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걷는 "천년 숲길과 선재길" 및 "2013 평창효석문화제" 참석.(전)
2013년 9월 15일 (일요일)
전일(토요일) 억수같이 내린 비로 인하여 기 선약(先約)하여 놓은 백봉회 산행에 동행하지 않고, 다음날 일요일 아침 드림산악회에서 출발하는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계곡 따라 걷는 "천년 숲길과 선재길" 트레킹에 Wife와 둘이서 참석하기로 한다.
이번 트레킹 길에는 아침 일찍 출발하여 산행을 종료하고 나서, 여분의 시간을 활용하여 인접하게 있는 평창군 봉평면 일원에서 실시하는 "2013 평창효석문화제" 에도 잠시 돌아보는 서비스 시간도 겸하는 계획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하면서, 아침 6시 30분 성서 홈플러스에 출발시킨다.
만원의 트레킹 객(客)이 탑승한 버스는 중앙고속도로 안동휴게소에서의 아침식사 및 영동고속도로 횡성휴게소에서 추가 휴식을 가지고 나서 강릉 방향으로 달려가다가 진부 Toll gate에서 내려 한적한 시골길로 조금 운전하여 오대산이 품고 있는 월정사 입구 일주문에 10시 15분에 도착한다.
1. 천년 숲길과 선재길을 걸으면서.
오늘 트레킹을 안내하는 Guide가 트레킹 코스와 더불어 시간을 설명하여 주는데, 트레킹 코스는 월정사 입구에 있는 일주문에서 월정사 경내까지 약 600m 거리에 고목의 전나무 숲이 도열하고 있는 힐링(Healing) 숲속 길을 걷는 "천년 숲길" 과 더불어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약 10Km "선재길" 이라고 불려진다고 한다.
그런데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거리에는 차도(車道)가 잘 만들어져 있으면서 그 거리가 10Km 정도가 되지만, 계곡따라 만들어진 선재길은 개울 좌우를 건너 다니면서 걷기 때문에 충분하게 약 12Km가 되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총 4시간의 트레킹 시간을 먼저 부여 할 것이니 각자 시간 안배를 철저하게 하면서, 2시 30분까지 전원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하여지면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봉평으로 이동하여 "2013 평창효석문화제" 에서 1시간 30분 정도 머물 것 이라고 한다.
나는 이번 트레킹 코스를 도전하는 이유는 오대산은 산행을 통하여 몇번 방문이 이루어진 산이지만 매번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편리하게 접근하고 나서 오대산 정상의 비로봉으로 산행한 경험이 있지만, 진정 오대산의 명품으로 유명한 계곡길을 걸어보지 못 함이 항상 머리에 맴도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오대산 옛길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세조가 조카인 어린 단종을 죽이고 나서 왕이 되었으며, 그 죄로 인하여 심한 피부병으로 고생하다가 상원사를 찾아가는 길에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는 Story telling 길로 유명하다.
계곡 옆으로 자동차 길을 만들어지고 나서 부터 모든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利器)가 되는 자동차에 의존하면서 그냥 지나치는 길이 되어지므로 인하여 완전히 망가져 버린 옛길이라 하겠다.
이것을 안타갑게 여긴 지방자치단체에서 자동차 길 반대편 개울 옆으로 새롭게 트레킹 길을 복원하여 개통 하였지만, 계곡을 건너는 대부분의 길이 징검다리로 되어 있어 상부에서 조금만 비가 내려도 불어나는 물로 인하여 징검다리를 건너기가 힘이 들어 자동차 길로 걸어 가야만 하는 미완성(未完成)의 트레킹 길이 된다고 한다.
버스는 오대산관리사무소에 도착함과 동시에 인당 입장료 3.000원을 지불하고 나서 조금만 더 내부로 들어가면 월정사 일주문 입구에 도착하므로 도로변에 잠시 버스를 정차하여 산행객을 하차시키고, 버스는 트레킹의 종점인 상원사 주차장으로 먼저 올라가 대기하도록 한다.
