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가 품고 있는 신비의 장소 "삼랑진 재래시장, 만어사, 표충비" 를 돌아보는 시간 가지면서.(2)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다음 관광지를 방문하기 위하여 영남루를 벗어나 밀양시가지에서 다시 고속도로 남밀양 IC로 들어가 인접하게 있는 삼랑진 IC에서 내려 삼랑진읍 시가지로 들어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강변 주차장에 주차하고 장터로 들어가 본다.
4. 삼랑진 재래시장 구경.
삼랑진 읍(邑)은 낙동강 본류가 흘려가는 곳에 밀양천(密陽川)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류하는 지점 주변에 형성된 고을로써, 세줄기 큰 강물이 부딪쳐서 크게 물결이 일렁이는 곳이라 하여 "삼랑진(三浪津)" 이라고 하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서울-부산 간 경부선 철도 개설과 더불어 전라남도 송정까지 연결하는 경전선 철도와의 분기점으로, 한때 삼남에서 나룻터와 철도가 동시에 연결되는 물류 중심지로 매우 활기찬 도시로 번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인접하고 있는 부산광역시의 팽창과 더불어 울산, 창원의 신도시 공단 조성으로 인구가 빠져나가, 현재는 약 7.500명이 거주하는 소읍(小邑)으로 전략한 시골이다.
만어사로 들어가기 전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이라 옛 시골 정취가 풍기는 시장 구경과 더불어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장터로 들어가 보는데, 비록 시간적으로 다소 빠른 오전 시간이지만 부지런한 농촌 사람들의 생활 습성과 무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새벽장이 형성하었는지 벌써 사람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파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특히 도로변을 점유하고 있는 다수의 노점상에서 다양한 물건들을 진열하고 있지만, 흥정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상인들도 시원한 그늘 밑으로 피신하였는지 더욱더 쓸쓸함이 묻어나는 시골의 5일장이다.
시가지 중심지 도로를 배회하면서 재래시장이 되는 송지시장으로 내려가 조용한 한 장터 국밥집으로 들어가는데, 소고기 국밥으로 옛 향수를 그려보는 시간을 가진다.
< 다소 한적한 삼랑진 "시장 도로" >
< 도로변에 진열하고 있는 "만물상" >
< 거리에 진열하고 있는 "농산물" >
< 주인도 없이 파라솔 아래에 걸어놓은 "옷" >
< 삼랑진의 대표 재래시장 "송지시장" >
5. 만어사 관광.
삼랑진 읍에서 동쪽으로 약 20분 정도 운전하여 가면 해발 670m 만어산(萬魚山)이 나타나면서 산의 7부 능선 쯤 천년고찰 "만어사(萬魚寺)" 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 만어사는 밀양이 자랑하는 3대 불가사한 비밀이 숨어있는 사찰이다.
< "만어사" 를 홍보하는 안내판 >
만어사는 고려 중기 1180년도에 중건한 사찰로써 보물 제466호 "3층석탑" 과 더불어 대웅전, 미륵전, 삼성각, 범종각, 요사체 등 많은 건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웅전 옆에 있는 거대한 바위에 "관세음보살" 상을 양각하여 놓아 많은 불자들이 찾아오는 사찰이라고 한다.
경내를 돌아보기 위하여 사찰 앞 주차장에 주차하고 나서 몇 개의 급경사 계단으로 올라가면 이내 사찰 마당에 이르고 그 마당 가장자리에는 고목의 느티나무 한 그루와 더불어 나무 앞 테이블 위에 불전함과 더불어 소원 바위 한개가 놓여 있는데, 한 부부가 불전함에 시주하고 나서 이 소원 바위를 들어보고 떠난다.
< 주차장에서 "만어사" 경내로 올라가는 돌계단 >
< 만어사 경내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
< 느티나무 아래에 있는 "소원 바위" >
이어 사찰 주변을 돌아보니 넓은 마당 가장자리 끝지점의 축대 위에 본당 "대웅전(大雄殿)" 건물이 고즈늑하게 앉아 있으며, 그 대웅전 앞에 3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 넓은 마당 가장자리에 점유하고 있는 "만어사" 전경 >
< 만어사의 본당 "대웅전" >
< 대웅전 앞에 있는 보물 제466호 "3층석탑" >
이 석탑 옆으로 산 속에서 흘려내리는 샘이 있어 한 바가지 물을 마시면서 갈증을 해소 시켜보는데, 물 맛이 매우 좋은 감로수가 되고 그 뒤편에 있는 거대한 바위에 세겨진 관세음보살이 무언의 미소를 머금고 내려보고 있어 다소 경건함이 묻어나는 사찰이다.
