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3일(일요일)
한국의 고유 명절인 설날기간 동안 운동도 하지 않고 집 구석에 쳐박혀 제사 음식으로 아래 배만 잔뜩 키우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불현듯 생각으로 배낭을 메고 산행 버스에 올라가니, 빈좌석 하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면서 즐거운 여가와 더불어 폭설에 빠져 보기 위해 등산객들 틈으로 산행에 동참하여 본다.
오늘 산행은 몇 번이나 가본 강원도 두뫼산골 "오대산" 으로 행하는데, 전전일 동해지방 삼척, 강릉에 100년만 100cm가 넘는 기록적인 눈이 내려 7번 국도와 더불어 강원도 동해지역에 눈으로 인한 피해가 어마하게 많이 발생하였다.
대통령도 전군을 동원하여 제설 작업에 투입하고, 피해 복구에 만전을 기하라는 지시가 내릴 정도로 심각한 지역인 강원도 방향으로 나의 자아 만족만 채우기 위하여 산행을 하기에는 조금 양심적인 가책 느끼면서 버스 제일 뒤 구석에 겨우 자리를 차지하여 중앙고속도로에 들어선다.
언제나 동일하게 산행 Guide는 산행 지도를 배표하고 나서 산행 일정과 더불어 산행의 주의점을 설명하는데, 오늘 가는 오대산 산행코스는 상원사 주차장에서 산행길이 열리지면 오대산 정상인 비로봉까지 올라가서 상왕봉으로 하여 종주하는 코스로 계획되어 있지만 안전을 위하여 눈이 많이 쌓여 있으면 항상 그 자리에서 바로 Back을 하여 안전한 코스로만 산행하여 달려는 부탁으로 침을 마른다.
나는 이곳 오대산 종주 코스는 몇 번이나 다녀본 길이라 상왕봉에서 북대암까지 내려오는 급경사의 길과 북대암에서 임도 따라 걷는 약 2시간의 코스가 너무나 지루하여 돈을 준다고 해도 가기 싫은 길에 오늘은 눈을 핑게로 가지않고 되돌아 내려오는 코스로 선택하겠다는 마음으로 다짐하고, 그 대신 오늘은 상원사와 적멸보궁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여유로운 산행을 즐기라라 생각하면서 선잠으로 빠져든다.
기사님의 안전 운행으로 안동휴게소 및 평창휴게소에 들어가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져 보내는데, 평창휴게소에서 부터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설국(雪國) 으로 들어가는 기분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 설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평창휴게소" 전경 >
눈이 많이 내리기를 유명한 일본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님이 쓴 소설 책 "설국(雪國)" 이라는 제목이 생각나게 만든다.
설국은 1968년도 일본에서 유일하게 노벨문학상을 받는 책으로 그 해 년말 한국에서 고등학교 3학년에게 대입학력 고사를 처음으로 시도한다고 하여 공부하기 바쁜 고3 학생에게 국어 선생님은 아마 설국에서 많은 문제가 출제 되어질 것이니 책을 반듯이 구입하여 보라는 특명으로 억질로 읽어본 설국의 내용이 아련하게 떠오르지만, 꼬불 꼬불한 일본 사람들의 성명 한명도 생각나지 않는다.
결빙된 눈길 따라 한참 달려 한 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하여 친구와 함께 머물어본 오대산 산골 들력 한 복판에 외롭게 자리잡고 있는 "오대산관광호텔" 옆으로 버스가 지나가는데, 그 때 오대산 주위 관광지를 돌아 다니면서 천방지축으로 구경의 삼매경에 빠진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버스는 눈길로 인하여 엉금엉금 기면서 운행하여 월정사 매표소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구입하고 나서 계곡 속으로 한참 들어가 평소 도착 예정시간 보다 40분이나 지연된 11시 40분 경 상원사 입구 관리사무소에 도착하니까, 도로 가장자리에는 수 없이 많은 버스들이 도열하고 있다.
이렇게 폭설의 눈이 왔는 곳이지만 전국에서 모여든 수 없이 많은 버스에서 산꾼들을 내려놓고 대기하는 차량 옆으로, 일행도 많은 산행인과 함께 산행 길로 혼합되어 진다.
