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 문화와 산행.

밀양시가지가 내려다 보이고 있는 '영남루' 의 관람 및 천진궁과 아랑사의 구경.(3)

용암2000 2025. 3. 24. 02:24

2025년 3월 14일.(금요일)

 

3. 영남루를 돌아보면서.

밀양 아리랑시장 내에 자리하고 있는 '따숭거 국밥' 식당에서 풍족한 식사를 끝낸 일행은 도로를 건너 약간의 비탈면 따라 조금 올라가면 '영남루(嶺南樓)' 마당에 도착하는데, 영남루 내에는 루각 건물과 천진궁 및 아랑사 건물이 함께 하고 있다.  

 

1) 영남루의 루각 건물 구경.

영남루의 루각 건물은 조선 헌종 10년(1844년) '이인재(李寅在)' 부사가 중건한 건물인데, 조선시대 때 부터 진주의 촉석루(矗石樓) 및 평양의 부벽루(浮碧樓)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루(名樓)로 일컬어 왔다.

<'영남루' 의 정문 >

< '영남루'의 조감도 >

< '영남루'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영남루는 본루(本樓)를 기점으로 하여 익루(翼樓) 건물로 좌우에 능파각(凌波閣)과 우측으로 침류각(枕流閣)을 거닐고 있는데, 본루는 정면 5칸에 측면 4칸의 팔작지붕 형태를 가지면서 2층 다락형으로 웅장한 기풍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다.

< '영남루' 의 전경 >

마루는 넓게 깔린 2층 평면으로 내외진(內外陳)으로 구성되면서 주위에 난간을 두르면서 기둥 사이로는 사면(四面) 모두를 개방하였고, 건물 공포는 익공양식의 건축으로는 쇠서가 많은 삼익공계(三翼工系)이며 천장은 지붕 밑이 그대로 보이는 연등 천정에 겹처마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 2층의 '기둥과 마루' 모습 >

특히 우측 침류각과 본류 사이에는 '달월(月) 자 형태의 층층각이라고 하는 계단식 통로(通路)가 상호 연결이 되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먼 곳에서 보면 매우 아름다운 자태를 나타내고 있는 건축물이라 하겠다.

< '본류와 침류각' 을 연결하고 있는 층층각 계단 >

영남루는 다른 지역의 루각과 차별나게 관광객들이 좌측의 능파각 건물을 통하여 루각으로 올라가 밀양시가지와 더불어 건축양식 및 루각 곳곳에 붙어있는 다양한 현판을 구경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도 다른 지방의 루각과 차별화를 만들고 있다.

< 본루와 좌측의 '능파각' 건물 >

낙동강 지류가 되는 밀양강변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는 영남루는 경관이 수려하여 1931년 조선 16경 중 하나로 선정되어질 정도의 루각으로써, 눈 아래에 머물고 있는 밀양강과 울창한 송림 및 시가지 빌딩들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 눈 아래에 머물고 있는 '밀양강' >

 

또한 건물 내부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충량(衝樑)과 퇴량(退樑)은 물론 대형 대들보가 화려한 용신(龍身)으로 조각 되어있고, 건물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당대 명필가 및 문장가의 시문(詩文) 현판이 즐빈하게 붙어있어 읽은 재미를 극대화(極大化)시켜 준다.

 

< 건물의 외곽 곳곳에 부착하고 있는 '현판' >

 

< 처마에 걸려 있는 '현판' > 

 

그 중에서 특이한 현판은 서예가들로 부터 불가사한 필력으로 지칭되는 것은 1843년에서 부터 1844년 까지 이곳 건물을 중수 할 당시 이인재 부사의 첫째 아들인 11살 '이증석' 군과 둘째 아들인 7세 '이현석' 형제가 쓴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 및 영남루(嶺南樓) 이라는 현판의 글씨이다.

 

< 11세 이증석군이 쓴 '영남제일루' > 

 

< 7세 이현석군이 쓴 '영남루' >

 

이밖에 여러 사람들이 쓴 현판이 곳곳에 붙어있는데, 모두가 이곳 영남루가 최고의 아름다운 경치에 극찬을 아끼지 않은 명필이라서 그런지 입구에 부언(附言)으로 설명하여 놓은 현판의 내용이 보인다.

 

< 이밖에 다른 '현판' >

 

< '현판' 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특히 바닥에 깔린 마루가 세월의 무게로 인하여 삐뚤어진 틈새로 시원한 공기가 통하고 있는데, 그로 인하여 여름철 무더위를 날려 보내면서 한숨의 낮잠을 청하는데 최적의 장소가 된다.