< 대웅전 오른편 거대한 바위에 세겨진 "관세음보살" 상 >
이 보살 바위 앞을 통과하여 사찰 오른편 구석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암괴류 바위가 흘려내리고 있는 바위 군락지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이 바위들이 물고기를 닮았다고 하여 "어산불영 경석(魚山佛影 輕石)" 이라고 하며 이 바위 군락지 제일 위쪽에 "미륵전(彌勒殿)"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 만어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암괴류" >
< 암괴류 제일 위쪽 구석에 있는 "미륵전" >
< 거대한 미륵바위를 모시고 있는 "미륵전" >
< 미륵전 내에 있는 높이 약 5m "미륵바위" 모습 >
이 만어사 앞에 펼쳐지는 바위 군락지는 천년기념물 제52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삼국유사에서 이 암괴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수로왕 때, 가락국의 옥지(玉池)라고 하는 연못에 살고 있던 독룡(毒龍)과 이 산에 살았던 나찰녀(羅刹女)가 서로 사귀면서 4년 동안 뇌우(雷雨)와 우박을 일으켜 주변 인접 땅에 키우는 오곡의 결실을 방해하였다고 한다.
수로왕은 주술로써 이를 금할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인도 쪽에 있는 부처님에게 도움을 청하니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왕의 뜻을 알고 여섯 비구(比丘)와 일만의 천인(天人)을 데리고 와서 독룡과 나찰녀를 항복시키면서 가르침을 내림으로써 모든 재앙을 물려쳤으며, 이에 수로왕은 부처님의 은덕에 감사하여 이곳에 만어사라는 사찰을 지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과 택리지(擇里志)에 의하면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목숨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無隻山)에 거주하는 신통력 있는 스님을 찾아가 새롭게 살 장소를 마련하여 달려고 부탁하였다고 한다.
스님은 가다가 멈추는 곳에 인연이 있다고 알려 주므로 왕자가 길을 떠나자 수 많은 물고기 때가 그의 뒤를 따라 갔는데, 왕자가 머물면서 쉰 곳이 바로 이곳 만어산이며 그 뒤에 왕자는 큰 미륵 돌로 변신되어 졌고 많은 물고기는 크고 작은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만어산 암괴류는 한반도 빙하기가 끝난 후, 많은 비가 내리는 과정에서 물리적, 화학적 풍화작용으로 지형이 발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특징적인 지역으로 섬록암, 반려암 암괴가 마치 양파가 껍질이 벗겨지듯 풍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암괴류이라고 한다.
< 일만마리 물고기가 변하여 만들어진 "암괴류" >
규모 또한 매우 커서 만어산 정상에서 부터 700m 이상 펼쳐지며 주변 경관과 어울려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등 경관적 가치가 있으며, 밀양의 3대 신비가 되는 얼음골, 표충비와 함께 널리 알려진 곳이다.
미륵전 아래에 첩첩이 깔려 있는 돌너덜 바위군으로 들어가 바위를 두두려 보면 3개 중 2개가 종소리, 쇳소리, 옥소리 등 다양한 소리를 내므로 종석(鐘石) 이라고도 불려진다.
돌너덜 속으로 내려가 직접 바위를 두두리면서 다양한 실험도 하고 아름다운 소리에도 심취하면서 잠시 머물고 있다가, 밀양의 3대 신비 중에 또 다른 표충비를 구경하기 위하여 하산을 재촉한다.
< "종소리" 를 듣기 위하여 바위를 두두린 흔적 >
< 직접 소리를 확인하여 보는 "Wife" >
6. 표충비.
다시 밀양시로 들어와 밀양에서 창원방향을 넘어가는 1080번 지방도로를 달려 밀양의 서부권을 형상하고 있는 무안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에 도착하면서, 면사무소 중심지에 있는 "표충비각(表忠碑閣)" 주차장에 도착한다.
< 거대한 느티나무 주변에 있는 "표충비각" 주차장 >
< "표충비"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표충비각 내에 있는 표충비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 지정된 곳으로 임진왜란 때 승려로써, 국난을 극복한 사명대사(1544-1610년) "유정(惟政)" 스님의 충의(忠義)와 높은 뜻을 새긴 것으로 조선 영조 18년(1742년)에 대사의 5대 법손 "남붕(南鵬)선사" 가 건립한 비석이다.
