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전라)

4월 초파일을 포함한 연휴를 보내기 위하여 전남 장흥군에 있는 "보림사" 를 찾아서.(1)

용암2000 2013. 5. 21. 08:32

2013년 5월 17-18일.(1박2일)

 

첫째날. (17일 ; 금요일)

황금같은 3일 간 연휴(連休)가 시작하므로 다소 뜻 있는 연휴를 보내기 위하여 Wife와 직장생활에 따른 피로가 누적된 2째 아들의 활기를 부여하기 위하여, 머나먼 전라도 방향의 관광지나 한번 돌아보기 위하여 길을 나선다.

몇일 전 일림산 산행을 하기 위하여 갔던 길과 동일하게 남도로 내려가 남해고속도로에 진입하여 함안 인접지역에 도착하니, 그 곳에서 부터 많은 차량의 움직임으로 고속도로가 몸살을 하면서 완전히 주차장으로 변하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여 거의 1시간이나 지연하고 나서야 비로써 겨우 사천 IC를 통과하고 정체가 풀리므로 속도를 올릴 수 있다. 

애마는 순천시 외곽지를 돌아 벌교 인접 지역으로 접근할 때 시간이 오후 1시가 지나므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점심을 해결하기 위하여 벌교의 특삼품인 꼬막정식을 먹어보기 위하여, 벌교읍으로 들어가 "원조꼬막집" 을 찾아간다.

식당에는 완전히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면서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어 한참 기다림 후 겨우 자리를 마련하여 인당 15.000원 하는 꼬막정식을 먹어보니 별미(別味)의 식사가 된다.

식사 후 벌교역 앞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들어가 벌교의 또 다른 특삼품으로 생산하고 있는 참다래(일명 : 키위) 한 망태를 구입하여 차량 뒤편에 싣고, 지방도로 따라 한참 달려 장흥군 가지산(迦智山) 자락에 있는 "보림사(寶林寺)" 로 먼저 들어가 경내를 관람하여 본다.

 

1. 보림사 관람.

보림사(寶林寺)는 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유치면(有治面) 가지산 산자락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가 되는 송광사(松廣寺)의 말사(末寺)이면써 통일신라 헌안왕 4년(860년)에 보조선사가 창건하여 가지산파의 중심 사찰로 발전하였는데, 인도의 보림사 및 중국의 보림사와 함께 세 절을 합하여 삼보림(三寶林)이라고 한다.  

오늘은 사월 초파일이라서 그런지 사찰 입구에 있는 일주문에서 부터 많은 연등(燃燈)을 장식하고 있는 문을 통과하여 가지산 계곡으로 조금 들어가면 아담한 보림사 경내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대구에서 늦게 출발하면서 중간에서 시간을 지체하므로 오후 4시 경에 도착한다.

오늘 이렇게 머나먼 곳에 위치하고 있는 보림사를 방문한 이유는 보림사에는 2점의 국보와 함께 자그만치 8개의 보물 및 전남 지정 유형문화재가 13점이나 보유하고 있는 한국 문화재 산실의 사찰이라 몇 번 방문하고 싶은 생각을 가졌지만, 그렇게 녹녹치 않은 거리에 있다 보니 차일피일 하다가 오늘 결심을 가지는 길이다.

보림사를 품고 있는 가지산은 해발 511m의 산으로써 정상 까지 약 1시간 남직하면 오를 수 있는 다소 낮은 산이지만 정상 부위에는 5개의 바위 봉우리가 있어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으며, 또한 중산 지점에는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지므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연휴양림을 운영하고 있는 산이라고 한다. 

 

< 가지산이 품고 있는 "보림사" 조감도 >

 

보림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나서 사찰 입구로 들어서면 가지산 보림사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또 다른 외호문(外護門)을 만나는데, 문의 입구가 약간 둥근모양을 하고 있는 건축 양식이 특이하다.

