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매일 아침마다 대면하는 대구광역시 남구의 명소 "앞산 자락길" 을 걸어가면서.
2013년 3월 16일 (토요일)
나의 집에서 아침마다 창문만 열면 반갑게 인사하고 나의 일상 대부분을 머물게 하는 앞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앞산 기슭에 나의 하루 생활을 다람쥐 채바퀴 돌 듯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에는 어김없이 찾아가는 대구시 남부도서관이 함께 하고 있다.
남부도서관에서 다양한 서적을 읽어보는 재미와 함께 신문, 잡지, 컴퓨터 게임 등 여가를 선용하고 있는데, 대구 앞산에 몇년 전 지방자치단체에서 앞산 언저리 따라 "앞산 자락길" 을 만들었다고 한다.
앞산은 도서관에서 지루하거나 머리가 흐려지면 책을 내려 놓고 종종 산책하면서 올라가 보는 손쉬운 산이고. 너무나 생활과 밀접하게 움직이는 산이라서 그런지 자락길을 만들어도 전체를 걸어보지 못하여 오늘은 한번 도전하기로 한다.
< "앞산 자락길" 을 나타내는 안내도 >
대구 앞산은 크게 3개의 산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의 중앙에서 해발 658m "앞산" 이 자리잡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해발 584m "대덕산" 이라는 봉우리가 자리잡고 있다.
동쪽 방향에는 해발 653m "산성산" 이 자리하고 있으나 산성산 정상에는 통신기지가 있어 많은 사람이 찾지 않지만, 매년 정월 초하루 해맞이 동산으로 유명한 봉우리이다.
앞산은 대구시의 수성구, 남구, 달서구 및 달성군 가창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전체 면적은 약 510여 만평으로 2011년 10월 20일 도시 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관리하고 있다.
앞산 지도에 따르면, 앞산 자락길 시작점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용두골 장안사에서 출발하여 남구 큰골을 지나 달서구 평안공원까지 약 13.6Km에 5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이라 하겠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앞산 자락길을 상동교 옆에 있는 "한국 전문 심마니협회" 건물 앞에서 시작하여 고산골, 강당골, 큰골, 안지랑골, 무당골, 매자골을 지나 달비골 초입에 있는 달서구 "청소년 수련관" 까지 약 10.6Km에 4시간 정도 걷는 것이 자락길의 기본적 코스이다.
< 상동교 옆에 있는 "한국전문 심마니 협회" 건물 >
집에서 고산골 입구에 있는 심마니협회 건물 앞 까지 가는 차편에 불편하여 외출을 준비하고 있는 Wife에게 부탁하여 과일과 작은 물병 하나만 달랑 들고 출발하는데, 점심식사는 가다가 산자락을 약간 벗어나 식당으로 내려와 해결하는 마음으로 아침 10시 경 집에서 출발한다.
10시 15분 부터 심마니 건문 앞에서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출발하여 이내 메타세콰이어 길로 들어가 걷기 시작하는데, 이 길은 대구시에서 메타세콰이어 나무를 심어 거리 이름도 "메타세콰이어 길" 이라고 명하고 있지만 아직도 나무가 성장하지 않아 충분한 그늘을 만들 정도의 숲이 되지 못하고 있다.
< 아직 많이 크지 않은 "메타세콰이어 길" >
자락길을 걷는 많은 사람과 함께 조금 올라가면 고산골 "쌈지 조각공원" 에 도착하는데, 이 공원에서는 많은 조각품과 더불어 운동시설, 그림, 시(詩)를 적은 현수막 등이 붙어있어 많은 사람들이 운동도 겸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으로 다소 분빈다.
<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고산골 옆 "자락길" 로 걷고 있는 사람 >
< "쌈지조각공원" 을 알리고 있는 입석 >
< 자락길 옆으로 놓여 있는 "조각품과 시" >
< 자락길 옆에 만들어 놓은 "시" 도 읽으면서 >
고산골은 신라말 왕자를 얻기 위하여 간절하게 기원한 왕이 있었는데,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서쪽 수백리 밖에 절을 지어 정성을 다하고 소원을 빌면 아들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 고산골에 "고산사" 라는 사찰을 지었다.
그래서 백일기도를 드려 왕자를 얻었다고 하지만, 현재 고선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없어지고 그 터에 법장사로 탈바꿈하여 오늘에 이른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쌈지 조각공원 끝지점에서 부터 자락길이 3거리로 나누어지는데, 바로 올라가면 고산골로 하여 산성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과 오른편 다리를 건너면서 자락길로 연결되는 길로써 자락길 이정표 따라 걸어가면 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산골로 올라오고 있다.
< "고산골과 자락길" 로 나누어지는 3거리 지점 >
걷는 길은 포장길과 비포장길로 나누어지면서 걷게하고 있으며 길 옆으로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는 전봇대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오므로 발걸음도 매우 가볍게 한다.
