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회 20주년 기념 240봉 산행을 위하여 경상남도 남해의 섬에 있는 "설흘산" 을 찾아 갔지만.
2012년 4월 14일.(토요일)
백봉 산악회는 1992년 4월 고등학교 동창생들이 노후의 건강을 위해 100개 산이라도 꾸준하게 올라가 보자는 작은 소망으로 출발하면서 산악회 이름도 백봉이라는 뜻이 가미하면서 만들어진 산악회가, 금일 20년 간 변함없이 이어지면서 제240봉 산행 행사를 가지는 날이다.
처음부터 계속적으로 산행을 참석하는 한두명의 동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간에서 참석한 동문들이 지속적으로 바톤을 넘겨 받으면서, 어떻한 역경도 굴하지 않고 현재까지 연결하여 명맥을 유지하여 준 악우(岳友)들에게 먼저 감사 드린다.
앞으로도 힘이 닿고 건강이 허락한 한 계속 연결 될 것이라는 생각을 확신하면서 산행을 계획하는 집행부는 지금까지 마이크로 버스를 이용하여 대구 근교에 있는 단거리 산행에 많이 의존하던 것을, 오늘은 대형버스를 이용하여 조금 장거리라고 할 수 있는 남해의 보고의 산 "설흘산" 으로 간다.
백봉회 산행은 항시 느근하게 출발하여 조금 빨리 산행을 종료하면서 여가에 중점을 두는 산행으로 이루어지므로 오늘도 산악회는 평상 시와 같이 대구에서 9시 30분 출발시키므로 설흘산 종주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으로 버스에 승차하니, 매번 동참하는 17명의 반가운 얼굴들이 대면하여므로 무사안녕의 인사를 나눈다.
꽃길로 장식하고 있는 남해 고속도로과 국도를 이용하여, 설흘산 종주 산행 들머리가 되는 "선구리" 마을에 12시 30분 다소 늦게 도착 되므로 종주가 어렵겠다는 생각으로 산행에 임한다.
< 설흘산 종주 산행 들머리인 "선구리" 마을 입구 >
일반적으로 산행은 적어도 11시 이전 산의 들머리에 출발하여 13시 경 정상 부근 지역으로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식후에는 대부분 하산으로 이루어지면서 가볍게 산행이 이루어져야 만 호흡적으로 원만한 산행이 되는 것이 등산의 기본적인 상식인데, 이제 산행 초입에 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산악회를 이용하여 2009년도 봄 설흘산을 종주하여 본 산이라 산행길이 선명하게 기억하므로 천천히 마을길을 통하여 고도를 상승하니, 마을 뒤편 언덕 위에는 마을의 수호신 350년이 된 팽나무 몇 그루가 봄을 기다리면서 따뜻한 봄바람 속으로 앙상한 가지를 내어주고 있다.
< 300년이 된 "팽나무" 가 봄을 기다리면서 >
이 팽나무를 뒤로하고 이내 산 들머리에 들어서면 설흘산 산행 안내도가 서 있으며 구간별 산행시간도 기술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부터 설흘산 정상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와서 가천 다랭이 마을까지 종주하는 제1코스 길은 약 8Km에 3시간 정도의 산행시간이 소요된다고 적혀 있다.
< "설흘산" 산행 안내도와 소요 시간 >
천천히 고도를 상승하면 가는 길은 울창한 숲속으로 길이 이어지지만, 발 아래에는 너덜바위 길로 형성 되므로 안전에 각별히 조심을 요구하는 산이다.
<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
한 30분 정도 올라가면서 뒤로 돌아보니 울창한 숲속에서 간간히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바다에는 거대한 화물선과 유조선들이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광양항과 여수 신항까지 줄을 이루고 있다.
광양항으로 들어가는 길은 다음 달 5월 12일부터 3개월간 개최하는 "2012년 세계 여수 해양 EXPO" 가 열리는 여수 신항으로 들어가는 동일한 항로이다.
