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문화와 산행.

선덕여왕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경북 경주시 건천읍에 있는 "오봉산" 을 다시 찾아보면서.

용암2000 2014. 12. 28. 23:09

2014년 12월 25일. (목요일)

 

1. 오봉산 산행.

오늘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죄인을 구제하기 위하여 애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이라 온누리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위하여 교회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이 때,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나는 무료함을 달래보기 위하여 대학교 동문 한명과 함께 2-30년 전에 한번 산행을 가진 경주 건천읍 언저리에 있는 오봉산으로 달려가기로 한다.

아침 9시 동문의 승용차를 이용하여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영천 Toll gate에서 내려 국도를 이용하여 조금 달려가면, 오봉산 산행 들머리가 되는 "신평마을" 로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한다.

오늘 오봉산 산행의 들머리를 신평마을로 선정하는데, 그렇게 선정하는 이유는 이 신평마을 뒤편으로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 "여근곡(女根谷)" 이라는 매우 이색적인 계곡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신평마을 입구에서 바라보는 "오봉산" 능선 > 

 

신평마을 회관 인접지역에 성(姓) 테마 박물관이 있다는 안내문이 있지만 그 박물관은 하산길에서 관람하기로 하고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주차장이 나타나는데, 그 주차장에는 한대의 차량도 주차하지 않고 있어 오늘 이 방향으로 오봉산 산행을 시도하는 사람이 거의 없나 보다.

그래서 주차장에서 다시 경부고속도로 밑으로 이어지는 작은 굴다리를 통과하여 더욱 더 내부로 들어가면 신평 2리 마을이 나타나는데, 마을 중앙에 다소 넓은 공터가 있으므로 그곳에 주차하고 산행을 시도하기로 한다.

산행의 초입이 되는 여근곡 뿌리에 "유학사" 라는 사찰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유학사 까지 차량이 올라갈 수 있는 시멘트 포장길이 만들어져 있어 도로 따라 조금 걸어서 올라가면 도로 좌우에는 과수원과 더불어 가축을 키우는 막사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 신평마을에서 바라보는 "여근곡" 계곡 전경 >

 

아울러 고목의 과수원에는 앙상하게 남아 있는 가지에 까치를 위하여 남겨 두고 있는 몇 개의 사과에는 벌써 까치의 양식이 되므로 거의 반쪽의 사과들이 고유의 모양을 잃어가고 있는데, 그래도 이렇게 날 짐승에게도 먹이를 제공하겠다는 농심(農心)이 넉넉한 농촌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과수원 옆 길 따라 한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밭의 끝나는 지점에서 부터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이 숲의 시작점에 산행길이 나누어지는 3거리 지점 이정표가 자리하고 있다.

 

< 산행의 들머리가 되는 "3거리 지점" 이정표 >

 

3거리 지점에는 오봉산 산행지도와 더불어 선덕여왕의 영화 촬영지라는 그림과 함께 그려져 있는데, 산행지도에는 좌우로 나누어지는 길을 선택하여 올라가면 여성의 둔부가 되는 꼭지점에 다시 산행길이 합류하면서 그 자리에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 선덕여왕 영화 촬영지를 알리는 그림과 "여근곡" 주변을 나타내는 산행도 >

 

이곳 3거리 지점에서 왼편으로 50m 정도 들어가면 여근곡의 뿌리가 되는 자리에 "유학사" 라는 아담한 절이 자리하고 있는데, 사찰의 마당으로 올라가면 한단의 축대 위에 대웅전(大雄殿)과 더불어 왼편으로 매우 작은 용왕당(龍王堂) 건물이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다.

 

< 고찰이 되는 "유학사" 전경 >

 

< 유학사의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 >

 

< 용왕신을 모시고 있는 "용왕당" >

 

이 작은 용왕당 뒤편 야산 언저리 위에 또 다른 산신각(山神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3채의 건물은 사찰의 역사를 말할려고 하는 듯 단청도 하지 않고 매우 고찰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건물이다.

 

< 용왕당 뒤편에 있는 "산신각" 건물 >

 

사찰을 한번 돌아보고 사찰 마당의 왼편에 있는 산행길로 들어서면, 이내 산행길을 울창한 숲속으로 연결되므로 산림욕(山林浴) 하기의 최상의 길이 된다. 

