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음력 첫달 백봉회 산행은 경북 청도에 있는 "남산" 으로 올라가 시산제를 지내면서.
2013년 2월 16일 (토요일)
매년 음력 정월 첫째달 백봉회 산행은 회원들의 무사 안녕과 더불어 건강을 기원하는 시산제(始山祭)를 겸하여 실시하는데, 오늘 산행은 가까운 청도군 남산(南山)으로 결정한다.
산행 출발지가 되는 대구법원 앞에 도착하니 매사 산행에 대한 업무를 총괄하는 총무가 서울 친척의 결혼식 참석으로 시산제를 주관하지 못하고 제수용품만 준비하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가 전달하여 주는데, 금일 참석 인원이 총 11명이 된다.
마이크로 버스는 청도로 가는 길 중 하나가 되는 팔조령 고개를 넘어 청도읍시가지를 통과하여 밀양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우측으로 돌아 "적천사" 방향으로 길을 잡고 올라가는데, 올라가는 길은 너무나 소로(小路)가 되어 곡예 운전을 하면서 겨우 목적지 적천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 옆으로 적천사 역사를 보증하는 800여 년 수령을 가진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는데, 나무가 있는 돌담 아래에는 설한풍을 이기면서 봄을 기다리는 은행나무에게 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으로 모시면서 소원을 빌기 위한 촛불을 켜두는 Box와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 적천사 앞에 있는 수령 800여 년 "은행나무" >
다소 적은 은행나무 가지에는 새끼줄과 더불어 오색 색종이가 감겨서 휘날리고 있는 모습 보고 있는데, 한국인의 토속신앙으로 얼마나 숭배하는지 가름할 수 있는 수호신 나무이다.
이 은행나무는 높이가 25m에서 28m가 되면서 가슴 둘레가 11m 로써, 고려 명종 5년(1175년) 사찰을 중건한 보조국사 지눌이 사용한 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서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 돌담 아래에 마련되어 있는 촛불을 켜두는 "Box" >
일행들이 은행나무 아래에서 시산제를 먼저 지내고 나서 산행을 시작하자는 의견 일치로 시산제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혼자 적천사 사찰로 먼저 들어가 경내를 관람하여 본다.
적천사 역사는 신라 문무왕 4년(664년) 원효대사가 토굴로 처음 건립하였던 것을 흥덕왕 3년(828년)에 왕의 셋째 아들인 심지왕사가 중찬하였고, 고려 명종 5년(1175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5백 여명의 스님이 거주 할 수 있는 대가람으로 중건하였다.
그후 이 절은 조선 숙종 20년(1694년)에 태허선사가 중수하였으나 조선 말에 누각 및 요사채 건물이 방화를 입어 소실되었고, 근래에 와서 명부전과 누각이 중건되어 현재 모습으로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은행나무 뒤편에서 사찰 입구가 시작되는데, 먼저 4분의 사천왕을 모시고 있는 "천왕문(天王門)" 이 사찰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으면서 여기에 모시고 있는 사천왕은 어떠한 사찰의 사천왕 보다 웅장하고 크다.
< 적천사로 들어가는 첫관문 되는 "천왕문" >
그래서 옆에 사찰을 소개하고 있는 안내문을 읽어보니 이곳 적천사 사천왕상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3호로 지정된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로 지정된 이유는 사천왕은 나무로 만든 좌상(坐像)으로 크기가 자그만치 3.4m에서 부터 3.8m의 거상(巨像)이라고 한다.
특히 사천왕 배 속에서 사리와 경판, 의류, 다라니경 등 복장품과 복장기가 발견되었는데, 그곳에 기록된 연대가 조선 숙종 16년(1690년)에 제작 되어짐을 알 수 있다고 한다.
< 천왕문 내에 있는 "사천왕상" 모습 >
그래서 사천왕상이 초기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보존되어 내려오므로 조선시대 사천왕상을 만드는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데, 그래서 문화재로 지정된 상이라고 한다.