고개를 들어 전봇대를 쳐다보니 음악이 흐르는 스피카가 다양한 곤충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매우 이색적인 트레킹 길이 된다.
< "포장길과 비포장길" 로 나누어지고 있는 자락길 모습 >
< 가로등 중간지점에 매달려 있는 곤충 모습의 "스피커" >
< 다양한 모습으로 외롭게 달려 있는 "스피커" >
이곳 도로가 끝나는 지점 인접지역에서 자락길은 왼편으로 90도 꺽으면서 강당골로 올라가는 길로 자락길 이정표가 붙어 있는데, 길 입구에 많은 솟대를 세워 놓으면서 볼거리를 제공하여 준다.
< "강당골" 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솟대 >
다소 넓은 길을 형성하고 있는 자락길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약간의 물이 흘려내리는 도랑을 건너면 정자와 더불어 체육공원이 나타난다.
체육공원에 많은 운동시설이 널려 있지만, 운동하는 사람 한명도 없어 운동 시설들이 본연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매우 쓸쓸함이 느끼게 한다.
< 강당골 "체육공원" 으로 올라가는 길 >
여기서 부터 산자락 따라 한 모퉁이를 돌아서 나오면 철조망으로 보호하고 있는 남구 "대봉 배수지" 시설 뒤편으로 좁은 길이 연결이 되는데, 철조망을 통과하면 임도와 만남이 일어난다.
< 자락길에서 임도로 넘어가는 "나무다리" >
임도 따라 조금 산으로 올라가면 산성산 정상에 있는 통신기지로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길과 만나면서 포장길을 가로 질려 내려가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길이 이어지면서 삼림욕 하기에 최상의 조건을 부여하고 있다.
<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자락길" >
오솔길 따라 한 10여 분 정도 걸어가면 자락길을 조금 벗어나는 200m 위에 "은적사(隱跡寺)" 사찰이 자리잡고 있어 잠시 외도하면서 사찰로 올라가 보는데, 은적사는 아주 역사가 깊은 사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200m 정도 벗어나 있는 "은적사" >
은적사는 신라 55대 경애왕 3년(927년)에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 후백제의 왕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여 국운이 위태롭게 되자 경애왕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 아담한 "은적사" 대웅전 모습 >
왕건은 지원 군사를 이끌고 달구벌로 입성하지만 공산전투(927년 9월)에서 견훤에게 대패(大敗)하는데, 태조 왕건은 명장 신숭겸의 지락으로 구사일생 피신하여 이곳 은적사 왕건 굴에서 3일간 피신하여 지내게 된다.
< 태조 왕건이 3일간 숨어 지낸 "왕건" 굴 >
마치 3일간 진한 농무로 인하여 흔적을 찾기가 어려워고 왕건 굴 입구에 거미들이 줄을 쳐주어 안전하게 피신하였다가 인접하게 있는 안일사로 옮기게 하므로써, 왕건은 후일 영조대사에게 명하여 사찰을 크게 건립하도록 하였다고 하는 역사적인 사찰이다.
그래서 태조 왕건이 절대절명의 순간에 자신이 숨어 생명을 건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숨을 "은(隱)" 자와 자취 "적(跡)" 자를 써서 은적사(隱跡寺)라고 부르게 하였다고 한다.
사찰을 내려와 다시 자락길로 들어서서 조그만 걸어가면 앞산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찾는 아름다운 계곡 "큰골" 에 도착하는데, 큰골에서는 앞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운행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가 다수의 관광객을 싣고 카(Car)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 큰골에 있는 "케이블카" 를 운행하는 건물 >
케이블카 건물 앞에는 사람들이 운동하기 위한 운동시설이 준비되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운동기구를 이용하여 운동하고 있는 옆을 통과하여 현충탑 주차장 방향으로 내려가면 공중화장실에서 큰골 버스종점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사이 길과 만난다.
< 움직이는 "케이블카" 밑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
< 현충탑 주자장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만나는 "공중화장실" >
이 큰골 버스종점 주차장 인근에는 "낙동강 승전기념관" 건물이 자리잡고 있어 또 다시 잠시 들어가 보는데, 먼저 승전기념관 야외 전시장을 돌아보면 6.25 전투 때 사용한 탱크, 전차, 장갑차, 비행기, 포탄 등 다수의 전시품을 볼 수 있도로 진열하고 있다.