 

< 옥문지에서 사찰까지 연결하여 온 "샘" >

 

< "옥문지" 로 올라가는 산행길 초입 >

 

무아지경으로 한 모퉁이를 돌아서 올라가면 조그마한 계곡을 건너가게 하면서 이 계곡의 중간지점에 작은 샘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샘은 아무리 가뭄이 있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옥문지(玉門池) 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 "옥문지" 를 나타내는 안내판 >

 

이곳 여근곡의 옥문지는 일연(一然) 스님이 저술한 삼국유사 "기이(紀異)" 편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幾三事)에 관한 전설 중의 하나에서 유래가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선덕여왕은 한국사에서 최초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녀는 성은 김(金)이고 이름은 만덕이라고 하며 신라 제27대 군주로써 서기 632년 부터 647년 까지 약 15년 간 재위를 하였으며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장녀이면서도 태종 무열왕의 6촌 누나이자 큰 이모가 되는 복잡한 출생 비밀을 가진 여왕이다.

선덕여왕이 즉위한지 5년(636년) 차의 어느 겨울철, 영묘사(靈廟寺) 앞에 있는 큰 연못이 되어 "옥문지(玉門池)" 에 난데없이 개구리 무리들이 삼사일 간 열심히 울었다고 한다.  

모두 궁금히 여기는 가운데, 선덕여왕이 해석하기를 겨울철에 개구리가 시끄럽게 우는 것은 병란(兵亂)이 일어날 조짐이라고 하면서 각간 알천(閼川)과 필탄(弼呑) 두 장군을 불러 2,000명의 군사를 주어 경주 서쪽에 있는 여근곡에 가서 백제의 복병을 치게 하였다.

두 장군이 여근곡에 이르니 백제의 장군 "우소(于召)" 가 거느리고 있는 500여 명의 복병이 있어 백제 군사들이 그 자리에서 몰살을 당하는데, 여왕의 예지에 탄복한 신하들이 그 사유를 물었다고 한다.

선덕여왕은 옥문(玉門)을 여근(女根)으로 해석하면서 여근은 음(陰)이며 그 빛이 희고 흰색은 서방의 빛이므로 적병이 서쪽의 음달진 곳에 있는 것을 알아 차리고, 또한 남근(男根)이 여근 속으로 들어가면 토사(吐死)한다는 음양설을 인용하여 해석한 것이라 하겠다.

어찌하던 처음 대면하는 샘에는 떨어진 낙엽으로 인하여 거의 샘의 형태를 가지지 못하고 약간의 물이 고여 있으므로, 함께 걷고 있는 동문이 등산용 지팡이로 낙옆을 치우고 나니 다소의 많은 물이 솟아 오르고 있다.   

 

< 낙옆 속에 자리하고 있는 "옥문지" >

 

옛날부터 이 샘에서 청소 또는 부정한 일을 하면 반듯이 아래마을에 살고 있는 여인 한명이 꼭 바람을 피우므로 절대로 손을 되지 않은 샘이라고 하였는데, 오늘 친구가 샘에 있는 낙옆을 치우므로 어떠한 소동이 일어날지 궁궁하게 만든다.

 

<낙옆을 치우고 나서의 "옥문지" > 

 

옥문지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급경사의 오르막 길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 산행하기에 편리하도록 오르막 길 전체에 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아 미끄러움 없이 다소 편리하게 산행이 가능하게 한다.

 

< 옥문지에서 상부 쉼터 까지 만들어진 "나무계단" 길 >

 

< 가는 길에서 만나는 "파평 윤씨" 묘소 >

 

계단 따라 한 30분 정도 올라가면 산의 능선 부위에 쉼터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쉼터에는 산행의 입구가 되는 유학사 사찰에서 좌우로 올라오는 길과 합류의 장소가 되는 지점이다.

 

< 유학사에서 좌우 갈림 길이 만나는 지점의 "쉼터" 이정표 > 

 

쉼터에는 몇 개의 나무의자가 놓여 있어 의자에 앉아 가지고 간 과일과 함께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나누면서, 전반적인 사회와 더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충분한 휴식을 가진다.

 

< 쉼터에 있는 "나무의자" 에 앉아서 >

 

그런데 지금까지 한명의 산행인도 만나지 못하고 오직 2명이 오봉산 산행을 독식하면서 고도를 상승하는데, 이 쉼터에서 부터 올라가는 길은 산의 사면 따라 음달 길이 이어지면서 잔설(殘雪)로 인하여 매우 위험한 길이 된다.

