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성군에 있는 "축령산" 편백나무 숲길 및 "홍길동 생가" 을 돌아 보고서.
2011년 6월 12일.(일요일)
오늘은 모처럼 대구 "D" 산악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는 "축령산" 산행에 참석하여 보는데, 대구에서 장성군 축령산 까지 이동거리가 멀다보니 아침 일찍 동아쇼핑 앞 주차장에 나아가니 산을 찾은 대형버스들이 많이 정차하고 있어 버스를 찾는데 다소 곤역을 치루는 새벽이다.
버스는 중간에서 단 한번의 휴식과 더불어 산악회에서 제공하여 주는 간단한 아침 식사를 가지고 나서 88올림픽 고속도로와 새롭게 만든 고창-담양 간 고속도로를 연이어 달려 장성 물류 Toll gate에 내려, 한적한 시골 농로 길로 조금 달려 축령산 들머리가 되는 추암마을에 9시 50분 도착된다.
1. 축령산 산행 및 트레킹.
축령산은 고인이 되어진 춘원 "임종국(林種國)" 옹이 홀로 90만 평에 편백나무와 삼나무 약 200만 그루를 조성하여 울창한 숲을 가진 한국 산림 보고의 장소로 만든 산이다.
전남 장성군에 있는 축령산은 야트마한 산으로 웬만한 지도에도 잘 표시되지 않을 만큼 무명(無名)의 산이었지만, 지금은 세상에 잘 알려지는 이유는 산을 두루고 있는 약 50년 생이 되는 건강한 편백나무 숲 때문이다.
산을 좋아하는 전국 산 메니아(Menia)와 울창한 숲길을 걸으면서 사색을 즐기려는 여행객 및 편백나무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 라는 방향성 물질로 자연 치유(治癒)를 원하는 아토피 피부 환자 등, 말기암 환자가 필수적으로 찾는 병원 같은 산이다.
축령산 남쪽 기슭에 있는 금곡 영화촌이라는 조그만 마을에는 영화 태백산맥, 내마음의 풍금 및 드라마 왕초 등 몇 편의 영화가 촬영된 배경의 장소가 함께 존재하다 보니, 옛 향수를 느껴보는 고향 같은 산천을 즐기기 위하여 새롭게 부각 되는 관광지이다.
주차장에서 조금 올라가면 축령산 입구를 표시하는 추암마을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산행은 2개의 길로 갈려지면서 바로 올라가면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와 축령산 구석구석으로 연결되는 임도의 길이고 오른편 다리를 건너면 또 다른 대형버스 주차장을 통과하여 오솔길로 걷는 길이다,
< "추암마을" 입구에 있는 산행길 안내도 >
대형버스 주차장 끝지점의 구석자리에 산행인들이 걷는 오솔길이 나타나는데, 오솔길 입구에 축령산 휴양림 까지 1.6Km 이라는 이정표가 산행인들에게 방향을 지시하여 준다.
< 대형버스 주차장 입구에서 "휴양림" 까지 거리 표시 >
여기에서 부터 소나무 군락지 속에 곳곳에 단풍나무 및 편백나무가 혼영하면서 자생하고 있어, 산행 초입 부터 기분이 생쾌하여지는 듯 발걸음도 가볍게 산행에 임하게 만든다.
한 30여 분 정도 올라가면 산의 능선에 이르면서 임도를 만나고 임도 따라 조금 더 걷다보면 춘원 임종국 선생님의 추모 공원이 나타나는데, 이 공원에는 오늘날 축령산을 관광지로 만든 조림왕 임종국씨의 조림 공적비가 넓은 잔디 밭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 춘원 "임종국" 씨의 공적비 전경 >
기념비 뒤편에 새겨진 임종국 선생님은 편백나무 숲을 조성하여진 내역을 기술하고 있는데, 너무나 작은 글씨와 한자로 빽빽하게 기술되어 있어 읽어보는 사람이 거의 없고 전면에 새겨진 "춘원임종국조림공적비(春園林種國造林功積碑)" 라는 비석을 배경으로 사진이나 찍는 것으로 대신함이 아깝다.
