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대구)

전국 유일의 지역 출신 애국지사 묘역으로 만들어진 대구 "신암선열공원" 을 찾아보고서.

용암2000 2014. 2. 23. 00:38

2014년 2월 21일 (금요일)

 

1. 신암선열공원.

일전에 망우공원 내에 있는 광복회관을 돌아보고 나서 광복에 대한 의미를 조금 느끼고 나서, 금일 오후 시간적인 여유가 발생하므로 인하여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산 27-1번지에 있는 대구 "신암선열공원(新岩先烈公園)" 을 돌아본다.

이 선열공원에서는 국가가 관리하는 국립묘지와 현충탑에 안장되어진 순직선열을 제외한, 대구와 경북지역에서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자존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들의 고귀한 넋을 추모하고 그 높은 뜻을 받들기 위하여 조성되어진 대구 시립현충묘원(市立顯忠墓園)이다.

처음 선열의 묘역은 대구 대명동 일 때에 산재되어 있었는데, 1955년에 이곳으로 옮겨 그간 대구시에서 관리하여 오던 중 묘역 성역화 사업을 시작하여 1987년 3월 1일 준공된  이래 현재 52위의 애국선열이 안장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이 지역 출신 독립운동 애국지사 분들을 계속 안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애국선열을 모시고 있는 무덤의 위치가 조성 당시에는 대구시 동구를 관통하여 흐르는 금호강 언저리 언덕 위에 조성하였지만, 대구시의 확장으로 인하여 현재 공원의 위치가 자연적으로 도심의 중심으로 변모가 일어났다.

물론, 조성 당시 묘지 위치는 배산임수의 지형에 좌청룡과 우백호의 산맥을 거닐고 있는 야산 기슭이나 울창한 나무가 자라는 숲의 가장자리로 선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 그렇지 못 함에 다소 아쉬움이 일어난다.  

도심의 빌딩과 학교 및 아파트로 인하여 선열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길을 찾기가 매우 난이하여 네비게이션의 도움으로 겨우 입구에 찾아가니, 정문에는 유럽의 고딕식 건물 기둥과 같은 모습하고 있는 지주 3개를 입구로 사용하고 있다.

 

 

 < 고딕식 건물 기둥 모양을 하고 있는 "신암선열공원" 정문 >

 

옆에 있는 쪽문으로 들아가면, 쪽문 앞으로 넓은 광장과 함께 안내문이 서 있어 내용을 읽어보고 나서 광장 안으로 들어가니, 광장의 가장자리에 "신암선열공원" 이라는 입석이 서 있다.

 

 

< 정문 앞 넓은 "광장" 을 하고 있는 선열공원 >

 

 

 < "신암선열공원" 을 알리는 입석 >

 

그 입석 뒤편으로 애국선열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단충사(丹忠祀)"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단충사에서 참배를 원하는 사람은 사무실로 와 연락하여 주면 문을 열어 주겠다는 정말로 편리한 안내문이 붙어있다.

 

 

 < 참배를 원하는 사람은 관리사무소로 연락하라는 "단충사" 안내 종이 >

 

 

 < 52위 위패를 모시고 있는 "단충사" 의 옆 모습 >

 

이 단충사 뒤편으로 애국선열 52위의 묘지가 제1 묘역으로 부터 제2, 3, 4, 5 등 5개 묘역으로 구획 및 관리하고 있으므로 인하여, 묘역을 구획하고 있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서 묘지를 관람하여 본다.

 

 

< 단충사 뒤편으로 펼쳐지는 "묘역" 의 구획 >

 

각 개인의 묘(墓)에는 왼편 가장자리에 애국선열의 묘역 번호와 사진 및 공적 내역을 기록한 4각형의 와비석이 동일한 모양으로 설치되어 있지만, 나머지 묘소의 둘레석, 좌판, 망부석 등 각 조형물이 상이하게 만들어져 있어 자손들의 부(富)의 척도를 가름하게 한다.