천왕문을 통과하면 바로 2층의 "무응루(無應樓)" 루각을 만나고, 루각을 지나면서 본찰이 되는 대웅전(大雄殿)에 도착하는데, 대웅전은 아담한 마당을 품고 있으면서 그 마당 좌우측에는 명부전과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천왕문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무응루" 건물 >
< 적찬사 본찰이 되는 "대웅전 및 당간지주" 모습 >
< 사찰의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명부전" 건물 >
대웅전 앞에는 약 2m 높이의 당간지주를 기초로 하여 2개의 철봉이 높게 설치되어 있는데, 당간지주 철봉에는 적천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보물 제1432호 "쾌불탱" 을 걸기 위한 철제 당간지주이라고 한다.
마침 대웅전 내에서 스님이 예불을 드리는 시각이기 때문에 신자가 아닌 내가 문을 열고 법당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여 문화재 쾌불탱화를 구경하지 못함이 애석하게 만든다.
사찰을 되돌아서 은행나무 방향으로 내려오니 시신제 준비가 완료되어 제(祭)를 올리기 시작하는데, 백봉회 회장이 제주가 되어 경건하게 절을 하고 총무가 쓴 축문도 낭독한다.
< "시산제" 를 드리고 있는 백봉회 회장 >
이어 회원 각자 한 순배의 술을 올리면서 제를 드리고 나서 간단하게 음복으로 시산제를 종결하고, 제수 음식을 정리하여 기다리는 마이크로 버스에 싣고 산행의 종착지점이 되는 "밤티재" 로 내려 보낸다.
< 회원 각자 성의를 표현하고 있는 "제물" >
11시 15분 경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하는데, 산행초입은 사찰 오른편 중앙도로 따라 조금 올라가면 이내 울창한 숲 속으로 신행길이 연결 되어진다.
의리없는 모든 동문들은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횡하니 날아가고, 오직 한명의 친구와 함께 제일 뒤편에서 느릿느릿 산행길을 걷고 있다.
< 산행 들머리로 올라가고 있는 "동문" >
포근한 날씨로 인하여 산행초입 부터 땀이 솟기 시작하여 옷을 하나 하나 벗으면서 고도를 상승하는데, 길의 가장자리에는 몇년 전 이곳으로 산행하였다는 백봉회 흔적의 붉은 리본이 부착되어 있어 반가움이 묻어난다.
< 다시 만나보는 "백봉회" 리본 >
또한 조금 더 올라가면 산행길 옆으로 도솔암이라는 시멘트 이정표가 길을 안내하고 있어 마음의 위안을 느끼면서 뒤편에서 천천히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가는 길은 녹은 눈으로 인하여 다소 미끄러운 흙탕길로 변경되어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 진다.
< 산행 길에서 만나는 "도솔암" 표시 말뚝 >
너덜바위 길로 20여 분 정도 올라가면 도솔암 암자에서 올라오는 신도들에게 갈증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감로수를 흘려보내 주는 Pipe와 바가지가 걸려 있는데, 마지막으로 가고 있는 친구와 함께 냉수로써 더위를 식혀본다.
<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너덜바위" 지역 >
< 도솔암 아래 까지 흘러 보내주고 있는 "감로수" >
앞에 올라간 친구의 발소리로 인하여 도솔암 암자에서 키우는 한마리의 개가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를 박자로 삼고, 조금 올라가니 도솔암 암자에 이른다.
이미 친구들은 암자에도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가 버리고, 후미의 친구와 함께 도솔암 암자로 들어가 친구는 공양을 하기 위하여 신발을 벗고 있다.
불교 신자가 아닌 나는 암자 사진이나 한장 찍어보자는 생각으로 무심코 마당으로 들어서니 계속하여 개가 짖으므로 인하여 많은 소음이 발생하게 만든다.
< "도솔암" 에서 공양을 하기 위해 등산화를 벗고 있는 동문 >
그런데 암자를 지키는 한분의 스님이 문을 열고 공양도 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산으로 올라가라고 하면서 얼마나 역정과 더불어 고함을 치는지 정말 무색함이 하늘을 찌른다.
비록 내가 개를 짖게하는 잘못된 행동을 하였지만, 첩첩 산중의 암자로 찾아온 사람에게 그렇게 고함치는 것이 부처님 자비인지 모르겠다.
내가 청도군과 전생(前生)에 무슨 악연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혼자 고개를 떨구고 암자를 탈출하여 산행길로 올라가기로 한다.