< 월정사로 들어가는 "일주문" >
버스에 내린 일행은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바로 500년의 수령(壽令)을 가진 전나무 숲속으로 들어가는데, 여기 트레킹 길에는 황토를 깔아 놓으므로 맨발로 걷기에 안성맞춤 길이 되지만 등산화를 벗기가 싫어 그냥 걸어서 숲 속으로 들아가니 전나무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 향기가 코를 자극하므로 마음의 치유가 절로 일어나는 길이 된다.
< 수령 500년의 "전나무" 와 황토길 >
무아지경의 심정으로 울창한 솦속으로 조금만 내부로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중생들이 불가에 귀의하기 위하여 머리를 깍아야만 했던 추억의 장소 "삭발기념탑(削髮記念塔)" 이 외롭게 서 있다.
더 내부로 들아가면 우리민족의 토속신앙을 상징하는 "성황각(城隍閣)"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옆에는 성황당 신(神)에게 소원을 빌면서 지나간 흔적의 돌탑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모습도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 천년 숲길 가장자리에 있는 "삭발기념탑" >
< 천년 숲길 가는 길에서 만나는 "성황각" >
< 걷는 사람마다 소원을 빌면서 쌓은 "돌탑" >
거대한 전나무가 도열하고 있는 길가에는 전나무와 오대산의 생태계를 기록한 안내문이 곳곳에 부착하고 있어, 안내문을 통하여 숲에 대한 많은 지식을 획득하면서 조금 올라가면 산행길 옆으로 2006년 10월 23일 밤에 쓰려져 고사(古死)한 수령 600년이나 된 전나무가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허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수령 600년 수명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전나무" >
< 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준비하는 "전나무" >
이곳 전나무 길을 걸어서 한 모퉁이를 돌아서 가면 자동차 길에서 넘어오는 아치형 다리와 만나는 지점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月精寺)" 로 들어가는 남쪽 출입구와 만나는데, 이곳 출입문에서 약간의 비탈면 따라 조금 올라가면 월정사의 2번째 관문 "천왕문" 에 도착한다.
< 월정사 2번째 관문 "천왕문" >
천왕문을 통과하면 넓은 마당과 함께 왼편으로 정자와 더불어 음료수를 판매하는 찻집과 오른편으로 요사채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마당의 중앙 2층의 루각(樓閣) 같은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1층 통로 천정에 조그마하게 금강문(金剛門)이라는 글씨가 붙어있다.
< 월정사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 "금강문" >
이 금강문을 통과하여 계단을 올라서면 또 다시 왼편으로 월정사 성보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어 신발을 벗고 내부로 들어가 관람하여 보는데, 월정사 성보박물관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정율사에 의해 창건한 천년고찰 월장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다.
< 금강문을 통과하여 왼편에 있는 "성보박물관" >
전시실은 1층과 지하로 구획되어 있어 먼저 1층으로 들어가면 좌측편으로 불보실로 꾸며져 있으면서 좌측 벽면 따라 보물 제139호 "석조보살좌상" 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좌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월정사의 본찰 적광전 앞에 있는 팔각구층석탑을 향하여 무릎을 끓고 공양하는 모습의 보살상이다.
< 1층 좌측 면에 있는 "불보실" 전경 >
< 보물 제139호 "석조보살좌상" >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3호 "금동육수관음보살좌상" 과 더불어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에서 출토된 보물 제1375호 "사리구 유물" 등이 진열하고 있으며, 더 내부 벽면에는 보물 제793-16호로 지정된 세조의 "명주적삼" 옷이 진열하고 있어 이 월정사가 세조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찰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박물관이다.
< "금동육수관음보살좌상" 모습 >
< 보물 제1375호 "사리구 유물" >
< 보물 제793-16호 세조의 "명주적삼" >
오른편으로 넘어가면 법보실로 꾸며져 있는데, 이 법보실에는 국보로 지정된 상원사 동종의 모조품이 진열하고 있으며 그 좌우로 국보 제292호 "상원사 중창권선문" 이라는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다.
< 국보 제292호 "상원사 중창권선문" >
박물관 1층 중앙에 있는 불전 뒤편의 계단을 통하여 지하로 내려가면 승보실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승보실에는 월정사와 상원사에서 배출한 유명한 스님의 영정과 더불어 서책들이 진열하고 있으나 주어진 시간으로 인하여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돌아보고 박물관을 탈출한다.