참 많은 물동량이 움직이는 항구라고 느끼면서 조금 더 고도를 상승시키고 있으니, 선두로 안내하는 몇몇 동문들이 넓은 바위에 앉자서 후미를 기다리면서 점심식사 후 산행하자고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넓은 공터를 중심으로 하여 일행들은 삼삼오오 모여 식사하고 있는 사이, 예전과 같이 동일하게 총무의 돼지족발 요리와 더불어 오늘도 대구 불로막걸리 대표가 하사한 막걸리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 산행길 가장자리에서 "점심식사" 하는 일행 >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과 같이 아무리 갈 길이 멀다고 하여도 그 것은 차후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마음 껏 막걸리 잔이 몇 번 순회를 끝내고 나서야 비로서 만찬의 시간이 종료된다.
식후 커피를 마시는 약간의 휴식을 더하고 산행으로 연결하는데, 올라가는 길이 더욱더 너들바위로 이루어지면서 바위 사이로는 진달래 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어 부른 배도 의식하지 못하고 무아지경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 진달래가 피어있는 "너들바위" 길도 걸으면서 >
한 10여 분 정도 더 올라가면 설흘산 종주코스 중에 백미라고 불여지는 칼바위 아래에 도착하는데,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칼바위는 몸통을 가름 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바위라 처음에는 바위 아래 방향으로 빙돌아서 올라가면 바위 허리에 있는 능선에 이른다.
< 거대한 "칼바위" 옆으로 나 있는 길 따라 >
옛날 이 바위 능선에서는 안전 장치가 거의 없어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나 노인층에서는 오르기가 무척 힘든 곳이지만, 지금은 곳곳에 안전 난간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매우 위험한 곳에는 철제 사다리까지 놓여 있어 안전한 길이 된다.
< 칼바위 능선에 설치하고 있는 "안전 난간대" >
< 위험한 곳에 설치한 "철제 사다리" 도 건너면서 >
< "칼바위 능선" 양쪽으로 설치하고 있는 난간대 >
이 칼바위 능선에서 바라보는 주변 조망은 거의 환상적인데, 앞에는 거대한 유조선 배가 무리를 만들면서 광양항으로 드나들고 있으며 그 뒤편에는 여수의 명품 섬 "돌산도" 가 희미하게 자리잡고 있다.
< 광양항으로 들어가는 "유조선" >
< 희미하게 보이는 "배와 돌산도" >
바위능선 왼편에는 또 다른 산맥이 되는 "장등산" 이 이어지면서 그 산맥 아래로 만들어진 계곡 속에는 또 다른 다랭이 논과 밭을 형성하고 있는 농촌이 고즈늑하게 자리잡고 있어, 참 목가적인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 설흘산 왼편에 있는 "장등산" 능선과 마을 전경 >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칼바위 능선을 걷다보면 또 다시 숲속으로 길이 이어지면서, 이마에 한두방울 땀이 송곳송곳 배여 나오도록 능선을 치고 올라가면 해발 472m "응봉산" 정상에 이른다.
< 해발 472m "응봉산" 정상석과 무너진 돌 탑 >
정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머물면서 주변을 감상하는데, 앞으로는 크게 한번 능선이 내려섰다가 다시 오뚝 솟아 오르는 해발 482m "설흘산" 정상의 봉수대가 아련하게 보이고 있으며 그 뒤편에는 섬의 일부분이 보이고 있다.
그 섬이 서포 "김만중" 씨가 유배되어 위리안치 되어 결국에는 죽음으로써 섬을 떠난 "노도" 라는 섬이 보이고 있으며, 그 섬을 품고 있는 거대한 "앵강만" 바다가 섬 깊숙하게 파고 들고 있는 모습도 설흘산 뒤편 양쪽으로 나누어져 보인다.