 

< 다소 둥근 아취형으로 되어 있는 보림사 "외호문" >

 

외호문을 통과하여 경내로 들어서면 또 다른 사찰의 문 "사천문(四天門)" 을 만나는데, 내부 수리를 하기 위하여 사천왕 상(像)을 그린 그림으로 출입문을 차단하고 있다.

 

< 내부 수리로 인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사천문" >

 

이 사천왕 상은 보물 제1254호로써 우리나라 사찰에 보관하고 있는 사천왕을 문화재로 지정되어진 것이 매우 진기한 상(像)이지만, 내부 수리로 사천왕 상을 보지 못함이 애석하다. 

이 사천문 건축물이 1515년 조성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는 건물로써 현존하는 목조 건물 내에 보관하고 있는 사천왕 상(像)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이면서 임진왜란 이전 작품으로는 유일한 것 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각 사천왕의 조각품이 매우 우수할 뿐 아니라 조선시대 사천왕의 기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이 사천왕 상에서 133종 198책이 나왔으며 이 가운데 간행 기록이 적힌 책이 114권이고, 이 책들 중에 다수가 문화재로 지정되어졌으며 그 중에서 보물 제1252호 상교정본 자비도량참법, 보물 제745-9호 월인석보 제25권, 보물 제1251호 금강반야바라밀경 제1권 등의 문화재가 경내에 수장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천문 옆으로 들어가면 높은 건물의 "대적광전(大寂廣殿)" 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건물 속에는 국보 제117호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을 모시고 있다.

 

< 사천문 뒤편에 있는 "대적광전" 건물 >

 

이 불상은 왼팔 뒷면에 신라 헌안왕 2년(858년)에 "김언경(金彦卿)" 의 시주로 만들었다는 조성(造成) 시기가 적혀져 있어 우리나라 철불(鐵佛) 중 조성 연대가 가장 오래된 불상이고, 왼손의 검지가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불이 취하고 있는 일반적인 손모양을 하고 있다.

 

< 대적광전 내에 모시고 있는 국보 제117호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

  

이 대적광전 앞 마당에 2기의 석탑(石塔)과 중앙에 한기의 석등(石燈)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데, 이 석탑과 석등이 국보 제44호로 지정된 "보림사 삼층석탑 및 석등" 이라고 한다.

 

< 대적광전 앞에 있는 국보 제44호 "삼층석탑 및 석등" >

 

국보로 지정된 이 석탑의 특징은 남북으로 나란하게 세워진 두탑으로 구조와 크기가 비슷하며, 2단으로 쌓은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을 놓고 머리장식을 얹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이다.

 

< 대적광전 앞 오른편에 있는 "삼층석탑" >

 

< 대적광전 앞 왼편에 있는 "삼층석탑" >

 

석등 역시 신라의 작품으로 네모꼴의 바닥돌 위에 연꽃무늬를 새긴 8각의 아래 받침돌을 얹고, 그 위에 가늘고 긴 기둥을 세운 후 다시 윗 받침돌을 얹어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받쳐주도록 하고 있다.

 

< 2기의 석탑 가운데 있는 "석등" >

 

석탑 속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석탑은 통일신라 시대 경문왕 10년(870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고, 삼층석탑과 더불어 석등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추정이 되는 석등이다.

동쪽으로 보고 건립되어 있는 석탑과 대적광전 건물의 방향과 다르게 마당 우측으로 가지산 산자락 아래에서 남향을 보고 있는 "대웅보전(大雄寶殿)"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대적광전 및 대웅보전 건물 등 대부분의 사찰 건물이 6.25 동란 때 소실됨으로 인하여 최근에 새롭게 건축하므로써 사세(寺勢)를 크게 확장하고 있는 사찰이라고 한다.

 

< 보림사의 본찰 "대웅보전" 모습 >

 

< 대웅보전 내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 >

 

이 대웅보전 오른편 뒤편 야산 기슭으로 올라가면 보물 제157호 "보조선사 창성탑비" 및 보물 제158호 "보조선사 창성탑" 이 축대의 높이를 달리하면서 자리잡고 있어 그 방향으로 올라가 본다.