뒷면 내용을 요약하여 보면
"춘원 임종국씨는 1915년 1월 19일 생으로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순창에서 태어나 1940년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양잠 및 특수 작물을 재배하여 돈을 모아 1956년 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온갓 역경과 고행을 극복하면서 혼자 조림 사업을 하였다.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으면서 비웃음으로 일관하다가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복하여 결국 마을 사람들도 협조하여 조림에 동참의 길로 협조(協助)하지만, 말년에 부채로 부도의 길로 들어서서 자식과 같이 키운 나무가 매각되는 아품을 보면서 1987년 7월 27일 72세의 나이로 타계한다." 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 춘원 "임종국" 씨의 공적 내용 >
이 공적비 주변에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충분한 휴식과 더불어 여유를 가지다가 왼편으로 만들어져 있는 축령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사이길로 접어드는데, 올라가는 길이 0.6Km 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부터 임종국씨가 조림하여 놓은 편백나무 사이로 급경사의 산행 길이 이어지는데, 초입에는 경사도가 작난이 아니다.
< "축령산 정상" 으로 올라가는 산행길 >
빈몸으로 올라 가기도 힘이드는 경사면에 임종국씨는 가뭄으로 말라가는 편백나무를 살리기 위하여 물 지게를 지고 산 전체를 누비고 다니면서 한 바가지의 물로 나무를 살리기 위하여 길이 없는 산기슭을 타고 다녔다.
나는 사람들이 잘 다니도록 만들어진 산작로와 같은 길을 통하여 나무테크 및 Rope를 의존하면서도 올라가기도 힘이 들고 있으니, 정말 호강이 넘치는 인간이다.
< 급경사의 산비탈에 자라고 있는 "편백나무" >
약 30분 정도 올라가면 해발 621m "축령산" 정상에 이르는데, 정상에는 축령산 안내도 그림과 함께 2층 전망대가 산악인의 휴식처를 제공하면서 축령산 조망도 보여주고 있어 위에서 내려보는 휴양림의 전경이 대단하다.
< 축령산 정상에 건립되어 있는 "전망대" >
< 해발 621m에 설치되어 있는 "축령산" 안내도 >
< 축령산 정상에서 바라본 "편백나무" 조림지 >
주변을 한번 돌아보고 휴양림에서 많은 휴식의 시간을 가지기 위하여 일찍 자리를 일어서서 능선길로 들어서는데, 여기서 산행 길은 약 1시간 정도 걸어 들목재고개 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돌아서서 금곡 영화촌을 돌아보고 임도 따라 휴양림 방향으로 들어가 원점회귀가 되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는 코스로 계획하여 본다.
능선길은 울창한 숲속으로 거의 평지와 같이 평탄한 길로 이루어져 있어, 걷기에 최상의 조건을 유지하고 있다.
가는 길 중간중간 정자와 더불어 의자를 많이 만들어져 있어 곳곳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등산객을 뒤로하고 약 30분 정도 걸으니 3거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이곳에 우측 방향의 표시 따라 가면 휴양림 임도길로 바로 내려가는 지름 길이지만 대부분 산행인들은 30분 정도 더 능선길로 선택하여 들목재고개 마루에 이른다.
< 능선길에 만들어진 "휴식처" 전경 >
고개마루 좌측에는 아담한 황토 흙으로 만든 펜션의 한 집단이 일렬로 도열하고 있어 건물들이 이색적으로 잘 건립되어 있어 잠시 돌아 보고 되돌아 나와 금곡 영화촌으로 발길을 잡는데, 시멘트 포장길 따라 한 10여 분 정도 걸으면 새로운 마을 하나를 만나면서 마을의 이름이 금곡 영화촌이다.
