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고궁 및 종묘.

조선왕조의 대명사이면서 서울의 대표적 관광지가 되는 '경복궁' 의 구경.(3)

용암2000 2025. 12. 21. 18:56

2025년 12월 12-18일.(6박7일)

2. 둘째날 여정 : 12월 14일.(일요일)

3) 경복궁을 다시 구경하면서.

광화문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을 관람한 우리부부는 고궁박물관 앞에 자리하고 있는 '경복궁(京福宮)' 을 구경하기로 하는데, 나는 2016년 3월 1일 대학교 동문과 함께 경복궁을 구경한 경험이 있는 궁궐이다.

< 국립고궁박물관 앞에서 바라보는 '경복궁' 전경 >

광화문 뒤편으로 펼쳐지고 있는 넓은 광장 오른편 구석에 매표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일반인 입장료는 3.000원을 징수하고 있지만 경로(敬老) 또는 한국의 전통의상이 되는 한복(韓服)을 입고 있는 관광객에게는 무료 입장을 시켜준다.

< 광화문 뒤편으로 펼쳐지고 있는 '광장' >

< 공짜 입장이 가능한 '한복' 부대 >

그래서 우리부부는 매표소로 들어가 무료 입장권을 발권하여 경복궁의 첫번째 관문이 되는 홍례문(興禮門) 입구에서 검표를 확인받고 나서 경복궁으로 들어가는데, 근정문 입구에 경복궁 유래가 기술되어 있다.

< 경복궁의 첫번째 관문이 되는 '홍례문' >

중국의 자랑이면서 황제가 살고 있는 자금성(紫禁城)은 허허벌판 속에서 성곽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인공의 정원을 꾸미고 나서 5문 3조의 황궁을 건축하였지만, 조선의 왕이 살고 있는 경복궁은 인왕산과 북악산이라는 자연을 정원으로 하여 3문 3조의 왕궁을 건축하였다.

< '3문 3조' 로 만들어져 있는 경복궁의 조감도 >

3문 3조에서 3문은 궁궐의 밖에서 왕이 집무를 보는 메인(Main) 건물까지 들어가는 3개의 문으로 경복궁에서는 첫번째가 흥례문(興禮門)이고 두번째가 근정문(勤政門) 및 마지막으로 사정문(思政門)이라 하겠다.

3조는 먼저 외조(外朝)로써 외조는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고 문무백관이 조회하는 근정전 권역, 두번째는 치조(治朝)로써 치조는 왕이 정무를 보는 사정전 권역, 세번째 연조(燕朝)는 흔히 침조(寢朝)이라고도 하면서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강녕전과 교태전 권역을 말한다.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진 궁궐에서 중국 자금성은 24만평 부지를 가지지만 경복궁은 14만평 부지를 가져 규모에서 자금성의 60% 밖에 되지 않지만, 축성 년도에서 자금성은 1420년에 완공하였고 경복궁은 1395년에 완공하므로 경복궁이 자금성 보다 25년이나 먼저 축성된 궁궐이다.

오늘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경복궁에서 두번째 문이 되는 근정문(勤政門) 앞으로 전진하여 보는데, 경복궁은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왕이 개성 수창궁(壽昌宮)에서 도읍을 옮기기 위하여 당시 풍수의 대가로 칭하는 '권중화(權仲和)' 에게 도읍지를 선정하라는 명을 내리므로 권중화 선생님은 대전 인근에 있는 계룡산이 최고의 길지(吉地)이라고 추천한다.

태조는 '무학대사(無學大師)' 와 지관에게 직접 명을 내려 계룡산의 풍수를 확인하고 나서 그곳에 새로운 도읍지를 선정하여 공사를 시작하게 하였으나, 공사 중 '하륜(河崙)' 선생님이 계룡산으로 신도(新都)를 옮기는 것이 부당하다는 상소문을 올린다.

이에 태조는 권중화 선생님과 삼봉 '정도전(鄭道傳)' 을 불러 하륜 선생님이 제기하였던 문제점을 하나 하나 검토하면서 뜻을 받아 들이고, 공사를 중단 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신도 후보지를 다시 선정하게 하므로 무학대사가 추천하는 현재의 한양 자리로 변경한다.

문제는 이곳 한양의 경복궁 자리에서도 궁궐의 방향에서 무학대사는 인왕산(仁王山)을 주산(主山)으로 하는 동남향을 주장하였고, 정도전은 북악산(北岳山)을 주산으로 하는 남향을 주장하므로 상반되는 의견이 발생하게 된다.