< 큰골 버스종점 주차장 입구에 있는 "낙동강 승전기념관" >
< 6.25 참전국가의 "국기 및 학도병" 동상 >
< 야외 전시장에 전시하고 있는 "전시물" >
내부 전시실로 들어가면 1층에는 낙동강 벙어선을 구축하면서 최후의 보루를 삼고 반격하는 전투를 중심으로 영상물, 사진,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이름도 없이 산화되어간 학도병(學徒兵)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 "낙동강 전선" 을 설명하고 있는 1층 전시실 >
< 6.25 때 아군이 사용한 "전시품" >
특히 2층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 현실을 설명하고 있는데, 현재 부쪅 심술을 부리고 있는 북한의 만행에 큰 변화를 가져와 평화로운 조국 통일이 이루어 지도록 염원하여도 본다.
이 승전기념관 옆으로 조금 올라가면 대구에서 민족운동을 한 "이시영" 선생님의 기념탑와 중호 "임용상(林龍相)" 의사의 동상(銅像)도 함께 서 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 한쪽 구석으로 밀려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 낙동강 승전기념관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이시영" 순국 기념탑 >
< 중호 "임용상" 선생님 흉상 >
다시 앞산 자락길로 올라와 현충탑 방향으로 내려오면 산책길 옆으로 봄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 개나리가 꽃을 피우기 위하여 안간 힘으로 쏟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 대구도 봄소식을 전하고 있는 "개나리" >
한 모퉁이를 돌아서 내려오면 앞산 자락길을 현충탑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도로와 산 속으로 계속적으로 연결되는 자락길로 나누어지는데, 자락길 따라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면 현충탑 뒤편의 허리길로 이어진다.
< 충혼탑 주차장 뒤편에서 "안지랑골" 을 알리는 이정표 >
< 앞산 자락에 있는 "충혼탑" >
여기서 부터 오른편으로 대구시가지 빌딩이 숲속으로 간간히 보이는 길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나의 하루 일과 대부분을 소화하고 있는 대구광역시 남부도서관 뒤편 비탈면으로 자락길이 지나간다.
< 나의 아지트가 되는 "대구 남부도서관" 모습 >
또 다시 한 모퉁이를 돌아서면 남구 "대명 배수지" 철조망 옆을 통과 하자마자 느티나무를 식목하여 자라고 있는 숲을 통과하면서 아래 쪽으로 대덕문화회관 건물 뒤편으로 길이 이어지는데, 가는 길 곳곳에 의자들이 만들어져 있어 많는 사람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모습도 보인다.
< 인공 조림으로 조성한 "느티나무" 숲에서 식사하고 있는 사람들 >
< 앞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대덕문화회관" >
곳곳에서 만나는 간이 운동장과 체육시설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운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몇 번의 언덕을 넘어서 가면 앞산에서 또 다른 명소의 계곡인 "안지랑골" 에 도착한다.
< 곳곳에서 만나는 "체육공원" 을 지나면서 >
안지랑골이라고 불려지는 이유는 계곡의 물이 특별하여 피부병 환자도 이 물로 씻으면 가뿐하게 치료가 되고 앉은뱅이도 일어섰다고 하여 "안지랑" 이라고 불려진다고 한다.
몇년 전 홍수로 인하여 계곡이 다 떠내려가므로 새롭게 정비하여 놓은 모습이 자연미(自然美)를 완전히 살아지게 만들어져 보기가 흉하게 만든다.
< 자연미가 살아진 "안지랑골" 계곡과 안일사로 올라가는 임도 >
안지랑골 입구에서 앞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따라 30분 정도 올라가면 "안일사(安逸寺)" 라는 절이 나타나는데, 이곳 안일사는 조금 전 은적사에서 3일간 머물다가 피신하여 온 태조 왕건이 약 3개월 간 편안하게 지냈다고 하여 안일사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안일사에서 약 500m 위로 올라가면 적의 동태를 파악하기에 최적의 장소에 거대한 동굴 한개가 있는데, 그 동굴에서 왕건이 머물었다고 하여 왕굴(王窟)이라고 한다.
적의 동태가 조용 할 무렵 왕건은 개성으로 퇴각하기 위하여 왕굴을 지나 대덕산을 넘어 반대편에 있는 "원기사" 에서 약수물로 원기를 회복시키고, 그 아래에 있는 "임휴사" 에서 다시 휴식을 취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화원 방향으로 하여 낙동강을 건너 성주를 지나 상주 근교에서 왕건을 도우려 내려오는 아군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갔는데, 이곳 대구 앞산은 왕건의 발자취가 선명하게 남아있는 역사성이 매우 강한 산이다.
특히 안지랑골 건너편 도로 변으로 대구에서 유명한 "대덕식당" 이 자리하고 있는데, 대덕식당은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선지국밥과 따로국밥을 잘하는 식당이라 오늘은 대덕식당으로 들어가 따로국밥 한 그릇으로 점심을 해결하여 본다.