< 들목재 정상에 있는 "황토 펜션" 전경 >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전부가 기와집으로 새롭게 단장을 하고 있어 영화 촬영하기에 너무나 부적격하여 한 곳의 집에 들어가 젊은 아저씨에게 내력을 물어보니까, 몇년 전 영화를 촬영 할 때 전부가 초가집에 마을 안길도 포장되지 않은 고불고불한 담장 길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이 문명의 이기 속에 살고 싶어하는 주민의 요청에 따라 옛 풍경을 완전히 살아지게 하면서 초가집 모두를 개축하므로 옛 향수가 완전히 살아져 지금은 마을 사람들도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 새롭게 단장한 "금곡 영화촌" 전경 >
< 새롭게 단장한 마을 "안길 및 포장 도로" >
마을 입구에는 조정래 씨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을 촬영한 기와집 한 채만 달랑 남아 있고, 영화 셋트장 전부를 철거하여 삭막하게 변함으로 입소문과 축령산 관광 안내도 따라 찾아오는 수 많은 관광객들에게 옛 시골 풍경의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하여 실망만 품고 돌아가는 뒤 모습만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심정도 매우 착잡하다고 더 붙인다.
< 영화 "태백산맥" 을 촬영하였다는 기념 안내문 >
<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영화 셋트" 건물 >
마을 뒤편으로 다시 올라와 왼편으로 만들어진 임도길로 들어서며 이내 편백나무 및 삼나무, 소나무, 낙옆송 군락지 속으로 임도가 터널과 같이 미로로 연결되어 지는데, 나무에서 발산되는 상큼한 피톤치드의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 나무를 애창하게 하는 "이은상" 시 >
편백나무에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 량이 일반적으로 소나무 보다 약 5배 정도 많은 량(量)의 피톤치드가 방출되므로 편백나무 숲속에는 모기, 개미, 쥐, 뱀 등 곤충이나 파충류가 살지 못한다고 한다.
임도길 곳곳에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비포장 길로 되므로 무아지경으로 산책하는데, 최상의 조건을 간직하고 있는 둘레길이다.
< 울창한 "편백나무" 사이로 만들어진 임도길 >
산의 전체에 약 30m가 넘는 거대한 편백나무 및 삼나무의 울창한 숲이 마치 터널을 형성하는 듯 낮에도 암흑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데, 숲속 곳곳에 돗자리를 펴고 아토피 피부병과 말기암을 치유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 편백나무 숲속에서 병의 치유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환자" >
< 편백나무 밑에서 여가를 즐기는 "행락객" >
< 임도를 달리는 "싸이클" 동호인 >
축령산 휴양림은 대부분 편백나무로 이루어져 있지만, 때때로 삼나무와 단풍나무 및 소나무가 혼용하므로 나무에서 붐어내는 향기가 이동하는 장소 마다 차별화가 발생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임도 따라 곳곳에 이색적인 산소 숲길, 치유 숲길, 솔내음 숲길, 건강 숲길, 하늘 숲길, 나무테크 숲길, 맨발로 걷는 숲길 등 길을 만들어져 있어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자기 체력에 적합한 장소 까지 돌아보면서 충분한 휴식과 더불어 함께 호젓한 트래킹을 가지는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질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방문한 환자들에게 더 없이 좋은 장소이다.
< 임도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건강 숲길" 안내도 >
< 울창한 편백나무 사이로 만들어진 "나무테크 숲길" >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편백나무 잎은 부채 살과 같이 납작하면서 펼쳐지는 침엽수에 속하고, 삼나무는 잎이 다소 둥근 형상의 가시가 뭉쳐져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전체가 같은 나무 군락지로 되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햇갈림이 발생하게 한다.
편백나무는 비늘 처럼 생긴 조그만 잎은 2장씩 서로 마주보며 4장씩 모여 달리고, 타원형의 많은 수꽃과 공처럼 생긴 암꽃이 4월 무렵에 한그루의 가지 끝에서 암꽃과 수꽃이 따로 따로 핀다.
편백나무의 원산지는 일본이며 겉씨 식물인 측백나무과에 속하는데, 최대로 성장하면 키가 40m에 지름이 2m에 이르며 가지가 옆으로 나란히 퍼지면서 수피(樹皮)는 적갈색이고 세로로 길게 갈라진다.
