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박물관.

전국 군 단위에서 최초로 개관한 경남 거창군이 보유하고 있는 "거창박물관" 을 돌아보면서.

용암2000 2017. 1. 15. 20:27
2017년 1월 12일. (목요일)

오늘 거창 및 함양 방향에 있는 회사를 방문하고 나서 집으로 되둘아가는 길에 경남 거창군에 있는 거창박물관을 관람하여 보기로 하는데, 박물관 위치는 88올림픽 고속도로에서 가까운 거리이면서 거창대학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나서 박물관으로 들어가 보는데, 본관 건물로 들어가는 몇단의 계단으로 올라가면 입구에 안내원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반갑게 인사를 교환한다.


     < "거창박물관" 본관 >


안내원이 거창박물관을 소개하는 팜플렛 한장을 주면서 거창박물관은 전국 군(郡) 단위에서 최초로 개관한 박물관이라고 설명하므로 인하여, 내가 작년 인접하게 있는 합천박물관을 관람할 때 그곳에 상주하는 안내원이 합천박물관이 전국 면 단위로써 최초로 개관한 박물관이라고 설명하였다고 하니, 거창박물관애 대한 내력을 설명하여 준다.
이곳 거창박물관은 고(故) 최남식 및 김태순 두분의 1983년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 기증과 더불어 거창 군민들의 사랑과 정성으로 1988년 5월 20일 당시 군(郡) 단위 지역에서 최초로 박물관을 건립 함과 동시에 명칭을 "거창유물전시관" 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1988년 8월 3일 준 박물관 제21호로 등록하고, 1992년 12월 21일 박물관 제26호로 등록함과 동시에 1993년 4월 26일 "거창박물관(居昌博物館)" 이라는 명칭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2004년도에 개관한 합천박물관 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거창박물관은 본관이 되는 건물이 2층으로 건립되어 있는데, 1층에는 생활 민속실 및 2층에는 거창역사실로 꾸며져 있으며 부속 건물이 되는 별관과 더불어 야외전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 본관으로 올라가는 "출입문" > 


       < 거창박물관 왼편에 있는 "별관" >


먼저 안내원이 가르켜 주는 화살표 방향으로 관람을 이루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관람의 순서는 2층이 되는 거창역사실을 먼저 관람하고 나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생활민속실로 관람하게 한다.
아울러 거창박물관에는 국보급 문화재는 보유하지 않지만 거창군 금원산 자연휴양림 내에 자리하고 있는 보물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 과 더불어 김정호 선생님이 그린 "대동여지도" 및 "둔마리 벽화고분" 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보기를 권하여 준다.
거창박물관은 밖에서 보면 1층의 건물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건물이 반지하층 건물의 형태가 되어지므로 인하여 2층 전시실로 먼저 들어가서 관람하기 시작하는데, 전시실 초입에 거창의 역사를 설명하는 도표가 그려져 있다.


  < "거창의 역사" 를 설명하고 있는 도표 >


거창은 옛부터 크게 일어날 밝은 곳, 매우 넓은 들, 넓은 벌판, 즉 넓고 큰 밝은 들이란 뜻에서 거열(居烈), 거타(居陀), 아림(娥林)으로 불려져 오다가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처음으로 거창(居昌)이라 불려지고 주변 영역의 분할 및 합병되면서 여러 지명으로 부르다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 "거창의 역사"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내부로 이동하면 초기 거창군의 역사에 있었서 선사시대에서 부터 일찍 삶의 터를 잡은 거창은 초기 가야시대에는 자타국(自他國), 거타(居陀)라고 불리다가 후기가야에 와서는 대가야 연맹체의 일원이 되어진다고 한다.


          < 전략적 요충지가 되어지는 "거창" >


그러므로 이곳에 출토 되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유물은 대가야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소장품과 비슷하게 초기에는 대가야 유물과 동일한 종류의 유물들이 발굴되어지지만, 후기로 가면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과 유사한 형태의 문화재들이 나타나고 있다.