또한 건물 천정과 기둥 및 석가래에 칠하여 놓은 단층이 퇴색할 때로 퇴색이 되어 고풍의 빛 바랜 건물로써 인고의 역사를 말하여 주고 있는 건물인데, 몇일을 머물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은 루각이라 하겠다.

 

2) 천진궁의 구경.

영남루 앞에 있는 넓은 마당의 끝지점에 경남 유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된 천진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만덕문(萬德門)' 이라는 정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정문을 통과하면 일단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천진궁(天眞宮)' 을 만난다.

 

< 영남루 앞에 자리하고 있는 '천진궁' 전경 >

 

< '천진궁'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천진궁의 정문이 되는 '만덕문' >

 

천진궁 내에는 단군 이래 역대 8왕조의 시조(始祖)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으로 중앙 수좌에는 단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여 있고, 동벽에는 부여, 고구려, 가락, 고려 시조왕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서벽에는 신라, 백제, 발해, 조선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 '천진궁' 건물의 전경 >

 

< 천진궁 내 중앙에 모시고 있는 '단군' > 

 

천진궁은 고려 현종 6년(1665년)에 부사 '홍성구' 선생님이 창건한 요선관(邀仙館)의 건축물인데, 현재 건물은 조선 헌종 10년(1844년)에 밀양부사 이인재 선생님이 크게 보수하였으며 고종 연간에는 군수 이재도 선생님이 중수하여 객사 건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천진궁의 정문이 되는 만덕문 왼편으로 둥굴게 만들어진 받침돌 위에 비석이 서 있는데, 이 비석에는 밀양박씨의 원조 '밀성대군상(密城大君上)' 이라는 글씨와 더불어 비석 앞에는 2분의 무인상과 2마리의 사자가 지키고 있다.

 

< 만덕문 앞에 만들어져 있는 '비석' 군락지 >

 

 

3) 아랑사의 구경.

이렇게 영남루를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구경하고 나서 다시 후문으로 나와 나무테크로 만들어진 계단 따라 밀양강변으로 내려가면, 숲의 가장자리에 '아랑사(阿娘祠)' 건물을 만난다.

아랑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고목의 나무가 큰 수술을 하면서도 씩씩하게 생(生)을 영위하고 있고, 입구의 정조문(貞操門)을 통과하면 급경사의 계단 위로 아랑사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아랑사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고목' >

 

< 아랑사의 정문이 되는 '정조문' >

 

< 높은 계단 위에 자리하고 있는 '아랑사' > 

 

이곳에는 '아랑' 이라는 처녀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여 신관 사또에서 그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나타나면 사또들이 놀라서 죽었는데, 기백있는 신관 사또가 아랑의 억울함을 듣고 한(恨)을 풀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는 곳이다.

아랑사는 언제 건립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고종 15년(1878년)에 밀양부사로 재임한 연서 '신석균' 선생님의 영남루 제영(題詠)에 '노승원(老僧院)과 열녀사(烈女祠)' 라는 단편적인 기록이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 부터 밀양의 지역민들은 아랑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면서 영남루 아래 죽림(竹林) 속에 사당을 세워 혼백을 위로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 '아랑사'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사당 내에 있는 영정(影幀) 그림은 이당 '김은호(金殷鎬)' 화백이 그린 그림인데, 아랑 제향은 매년 밀양아리랑 축제 행사를 통하여 선발된 모범 규수들이 제관(祭官)이 되어 음력 4월 16일에 제(祭)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 아랑사 내에 모시고 있는 '아랑' 영정 >

 

< 아랑사 내 벽면에 그려지 있는 '그림' >

 

< 또 다른 벽면에 그려져 있는 '그림' > 

 

이곳 아랑사 옆에 있는 쪽문을 통과하여 대나무 숲으로 조금 올라가면 아랑 낭자가 피살된 장소가 나타나는데, 이곳 장소에는 철조망으로 둘레를 만들어진 중앙에 '아랑유지(阿娘遺址)' 라고 쓴 비각 한기가 외롭게 서 있다.

 

< 아랑사 왼편 대나무 숲속에 자리하고 있는 '비각' >

 

< '비각'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아랑사 앞으로 흐르고 있는 '밀양강' >

 

아랑사 바로 앞으로 도도하게 밀양강이 흐르고 있는데, 강변 따라 오솔길과 체육시설이 잘 만들어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으며 강 건너편으로 밀양시가지 빌딩들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 3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