< 곳곳에서 "편백나무" 를 간벌하고 있는 모습 >
임도 따라 적당하게 걷다보면 일본인들이 방문하여 기념으로 새운 나무 기둥에 방문 글을 볼 수가 있으며 그 곳에서 왼편으로 다소 벗어나며 춘원 임종국씨가 잠들고 있는 "수목장" 느티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진작 그 분은 편백나무 아래에서 잠들지 않고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어린 느티나무 아래서 잠들고 있는 것도 이색스럽다.
< 일본 방문단이 쓴 "나무 기둥" 의 모습 >
< 춘원 임종국씨가 수목장으로 묻혀있는 "느티나무" >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이 찾는 축령산을 짧은 시간 내로 산행과 더불어 산책을 함으로써 상쾌한 기분을 마음 껏 느끼지는 못 하였지만, 건강과 운동에 적합한 산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다음 계획을 위하여 3시 까지 원점인 추암마을 주차장에 이른다.
2. 홍길동 테마파크 관람.
추암리에서 대구로 오는 길의 중간에서 한 20분 거리에 있는 "홍길동 테마파크" 로 들어가 보너스(Bonus)의 여흥을 가져 보기로 하는데, 홍길동 테마파크 입구 주차장에 들어가 먼저 조감도를 살펴보면 그 크기에 압도를 당한다.
< "홍길동 테마파크" 를 나타내는 조감도 >
야트마한 야산을 빙돌아 수십만 평의 토지 위에 만들어진 테마파크 입구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99칸 짜리 "청백당" 건물이 압도적으로 자리 잡고서 관광객을 유도하고 있는데, 내부를 한바퀴 돌면서 관람하는 것도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 테마파크 입구에 있는 99칸 짜리 "청백당" >
< 청백당 내부에 있는 "건축물" >
청백당을 벗어나 뒤편으로 들어가면 민가가 혼용되어 있는 마을이 조성되어 있고, 이 마을을 통과하고 나면 아름다운 꽃 밭과 더불어 곳곳에 홍길동 모형으로 만들어진 테마공원 내부를 가로 질러 걷다보면 거대한 홍길동 생가 건물이 눈 앞에 머문다.
< 홍길도 테마파크를 빛내고 있는 "분수대" 및 생가로 가는 길 >
< "홍길동 생가" 로 들어가는 대문 >
생가 건물은 안채, 사랑채, 문간채를 포함하여 전통 한옥건물로 만들어져 있으면서 안채의 중앙에는 밀랍으로 만든 홍길동 아버지가 서자(庶子)가 되는 홍길동이 집을 떠나는 모습을 재현하여 놓은 건물로 만들어져 있는데, 당시 서자의 서러움이 뭍어나는 애환의 장면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절로 아려져 온다.
< 생가 안채 앞에서 이별을 하고 있는 "홍길동과 아버지" >
생가를 뒤돌아 야산 깊숙하게 들어가면 홍길동이 태어난 생가 터를 만나는데, 생가 터에는 건물, 축대, 담장, 우물 등의 유물이 발굴되어 홍길동이 실제 인물 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 앞에는 홍길동의 산채 체험장도 만들어져 있으며 체험장 대부분은 초가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의적의 집, 활빈당, 당수의 집 등이 고즈늑하게 자리잡고 있어 이곳에 생활하면서 실제 홍길동의 무예를 체험 할 수 있도록 Program을 만들면서 운영하고 있다.
< 홍길동 "산채 체험관" 에서 훈련하는 망루 >
생가 터로 부터 되돌아 내려오면 "홍길동 전시관" 에 도착되는데, 이곳 전시관에는 홍길동의 실존 인물 임을 증명하는 역사적인 고증과 함께 자료들이 일목요약하게 전시되어 있으면서 상시로 영화를 통하여 홍길동전을 홍보하고 있다.
< 홍길동 "전시관" 내부의 모습 >
< 전시관 내부에 진열하여 놓은 "유물 및 자료" >
< 홍길동 일대기를 기록 상영하고 있는 "영화관" >
우리가 허균 선생님이 쓴 "홍길동전(洪吉童傳)" 은 소설이 아니면서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집필 되어졌다는 문헌 자료를 보고 있으니, 지금 까지 알고 있었던 홍길동의 위인전을 재조명하여 보는 전시관이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