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2-18일.(6박7일)
2. 둘째날 여정 : 12월 14일.(일요일)
4) 경복궁을 다시 구경하면서.
경복궁 탐방에서 1부는 광화문 입구에서 부터 시작하여 3문 3조 중 3조에 자리하고 있는 교태전(交泰殿) 까지 기술하였는데, 2부에서는 사정전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경회루(慶會樓)' 부터 기술하기로 한다.

< 사정전 왼편에서 '경회루' 로 들어가는 길 >
경회는 '경사스러운 연회’ 라는 뜻으로 경복궁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인데,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과 규모가 큰 연회를 열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 2층으로 건립된 '경회루' 전경 >
연못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과 궁궐의 장엄한 경관을 감상하는 왕실 정원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 12년(1412년)에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 연못 속에 만들어져 있는 '섬' >
성종과 연산군 대에 수리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고종 4년(1867년)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중건하였는데, 건물 1층은 48개(둥근 기둥과 네모난 기둥 각 24개)의 높은 돌기둥만 세웠다.
건물의 2층에는 마루를 깔아 연회장으로 이용하였는데, 추녀 마루에는 우리나라 건물 가운데 가장 많은 11개의 잡상(雜像 : 지붕 위의 네 귀에 여러가지 신상(神像)의 모습으로 만들어 얹은 기와)이 있다.

< '뱃놀이' 가 가능한 연못 >
경회루를 구경하고 나서 다시 교태전에서 오른편 사잇문으로 나아가면 넓은 광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광장 앞으로 동궁영역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광장 뒤편에는 '자경전(慈慶殿)' 의 긴 담장이 자리하고 있다.

< 교태전 오른편 사잇문을 지나면 만나는 '광장' >
광장 앞에 자리하고 있는 동궁은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으나 세종 9년(1427년) 부터 동궁을 지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동궁 일대가 모두 철거하였다가 1999년에서 부터 2023년 까지 새롭게 복원한 건물이라 관람을 생략한다.

< 광장 앞에 자리하고 있는 '동궁영역' 의 건물 >
먼저 광장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자경전으로 들어가 보는데, 자경은 ‘어머니의 복을 누린다’ 라는 뜻으로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어머니 '혜경궁(헌경황후)홍씨' 를 위해 창경궁에 지은 ‘자경당’ 에서 유래가 되었다 한다.

< '자경전' 영역의 조감도 >

< '자경전'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자경전 주변으로는 복안당, 청연루, 협경당 등 부속건물을 따로 두고 있지만 모두 상호 연결이 되어 있는데, 자경전 굴뚝은 실용적인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조형미가 빼어나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 '자경전' 으로 들어가는 문 >

< 매우 아름다운 굴뚝을 가지고 있는 '자경전' >
자경전에서 다시 뒤편으로 돌아가면 향원지(香遠池)이라는 연못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연못 중앙에 '향원정(香遠亭)' 이라는 정자가 자리하고 있는데, 향원은 '향이 멀리 간다' 는 뜻을 가진다고 한다.

< '향원정' 의 조감도 >

< '향원정'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원래 이곳에는 세조 때 세운 취로정이 있었지만, 고종 10년(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2층 육모지붕 형태의 향원정을 지었다고 한다.

< 육모지붕 모양으로 지어진 '향원정' >

< '명성황후' 시해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무 >
향원지 뒤편으로 '건청궁(乾淸宮)' 으로 들어가는 대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건청궁은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지어진 궁(宮) 안의 궁으로 건청은 ‘하늘은 맑다’ 라는 뜻을 가진다고 한다.

< '건청궁' 을 나타내고 있는 조감도 >

< '건청궁'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경복궁 내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건물은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하여 지었는데, 건청궁에서 왕의 생활공간 '장안당(長安堂)' 및 왕비의 생활공간 '곤녕합(坤寧閤)' 등으로 지어져 있다.

< '건청궁' 으로 들어가는 대문 >
장안당과 곤녕합은 상호 복도로 이어져 있으며 이곳에서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가 10년 정도 생활을 하였는데, 고종 32년(1895년) 곤녕합의 뒤편 복수당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났다.

< '곤녕합과 장안당' 을 상호 연결하고 있는 문 >

< 곤녕합 뒤편 '복수당' 으로 들어가는 문 >

< 명성황후가 시해를 당한 '복수당' >
그래서 고종은 이듬해가 되는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는데, 이후 융희 3년(1909년)에 철거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미술관이 들어섰다가 철거된 후 2007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 고종이 살았던 '장안당' >

< 장안당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미술관' 건물 >
건청궁에서 왼편으로 조금 들어가면 '집옥재(集玉齋)' 건물을 만나는데, 집옥은 ‘옥처럼 귀한 보배를 모으다’ 라는 뜻으로 집옥재를 중심으로 왼쪽에 팔우정(八隅亭) 및 오른쪽에 협길당(協吉堂)이 자리하고 있다.

< '집옥재' 를 나타내고 있는 조감도 >
이곳은 고종 28년(1891년)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던 집옥재 및 협길당 등을 건청궁 서쪽으로 옮겨 지은 건물인데, 고종의 서재와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장소로 사용되었다.

< '집옥재'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집옥재는 경복궁의 다른 전각과 달리 청나라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밖에서 보면 단층으로 보이나 내부는 2층으로 되어 있는데, 팔우정은 팔각 누각으로 기둥 상부에 꽃과 넝쿨무늬를 화려하게 조각하였다.
협길당은 고유의 조선식 건물로 온돌방을 두어 휴식 장소로 사용하였는데, 3개의 건물은 상호 복도를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집옥재는 경복궁의 전각 중 유일하게 현판이 세로형으로 쓰여 있다고 한다.

< '집옥재' 건물의 전경 >
집옥재 건물에서 다시 왼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경복궁의 북문이 되는 '신무문(神武門)' 이 자리하고 있는데, 신무는 ‘뛰어난 무용(武勇)‘ 또는 ’신령스러운 현무(玄武)‘ 이라는 뜻을 가진다고 한다.

< '경복궁' 북문으로 나가는 통로 >

< 경복궁의 북문이 되는 '신무문' >
신무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아가면 바로 앞 도로 건너편에 옛 '청와대' 건물의 정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우리부부는 2022년 5월 10일 청와대가 일반인에게 개방이 되면서 부터 얼마 후가 되는 5월 29일 방문한 곳이다.

< 경복궁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청와대' 건물 >
나는 이곳 주변 지리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어 청와대 앞과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청와대 사랑채' 및 '칠궁(七宮)' 을 관람하기로 계획을 수립하였지만, 스마트폰 밧데리 방전으로 인하여 더 이상 촬영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 '청와대 사랑채' 건물의 전경 >

< 청와대 사랑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조형물' >
그래서 사진 촬영이 불가능한 생태에서 칠궁을 구경하고 나서 청와대 사랑채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 커피 한잔으로 휴식시간을 가지는데, 2곳은 다음에 다시 방문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춘천으로 돌아간다. - 2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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