< 응봉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설흘산" 정상 전경 >
< 남해섬 깊숙하게 파고들고 있는 "앵강만" >
그리고 눈을 조금 오른편으로 돌리면 수백개의 다랭이 논으로 유명하여진 "가천 다랭이" 마을이 설흘산 산비탈에 자리잡고 있는데, 마을 중앙을 갈로질려 섬의 꼬불꼬불 해안선과 나란히 만들어진 도로에는 수 없이 많은 승용차와 버스가 머물면서 설흘산 산행인들과 다랭이 마을 주변을 관광하기 위하여 상춘객을 모시고 온 차량들이 도로변에 줄을 형성하고 있다.
< 설흘산이 품고 있는 "다랭이 논" 과 희미하게 보이는 "노도" >
그 길 아래 위에 만들어진 크고 작은 108개의 다랭이 논들이 설흘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듯 등고선을 그리면서 자리하고 있으며, 그 어여쁜 논들 사이로 가천 다랭이 마을도 숨은 듯 도란도란 앉자 있다.
가천 다랭이 마을은 태양이 잘 드는 따슷한 남향의 시골로써, 마을 앞에는 푸른 바다가 형성하고 있지만 거친 파도 탓에 배 닿을 곳을 만들 수가 없어 모든 주민이 농사일을 한다는 바닷가 농촌 마을이다.
이렇게 많는 곡선을 만들고 있는 논두렁이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그 논에서 일하는 농부는 무척 고달푼 삶을 살아가야만 하게 만드는 논인데. 한 뻠의 땅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직각으로 석축을 쌓다 보니 층과 층 사이 최고의 높은 곳은 10m가 된다.
또한 108개의 논 중에서 제일 큰 논은 300평 정도의 크기를 가지지만 제일 적은 논은 3평도 않되는 작은 논으로 만들어져 있어 문명의 이기가 되는 농기계를 사용하지 못하고, 대부분 소와 인력으로 농작물을 키우다 보니 주민들이 육체적으로 매우 고달푼 삶을 가지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응봉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단체적으로 기념사진 한장을 찍고, 정상 주변에 자리 잡고서 매번과 동일하게 전직 해군 제독 출신인 사회자는 군대식으로 엄격하게 제240회 등정 의식을 실시한다.
< "응봉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한장 >
이렇게 산의 정점에서 높은 목소리로 교가와 더불어 산행 행사를 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절도가 있어지면서 늙은이들의 애교가 묻어나는 행사이라서 그런지 주변 산악인들에게 부려움이 묻어나는 눈총이다.
< 정상에서 "제240봉" 등정 행사를 하면서 >
응봉산 정상에 있는 산행 안내도에는 왼편으로는 설흘산 방향으로 계속가다가 중간 3거리 지점에서 다랭이 마을로 바로 하산하는 방법과 이 3거리 지점에서 설흘산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는 방법이 있으며, 오른편으로는 지름길로써 바다쪽 능선 따라 다랭이 마을을 내려다 보면서 하산하는 2가지 방법의 길이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눈 앞에 머무는 설흘산 까지 빠른 걸음을 가진 산행인들은 약 1시간이면 주파 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오늘 우리 백봉회는 여기까지 산행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더 많은 자연과의 대화를 하면서 다랭이 마을 풍경을 감상하기에 최상인 능선길로 하산하도록 결정하는데, 나는 옛날 설흘산까지 종주한 경험이 있는 산이므로 미련 없이 동료들과 함께 능선길로 접어들어 함께 걷는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암릉길로 한참 내려오면 암릉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전망대에 올라가 더 가까이에서 다랭이 마을을 구경하면 다랭이 마을이 한폭의 동양화 같이 눈 앞에 머물고 있다.
마을을 휘감아 돌아가는 뱀 같은 도로변에는 벚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는 길과 도로 가장자리에는 관광객을 싣고 온 버스와 승용차의 다양한 색, 마을 집들의 지붕에서 만드는 알록달록한 색, 다랭이 논에서 자라고 있는 파란 청보리, 곳곳에 피어나고 있는 유채꽃, 마을 앞을 장식하고 있는 파란 바다물과 함께 상호 조화의 색채를 만들고 있어, 정말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환상적인 풍경이 발 아래에 머물고 있다.