      < 고령의 대가야와 비슷한 "대야리 선사유적지" 모습 >  
  
다음 부스(Booth)로 이동하면 군내 금원산 자연휴양림 내에 있는 보물 제530호가 되는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 에 대한 탁본이 걸려 있는데, 탁본에서 보는 본존불의 높이가 150cm, 대좌의 높이가 65cm이나 되는 삼존불 불상이다.     


          <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 탁본 >
       
이 본존불은 소발의 머리에 커다란 육계가 있고 넓적한 얼굴에 삼각형의 크고 뭉툭한 코, 작은 눈과 입, 납작하고 긴 귀 등이 둔중하고 토속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여기에 반듯한 어깨, 볼륨없이 평평한 가슴, 부자연 스러운 팔, 막대기처럼 밋밋한 다리와 좌우로 벌린 발 등의 신체 표현에서 현저한 형식화 및 도식화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법의의 표현도 통견의 형식적인 U자형 옷주름과 양옆으로 길게 처진 옷자락 등에서 딱딱함을 느낄 수 있고, 아울러 손 모양은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아 엄지와 인지를 맞댄 중생인을 하고 있어 아미타여래상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좌우 협시보살도 본존불과 거의 비슷한 조각기법인데 세장한 신체는 양감이 없고 양옆으로 여러 갈래 뻗은 번잡한 천의 자락,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살짝 잡은 자세 등은 삼국시대 보살상을 연상시키지만 그 보다는 고려시대에 나타나는 장식과 도식화의 결과인 듯 하다.
협시보살은 화불을 새긴 화관을 쓰고 있으며, 보발이 어깨 까지 늘어져 있으면서 광배는 삼존 모두 두광만 있는데, 본존불은 보주형이고 양쪽 협시보살은 원형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이 마애삼존불상은 삼국시대 불상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적인 도식화가 반영된 고려불상으로, 특히 우리나라 석굴사원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되어진다고 기술하고 있다.


        < 거창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 의 안내문 >


그 옆에는 둔마리에서 발굴한 벽화고분의 모형이 만들어져 있으면서 석실 내부가 쌍곽묘가 되어지므로 인하여 2개의 석실로 구별하고 있는데, 각 석실의 벽면에 그려져 있는 벽화의 그림이 너무나 정교하여 감탄사를 발하게 만든다.


   < 둔마리 벽화고분이 발굴되어진 "쌍곽묘" 모형 >


동서(東西) 석실의 각 벽에는 회칠을 한 뒤에 벽화를 그렸는데, 그 내용은 동실(東室)의 동벽에는 천녀상(天女像)과 더불어 주악상(奏樂像) 그리고 남녀가 혼합된 무용도(舞踊圖)가 그려져 있다.
서실(西室)에는 서벽 남반부에만 인물도의 일부가 남아 있는데, 벽화 중 천녀상들은 동실의 주악 천녀상들과 비슷하나 북단의 것은 뚜렷한 수염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남자임이 분명하다고 한다. 
벽화의 색채가 맑고 생기에 차 있으며 불교 요소에 도교 성격이 곁들여 있어 경남지방의 지역적 특색을 살린 것으로 보이고 있으며, 이 벽화고분의 연대는 상감청자가 나온 것으로 보아 12에서 13세기로 추정된다고 한다.


             < "둔마리 벽화고분"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모형으로 만든 석실 옆으로 이동하면 지리학자 고산자 "김정호" 선생님이 1864년에 그린 채색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가 진열하고 있는데, 원본은 사장고에 보관하고 있으면서 이곳에 전시하고 있는 지도는 사본이라고 한다.


       < 거창에서 출품되어진 "대동여지도" >


그 사본 우측면으로 전체 벽면을 이용하여 우리나라 전도를 21첩으로 구성되어진 칼라 채색본 지도가 붙어 있는데, 현존하는 고지도 중에서 가장 과학적이면서 실용적으로 만들어진 대축척의 대동여지도 전도이라 하겠다.