< 지하 층에 전시하고 있는 "서책" >
박물관을 나오면서 앞으로 바라보면 넓은 마당 뒤편의 일단의 축대 위로 천년고찰 월정사 "적광전(寂光殿)" 건물과 더불어 국보 제48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 월정사의 본당 "적광전" >
< 월정사 적광전 앞에 있는 국보 제48호 "팔각구층석탑" >
팔각구층석탑은 연꽃무늬로 치장한 2층 기단과 균등하고 우아한 조형미를 갖춘 탑신, 그리고 완벽한 금동장식으로 장엄한 상륜부 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뛰어난 석탑(石搭)이라고 한다.
이 석탑은 신라 자장율사가 건립하였다고 하나 그 당시의 탑은 평면 정방형에 3층 또는 5층 탑으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이 탑은 평면이 팔각형이며 탑의 층수도 9층에 이르는 늘씬한 자태를 이루고 있어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아 고려 석탑이라 하겠다.
이 탑은 전체가 화강암으로 조성하고 있으며 상륜부에 일부 금동장식을 더하였지만 화재로 인한 손상을 입은 부분이 더러 있으나, 오늘날 까지도 본래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 하겠다.
여러 차례 화재로 인하여 1970년 해체 보수를 통하여 1층, 2층, 6층, 9층을 새로운 석재로 갈아 끼웠으며, 그 당시에 1층과 5층에서 총 12점의 사리구가 발견되어 은제 불상 1점과 4점의 청동거울, 금동향함, 향주머니, 진신사리경 등 유물들이 발견되어 모두다 보물로 일관 지정되었다고 한다.
팔각구층석탑은 높이가 15.2m가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팔각구층석탑으로 가장 크며 아름다움에서도 으뜸의 탑(塔)이 되므로 몇번이나 탑돌이를 하면서 세심하게 돌아보다가 월정사 본당의 적광전으로 올라가니 스님 한분이 신도들과 함께 불경을 외우면서 기도 증진하고 있다.
< 적광전 내에서 염불을 드리고 있는 "스님" >
월정사를 떠나기 위하여 다시 마당을 가로질려 서쪽 방향인 앞으로 나아가면 정문 형태의 2층 루각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건물 1층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2층에는 불교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으로 사용하고 있고 건물 전면 현판에는 "오대산월정사(五臺山月精寺)" 라는 글씨가 쓰여있다.
< 월정사 서쪽 출입문에 있는 "2층 루각" 건물 >
그 앞에도 상원사로 올라가는 차도와 만남이 이루어지는 아취형 다리가 놓여 있지만, 다리를 건너지 않고 바로 계곡 방향으로 올라가 월정사 경내를 벗어나는 끝지점 뒤담 언저리에 상원사로 올라가는 차도와 다시 만남이 일어나면서 그 담장 코너에 선재길이 시작한다는 이정표가 붙어있다.
< 월정사 끝지점 둘담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선재길" 거리 >
오대산 선재길이라고 하는 것은 신라시대 중국 오대산을 참배하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한 자장스님에 의해 개칭된 문수보살의 성지가 되는데, 문수보살은 "지혜와 깨달음" 을 상징하는 불교의 대표적인 보살이다.
이러한 문수의 지혜를 바탕으로 깨달음이라는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분이 화엄경(華嚴經)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 이라고 하는데, 이 길을 걸으면서 "참된 나" 를 찾아보는 곳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 "선재길"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상원사로 올라가는 선재길은 이곳 월정사 뒤편 담에서 부터 왼편으로 계곡을 두고 걷는 길로 되면서 처음에는 차도 따라 300m 정도 올라가면 왼편으로 다리가 놓여 있는데, 그 다리를 건너면 남대(지장암)로 간다는 이정표가 붙어있으며 계속하여 100m 정도 더 올라가면 이제는 반대로 오른편으로 동대(관음암)로 올라간다는 이정표가 붙어있다.