잔설의 길에서 손과 발을 이용하면서 몸을 최대한으로 낮추어 거의 기면서 몇 개의 커브 길을 돌아서 올라가면, 숨이 하늘까지 차오르면서 산의 능선이 되는 깔닥고개에 도착한다.  

이 깔닥고개에서 부터 오른편으로 "부산성(富山城 : 사적 제25호로 지정)" 이 펼쳐지는데, 산성이 거의 파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면서 어지럽게 널려있는 돌무덤 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지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 파괴되어진 "부산성" 돌무덤 길을 걸으면서 >

 

< 시야가 열리는 "바위 전망대" >

 

이 전망대에 서면 발 아래로 경부고속도로와 더불어 영천시에서 경주시를 연결하는 국도가 나란하게 달려가고 있으며, 아울러 조금 전에 출발한 산행 들머리가 되는 마을의 집들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 바위 전망대에서 내려보는 "산행 초입 마을" 전경 >

 

오늘 산행에는 맑은 날씨로 인하여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므로, 파란색 하늘 아래로 펼쳐지는 영천과 경주 산하의 풍경이 한폭의 수채화와 같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다정감을 느끼게 한다.

이 능선에서 부터 약간씩 굽이치는 산맥(山脈) 따라 한 10여 분 정도 앞으로 전진하여 가면 오봉산 초입에 있는 도로에서 주사암으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나는데, 이 임도는 옛날 한번 산행할 때 임도 따라 하산한 경험이 있는 길이라 다소 눈에 익숙한 길이다. 

 

< 주사암으로 올라오는 "임도" 와 만나는 지점 >

  

임도 따라 다시 한 5분 정도 더 걸어가면 오른편으로 오봉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산행길이 나타나므로 임도를 벗어나서 숲속 길로 조금 더 올라가면 거대한 3개의 바위가 나타나는데, 이 바위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친구와의 약간의 언쟁이 일어난다.

 

< 임도에서 다시 "오봉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 

 

아마 조금 전에 옥문지를 지나왔기 때문에 옥문지를 상대하는 남근석이라고 보는데 일치하지만, 2개의 볼알과 1개의 고추를 두고 어느 것이 고추 바위가 되는지 옥신각신 하다가 무승부로 하고 바위를 떠나 조금 더 상승하니 이내 오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 "남근석" 모양을 하고 있는 3개의 바위 >

 

오봉산 정상에는 한기의 무덤과 더불어 산불 감시초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산불 감시초소에서 한 아저씨가 근무하면서 홀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으므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해발 685m "오봉산(五峰山)"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을 찍어본다.   

 

< 한기의 무덤 뒤편에 있는 "오봉산" 정상석 >

 

< "오봉산 정상석" 을 배경으로 >

 

정상석에서 붉은색을 띄고 있다는 주사암(朱砂岩) 바위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 주사암 바위 뿌리 입구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임도와 다시 만남이 일어나면서 이내 주사암(朱砂庵) 경내로 들어선다. 

 

< 오봉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사암" 바위 >

 

< "주사암"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 >

 

옛날 산행을 할 때에는 거의 쓸어져 가는 암자 한채가 바위 아래에 허름하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많은 건물이 들어서면서 매우 짜임새를 갖추어 가고 있는 암자가 된다.

암자로 들어서면 입구로 부터 종무소 건물과 더불어 일반적 사찰에서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에 "큰법당" 이라는 한글로 되어진 현판에 특색있게 붙어있고, 그 옆으로 새롭게 지어진 건물과 영산전(靈山殿) 건물이 자리하고 영산전 건물 뒤편 축대 위로 삼성각(三聖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많은 건물로 짜임새 있게 자리하고 있는 "주사암" 전경 > 

 

< "큰법당" 이라는 현판을 가지고 있는 주사암 >

 

< 큰법당 왼편에 있는 "영산전" >

 

< 영산전 뒤편 축대 위에 있는 "삼성각" >

 

다른 한편으로 사찰의 왼편 구석에 종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마당 앞으로 새롭게 건축되어진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주사암과 요사채 건물 사이로 마당바위로 가는 길이 만들어져 있다.

 

< 영산전 앞에 있는 "종각" 건물 >

 

마당바위로 넘어가는 길 따라 한 모퉁이를 돌아서 넘어가면 거대한 마당바위 위에 도착하는데, 이 바위 가장자리에 "선덕여왕과 동이" 라는 2편의 영화를 촬영하였다는 그림이 붙어있다.