< 능선에서 바라보는 "가천 다랭이 마을" 도로와 벚나무 길 전경 >
< 설흘산 등고선 따라 만들어진 "가천 다랭이 마을" 모습 >
곳곳에서 휴식과 더불어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막걸리로 목을 추기면서 지나온 이야기 삼매경에도 도취하면서, 잘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 따라 천천히 하산하여 도로변에 내려선다.
< 잘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 따라 하산 하면서 >
도로에는 많은 차량들이 줄을 이으면서 통행도 하지 못하도록 주차장이 되어 있어 차량 사이로 곡예하듯 마을 회관까지 걸어가 주차하고 있는 버스에 배낭을 내려 놓고, 바다가에 있는 암수바위를 구경하기 위하여 개울가 따라 내려간다.
< 도로를 점유하고 있는 "차량" >
< "마을 회관" 앞에 정차한 버스에 배낭을 두고 >
한 100m만 내려가면 한 무리의 돌이 나타나는데, 이 돌이 암수바위라고 한다.
이 바위는 조선조 영조 27년(1751년) 남해군 현령인 "조광진' 이 꿈에 한 노인 나타나 내가 가천 땅에 묻혀있는데, 나의 몸 위로 우마(牛馬) 차가 다니므로 몸이 많이 불편하므로 꺼내주면 필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여 현령은 이 바위를 꺼내어서 미륵불로 안치하였다고 한다.
아울러 논 5마지기를 받쳤으며 현령은 뱃길의 안전과 더불어 많은 고기가 잡히도록 매년 이 바위가 발견된 날인 음력 10월 23일 기원제를 지내고 있으며, 또한 마을의 여인들이 다산을 하기 위하여 소원을 비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 도로변에서 100m 정도 내려가면 만나는 "숫바위" >
< 숫바위 뒤편에 임신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암바위" >
여기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해변가에 이르는데, 해변가에는 노란 유채꽃과 더불어 아름다운 "지겟길" 을 만들어 놓아 산책과 더불어 해변가에 머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 해변가 지겟길 옆으로 피어 있는 "유채꽃" >
< 해변가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 >
참 아름다운 해안 길이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주차장으로 올라오니, 아직도 많은 차량들이 도로를 점유하고 있어 버스 속에서 많은 기다림이 요구된다.
< 해안에서 도로로 올라오면서 바라보는 "웅봉산" 능선 바위길 >
오후 5시까지 기다림을 가진 후에야 비로써 교통이 열리므로 거북이 걸음으로 다랭이 마을을 탈출하여 꼬불꼬불한 해안길 따라 만들어진 남해 섬을 벗어나, 창선도에 놓여있는 아름다운 5개의 다리 백화점을 넘어 삼천포항으로 들어간다.
삼천포 항구에 있는 회센터로 들어가 푸짐한 회를 구입하여 2층으로 올라가서 20주년 기념 행사를 겸하는데, 수 많은 소주와 맥주로 축하 행사를 이어지면서 몇몇 동문들이 찬조금이 쏟아진다.
< "삼천포 회 센터" 에서 기념 만찬을 즐기면서 >
나는 실업자로써 돈도 없는 빈털털이 신세라 찬조 할 형편이 되지 못 함으로 찬조금을 내고 있는 동문들에게 많은 박수나 보내면서 배가 터지도록 싱싱한 회만 축을 내는 불청객이 된다.
이어 밤 늦게 대구로 출발하면서도 계속적으로 축하 행사가 이어지면서 차내에 있는 노래방 기기를 작동하여 마이크를 잡고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여기에서도 국제적 음치라서 노래 한곡도 불려보지 못하는 3류 인생이라 흥(興)만 도꾸면서 사회자가 돌리는 소주잔 만 꼼지락 꼼지락 만지면서 죄 없는 술잔에 울분을 심어본다.
차장으로 지나가는 밤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나는 왜 이렇게 돈도 명예도 지뿔도 없이 멍청하게 살아왔는지 후회나 하면서 하염없이 비애(悲哀)에 젖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