<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올라가는 "아스팔트" 길 >
< "남대(지장암)" 으로 들어가는 안내도 >
< 다시 "동대(관음암)" 로 들어가는 안내도 >
오대산 산세는 펼쳐 놓은 손가락 끝지점과 같이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일 엄지 손가락과 같은 봉우리가 해발 1561m 효령봉이고, 그 다음 손가락으로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해발 1563m 비로봉, 연이어서 상왕봉(1491m), 두로봉(1421m), 동대봉(1433m)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각 봉우리 속에 "대(臺)" 라고 불려지는 암자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암자 이름이 동서남북 4곳 방향을 표시하는 동대(관음암), 서대(수정암), 남대(지장암), 북대(미륵암), 중대(사자암)이라고 하는 암자로 형성되어 있는 산이다.
동대에서 약 100m 정도 더 울라가면 부도탑 군락지에 도착하는데, 여기 월정사 부도탑은 1984년 6월에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2호로 지정되었으며 부도탑 대부분은 석종형(石鐘型)으로 된 것이 많고 일부 원탑형(圓塔型) 부도도 눈에 들어온다.
< 상원사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부도탑" 군락지 >
< 상원사로 올라가는 "전나무" 길 >
울창하게 드리워지는 아스팔트 길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콘크리트로 만든 빈야교(般若橋) 다리를 건너면서, 선재길은 오른편 넓은 공터를 가로 질려 옆 개울을 지시하는 화살표 방향 따라 들어가게 만든다.
바로 개울을 건너는 구름다리를 만나지만 다리가 아직 공사 중이라 다리 아래에 놓여있는 징검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문제는 물이 징검다리 위로 찰랑대면서 흘려가고 있어 등산화를 벗고 건너기에도 애매하여 모두가 건너지 못하고 망서린다.
< 반야교를 건너자 만나는 "선재길" 이정표 >
< 새롭게 건립하고 있는 다리 아래에 있는 "징검다리" >
우리 부부는 다소 신발이 물에 빠지지만 용감하게 징검다리를 건너 띄어 반대편으로 넘어가 본격적으로 트레킹 길로 들어가는데, 걷는 길은 울창한 숲사이로 빠곰하게 뚫여있는 오솔길 옆으로 청초하게 물방울이 달려있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어 천상의 길이 된다.
< 야생화가 피어 있는 "오슬길" 을 걸으면서 >
< 가을의 상징 "빨간 열매" 도 구경하면서 >
국립공원 오대산에서 자생하고 있는 동식물의 분포도를 비롯하여 각종 설명서도 읽어보면서 무아지경으로 걸어가면 곳곳에 돌담 같은 것이 보이는데, 이 돌담이 한 때 오대산에서 생활의 터를 잡고 살아갔던 너와집이 있었던 장소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 선재길 주변으로 약 360여 가구 "너와집" 이 있었다는 설명문 >
또한 트레킹 길 옆으로 넓은 밭을 종종 만나는데, 이 밭에서는 지역 노인들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농사로 얻는 수확물을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하여 사용하는 곳이라고 하면서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고 그냥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안내문도 눈길을 끈다.
< 선재길 주변에 경작하고 있는 "텃밭" >
< 수확을 끝낸 텃밭에 피고 있는 "야생화" 꽃 >
여기서 부터 트레킹 길은 개울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연속적으로 나타나므로 불어나는 물로 인하여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많은 시간과 물에 빠짐이 발생하므로 시간이 무한정 소요되면서 걷는 길이 된다.
< 징검다리를 걷너고 있는 "Wife" >
어느 곳에는 기다란 나무로 다리를 걸쳐 놓아 풍족하게 흘려가는 물과 함께 한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어 정말 머물고 싶은 풍경이 연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풍경도 감상하지 못하고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횡하니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애석함이 묻어난다.
