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관람.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에서 출생한 서민의 화가로 대표하는 '박수근 미술관' 돌아보면서.

용암2000 2018. 8. 16. 20:11

둘째날.(화요일 : 7월 31일 오후)

 

2) 박수근 미술관 관람.

오전 두타연의 트레킹 코스를 추진한 과정에서 늦게 까지 거닐다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양구읍 중심지에 있는 한 식당으로 들어가 다소 늦은 점심식사의 시간을 가지고 나서 인접하게 있는 '박수근 미술관(朴壽根 美術館)' 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2002년 10월 25일에 건립한 박수근 미술관은 양구읍 중심지에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에는 다소 많은 승용차가 주차하고 있어 나와 같이 에어콘을 찾아다니는 얌체족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 주차장 가장자리에 있는 '박수근 미술관' 조감도 >

 

박수근 미술관은 200여 평의 생가 터에 원형의 돌담으로 만들어져 있으므로 돌담 따라 반바퀴를 빙돌아서 전면으로 들어가면 다소 넓은 마당과 더블어 테라스 형 정문이 나타나는데, 정문은 밀고 들어가면 입구에 안내 데스크가 자리하고 있다.

 

< 돌담으로 되어있는 '미술관' 외관 >

 

< 돌담을 돌아서 가면 만나는 '정문' >

 

안내 데스크를 지키고 있는 안내원에게 가서 팜플릿 한장을 얻고 나서 홀의 왼편으로 마련되어 있는 영상관으로 들어가 보는데, 영상관에는 박수근 선생님의 일대기와 더불어 미술의 세계를 연속적으로 상영하고 있다.

 

< 영상관 입구에 있는 '조형물' >

 

박수근 선생님은 1914년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에 태어났지만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 밖에 다닐 수 없었고, 6.25 동란 중 월남한 그는 부두 노동자 및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 그림을 그려주는 일 따위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 힘들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그는 삶에 대하여 힘겨움을 탓하지 않고, 그렇게 고단한 삶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의 무던하였던 마음과 더불어 현실을 소재로 삼으면서 많은 작품을 그렸던 '서민의 화가' 로 요약이 되어진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절구질하는 여인,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 길가의 행상들, 아기를 업은 소녀, 할아버지와 손자, 김장철, 마른가지의 고목, 빨래터 등 그는 예술에 대하여 거의 언급한 일이 없고 또 그럴 처지도 아니라고 한다.

단지 그의 부인 김복순 여사가 쓴 '아내의 일기' 를 정독하여 보면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그려야 한다는 극히 평범한 예술관(藝術觀)을 지니고 있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화가의 이러한 마음은 곧 그의 예술적 의지가 되어 서민의 모습을 단순히 인상적으로 담아 내는 것이 아니라, 전문 용어로 말해서 철저한 평면화 작업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주관적 감정으로 파악한 대상으로서의 서민 모습이 아니라 모든 개인의 감정에서 독립된 완전한 객체로서의 서민이고, 거기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론적 사실주의' 를 지향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박수근의 그림은 부동의 기념비적 형식이 되었으며 유럽 중세의 기독교 이론과 비슷한 성서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화강암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처럼 움직일 수 없는 뜻과 따뜻한 정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고 한다.

그리하여 박수근은 가장 서민적이면서 가장 거룩한 세계를 보여준 화가가 되었고, 20세기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동양화가(東洋畵家)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박수근의 그림은 초기 몇점 외에는 젊은 시절의 그림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의 초기 작품 수백점이 부인 김복순 여사가 중동부 전선 DMZ 일대를 지내다가 남편의 분신이던 그림들을 항아리에 넣어 묻었다고 한다.

지금 박수근의 그림 값은 호당 수십억원대를 호가하지만 초기 즐겨 그렀던 2-30호의 소품들이라도 20-30억원 짜리가 되어지므로 인하여, 만약 항아리가 온전히 남아 있다면 그건 수천억원 짜리 보물단지가 되어지므로 인하여 하루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간단하게 영화를 감상하고 나서 지하에 있는 전시실로 내려가 보는데, 전시실로 내려가는 긴 복도에는 박수근 선생님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으면 복도의 끝지점 부터 전시실을 만나게 되어진다.

 

< 전시실로 내려가는 벽면에 있는 '박수근' 일대기 >

 

전시실에는 8개의 섹션(Section)으로 나누어 지면서 제1실에는 박수근 선생님의 작품을 만나게 되어지는데,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되는 '앉아있는 두 남자' 를 비롯한 유화 3점, 나무와 두 여인, 탑돌이 등의 판화, 수채화, 그림 물감, 그리고 수십 점의 드로잉 작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 전시실 입구에 붙어 있는 '박수근' 어록 >

 

< '박수근' 와 함께 하는 사진 >

 

< 박수근 선생님의 대표작 '황소' >

 

< 박수근의 작품 '꽃' >

 

<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 >

 

< 박수근의 그림 '사람과 아이들' >

 

<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관광객' >

 

다른 섹션에는 협찬을 하여 주신 이중섭, 장옥진, 윤중식, 이응로, 천경자, 김환기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러므로 한 미술관에서 다양한 미술을 감삼할 수 있지만 워낙 미술에 대한 무뢰한이 되어지므로 인하여 뒤 사람에게 민폐(民弊)만 끼치는 꼴이 되어진다.

 

< 협찬한 작가들의 '아카이브' 제목 >

 

< '협찬자' 의 그림 >

 

< '천경자' 선생님의 작품 >

 

<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어린이' >

 

< 박수근 선생님의 '무덤' 을 가르키는 이정표 >

 

< 미술 그림을 체험하는 '파빌리온' >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관람을 끝내고 나서 미술관의 전면이 되는 동산 위에 박수근 선생님의 무덤이 있다는 이졍표가 있지만. 이러한 무더위 속에서 그곳 까지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아 미술관을 떠나기로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