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기계과 행사.(제주도)

3일차 제주도 여행은 서귀포 서쪽 지역에 있는 '수월봉' 을 포함하는 다수의 관광지 탐방.(4)

용암2000 2018. 11. 17. 20:31

2018년 11월 9일. (세째날 : 금요일 오후)

 

6. 수월봉의 해안절경 탐방.

 

저지오름 입구에 주차하고 있는 승용차를 운전하여 인접하게 있는 수월봉(水月峰)으로 달려가기로 하는데, 수월봉은 작년(2017년) 제주도를 방문하여 한라산을 종주하고 나서 마지막 날(4월 21일) 올랐던 산이다.

 

저지오름에서 10분 정도 달려가면 수월봉에 도착이 되는데, 해발 77m가 되는 수월봉 정상에는 고산 기상대가 자리하므로 봉우리 정상까지 차량이 올라가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산행이 필요 없는 봉우리가 된다.

 

< 수월봉 정상 언저리에 있는 '고산 기상대' >

 

작년에 찾았을 때 수월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제주도 서쪽 방향의 바다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다시 찾고 싶은 마음도 생겼지만,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월봉 뒤편으로 펼쳐지고 있는 해안 절경의 지질공원을 보지 못하고 떠난 것이 애석하여 다시 찾고 싶은 산이다.

동문을 위하여 나는 승용차를 수월봉 정상 언저리에 있는 주차장 까지 올라가 주차 시키고 산의 정상에 있는 정자로 올라가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여 보는데, 작년과 계절의 차이로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 수월봉 정상에 있는 '정자' >

 

 

정자 앞에 설치되어 있는 망원경을 통하여 눈 앞에 머물고 있는 차귀도와 누운섬 및 당산봉 등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또한 다른 각도에 있는 마라도 및 가파도 등의 섬도 살펴보는 여유의 시간을 가져본다.

 

< 수월봉 정상에서 내려보는 '차귀도와 누운섬' >

 

< 확대하여 보는 '차귀도' >

 

 

수월봉의 유래는 이미 나의 블로그에 기술하므로 더 응급하지 않고, 작년과 다른 풍경을 하고 있는 사진 몇 장을 찍고 승용차를 몰고 수월봉 입구로 내려가 도로변에 주차시키고 해안선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 수월봉 입구에 있는 '조형물' >

 

제주도는 2010년 10월 1일 국내에서 최초로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제를 하면서 그 가운데 열두 곳의 핵심 지질 명소를 지정하는데, 중앙에 있는 한라산과 더불어 동쪽은 성산일출봉, 만장굴, 우도 등이 자리하고 있다.

 

< 제주도 '지질공원' 을 설명하는 안내문 >

 

동북쪽으로는 선흘 곶자왈이 있고, 서쪽은 수월봉과 비양도가 핵심 지질 명소가 되고 남쪽에는 천지연폭포와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를 비롯하여 서귀포층,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이 있다.

이 열두 곳의 지질공원 중에서 수월봉 일대의 지질이 가장 눈길을 끌고 있는데, 수월봉은 화산학 백과사전(Encyclopedia of Volcanoes)에도 실릴 만큼 중요한 곳이다.

수월봉 입구에서 천천히 걸어 엉알 해안으로 내려가 보는데, 엉알이란 말은 제주어로 벼랑, 절벽을 뜻하는 ‘엉’ 과 아래쪽을 가리키는 ‘알’ 이 합쳐진 말로 ‘벼랑아래의 길’ 이란 뜻이다.

 

< 해안가에서 바라보는 '수월봉' >

 

해안가 절벽에는 화산 쇄설암의 퇴적 구조가 촘촘하고, 해안 절벽에는 화산재로 그린 한편의 그림이 펼쳐지고 있으면서 듬성듬성 박힌 돌들이 화산학 연구의 교과서이라 하겠다. 

 

< 화산 '쇄설암' 의 퇴적 구조 >

 

< 수월봉 절벽에 박힌 '돌' >

 

수월봉에도 화산이 분출하여 분화구가 생성하고 있는데, 수월봉 본화구는 수월봉과 차귀도 사이에 있는 바다 속에서 분출하므로 인하여 눈으로 분화구를 볼 수 없다.

 

< 수월봉과 차귀도 바다 사이에서 분출한 '분화구' 중심지 >

 

 

수월봉 앞에 있는 차귀도는 제주도의 여러 섬 중에서도 그 자태가 매우 빼어난데, 해안길에서 손에 잡힐 듯 바다에 잠긴 모습이 주는 당당 함이 보는 이의 넋을 놓게 만든다.