보조선사는 통일신라 시대의 승려로써 어려서 출가하여 불경을 공부하여 흥덕왕 2년(827년)에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받았으며, 헌안왕 3년(859년)에 왕의 청으로 보림사의 주지가 되었다가 77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고 한다.

왕은 그의 시호를 "보조선사(普照禪師)" 라 하고 탑 이름을 "창성(彰聖)" 이라고 하사 하였는데, 이 비(碑)에는 김영이 비문을 짖고 김원과 김언경이 글씨를 썻다고 하고 창성탑비의 특징은 거북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을 하고 있다.

 

< 보물 제157호 "보조선사 창성탑비" >

 

이 보조선사 창성탑비 뒤편으로 조금더 올라가면 머리와 다리가 없이 몸통으로 구성된 석불 한기와 더불어 보조선사의 창성탑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데, 이 창성탑은 보조선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는 탑이다.

 

< 보조선사 창성탑비 뒤편 축대 위 머리와 다리가 없는 "석불" >

 

탑은 바닥돌 부터 지붕돌까지 모두 8각으로 통일신라 시대의 부도의 일반적인 모습이고, 탑신을 받치는 기단의 아래 받침돌에는 구름무늬를 매우 입체적으로 조각되어져 있으며 가운데 받침돌은 아래 위로 띠를 두른 약간 배가 부른 모습을 하고 있는 탑이라고 한다.

 

< 보물 제158호 "보조선사 창성탑" >

 

이 밖에 보림사에는 대웅보전 오른편으로 명부전(冥府殿)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명부전 건물 지붕 가운데에 이색적인 사자상과 양쪽으로 거대한 용(龍) 마루로 되어 있으며 그 옆으로 종무소와 선방, 해후소, 선열당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 대웅보전 오른편에 있는 "명부전" >

 

< 명부전 지붕을 장식하고 있는 "사자상과 용" >

 

또한 대웅보전 좌측 측대 위에는 미타전(彌陀殿), 조사전(祖師殿), 삼성각(三聖閣) 건물이 차례되로 자리잡고 있는데, 미타전 건물 내에는 전남 유형문화재 제191호인 "장흥전의상암지석불입상(長興傳義湘庵址石佛立像)" 을 모시고 있는 모습이 눈으로 들어온다. 

 

< 대웅보전 왼편에 있는 "삼성각" 건물 >

 

< 대웅보전 왼편 축대 위에 있는 "미타전" 건물 >

 

< 대웅보전 왼편 축대 위에 있는 "조사전" 건물 > 

 

< 미타전 내에 모시고 있는 "장흥전의상암지석불입상" 모습 > 

 

마당에는 2층의 범종각 건물과 더불어 한국의 명수(名水) 보림약수 물이 솟아나고 있어, 많은 신도들의 갈증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물을 마시고 있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이 물통으로 물을 받고 있다.

 

<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범종각" 건물 >

 

< 경내 마당 가운데 있는 "보림약수" >

 

< 많은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보림약수" >

 

이렇게 사찰 곳곳으로 돌아보고 나서 외호문으로 다시 나와 가지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산행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숲속에 7기의 부도탑이 있는 군락지에 도착하는데, 이 부도탑 군락지 중에 제일 위쪽으로 올라가면 보물 제155호 "동부도(東浮屠)" 를 만난다.

 

< 가지산 산행 들머리에 있는 "동부도" 군락지 >

 

이 동부도는 승려의 사리를 모신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 장식을 얹었는데, 각 부분이 8각으로 깍아서 만들어져 있다. 

 

< 보물 제155호 보림사 "동부도" >

 

동부도 탑 군락지를 내려와 보림사 앞쪽 개울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고즈넉한 산촌 마을을 만나는데, 그 마을 뒤편에 보물 제156호 "서부도" 가 있다고 하나 입구를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하여 포기하고 다음 목적지가 되는 운주사로 가기 위하여 오후 5시 경 보림사를 떠난다. -보림사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