도 움직이지기 힘든 삶 살아 무엇에 쓰겠나 생각하니까 정말 처랑함이 엄습하여 온다.
어찌하든 노인분 꽁무니만 붙잡고 한참 따라 올라가니까 헬기장이 나타나므로 이곳에서 약간의 휴식과 더불어 한병의 물로 갈증을 해소시키고 나서, 또 다시 너들바위를 걷기 시작한다.
< 회장님 꽁무니를 따라가야 하는 "너들바위" 길 >
약 40분 정도 올라가면 넓은 바위가 나타나면서 조망이 살아나기 시작하므로 올라온 길을 뒤돌아서서 해남 들력의 조망도 감상하면서 쉼도 가지고 쉬엄쉬엄 또 다시 20분 정도 더 올라가면 거대한 돌탑 한기가 서 있는 정상에 이르는데, 정상 주위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해발 489m "달마산" 꼭지점이다.
< 거대한 돌탑으로 만들어진 "달마산" 정상 >
돌탑 주위에 앉자 휴식을 가지면서 가뿐 숨을 고르고 나서 정상에 올랐다는 증거로 돌탑을 배경으로 인증샷 한장 만들고 나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을 찍어 볼려고 주위 전체를 돌아다녀도 정상을 표시하는 "정상석" 은 없다.
< 달마산 정상 "돌탑" 을 배경으로 인증샷 >
다른 산에 올라가도 돌탑이 많이 있으므로 이 돌탑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달마산 정상을 인증 할 수 있는 증거가 되지 못 함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정상석 하나 만들지 못하는 해남군의 지방자치단체나 해남에 거주하는 산악회에 대하여 원망이 묻어 나온다.
돌탑 대신 옆에 완도섬 방향으로 거대한 안내판 한개가 서 있는데, 그곳에 사진을 찍어서 만든 다도해의 모습과 미황사 설립 배경을 설명하여 놓고 있는 안내판을 보고 있으니 이것으로 달마산 정상에 머물었다는 증거로 삼아야 하는 것 같다.
돌탑을 돌면서 주위 풍광을 즐겨보기 시작하는데, 지금까지 힘들게 올라온 달마산의 서쪽 방향에는 미황사의 전체 모습이 발 아래 머물면서 매우 고즈늑하게 자리잡고 있어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고 있으며 조금 고개를 들어 먼곳으로 바라보면 우리나라의 3번째로 큰 "진도" 섬이 뿌연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 보인다.
< 힘들게 올라온 "미황사" 와 멀리 보이는 "진도" 방향 >
뒤편으로 돌아 동쪽 방향으로 보면 거대한 "완도' 섬으로 들어가는 완도대교의 사장교 다리가 놓여 있으며, 그 다리 건너편 섬으로 들어가면 섬 전체가 상황봉에서 백운봉까지의 능선길이 길게 이어져 있어 완도 섬은 해안가를 제외하고는 전체가 산을 형성하고 있는 섬인 것 같다.
< 완도 섬으로 들어가는 "완도대교" 모습 >
몇년 전 Wife와 함께 이 상황봉을 종주 산행에 도전하다가 중간에서 Wife의 무릎 고장으로 종주를 포기하고 중간지점에 있는 동백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완도동백꽃수목원" 공원으로 내려온 능선이 눈 앞에 머루고 있어, 그 때의 고생스러운 산행 생각이 불현듯 일어난다.
< 완도 섬을 구성하고 있는 "상황봉" 과 "백운봉" 능선 >
다시 돌탑을 돌아 북쪽 방향으로 바라보니 먼 발치에는 두륜산의 거대한 암봉 능선이 펼쳐지고 있으며, 눈 앞으로는 공룡 허리와 같이 뽀족한 바위들로 돌출하고 있는 능선이 머물고 있다.
이 능선 길은 몇년 전 우중에 산행한 길이지만 그땐 안개로 인하여 조망도 구경하지 못하고 빗속만 해치고 걷기만 했던 능선길이 매우 아름다운 자태를 나타내고 있어 달마산 정상에서 그 길을 내려보고 있으니, 새롭게 걷고 싶이지는 충동이 발생한다.