입구 삼비문(三碑門) 을 통과하면 아름답게 깔려있는 잔디밭을 지나 내삼문이 되는 "솟을대문" 을 통과하면서 왼편으로 거대한 나무 한그루를 만나는데, 이 나무가 수령 약 300년으로 추정되는 경상남도 천연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된 "무안리 향나무" 이다.
< 표충비각으로 들어가는 "삼비문" >
< 잔디밭을 통과하면 만나는 "솟을대문" >
이 향나무는 측백과에 속하는 상록 침엽수로 나무의 높이가 1.5m에 둘레가 1.1m이며 수관(樹冠)의 모양은 녹색의 큰 우산과 같이 널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원래 향나무는 곧게 자라는 성질의 나무이지만 원줄기를 자르고 옆가지를 팔방(八方)으로 뻗게하여 지금과 같은 나무 모양으로 다듬고 가꾼 것이라고 한다.
< "표충비각 앞에 우산 같이 펼쳐진 "향나무" >
< 약 1.1m의 둘레를 가지는 "향나무 밑둥치" >
이 나무를 통과하면서 오른편으로 돌아보면 표충비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안내판이 서 있어 그 내용을 읽어보고 안으로 조금 들어가면 중앙 통로 끝지점에 표충비각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건물 내부에 오늘의 주인공인 "표충비(表忠碑)" 를 만난다.
< 신비의 표충비를 보호하고 있는 "표충비각" 전경 >
이 비(碑)의 재질(材質)이 검은 돌로 되어있는데, 전면에는 "송운대사(일명 : 사명대사)" 의 행적을, 뒤면에는 스승이신 청허당 "서산대사" 의 공덕과 "기허대사" 의 사적을, 측면에는 표충비 사적기를 각각 새겼는데, 총 높이가 380Cm에 비신의 높이 275Cm, 넓이가 98Cm, 두께 56Cm로 그 모습이 장중하다.
< 국난이 발생할 때 마다 땀을 흘리는 "표충비" >
특히 이 비석은 일명 "땀 흘리는 비" 라고도 하면서 국가적으로 큰 어려움이나 전쟁 등 변란의 징후가 있을 때 마다 비면에 자연적으로 땀방울이 맺혀서 마치 구슬땀 처럼 흐르는데,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나라와 겨례를 염려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고 하여 신선시 하는 곳이다.
때로 비석의 4면에는 여름날 농부의 이마에서 흐르는 구슬땀 처럼 맺혀 며칠씩 계속해서 많은 양(量)이 흐르기도 하고 앞면과 옆면 혹은 한면과 두면에서만 잠깐씩 흐르다가 그치기도 하는데, 신기한 것은 글자의 획(劃) 안이나 머릿돌과 좌대에서는 물기가 전혀 비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표충비각 건물 왼편으로 쪽문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쪽문을 통과하면 "홍제사(弘濟寺)" 경내로 바로 들어가고 다른 한편으로 홍제사 정문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새롭게 만들어진 3층석탑이 마중하고 있으며 그 석탑 좌측에는 범종각 건물과 요사채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 "홍제사" 로 들어가는 정문 >
< 정문 앞에 있는 "3층석탑과 범종각" 건물 >
우측으로는 표충각(表忠閣)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표충각 건물 내부 중앙면에는 사명대사와 서산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건물 내부 왼쪽 벽면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걸려있다.
< 홍제사 입구 오른편애 있는 "표충각" 건물 >
< 표충각 내에 있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영정 >
< 왼쪽 벽면에 있는 "박정희와 육영수" 사진 >
사찰 마당을 통과하여 경내 제일 뒤쪽에 도착하면 홍제사 본당 "설법보전(說法寶殿)" 이라는 법당이 자리잡고 있는데, 입구 현판에는 홍제사가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에 속한다고 하지만 법당에는 대웅전이 아니고 설법보전이라고 쓴 현판이 붙어있어 다소 특이한 사찰이다.
< 홍제사의 본당 "설법보전" 건물 >
<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를 알리는 "홍제사" >
이렇게 표충비와 홍제사 사찰이 한 울타리 속에 존재하므로 짧은 시간으로 동시에 관람하고 나서, 당일로 인접하게 있는 "사명대사 유적지와 영산정사" 까지 관람하기 위해 긴급하게 길을 나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