 

 

< "제1묘역" 의 전경 >

 

 

 < 다양한 모양의 묘소 "묘비석" >

 

 

 < 각 묘의 좌측 편에 묘역 번호를 나타내는 "와비석" >

 

 

< "꽃" 으로 장식하고 있는 묘 >

 

 

< "둘레석과 좌판" 도 없는 단촐한 묘 >

 

 

 < "제5묘역" 의 전경 >

 

 

< 봄의 소식을 전 할려고 하는 "꽃나무" >

 

 

< 묘역 내에 휴식처를 제공하는 "등나무" >

 

이곳에서도 돈이 있는 후손을 거닐고 있는 애국선열은 좋은 명당과 더불어 좋은 묘비로 치장하고 있구나 하는 쓸쓸한 모습을 보면서, 묘역의 제일 뒤편에 올라가니 눈 앞으로 유유하게 흘려가는 금호강과 더불어 시가지가 발아래에 머물고 있다.

 

 

< 묘역 상부에서 바라보는 "금호강" 과 시가지 >

 

이곳에 잠들고 있는 애국선열은 금호강 뒤편에 있는 동촌 비행장에서 떠오르는 팬텀 전투기가 만들어 내는 굉음의 소리와 더불어 선열공원 뒤편으로 고층 아파트에서 혹시 자살하기 위하여 뛰어내릴려는 사람이 있는지, 또한 공원 앞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스마트 폰으로 카카오 톡이나 하지 않는지 감시하여야 하는 바쁜 선열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 듯 일어난다.

 

 

< 묘역에서 바라보는 "동촌비행장" 방향 >

 

 

< 묘역 뒤편에 있는 고층 "아파트" 군락지 >

 

 

 < 묘역 앞에 있는 "고등학교" >

 

어찌하던, 거의 찾아오지 않는 묘역을 한바퀴 돌고 내려오니, 정신이 나간 아주머니 한분이 잡다한 짐 보따리를 옆에 두고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고 있어 누워 계시는 선열분들이 또한 심심함을 덜어 주겠구나 하는 생각도 첨가되어 진다.

정문 아래 방향에 있는 2층 공원관리 사무실에서 무엇하고 있는지 한명도 보이지 않고, 적막감으로 쌓여 있는 신암선열공원을 말 없이 떠나야만 했다.

 

 

< 신암선열공원의 "관리사무소" 전경 >

 

2.아양기찻길.

묘역에서 보이고 있는 금호강을 가로 질려 만들어진 "아양기찻길" 이 생각이 나서 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한번 구경하여 보는데, 이 다리가 작년 대구시 동구청에서 몇십억의 돈을 투자하여 쉼터를 만들어 놓았으며, 금년 정월 초하루 해맞이 명소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여진 다리이다.

 

 

< 새롭게 리모델링 하여진 "아양기찻길" >

 

이 아양기찻길은 1917년 동대구에서 영천 간 노선으로 개통된 대구선(大邱線) 중, 대구 동구지역을 관통하던 도심구간이 2008년 외곽으로 이전됨에 따라 기존의 철도는 대부분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그러나, 이 아양철교 만이 그 기능이 상실하고 또한 안전사고 발생이 잠재하므로 인하여 철거로 계획하였다가, 대구 동구청에서 시민들의 숱한 추억와 애환이 깃들어 있는 철도를 리모델링 하기로 결정 하였다고 한다.  

 

 

< 아양기찻길을 건너는 "사람들" >

 

 

< 다리 중간에 있는 "강화유리 길" 및 전망대 >

 

다리 중간지점에 쉼터와 명상원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휴식과 더불어 커피와 음료수를 마시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는 한국과 세계에서 유명한 다리를 컴퓨터로 검색하여 보는 "디지텔 다리박물관" 을 만들어 놓아 다리를 검색하는 불거리를 제공하여 준다.

 

 

< 기찻길 중간 지점에 있는 "휴식처" >

 

 

< "디지텔 다리박물관" 의 컴퓨터를 검색하는 사람 >

 

 

< 휴게소로 들어가는 "자동문" >

 

 

< 다리를 건너는 "자전거 동호인" >

 

특히, 다리 위 양쪽으로 돌출형 전망대 데크를 만들어 놓아 금호강의 푸른물과 다리 주변으로 만들어져 있는 트레킹 길과 자전거 전용도로에는 메니아들이 시원한 강바람을 가르면서 걷고 달리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으로 그려지고 있다.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호강" 상부 방향 >

 

 

 < 금호강 하류 "신암선열공원" 방향 >

 

이렇게 철거 위기에서 훌륭한 여가공간으로 탈바꿈한 아양기찻길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또한 건너보는 대구시 동구의 명소가 되어지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