< 희미하게 보이는 "두륜산" 및 달마산 "공룡능선" 길 >
돌아서서 오늘 가고자 하는 남쪽 방향으로 돌아보면 남쪽 먼 발치에는 보길도를 포함하여 거대한 섬들이 점유하고 있는 섬 사이로 파란 다도해 바다 물이 보이고 있으며, 눈 앞으로는 약 10Km 달마산의 전체 종주 코스 길로 연결된다.
이곳도 공룡 뼈와 같이 뾰족한 바위군으로 형성되어져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데, 그 바위 끝 어느 곳에 달마산이 종주 산행의 끝지점 해발 416m "도솔봉" 이 품고 있는 도솔암이 숨어 있겠지?
< 앞으로 가야 할 "도솔암" 방향의 능선길 >
달마산이 끝나는 도솔암 지점에서 계속하여 호남정맥은 연결 되어지면서 조금더 남쪽으로 뻗어 내리면 우리나라의 "땅끝마을" 을 보호하고 있는 높이 155m "사자봉" 이 아련하게 보이는데, 그 봉우리 정점에는 햐안색의 전망대 건물도 희미하게 나타내고 있다.
달마산은 비록 높이 면에서는 그렇게 높지가 않지만 호남의 "금강산" 이라고 불려지는 이유가 이곳에 머물어 보면 실감 되는 산이라, 우리나라에서 가고싶은 100대 인기명산에서 71위를 차지 할 정도의 우수한 산이다.
충분하게 경치를 감상하고 정상 인근에서 해풍이 몰아치는 봄바람을 쏘이면서 반주와 더불어 간단한 점심식사 마치고, 남쪽 도솔암 방향의 능선길로 산행을 재촉한다.
이곳 달마산에서 도솔봉으로 어이지는 산행길은 완전히 바위만 타고 넘은 고행의 길로 형성되어져 있어, 스릴과 모험의 길이라 4발로 걷는 재미가 너무나 솔솔하여 진다.
거대한 암벽와 낭터리지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사다리와 한가닥의 Rope만 의존하면서 올라가야 하는 산행과 한 순간도 안전을 소흘히 할 수 없이 정신이 번쩍드는 산행길을 걷다 보면, 자연의 신비를 하나하나 벗겨보는 낭만적인 산이라 머리도 상쾌하게 만든다.
< 가는 길에 종종 만나는 "나무계단" >
< 기다란 Rope를 의존하면서 타고 넘는 "암릉길" >
때로는 조그마한 동굴 속으로 거대한 육신을 꺽어서 웅크리고 바위 구멍을 통과할려고 하니, 80Kg가 넘는 거구의 몸이 균형도 잡지 못하고 포복하여야 하는 수모를 부여하는 암릉길이다.
아무리 신분이 높은 사람도 몸의 자세를 낮추도록 강조하면서 만인이 동등한 신분을 만들어주므로, 나같이 미천한 사람에게는 통케함도 일어난다.
< 나 같이 날씬한 사람만 통과 가능한 "구멍바위" >
< 아름다운 암릉 미를 나타내는 "달마산" >
< 암벽 사이로 곡예 하듯 걷는 "능선길" >
가는 길에 나 보다 년식이 조금 오래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종종 만나다 보니, 뒤에서 무한대로 기다리는 아량과 더불어 협조하여 주는 미덕의 힘으로 앞으로 계속하여 전진하면서 걷다 보면 다소 짜증이 발생한다.
가는 길 중간 중간 우측 방향으로 미황사로 바로 내려가는 안내 표시판 만나 그 곳으로 내려 갈까 하는 생각도 하여 보지만, 산행의 즐거움을 증폭시키기 위하여 거대한 바위 군락지 사이로 약 1시간 정도 더 능선길을 걸어 "대밭삼거리" 이정표에 도착한다.
< 도솔암까지 가는 3.6Km 거리를 포기하고 지름길로 내려가는 "대밭삼거리' >
처음 계획은 대밭삼거리에서 도솔봉 방향으로 한 코스 더 전진하였다가 "떡봉" 아래에서 미황사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하였으나, 나와 더불어 걷는 꼴치 팀은 4시 까지 하산 종료 시간까지 시간적으로 촉박할 것 같아, 이곳 대밭삼거리에서 "부도암" 방향의 하산길로 인도한다.