 

< 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마당바위" 전경 >

 

< 넓은 "마당바위" 에 서서 >

 

< 마당바위 가장자리에 만들어진 "동이" 영화 촬영지 표시판 >

 

이 마당바위에 서면 눈 앞에는 천길 낭떠리지가 되고 그 넘어로 넓은 야산이 펼쳐지는데, 이 야산에는 약 25만 평의 부산성 성내가 펼쳐지면서 아직도 몇 채의 민가들이 보이고 있다.  

 

< 마당바위 앞 약 25만 평 "부산성" 전경 >

 

옛날 이 바위에 올라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불현듯 일어나지만 오늘은 아무도 없는 쓸쓸한 바위가 되므로 친구와 함께 무한정 머물고 있으니까 경주에 살고 있는 한 중년 부부가 처음 오봉산 산행을 왔다고 하면서 인사를 나눈다.

오봉산이 신라시대에는 김유신 장군을 비롯하여 화랑들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기 위하여 얼마나 많이 올라 왔던 유명한 산이었지만, 이렇게 경주에 살고 있는 사람도 처음 왔다고 하니 정말 역사에 대한 무감각을 발생하게 하는 산이다.

옆에 있는 국보 제199호의 마애불이 있는 단석산에는 산행 한 경험은 있지만, 오늘 처음 방문한 오봉산 내력에 대하여 친척과 친구들에게 홍보하여 많이 찾아오는 산으로 이야기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옛날 내가 오봉산에 왔을 때 산의 정상 부위에 너무나 많은 붉은 개미들이 있어 점심식사 하기에 고초를 꺽었다는 경험담을 말하는데, 나는 아직 주사암이 붉은 바위(朱砂) 보다는 붉은 개미로 인식하고 있다는 나의 견해를 이야기 하면서 봄과 여름철 산행하여 확인하기 바란다는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부부에게 기념사진 한장을 부탁하고 오봉산을 떠나기로 하면서 하산길은 주사암 바위 뒤편으로 만들어진 오솔길 따라 바위를 한바퀴 돌고 임도로 내려서서 하산하는데, 암자 끝지점에 부산성 성내로 가는 길과 더불어 산성 안내문이 붙어있어 정독하여 본다.

 

< "선덕여왕" 영화 촬영 홍보판 앞에서 기념사진 한장 >

 

< 주사암 바위 뒤편에 있는 "기도처" >

 

< "부산성" 을 알리는 안내문 >

 

임도 따라 무아지경으로 내려가니 한명의 산행인이 올라오므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임도길로 계속하여 내려가는데, 하산길은 조금 전에 올라왔던 옥문지 방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임도 따라 한 10여 분 정도 더 내려가다가 오른편에 있는 사잇길로 하산하기로 한다.

 

< 임도의 중간지점에서 오른편을 내려가는 "사잇길" >

 

이 하산길은 포근한 길이 되면서 나무계단이 전연 없이 완만한 길이 되므로 매우 수월하게 하산이 이루어지면서, 이내 산행의 들머리가 되는 3거리 갈림길에 오후 1시 경에 도착하므로 약 3시간의 산행이 된다.

3거리에서 다시 아스팔트 길 따라 조금 내려가 경부고속도로 아래에 있는 작은 굴다리를 건너 아래 신평마을로 승용차를 몰고 가서, 오전에 그냥 통과한 성 테마 박물관으로 들어가 본다.

 

< "성 테마 박물관" 을 알리는 안내문 >

 

성 테마 박물관에는 2.000원의 입장료를 요구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어 일단 내부로 들어가 보는데,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전시장은 일반 가정집의 사랑채 한칸을 박물관을 꾸며 놓고 있다.

 

< 성 테마 박물관 마당에 있는 "삼신할머니" 상 > 

 

오늘 산행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전시장 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내부를 불 수가 없고, 단지 건물 옥상에 여근곡을 제일 잘 볼 수 있다는 전망대가 있어 전망대로 올라가 여근곡을 한번 더 구경하고 박물관을 떠나기로 한다.

 

< 성 테마 박물관 옥상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여근곡" >

 

2. 용산서원 방문과 점심식사.

친구가 경주에서 회덮밥으로 유명한 용산회식당이 있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3번 방문하여도 횟밥의 재료가 떨어지든지 아니면 월요일 휴무로 한번도 성공하지 못한 식당을 재차 방문하기로 한다.