옛날 '호종단' 이라는 중국사람이 차귀도가 장차 중국에 대항 할 형상을 지녔다고 하여 이 섬의 지맥과 수맥을 끊어 놓고 돌아갈려 하는데, 갑자기 한라산의 산신이 날카로운 매가 되어 날아와 이들이 탄 배를 침몰시켰다고 해서 차귀도라는 이름으로 전해 오고 있다.
본섬은 죽도와 오돌 지실섬으로 이루어진 차귀도는 섬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해질 무렵 저녁 노을이 지는 순간 바다와 섬과 석양이 연출하는 경관이 더욱 더 유명하고, 그 장엄 함을 구경하기 위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은 곳이다.

 

< 엉알 해변에서 바라보는 '차귀도' >

 

해안선 따라 북쪽 방향으로 올라가면 화산석 곳곳에서 샘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이곳 샘물은 이미 나의 블로그에 기록한 것과 같이 녹고물의 눈물이 되어지는 것 같다.

 

< 바위 틈에 흘러내리는 '녹고물' >

 

해안 길을 걷다보면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노역으로 만들어진 갱도진지를 볼 수 있는데, 태평양전쟁 때 미군의 상륙에 대비해 갱도에서 바다로 투입 할 수 있게 자살 특공대 보트와 탄약을 보관하였던 장소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 '갱도진지'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해안선 따라 한참을 걸어가면 바다가에 아름다운 휴식처가 자리하고 있는데, 휴식처에서 약간의 여가의 시간을 보내다가 다음 여행을 위하여 승용차가 주자하고 있는 도로변으로 돌아간다. 

 

 

7. 성 김대건 신부의 제주표착 기념관 방문.

수월봉을 떠난 일행은 해안선 따라 만들어져 있는 도로 따라 북쭉으로 올라가면 차귀도 포구가 나타나면서 이곳에서 부터 당산봉을 돌라서 도로가 내륙으로 이어지는데, 내륙으로 한참 달려가면 도로의 가장자리에 성 김대건 신부의 제주 표착(漂着) 기념관이 있다는 이정표 따라 다시 소로의 해안가로 들어간다.

해안에 도착하자 마자 구릉지 위에 성당 건물이 보이므로 해안가에 승용차를 두고 천천히 걸어서 성당으로 들어가 보는데, 입구에 김대건 신부의 석상이 서 있고 그 뒤편으로 성당과 기념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성당 입구에 서 있는 '김대건' 신부 석상 >

 

< 김대건 신부 석상 뒤편 '성당과 기념관' 이 함께 하고 았는 전경 >

  

성당 앞에는 김대건 신부가 이곳 제주도에 표착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데,  한국 최초의 사제이면서 순교자가 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조선 교구 제3대 교구장으로 임명이 되어진 페레올 주교로 부터 사제 서품을 받는다.

 

< '성당' 의 설립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그러고 나서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등 일행 13명과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하는 도중 폭풍을 만나는데, 바다에서 28일 간 표류하다가 이곳 제주도 용수리 해안에 표착한다.

이곳에서 김대건 신부는 죽을 위험에서 구하여 주신 하나님의 섭리와 성모님의 도우심에 감사하면서 고국 땅에서 감격의 첫 미사를 올렸는데, 천주교 제주교구는 김대건 신부의 제주 표착을 뜻 깊게 생각하여 여기에 성당과 함께 기념관을 세웠다.

성당의 정면은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았던 중국의 김가항 성당의 정면 모습과 같으며 지붕은 파도와 라파엘호 형상을 하고 있으며, 건물 왼편에 있는 등대 모양의 종탑은 어둠에 빛을 비추는 교회와 김대건 신부를 상징화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 높은 '종탑' 을 가지고 있는 성당 전경 >

 

먼저 왼편에 있는 성당 건물로 들어가 보는데, 내부에는 신도들이 예배를 볼 수 있도록 양쪽으로 의자가 놓여 있고 단상의 앞에는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 함께 단상의 높은 곳에 십자가에 메달려 있는 예수 상이 자리하고 있다.

 

< 성당 전면의 있는 '예수' 상 >

 

성당의 창문이 되는 그라스에는 아름다운 색으로 채색이 되어져 있는데, 김대건 신부 일행이 풍랑을 헤치면서 제주도에 표착하는 과정을 일목요약하게 그라스에 표현하고 있다.

 

< 창문 그라스에 그려져 있는 '김대건' 신부의 표착기 >

 

오른편에 있는 기념관으로 들어가 보는데, 1층에는 휴게실과 함께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으로 꾸며져 있으며 2층으로 올라가면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전시품을 진열하고 있다.