< 대구의 명소 "대덕식당" 모습 >
다시 자락길로 들어가 걷기 시작하는데, 자락길은 "보문사" 로 인하여 사찰 뒤편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어 방금 먹은 점심으로 산자락으로 올라가려니 많은 호흡의 곤란이 발생하면서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 보문사 뒤편에서 "골안골" 로 가는 이정표 >
산허리를 돌아서 한참 앞으로 나아가면 골안골(일명 : 무당골)에 도착하면서 골안골 곳곳에 굿을 하기 위한 장소가 많이 보이고 있는데,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여도 아직도 우리의 삶에 깊숙하게 파고들고 있는 토템사상에 많은 위안을 느끼게 한다.
< 무당골 계곡에서 "굿" 을 하기 위하여 조성한 터 >
< 무당골에서 "빨래터" 로 내려가는 길에 >
울창한 숲으로 연결되는 자락길을 계속하여 걸어가면 발 아래로 실내 골프장와 국궁장 등 스포츠 시설을 이용하여 운동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을 옆으로 두고, 조금 길게 걸어가면 드디어 매자골에 도착한다.
매자골에서는 옛날 매화나무가 많이 피어 매자골이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대덕산 골짜기에서 발원하는 다수의 물이 흘려내리고 있어 벌써 시원한 물소리가 노래하면서 흘려 내려가고 있는 모습에 정겨움 느껴진다.
< 시원한 물이 흘려내리고 있는 "매자골" 계곡 >
매자골을 지나 계속되는 소나무 숲속으로 무아지경으로 걸어가면 오른편 언덕 아래 2채의 승마장 건물이 나타나는데, 한쪽 건물 뒤편에 말을 사육하는 사육장에는 많은 말들이 먹이를 먹으면서 고유의 울음소리를 만들고 있다.
< 숲속으로 보이는 "승마장" 건물 >
이 승마장과 연결하면서 대구광역시 "남구 청소년 수련장" 건물이 나타나면서 자락길을 수련장 입구까지 거의 내려갔다가 왼편 소로길로 꺽어 들어가는데, 그 소로길 옆에 "지장사" 라는 조그마한 사찰을 만난다.
지장사 사찰은 일반적인 사찰 건물이라기 보다는 무허가 건물을 개조하여 대웅전으로 만들었는 듯, 사찰 형태로 건축하지 못하고 일반 가정집과 비슷하게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 일반 건물울 개조한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지장사" >
사찰 앞에 있는 작은 도랑 위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면 자락길은 또 다시 울창한 소나무 숲속으로 이어지는 길 따라 걷다보면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맊고 있다.
이곳 철조망도 달서구 "상인 배수지" 를 보호하는 시설이라 자락길을 왼편 위쪽으로 꺽어서 올라가 철조망 가장자리 따라 연결된다.
< "상인 배수지" 를 알리는 이정표 >
이곳 배수지를 통과하면서 산 모퉁이를 돌아가며 길을 앙상한 참나무 단지를 지나면서 달비골 입구에 도착하는데, 달비골 입구에는 앞산을 관통하기 위한 터널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장에는 안전용 펜스가 높게 설치되어 있는데, 공사장 뒤편 "달서구 청소년 수련장" 건물이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먼지를 잔뜩 덮어 쓰고 있다.
< "참나무" 단지 사이로 연결하고 있는 자락길 >
< 앞산을 관통하기 위한 "터널공사" 현장 >
< 앞산 터널에서 "달서구" 방향 고가도로 공사 모습 >
자락길은 공사를 하기 위하여 안전 펜스를 쳐 놓은 밑을 통과하여 달비골 따라 1.9Km 정도 더 내부로 들어가 "평안동산" 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상 앞산 자락길을 달비골 초입에 있는 청소년 수련장에서 종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평안동산 및 임휴사' 로 가는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 >
오늘 자락길을 걷다가 몇 번 월장의 코스를 방문하므로 피곤 함의 엄습으로 평안공원까지 걷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앞산 중터 200m 위쪽에 있다는 임휴사까지 돌아보기 위하여 발길을 추가하여 본다.
몇 번의 쉼을 가지면서 참나무 사이로 보이는 임휴사로 올라가니 넓은 마당 끝머리에 대웅전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한 스님이 대웅전 기단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에 봄 단장을 하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물 청소를 하고 있다.
< 태조 왕건이 마지막으로 머문 "임휴사" 전경 >
마당을 배회하면서 마지막 대구를 떠나는 왕건의 뒷모습을 그리다가 한참 후, 임휴사 마당을 벗어나 천천히 달비골 입구로 내려와 달서구 청소년 수련관 앞에 있는 아파트 버스 정류장에 오후 4시 경 도착한다.
금번 앞산자락길을 탐방하기 위하여 외도를 포함하여 총 6시간 정도 걸었는데, 수십 년 대구에서 살면서 자락길 구간구간을 걸어본 경험은 많지만 오늘과 같이 앞산 전체를 연결하는 자락길을 걸어본 것이 처음이 된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