먼저 간 친구들이 기다리면서 왜 그렇게 인상이 억망인가 하면서 문의 하므로 자초지정을 이야기 하는데, 아마 스님의 불도(佛道)가 부족하여 그러니 이해하라고 하면서 난상토론이 이루어진다.
깊은 산 속에 혼자 있으면 너무나 적적하고 혹시 호랑이가 나타나 잡아갈지 모르니 호랑이 만큼 큰 개를 키워여 한다는 팀과 암자 까지 운영하는 스님이 불도에 매진하기 위해서는 바람도 낙엽도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듣리지 않게 기도에 정진하여야 한다는 팀으로 나누어진다.
개를 키운다는 것은 상식이 아니라고 하면서 나를 위로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는데, 언젠가 나도 한번 머리깍고 암자로 올라가 스님 체험을 한번 하여 보는 것이 정답이 아닌지 모르겠다.
완전히 망친 기분으로 제일 뒤편에서 고도를 상승하고 있으니까 이내 한 능선에 올라서면서 대포산 갈림길 이정표를 만나는데, 선두로 가고 있는 친구가 왼편 능선길로 방향을 잡아라고 안내의 소리를 질려준다.
< "대포산" 3거리에서 만나는 이정표 >
능선 따라 걸어가는 길은 완전히 진달래 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꽃이 피는 3-4월에 한번 더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지만 도솔암에서 받은 수모가 청도 땅은 보기도 싫어진다.
< "진달래" 나무 속으로 이어지는 산행길 >
능선 따라 조금 걸어가면 길의 중앙에 돌담이 나타나는데, 돌담 위로 올라가니 중앙에 무덤 한기가 자리잡고 있으며 뒤편으로 돌아가니 설명서가 붙어있다.
이 돌무덤이 한때는 조선의 위급 사항을 한양으로 연락한 "봉수대" 자리가 된다고 하는데, 어느 후손이 이러한 역사적인 유적지 내에 조상님을 모시고 있을까?
< 산행길에서 만나는 "봉수댸" >
< 봉수대 내에 있는 "무덤" 과 설명문 >
참 이상한 청도군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조금 걸어가니 높은 전망대 바위가 나타나는데, 이곳 바위로 올라서서 청도읍 방향으로 내려보니 첩첩산중 속에서 청도군의 농촌마을이 고즈넉하게 졸고 있다.
< 전망대 바위에 내려보는 "청도시가지" >
여기서 조금만 더 고도를 상승하면 또 다른 능선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앞서간 동문들이 시산제에 사용한 돼지고기를 안주 삼아 시원한 막걸리로 갈증을 해소하고 있어 늦게 합류하여진 나는 연거푸 막걸리 2잔을 주므로 기운이 생동한다.
< 또 다른 전망대에서 "막걸리" 로 갈증을 해소하면서 >
그러고 나서 천천히 주변의 조망을 구경하는데, 발아래 골짜기에는 청도가 자랑하는 한재 미나리를 키우는 비닐 하우스가 나의 고향 성주 참외밭 보다 더 많이 빤짝이고 있다.
곧 봄이 오는 계절에는 식객들이 초봄의 첫물로 나오는 한재 미나리를 즐기기 위하여, 수 많은 승용차들이 장사진을 이루어지리라.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재 미나리" 촌 >
오늘 우리 백봉회도 청도 남산으로 산행을 하는 이유는 저렇게 많은 한재 미나리 농가 중 동문 한명이 IMF로 인하여 잘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청도로 귀농한 친구가 경영하고 있는 식당으로 매년 찾아가는 것이 행사의 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오늘은 점심을 먹지 않고 이곳에서 제례용 음식으로 허기를 면하고 나서, 바로 하산 한다고 회장의 명령에 의거 각자 알아서 배를 충만시킨다.
풍분한 휴식을 가지고 나서 천천히 능선 따라 앞으로 전진하면 가는 길은 전부가 너덜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직도 바위 곳곳에 잔설이 있어 안전을 우선으로 하여 앞으로 전진한다.
거대한 바위에 걸쳐있는 철제 Rope도 넘으면서 바위길을 한참 올라가면 또 다른 삼거리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이곳 3거리 봉우리가 "삼면봉" 이라고 한다.