< 상원사 입구까지 도로가에 도열하고 있는 차량의 행렬 옆으로 걷는 산꾼들 >
오대산은 중국에 있는 오대산과 동일하게 손가락 끝과 같이 부채모양으로 펼쳐놓은 5개의 봉우리(호령봉, 비로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봉)로 형성되어 있는데, 그 속에는 유명한 월정사와 더불어 상원사 사찰이 있으며 이 사찰에서 운영하는 5개의 암자(동대, 서대, 남대, 북대, 및 중대)가 고즈늑하게 자리잡고 있는 불정토의 산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조선 왕족실록을 기록한 사고를 모셔 놓았든 "오대산 사고" 도 이곳 오대산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역사적인 산이기도 하다.
오늘 방문하고자 하는 상원사 사찰은 역사적인 내용과 사화를 적으면 몇 권의 책으로 엮어도 불가능 할 정도의 실화를 가진 사찰인데, 이러한 곳을 다시 방문하여 관람하고자 하니 가슴이 벅차 오른다.
< 오대산 "상원사" 를 알리는 입석 >
버스에 내려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입석으로써 이 입석에 대한 유래도 많는데, 상원사 입구에 있는 계곡을 정비하다가 발견한 넓은 돌로써 돌을 분실하였다가 다시 찾아 상원사 입석으로 만들었는데, 특히 이 돌에 세긴 글씨가 노무현 대통령의 비석을 쓴 승공대학교의 모 교수로써 필적이 독특하다.
이 입석을 돌아 좌측편으로 상원사로 올라가는 길의 들머리에 어린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탈한 조선 7대 세조왕의 "관대걸이" 가 이내 나타난다.
< 세조의 옷을 걸어 놓았든 "관대걸이" 모습 >
이 관대걸이를 옆으로 하고서 아름들이 전나무 숲길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으로 높은 돌계단 위에 상원사를 안내하는 사찰 문이 높게 위치하고 있는데, 그곳까지 올라가는 돌 계단은 초행자에게 고행의 시간을 잠시 맛보게 하여주는 인내의 계단이다.
< "상원사" 입구로 올라가는 돌 계단 >
옆으로 난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에 이르는데, 이 마당 주변에 아담한 상원사 사찰이 도열하고 있으나 사찰의 짜임세가 어찌보면 매우 산만하게 보인다.
< 눈 속에 졸고 있는 "상원사" 전경 >
이 상원사에는 다른 사찰과 달리 대웅전은 산 중터에 있는 적멸보궁으로 대신하다 보니 "문수전" 만 있는데, 문수전 내부에는 "문수동자" 를 주불로 모시고 있는 사찰이다.
< 상원사 "문수전" 앞에서 >
세조가 단종의 어머님인 "현덕왕후" 가 뱉은 가래 침으로 얻는 피부병인 욕창으로 고생하다가 이곳 상원사 앞에 있는 개울에서 목욕하기 위하여 관대걸이에 옷을 벗어 놓고 몸을 씻고 있는데, 한 동자가 지나가므로 불러 몸을 씻어 달려고 하여 욕창을 낳았다고 하는 설화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세조가 동자에게 "어디가서 왕의 육체를 보았다고 소리하지 말아라" 라고 부탁하는데, 이예 동자는 "어디가서 문수동자를 친견하였다고 말하지 마시오" 라고 하면서 살아졌다고 한다.
그 뒤에 욕창이 씻은 듯 낫아므로 세조는 문수동자를 그림으로 그리도록 하였고, 세조의 딸인 "의숙공주" 가 세조가 보았다는 문수동자 상을 조각하여 이곳 상원사에 석가모니 불상과 나란히 봉안하여 지금까지 법당에 모시고 있다.
이 문수보살 동자상이 국보 제 221호로 지정되어 모시고 있는데, 사찰 내부에 들어가 한번 참견하여 볼려고 시도하였으나 겨울이라 방문이 닫혀있는 곳에 아이젠과 신발을 벗고 들어갈려고 하니 웬지 귀찮음이 발생한다.
< 상원사 문수전 앞에 있는 "문수동자" 사진 >
아니 솔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면 전에 한번 들어가 본 적이 있지만 그때도 문수보살의 사진 촬영 불가능하다고 쓰여 있고, 내가 오늘 다시 들어갈려는 단순한 목적은 문수보살의 사진을 찍는 것인데, 현재 실업자라는 주제 파악을 하면서 시주 할 마음적 여유도 없이 들어가는 것도 미심직한 기분이 앞선다.
아울러 법당 입구에 있는 2마리 고양이 돌상이 놓여 있는데, 이 고양이는 욕창이 완쾌된 다음 해 세조가 문수보살에게 기도 정진 할려고 상원사에 들리는 세조를 암살하기 위하여 보살 뒤에 자객이 숨어있다는 것을 먼저 알려주므로 세조의 생명을 구한 고양이에게 은혜를 보답하기 위하여 세운 석상인데, 이곳 상원사는 세조의 원찰이 될 수 밖에 없는 사연이 깊은 사찰이다.