여기에서 무학대사는 남향에 대한 궁궐의 문제점을 도출하면서 이야기 하였지만, 막강한 권력과 칼자루를 휘두르고 있는 정도전 의견에 따라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는 남향의 궁궐로 축성하므로 오늘의 방향으로 선정하여졌다.

궁궐을 완성시킨 정도전은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의 군사에서 죽음을 당하여 천수를 누리지 못하였지만, 반대로 무학대사는 천수를 누리므로 인하여 어느 분이 풍수의 상수(上手)가 되는지 아직도 판단이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어찌하던 정도전은 태조 3년(1394년) 9월에 신도읍지 마스터 플랜트를 3개월 만에 완성하고 12월 4일 개토제(開土祭)를 올리고 나서 공사를 시작하였고, 이듬해가 되는 1395년 9월 29일 이렇게 방대한 왕궁은 불과 10개월 만에 완성하여 그 해 11월 29일 부터 천도가 시작되었다.

< '경복궁' 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흥례문에서 근정문으로 들어가는 중간지점에 맑은 물이 흘러내리게 하는 조그마한 '금천(禁川)' 이라는 개울을 만들도록 하였는데, 개울 위로 금천교(禁川橋)라는 다리가 놓여 있으면서 금천교의 다른 이름을 '영제교(永齊橋)' 이라고도 한다.

< 홍레문을 지나면 만나는 '금천교' >

영제교 돌다리 양 옆으로 호안석축(護岸石築)에는 물길을 뚫어져라 내려보는 돌짐승 4마리가 있는데, 이 돌짐승 이름은 '천록(天祿)' 이라고 하면서 천록은 전설 속의 신령스러운 짐승으로 '왕의 밝은 은혜가 아래로 두루 미치면 나타난다' 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짐승이다.

< 금천교 왼편을 지키고 있는 '천록' >

< 금천교 오른편을 지키고 있는 '천록' >

금천교를 지나면 3문의 두번째 문이 되는 '근정문(勤政門)' 에 이르는데, 근정문 뒤편으로 다시 넓은 마당이 펼쳐지는 끝지점에 2층의 국보 제223호 '근정전(勤政殿)' 이라는 경복궁의 중심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여기에서 부터 3문 3조 중 1조가 되는 외조(外朝)의 영역이라 하겠다.

< 경복궁의 두번째 관문이 되는 '근정문' >

근정전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큰 목조건물이 되어지는데, 근정전에서는 임진왜란 이전의 여러 왕이 되는 정종, 세종, 단종, 세조, 성종, 중종, 명종 등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가졌다고 한다.

근정전 건물은 경회루 또는 종묘의 정전이 비슷한 평수를 가지는 건물이지만, 근정전에는 높은 월대(月臺) 위에 훨칠한 중층(重層)으로 건축되므로 인하여 외관상으로도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물이다.

근정전 건물 주변으로 회랑(回廊)이라는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넓은 마당 중앙에서 약간 북쪽으로 2단의 월대를 높게 쌓고 그 위에 지은 정면 5칸에 측면 5칸의 중층 건물로 기둥의 처마에는 다포식(多包式)이면서 팔작지붕으로 건축되어 있다.

< 국보 제223호 '근정전(勤政殿)' 전경 >

< 근정전 앞 화재 예방용으로 비치하고 있는 '드므' >

< 근정전 앞에서 바라보는 '광장' 의 전경 >

근정전 앞에 있는 넓은 마당에는 회랑으로 둘려 있으며 바닥에는 조각보를 이은 듯한 박석(薄石)이 기하학적 무늬의 형상으로 깔려 있고, 근정문에서 근정전의 월대 까지 어도(御道)의 길이 만들어져 있으면서 길의 옆 좌우에는 문관과 무관의 신분에 따라 자리하는 아홉쌍의 '품계석(品階石)' 이 서 있다.

< 근정전 까지 이어지는 '어도' 의 길 >

< 근정전 앞 좌우에 만들어져 있는 '품계석' >

< 근정전 앞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회랑' >

< 근정전 앞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회랑' >

기학적 무늬로 깔려 있는 박석은 강력한 햇빛이 비치는 여름철에 난반사를 방지하므로 눈 부심을 방지하고, 아울러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가 박석과 박석 사이로 긴 물길을 형성하면서 흘려가므로 불어나는 물이 홍수가 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길이 된다.