 

< 성당 오른편에 있는 '기념관' >

 

< '기념품' 을 판매하는 상점 >

 

벽면 따라 김대건 신부의 역사와 더불어 한국에서 천주교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설명하고, 전시실 중앙에는 풍랑으로 배가 표착하는 과정을 디오라마(Diorama)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 '김대건' 신부의 항해길 >

 

< 풍랑을 꺽고 있는 '라파엘호' 디오라마 >

 

< 제주의' 천주교' 변천사 >

 

< 김대건' 신부의 흉상 >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면 눈 앞에는 차귀도와 함께 아름다운 해안 풍경이 펼쳐지고 있고, 발 아래에는 김대건 신부 일행이 타고온 라파엘호 목선을 재현하여 놓고 있다.

 

< 옥상에서 바라보는 '차귀도' 해안 >

 

< 김대건 신부 일행이 타고온 '라파엘호' >

 

< 성당 뒤편 바다가에 있는 '풍력발전기' >

 

8. 곽지해수욕장을 돌아보면서.

김대건 신부의 제주도 표착 기념관을 나와 다시 해안선 따라 북쪽으로 운전하여 가다 보면 바다 속에 수 많은 풍력발전기 군락지를 만나는데, 거대한 풍차가 돌아가는 회전 날개를 구경하면서 북상하다가 곽지해수욕장(郭支海水浴場))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해수욕장은 여름철에 찾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이곳 곽지해수욕장에서는 해변 가장자리로 솟아오르는 과물 노천탕이 자리하고 있는데, 계절을 무관하게 방문하여 보기로 한다.

 

< 곽지해수욕장 뒤편에 있는 '카페' >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하고 나서 해안가로 나아가면 넓은 백사장을 품고 있는 해수욕장을 만나는데, 곽지해수욕장의 백사장 길이는 약 350m에 너비 70m로써 평균 수심은 1.5m 정도의 매우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된다.

 

< 넓은 백사장을 가지고 있는 '곽지해수욕장' >

 

해수욕장 입구에는 돌 담으로 구획하고 있는 과물 노천탕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노천탕 입구에 남탕과 여탕을 구별하는 입구로 들어가 먼저 남탕으로 들어가 보는데, 탕 내에는 돌로써 층계를 만들고 중앙에 물이 솟아 나고 있다.

 

< '과물 노천탕' 으로 들어가는 입구 >

 

< 왼편에 있는 '남탕' >

 

인접하게 있는 여탕도 살짝 돌아보기로 하는데, 여탕은 남탕보다 더 잘 만들어져 있으면서 축대 전면에는 차가운 용천수가 솟아나는 샘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수량이 어마하게 많아 보인다.

 

< 오른편에 있는 '여탕 및 샘' >

 

노천탕 뒤편으로 나아가면 여탕과 남탕에서 흘려나오는 물이 합수(合水)하여 이내 바다로 들어가는데, 여름철 해수욕을 하고 나서 몸을 씻기에 안성맞춤의 탕이 되어지겠다.

노천탕 옆에는 물통이 되는 허벅을 지고 있는 여인의 돌하루방 몇 기가 자리하고 있는데, 옛날 수도물이 없을 때 인근 주민 모두가 이곳의 물을 길려 식수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 '허벅' 을 지고 있는 여인의 돌하루방 >

 

9. 부림온천에서의 온천욕.

곽지해수욕장을 벗어난 나는 일행 중 한명의 고향 친구가 운영하고 있는 부림온천으로 운전하여 가는데, 부림온천은 제주신도시 가장자리에 있으면서 제주시가지에서 유일한 온천이라고 한다.

한라수목원과 인접하게 자리하고 있는 부림온천은 대지 5.000여 평에 2.500여 평의 건평을 가진 종합 레저타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 온천은 지하 1.000m에서 뽑아내는 중탄산 온천수이라고 한다.  

 

< 넓은 부지 위에 자리하고 있는 '부림온천' >

 

동문의 친구가 잠시 건설 현장에서 업무를 마무리 하여야 하기에 먼저 도착하면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온천욕을 즐기고 있으라고 하는데, 지하로 내려가니 벌써 회장의 지시로 모든 것이 무료가 된다.

한 시간 정도 온천욕을 즐기면서 그 동안 누적되어진 피로를 날려보내고 있으니 회장이 도착하므로 인접하게 있는 회집으로 안내되어 저녁식사 시간을 가지는데, 현재 온천 가까이 수십채 타운 하우스형 맨션을 건립하므로 다소 바쁜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 제주에서 큰 사업을 하고 있는 동문의 '고향 친구' >

 

현재 제주도에는 중국 단체 관광객이 찾지 않아 경기가 많이 위축 된다는 내용과 함께 지금 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는데, 나의 생활과는 별천지가 된다.

즐거운 만찬을 끝내고 아직 숙소가 미정이라고 하니 회장이 몇 곳의 전화 통화로 부림온천 인접 지역에 있는 호텔을 바로 알선하여 주므로, 안락한 잠자리가 된다. -세째날 오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