<"철제 Rope" 를 타고 올라가고 있는 동문 >
이 삼면봉에서 오른편 600m 거리에 청도 남산의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왼편 길을 하산지점이 되는 밤티재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동문들은 남산을 정복한 경험이 있으므로 이곳 삼면봉에서 등정식을 하기로 한다.
< 등정식 행사를 할려고 하는 "삼면봉" >
나만 청도 남산의 산행이 처음이라 산행을 좋아하는 한 동문이 자기가 리드하여 정상까지 갔다 오자고 안내를 자청하는데,등정식을 준비하고 있는 동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정상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몇번의 파고를 타면서 능선의 오르 내림을 반복하여 정상에 도착하는데, 정상에는 다소 넓은 공터에 해발 870m "남산" 정상석과 함께 한그루의 나무가 일행을 반겨준다.
< 마침내 도착한 청도 "남산" 정상 모습 >
청도 남산은 경북 청도군 청도읍 화양읍 각남면 등 3개 읍(邑)과 면(面)에 걸쳐 있는데, 진산답게 고찰과 명소가 즐비하다고 한다.
조금 전에 올라온 적천사와 더불어 죽림사, 신둔사가 있으며 산의 허리 지점에 유명한 낙대폭포가 있는데, 이곳 낙대폭포는 청도 8경의 하나로 높이가 30m 정도 되는 직폭(直瀑)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이라고 한다.
무엇 보다 먼 옛날 청도는 이서국(伊西國)이란 부족 국가의 도읍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 남산이 이서국의 중추적 역활을 하면서 이서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의 산이라고 한다.
한때 이서국이 신라를 공격하여 신라 전체를 점령 할 정도로 강국의 나라이었지만, 결국 경주 대릉원에 묻혀 있는 미추왕 혼령에게 패배하여 신라로 합병 당하는 비운의 나라로 전략하였다.
아직도 청도 곳곳에 이서국의 유적과 더불어 이서국 지명들이 명명 되어지고 있는데, 청도 남산은 경주 남산과 같이 이서국의 진산으로 관리한다고 한다.
정상에서 베냥을 내려놓고 땀을 훔치고 있으니까 한쌍의 젊은 부부가 도착하는데, 친구와 함께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 한장을 부탁하여 본다.
< 한 젊은 부부가 찍어준 "남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
그러고 나서 주변 풍경에 취하여 보는데, 발아래에는 청도군을 관통하면서 지나가는 대구-부산 간 신고속도로가 많은 물동량으로 소화시키고 있으며 그 옆으로 청도군의 아파트 군락지가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 청도 남산에서 바라보는 "청도읍시기지" 전경 >
청도읍 방향에서 바로 올라오고 있는 많은 산행인들의 소리를 뒤로 하고 앞서 가고 있는 동문과 합류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으로 걸어가는데, 밤티재가 내려보이는 넓은 바위에서 동문들이 휴식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
< 밤티재가 내려보이는 "넓은 바위" 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행 >
넓은 바위에서 주위 조망을 다시 한번 구경하는데, 눈 앞으로 청도의 또 다른 명산 "화악산" 능선이 그림과 같이 펼쳐지고 발아래에는 밤티재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 관광지를 개발하기 위한 민속촌 같은 한옥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 넓은 바위에서 바라보는 "화악산" 전경 >
에둘러 한 20분 정도 내려서면 밤티재에 도착하므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마이크로 버스에 승차하여 한재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한재 마을에서 동문이 운영하는 식당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 마이크로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밤티재" 고개 >
< 밤티재에서 방금 내려온 "넓은 바위" 를 되돌아보면서 >
"한재동산 식육식당" 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가 집 앞에서 기다리므로 반갑게 인사와 더불어 식당으로 들어가 미리 준비하고 있는 싱싱한 미나리 향기에 도취되는데, 방금 손질한 첫물의 한재 미나리들이라 매우 부더러운 감촉이 입안에 가득하게 만든다.
< 동문이 운영하고 있는 청도" 한재동산식육" 식당 >
< 첫물의 "한재 미나리" 를 즐기고 있는 동문 >
연이어 흑돼지 삼겹살 구이와 함께 막걸리, 맥주, 소주병들이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열심히 움직이는데, 청도 남산의 하루 산행이 종착역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