여기에서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유홍준' 선생님의 저서(著書) '나의 문화유산 탑사기' 에서 하루 종일 이곳 박석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데, 그는 그의 책에서 우리 선조들의 과학적 지혜가 숨어있는 마당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 박석을 연구하고 있는 '관광객' >

박석 마당의 중앙으로 이어지는 어도(御道) 끝지점에 있는 근정전(勤政殿)은 왕의 즉위식과 더불어 문무백관의 조하(朝賀)를 비롯한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거행하고, 또한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정전(政殿)이자 법전(法殿)이 된다.

< '근정전' 내부의 전경 >

< '근정전'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어좌 >

근정전 건물 외곽은 중층이지만 내부는 층의 구분 없이 전체가 통 칸으로 트여 있어 매우 넓은 공간을 간직한 건물인데, 중앙의 뒤면으로 어좌가 만들어져 있고 그 뒤편에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 의 병풍이 놓여있다.

< '통 칸' 으로 이루어져 있는 건물의 내부 >

< 어좌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일월오악도' >

아울러 건물 중앙의 천장에는 절집에서 부처님을 모시는 자리 위의 닫집 처럼 보개를 마련해 구름 무늬를 새겼고, 발톱이 7개가 되는 '칠조룡(七爪龍)' 두마리가 상호 엉켜져 있다.

< 천정에 조각이 되어져 있는 '칠조룡' >

근정전 뒤편으로 돌아가면 또 다른 구획이 되는 3문 3조 중 2조가 되는 치조(治朝) 영역으로 들어가는 사정문(思政門)이 자리하고 있는데, 사정문을 통과하면 왕이 신하와 함께 일상적인 정사를 논하는 보물 제1759호 '사정전(思政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근정전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사정문' >

사정전도 일단의 축대 위로 정면 5칸에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인데, 사정전 건물은 열다섯 칸 규모의 건물이 되지만 기둥과 기둥 사이가 넓고 건물 중간 중간에 있어야 할 고주(高柱)를 생략하면서 천장이 아주 높고 바닥 전체에 마루가 깔려 있어 공간감이 크면서 근정전과 같이 매우 광대함을 느끼게 한다.

< 치조의 영역이 되는 '사정전' >

이곳도 임금의 자리는 한단 올린 어탑(御榻) 위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그 어탑 뒤편으로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 가 자리하고 있는데, 근정전에 있는 일월오악도 및 이곳 일월곤륜도의 진품은 오늘 먼저 관람한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하고 있어 관람의 진가를 알게하여 준다.

< 사정전 내에 자리하고 있는 '일월곤륜도' >

사정전 오른편에는 만춘전(萬春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왼편에는 천추전(千秋殿) 건물이 함께 하고 있는데, 이곳 2개의 건물에는 사정전과 달리 온돌이 깔려 있어 왕이 휴식도 취하면서 신하와 함께 정무를 나누는 부속 건물이라 하겠다.

< '사정전'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사정전' 주변의 조감도 >

< 사정전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만춘전' >

< 사정전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천추전' >

또한 사정전 주변으로 왕의 내탕고가 되는 행각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대충 건물을 돌아보고 뒤편으로 이동하여 3문 3조 중 3조가 되는 연조(燕朝)로 구획하고 있는 향오문(嚮五門)을 통과하는데, 연조 구역은 왕과 왕비의 사생활 공간으로써 침전이라고 부른다.

< '침전의 영역' 을 표시하고 있는 조감도 >

< 강녕전으로 들어가는 '향오문' >

침전의 메인 건물로 강녕전(康寧殿)과 교태전(交泰殿)이 자리하고 있는데, 강녕전은 양반 집의 가옥에서 사랑채와 비슷하여 외부인들의 접촉이 많아 강녕전 대청 앞에 넓은 월대가 있어 크고 적은 행사장으로 사용하였다.

< '강녕전' 의 모습 >

< 강녕전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경성전' >

< 강녕전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연생전' >

교태전은 양반 집의 안채와 비슷하므로 월대가 없는데, 반대로 행각과 행각들이 상호 연결이 되어 많은 시녀와 함께 생활하는 왕비의 복잡한 안살림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 교태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양의문' >

< '교태전' 건물의 전경 >

< '강녕전과 교태전'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교태전 뒤편으로 돌아서 가면 아담한 동산을 만나는데, 이 동산은 경복궁 좌측에 있는 경회루 주변에 있는 연못을 파는 과정에서 발생한 흙을 옮겨 쌓을 인공적으로 만든 동산이며 '아미산(峨嵋山)' 이라고 불려진다. - 1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