< "나무다리" 도 건너면서 >
< 많은 물이 내려오고 있는 "개울" >
잘 만들어 나무테크 길, 울창한 숲길, 너덜바위 길, 야생화 꽃길, 때로는 계곡의 물 따라 건너가야 하는 험로한 길도 연속적으로 만나는데, 그로 인하여 한 순간도 눈을 돌릴 수 없는 길이라 이것이 진정한 트레킹의 진수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 잘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 >
<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선재길" 표시판 >
< 풍족한 물이 흘려가고 있는 개울 옆으로 이어지는 "너덜바위" 길 >
< 아담한 "나무테크 다리" 도 건너면서 >
이렇게 한시간 이상 개울 물따라 올라가면 왼편에 있는 차도로 넘어가는 "섶다리" 를 만나는데, 이 섶다리는 나룻배를 띄울 수 없는 낮은 강에 임시로 만든 다리로서 재료는 잘 썩지 않은 물푸레나무 또는 버드나무로 다리 기둥을 세우고 소나무로 상판 위에 섶으로 엮어 깔고 그 위에 흙으로 덮어 만든 다리이라고 한다.
< 약 1시간 정도 걷다보면 만나는 "섶다리" >
섶다리는 해마다 가을걷이를 끝낸 11월 경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든 다리로써, 여름에 홍수가 발생하면 수시로 다리가 떠내려 갈 수 있으므로 "이별의 다리" 이라고도 불려진다고 한다.
< "섶다리" 도 건너 보면서 >
계속되는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개울 좌우로 건너 다니면서 1시간 정도 더 올라가다 보면 또 다시 나무테크로 만든 선재교 구름 다리를 건너면서 도로를 만나고, 도로 건너편으로 오대산장이 나타나면서 넓은 공터에 휴식처가 만들어져 있어 휴식처 의자에 앉아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여 본다.
< 오대산장 앞에 있는 "선재교" 를 건너면서 >
< 차도 왼편에 있는 "오대산장" 전경 >
또 다시 트레킹 길을 재촉하면서 걸어가면 트레킹 길은 이제부터 길은 개울과 도로를 오른편으로 두고 왼편 산기슭 따라 만들어져 있고, 이 트레킹 길 초입에 연화탑(蓮花塔) 한기가 서 있다.
< 오대산장 뒤편에 있는 "연화탑" >
이 연화탑은 1965년 7월 10일 고려대학교 불교학생회 여학생 10명이 상원사와 적멸보궁에서 불공을 드리고 나서 하산길에 개울을 건너다가 급류에 쓸려 내려가 모두 죽음으로 생(生)을 마감한 학생들의 혼(魂)을 기리는 비석이다.
비석의 옆에 있는 3기의 무덤은 완전히 살아졌는지 보이지 않고 나머지 7기의 무덤도 거의 자연으로 돌아가면서 겨우 흔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아무런 자식도 두지 못하므로 무연고의 무덤으로 살아져 무상함을 느끼는 장소이다.
<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여대생" 무덤 >
< 다소 좁아지는 "오솔길" 도 걸으면서 >
여기서 부터 트레킹 길을 계곡 낭터리지 옆으로 이어지므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면, 또 다시 구름다리를 만들기 위한 공사를 하는 현장과 더불어 다리 아래에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게 되어진다.
< 구름다리 공사를 하고 있는 "용접공의 불꽃" 과 징검다리 >
징검다리를 건너자 마자 트레킹 길은 왼편으로 꺽어 개울 옆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보면 다시 차도와 만남이 일어나고 차도 따라 100m 정도 전진하면 차도는 또 다시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면서 왼편으로 살아지고, 트레킹 길은 다시 개울 오른편 산 비탈면으로 이어진다.
< 도로를 왼편으로 살아지게 하는 "콘크리트" 다리 >
여기에서도 몇번의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개울 좌우로 왔다 갔다하면서 조금 올라가면, 불어나는 물로 인하여 건너지 못하는 징검다리를 만나므로 이제는 차도 따라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 건너기가 매우 편리한 "징검다리" 도 건너보고 >
< 다시 건너가는 "징검다리" >
< 12회 정도 건너다가 마지막 물을 건너가기 힘든 "징검다리" >
< 마지막 1Km 정도 "차도" 따라 걷는 길 >
이 차도 길에는 약 1Km 정도 올라가면 버스가 기다리는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진다는 이정표가 100m 단위로 표시하고 있어 시간을 점검하면서 걸어 가는데, 이정표로 인하여 많은 위안을 가지면서 트레킹을 종료하게 만든다. -전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