      < 벽면에 붙어 있는 "대동여지도" 전도 >


지도 앞에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진 과정과 더불어 다양한 설명문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지면서 쉽게 볼 수 있도록 터취 스크린이 놓여 있으므로 인하여, 지금 까지 이야기와 문헌을 통하여 공부하였던 대동여지도에 대한 실체를 상세하게 공부하게 만들어 준다.


          < 대동여지도를 그린 고산자 "김정호" 선생님 >


          < 절첩식으로 만들어져 있는 "대동여지도" 설명문 >


       < 대동여지도의 크기를 설명하고 있는 "전자" 책 >


        < "채색본" 으로 인쇄한 대동여지도 >


이 밖에 전시실 곳곳에 선사자료, 가야토기, 고려자기, 조선백자 등 약 1.300여점의 유물과 더불어 6.25 전쟁 및 거창 양민학살 사건 등 거창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상세하게 설명하므로 인하여 많은 불거리를 제공하여 준다.


              < 선사시대에 사용한 "토기 및 돌도끼" >


          < 선사시대에 사용한 "그릇" >


             < "가야시대" 에 사용한 토기와 칼 >


           < "삼국시대" 에 사용한 토기 >


            < "통일신라 및 고려" 시대에 사용한 유물 >


                       < 신비한 빛을 가지고 있는 "고려청자" >


         < 청초함을 나타내고 있는 "이조백자" >


   < 다양한 문양이 그려진 "청화백자" >


< 거창지역에서 발굴한 "부처" >


            < 거창지역에서 발굴한 "금동불상" >


             < 거창지역에서 발굴한 "청동정병" >


       < 격변하는 거창지역 "6.26 전쟁" >


이렇게 2층 관람을 끝내고 나서 계단을 이용하여 1층으로 내려가면 1층에는 옛 선조들이 사용하였던 농기구, 생활용품 등 민속유물과 더불어 의식주에 관련 되어지는 전시품들이 일목요약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거창의 지역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 1층 중앙에 있는 "생활민속실" 전경 >


전시실 중앙의 넓은 광장에는 지역 주민들의 삶을 표현하고 있는 생활민속실이 만들어져 있는데 , 각 전시실에는 밀랍으로 만든 디오라마(Diorama) 형태의 작품들이 현실감 있게 만들어져 있어 매우 유익한 공간이 되어진다,


           < 일상생활을 보여주고 있는 "디오라마" >


            < 여인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 "디오라마" >


이 중앙 전시실 주변으로 지역 주민들이 사용한 생황용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출품되어진 전시품 하나 하나가 우리 조상들이 사용한 용품들이라  향수를 느끼게 만들어 준다.


  < 옛 선조들이 사용한 "다례복" >


          < 지역 주민의 사용한 "의식주" 용품 >


                   < 지역 주민들이 사용한 "농기구" >


        < 지역 주민이 사용한 "운반기구" > 


    < 옛 선비들이 사용한 "책" >


        < 지역 유지들이 기증한 "유물" 전시품 >


건물 밖으로 나오면 박물관 주변으로 야외 석조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특히 송림사지 여래좌상의 불상과 더불어 천덕사지 3층석탑, 지석묘 등 문화재급 전시물이 자리하므로 인하여 많은 볼거리를 만들어 주고 있다.


             < "송림사지 여래좌상" 의 모습 >


             < "천덕사지 3층석탑" 도 구경하고 >


   < 가조면에서 발굴한 "고인돌" >


              < "이형석탑" 도 자리하고 있고 >


< 외롭게 서 있는 "문인상" >


추위로 인하여 넓게 자리하고 있는 야외전시장을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관람을 끝내고 나서, 귀가를 위하여 거창박물관 앞에 주차하고 있는 승용차를 운전하여 88올림픽 고속도로 입구로 달려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