오늘도 조금 늦으므로 점심식사가 가능할 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건천 Toll gate를 통과하자 마자 이내 경주 Toll gate를 벗어나, 경주 남산으로 올라가는 삼릉길 주차장 남쪽에 있는 내남면사무소로 달려간다.

식당 옆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하고 나서 식당으로 들어가니, 오늘은 크리스마스 날 이라 좀 많은 재료를 준비하므로 2시 까지 영업이 가능하겠다고 하면서 39번 번호표를 주면서 한 30분 정도 승용차 내에서 기다리면 순서에 따라 번호를 불려 주겠다고 한다.

차량으로 돌아와서 무료하게 기다리는 것 보다는 식당에서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의 입구 가장자리에 "용산서원(龍山書院)" 을 가르키는 이정표 따라 서원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 용산서원" 을 가르키는 이정표 >

 

서원으로 올라가는 길의 좌측 편에 용산서원의 주인공이 되는 정무공 "최진립(崔震立)" 선생님 숭덕비가 자리하고 있으며, 개울 건너편에는 경주에서 유명한 "수리뫼" 라는 한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 용산서원으로 올라가는 길 왼편에 있는 "최진립" 숭덕비 >

 

< "수리뫼" 한식당을 나타내는 간판 >

 

< 숭덕비 건너편에 있는 "수리뫼" 한식당 전경 >

 

이 숭덕비와 수리뫼 한식당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조그마한 개울의 다리가 놓여 있고, 다리의 건너편으로 고목의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서 있는 마당 뒤편으로 용산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를 거닐고 있는 "용산서원" 전경 > 

 

용산서원은 이곳 경주 출신 최진립 장군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서원으로, 최진립 장군은 1568년에 이곳 경주 현곡면 구미리에서 출생하여 1636년 68세로 순절한 장군이다.

용산서원은 조선 숙종 25년(1699년)에 건립하였는데, 숙종 37년(1711년)에 숭렬사우(崇烈祠宇) 라는 편액을 하사하였으며, 고종 7년(1870년)에 서원을 철거하였다가 1924년에 다시 건립되었다고 한다.

정무공 최진립의 본관은 경주 최씨이며 자는 사건(士建)인데, 임진왜란 때 동생 계종(繼宗)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정유재란 때 "권율(權慄)" 장군을 도와 울산 서생포 전투에서 크게 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선무원종(宣武原從) 2등 공신에 오르고 경원도호부사, 공조참판을 거쳤으며 병자호란 때 용인에서 싸우다가 순절하였는데, 나라에서는 자헌대부, 병조판서를 추증되었으며 청백리로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서원으로 들어가는 외삼문을 지나면 넓은 마당과 함께 유생들이 공부하는 "민고당(敏古堂)" 이라는 교육시설이 자리하고 있으며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한단의 계단 위로 내삼문이 자리하고 있고, 내삼문 뒤편으로 최진립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숭렬사우(崇烈祠宇)" 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용산서원으로 들어가는 "외삼문" > 

 

< 서원의 유생들이 공부하는 "민고당" 건물 >

 

< "숭렬사우" 들어가는 내삼문 >

 

< 최진립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숭렬사우" 건물 > 

 

< 숭렬사우 건물 오른편에 제례 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 >

 

이렇게 서원을 구경하고 35번 도로 변에 있는 용산회식당으로 내려오니 아직 순서가 되지 않아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이내 자리가 마련되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는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 35번 국도 옆에 자리하고 있는 "용산회식당" >

 

용산회식당에는 유일무일하게 8.000원 짜리 횟밥만 주문을 받고 있는데, 점심식사를 하기에 너무나 늦어 배가 너무 고파 꼽배기가 되는 10.000원 짜리 횟밥과 소주 한병을 주문한다.

 

< 용산회식당에서 유일한 음식 메뉴 "횟밥" > 

 

이내 횟밥이 나오면서 먼저 회의 량(量)에 놀램이 발생하고 그 다음으로 비빔밥을 만들어서 먹어보는데, 맛이 또한 너무나 좋아 재차(再次) 놀램이 발생되는 식당이다.

 

< 푸짐한 량으로 나오는 꼽배기 "회" >

 

< 맛 있게 "횟밥" 으로 비비면서 >

 

우리 다음으로 3팀을 더 수용하고 나서 2시 30분 경 식당의 간판을 내리는데, 용산회식당은 아마 이래서 경주에서 유명한 횟밥 식당이 되었나 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