달마산의 전체 종주코스는 다른 산에 비하여 결코 길지 않지만, 이번도 도솔암까지 종주코스로 연결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바로 하산시점을 정하니, 달마산은 나에게 결코 종주를 허락하지 않는 산인가 보다.
아무리 산행을 잘하는 베트랑 산악인도 달마산을 당일로 종주 할려고 하면 등산객이 적은 조용한 주중 산행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새벽 일찍 서둘려야만 가능한 산인 것 같다.
나와 같이 산을 걷는 초보자 신분으로는 늦게 산행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과욕의 산물인 것 같아 인(仁)자 만이 산을 즐긴다는 마음으로 무리하지 않고, 이곳에서 하산길로 방향을 잡고 내려선다.
가는 길가에는 산죽 나무들이 도열하면서 걷는 길을 안내하는데, 달마산은 기본적으로 고도가 낮다 보니 한 30분 정도 오솔길 따라 내려서니 미황사의 말사가 되는 "부도암" 에 이른다.
부도암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돌 기단을 만들어 놓은 축대 위에 수 많은 부도탑이 질서 정렬하게 도열하고 있는데, 부도탑 각각 조각하여 놓은 모습이 일품의 모양을 간직하고 있어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 질서 정렬하게 도열하고 있는 "부도탑" 전경 >
이 부도탑 옆에는 거대한 부도암 암자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건물 앞에 거대한 비석 한기가 서 있는데, 비석 주위에 축대를 쌓다 보니 자연의 경관과 역행하게 비석이 땅 속으로 꺼진 형태를 하고 있어 볼폼이 억망인 것 같다.
< 암자 마당 앞에 땅으로 꺼지게 만든 "비석" >
미황사 스님들이 나보다 산천을 보는 안목과 풍수지리에 더 많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많은 비용을 쓰면서도 자연 경관을 무시하면서 공사를 하고 있는지 생각하니 다소 측은심이 발로한다.
부도암에서 약간만 걸으면 아침에 그냥 통과한 미황사에 도착하는데, 미황사에서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보전(大雄寶殿)" 은 조선후기 목조건물로 보물 제947호 지정된 문화재이다.
대웅보전은 정면 3칸에 측면 3칸 규모로써 단층 팔작지붕을 한 건물에 단청도 칠하지 않고, 소박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매우 단아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 단청을 칠하지 않고 있는 "미황사" 대웅보전 >
특히 대웅보전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는 넓은 마당 가장자리에 잡석을 높게 쌓은 기단 위에 둥근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의 둥근기둥을 세워 건물의 곡선미를 최대한으로 부여하고 있으며, 그 위에 공포는 내사출목(內四出目)와 외삼출목(外三出目)의 다포식(多包式)으로 결구하여 매우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 미황사 사찰 내부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 >
특히 미황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창건되었던 사찰인데, 불교의 해로(海路) 유일설을 뒷받침하는 창건(創建)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라시대 "의조화상' 이 창건했다는 이곳은 1692년 숙종 18년에 병조판서를 지낸 "민암" 이 쓴 '미황사 사적기' 에 창건에 관한 얽힌 전설이 전하고 있는데, 의조화상의 꿈에 금인(金人)이 나타나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은 곳에 절을 세우라는 말씀대로 첫번째 소가 누운 자리에 "통교사" 라는 사찰을 짓고 그 다음 두번째 소가 일어나지 않는 장소에 "미황사(美黃寺)" 라는 사찰을 지었다.
미황사라는 이름은 소 울음소리가 아름다워 아름다울 미(美)를 취하였고, 금인의 황홀한 빛을 상징하여 황(黃)자를 취해 지었다고 한다.
사찰이 웅장하다 보니 한바퀴 돌아보면서 사찰 공부하는 것도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 장소이지만 특히 사찰 마당에 서서 사찰을 감쌓고 있는 달마산의 암봉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왜 내가 이렇게 왕복 11시간이나 소비하면서도 불원천리 머니먼 길을 찾아 달마산의 정기를 받는 것도 나의 인생 락(樂)이 됨을 느끼는 고마운 산이다.
< 미황사를 감쌓고 있는 "달마산" 암릉 전경 >
나의 체력이 허락하고 경비가 확보된다면, 언젠가 다시 찾아 종주하지 못한 반쪽의 도솔암까지 걸어보리라는 마음 품고서 귀로에 올라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