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 문화와 산행.

경상북도 성주군 출신으로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중 한명이 되는 '심산기념관' 을 돌아보고,

용암2000 2019. 4. 6. 18:40

2019년 4월 5일.(금요일)

 

내가 성주군으로 귀촌한지가 벌써 어인 4년차가 되면서 때때로 성주군청의 업무 또는 인접지역 일로 몇 번 방문하였지만, 군청 바로 왼편 옆으로 심산 '김창숙(金昌淑)'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는 '심산기념관(心山記念館)' 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 인지하게 되었다.

 

< 성주군의 심장이 되는 '성주군청' >

 

성주군청에서 업무를 보고 고향 용암면으로 가기 위해서 가끔씩 심산기념관 앞으로 지나가지만, 건물의 정문 입구에는 '성주청년유도회(星州靑年儒道會)' 이라는 간판 만 자리하면서 일반적으로 대문이 잠겨져 있어 크게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지나가는 길이다.

금일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고향에서 대구로 나오는 길에 다소 돌아서 가지만 심산기념관 앞으로 지나가기로 하는데, 마침 문이 열려 있어 대문 앞에 승용차를 세우고 나서 한번 관람하여 보는 기회를 잡아본다.

 

< 대문에 오직 '대한청년유도회' 간판 만 붙어있는 심산기념관 >

 

문제는 정문 입구에 대구 계명대학교 '이윤갑' 교수가 인문 강좌를 개최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자리하고 있어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내부로 들어가 보기로 하는데, 약 10명 정도의 학생을 앞에 두고 흑판을 상대로 강연에 열중하고 있다.

 

< 강연을 열중하고 있는 '이윤갑 교수' >

 

강연 시작 시간보다 너무나 늦게 도착하므로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제일 뒤편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아 강연에 심취하여 보는데, 강연의 내용은 '성주의 파리장서운동과 3.1 운동' 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 무료로 제공하여 주는 '논문집' >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얼떨떨한 마음으로 강연에 심취하고 있는데, 내용의 요지는 성주군에서 배출되어진 심산선생님의 일대기와 함께 그가 활동한 독립운동의 실화를 이야기하므로 다소 강의 내용을 집약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2012년 3월 4일 성주군 대가면에 있는 독용산성 및 칠봉리 사도실 마을에 있는 심산의 생가(生家)를 방문한 경험이 있어 심산에 대하여 쥐꼬리 만큼 알고 있었는데, 심산은 한국 유림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이면서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한 분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 심산 '김창숙' 생가로 들어가는 대문 : 2012년 3월 4일 촬영 >

 

< 종부 혼자 기거하고 있는 '안채' : 2012년 3월 4일 촬영 >

 

< 돌담 밖에서 바라보는 '안채와 사랑채' : 2012년 3월 4일 촬영 >

 

더불어 2017년 성주 생명문화 축제에서 한쪽 코너에 성주를 대표하는 몇 명의 유림과 함께 심산선생님의 업적을 기리는 부스(Booth)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함께 구경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문 중 한명이 심산선생님의 후손으로써 현재 문중 심산추진위원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 '심산과 한강' 선생님을 홍보하고 있는 부스 : 2017년 5월 18일 촬영 >

 

우리 고향 성주에는 근세(近世)에 와서 3명의 유명한 인물이 배출이 되었다고 자부하는데, 첫째로는 '심산(心山)' 선생님이 되고 두번째로는 불멸의 노래가수 '백년설(본명 : 이창민)' 선생님이고, 마지막으로 부총리로써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필하면서 아웅산 테러에서 희생을 당한 청사 '서석준(徐錫俊)' 선생님이라 하겠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심산선생님의 업적은 생가의 방문 또는 인터넷을 통하여 일부 알게 되었고, 또한 3월 달 '도울' 선생님의 3.1절 기념 특별방송의 내용 또는 친구와의 대화를 통하여 어느 정도 심산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 계명대학교 이윤갑 교수의 강연과 더불어 배포한 책자를 읽어보고 심산선생님에 대하여 세부적인 내용까지 심취하게 만들어 주시는데. 교수는 칠곡군 출신이지만 이곳 성주군에 관련되는 많은 논문을 발표한 제목을 보면서 무한한 감사를 가지면서 기념관 주변을 한번 돌아보기로 한다.

 

< 강의가 끝나지만 단지 몇명이 참석한 '교육장' 내부 >

 

일반적으로 기념관이라고 하면 적어도 기념관 내부에는 업적을 기리는 유품이나 유물 또는 저서 및 팜플릿을 비치하는 것이 상식이고, 또한 심산이 어떠한 인물인가를 관람객에게 홍보하는 것이 기념관의 건립 취지가 아니겠는가?

정문의 문패와 다르게 2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기념관 건물의 처마 밑에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쓴 '심산기념관(心山記念館)' 이라는 현판 만 붙어있고, 전시장 내부에는 빛이 바래 불 수 없는 현황판 2개만 붙어있는 것이 전부가 되어 할 말을 잊게 만든다.

 

< 2층의 처마에 붙어있는 '심산기념관' 의 현판 >

 

< 강의실 뒤편 벽면에 붙어있는  빛 바랜 '현황판' >

 

마당으로 내려서면 왼편의 구석에는 기념관을 건립한 취지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이 자리하고 있고, 마당의 오른편으로는 사적비와 함께 심산선생님의 약력을 소개하고 있는 연역과 기념관 설명문이 자리하고 있다.

 

< 마당의 왼편 코너에 있는 '기념관 건립' 취지의 안내문 >

 

< 대문의 오른편에 있는 '사적비' >

 

< 사적비 뒤편에 있는 '연역' >

 

< 연역의 뒤편 일단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심산기념관' 설명문 >

 

이것이 어찌 기념관이라고 성주군 문화관광과에서는 홍보를 하고 있고, 이것을 보고 있는 의성김씨 중 심산의 후손은 얼마나 먹고 살기가 힘이 들어서 그런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으면서 방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그래도 성주군에서 한건 했다고 홍보하고 있는 '문화관광과' >

 

머리가 나쁜 나의 생각으로 유추하여 보니 결론은 뻔 한 것 같은데, 성주군 문화관광과에서는 문중으로 넘기고 문중은 성주군을 탓 하면서 상호 탁구공이나 치면서 작난하는 선수인 것 같아 양쪽은 올림픽에 출전하면 현정화 보다 한 수 앞선 기량으로 금메달을 획득할 것은 자명하여 진다.

앞으로 매주 금요일 마다 8회에 걸쳐 계명대학교 교수들이 연속하여 릴레이 강좌가 있다고 하는데, 이곳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명색이 심산기념관에서 개최를 하지만 기념관에서는 무엇을 보여 주겠다는 것 인가?

아무리 강의 내용이 되는 소프트웨어(Software) 측면이 우수하다고 하여도, 교육장이 되는 하드웨어(Hardware) 측면에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기념관은 성주군에서는 그렇게도 없다는 말인가?

나는 이러한 군(郡)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공부를 하였고 사회로 진출하여 살다가 사업으로 몽땅 망하여 빈손으로 다시 고향으로 왔는데, 그래도 성주가 자랑하고 있는 문화유산이나 한번 더듬어 보자는 심정으로 심산기념관을 찾았지만 정말 실망을 안고 간다.

대구로 나오면서 심산기념관 현판이나 때 내려 빈손으로 귀촌한 나에게 주면 나의 냉방을 따뜻하게 만드는데 불쏘시개로 사용하였으면 좋겠다는 나의 아둔한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하게 만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