< 문수전 앞에 있는 2마리 "고양이" 석상 >
특히 사찰 마당 앞에는 국보 제 36호인 "상원사 동종" 을 모신 건물이 새롭게 건립하고 있는데, 왼편에는 달마대사 조각과 더불어 오른편에 새롭게 만든 다른 동종와 함께 나란히 모시고 있다.
< 국보 36호 "상원사 동종" 및 달마대사 조각품 >
이 동종은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주조된 우리나라의 최초 동종으로써, 몸통에 새겨진 "비천상" 이 경쾌하게 조각되어 일품의 그림을 나타내고 있는데, 처음에는 경상도 안동 땅에서 만들어진 동종이지만 조선시대 예종 원년(1469년) 때 상원사로 옮겨온 동종으로써, 운반하여 오는 과정 중 "죽령" 을 넘어오는 야사를 읽어 보며는 눈물없이 읽을 수 없는 설화를 간직한 종(鍾)이다.
아울어 6. 25 전쟁 때 공군에게 괴뢰군이 머무는 '월정사(月精寺) 및 상원사(上院寺)' 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게 막은 육군 장교와의 이야기 및 퇴각하는 괴뢰군들이 사찰을 소각 시킬려는 것을 몸으로 저지한 노승의 이야기가 현대인의 심금 울려주는 실화를 간직한 사찰이다.
문제는 그분들의 이름 한자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 못난 석두 어디에 쓸지 막연하여 지는데, 석두도 유전되는지 우리집에 문전 도식하면서 농띵치고 있는 내 보다 더 큰 석두가 있다는 것 생각하니 가슴이 쓰려온다.
함께하는 일행의 독촉으로 아쉬운 상원사를 뒤로 하고서 오솔길로 방향을 잡아 백설로 덮혀있는 설국의 불정토 땅으로 올라가면 "중대 사자암" 을 만나는데, 이 중대 사자암을 일명 "계단불사" 라 칭한다고 큰 현수막에 걸려있다.
< 상원사 뒤편 계곡에 있는 "중대 사자암" 으로 올라가는 길 >
하부 화장실에서 부터 상부 "비로전" 까지 5개의 건물이 산비탈으로 이용하여 건립된 계단불사는 "비로자나물" 을 주불로 모시고 있으면 불상 주위 1만개의 문수보살을 모신 사찰로써, 돈으로 넘쳐나게 호화스럽게 치장하고 있어 돈의 위력을 뽐내는 사찰이라, 내 같이 돈없는 가난뱅이에게는 역겨움이 묻어난다.
< 5개의 계단으로 건축된 "계단불사" 전경 >
< 호화롭게 꾸며진 "비로전" 전경 >
계단불사를 지나, 600m 거리인 산 모퉁이 하나만 돌아 올라가며는 신라 선덕여왕 때 고승 "자장율사" 가 당나라에서 가지고온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 에 이른다.
상원사에서 이곳 적멸보궁까지 올라오는 가장자리에는 부도탑 같이 아름답게 조각하여 놓은 돌들이 곳곳에 놓여있는데, 이 돌이 밤에도 불교 신자들이 무사이 불경을 올리면서 오로내림을 안전하게 만드는 빛을 발혀주는 "석등" 이라 정겨움이 묻어 나지만, 이것도 또한 실업자에게는 견물생심이 유발시킨다.
< 적멸보궁까지 가는데 놓여진 수백개의 "석등" >
적멸보궁으로 가는 계단에 눈은 치우고 있는 보살 님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안전하게 돌계단으로 올라서면 화려하게 단청(丹靑)을 칠한 건물 한채를 만나는데, 이 건물이 적멸보궁이다.
이 건물은 조선조 전기에 건립된 건물로써 전면 3칸에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지붕 형태를 하고 있고 기둥은 영주 부석사와 같이 배흘림기둥 형태로 만들어져 매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오늘은 하얀 눈의 무게로 팔작지붕이 무척 고생하고 있는 모습이다.
< 많은 눈을 덮어쓰고 있는 상원사 "적멸보궁" 전경 >
적멸보궁에서 스님이 불경을 시작하는 시간인지 은은한 독경 소리와 함께 사찰 내, 외부에 신자들이 추위도 아랑 곳하지 않고 절을 하고 있는 모습보고 있으니, 이것이 한국의 아줌마들의 힘 인가를 느껴보는 순간인데 참 대단한 풍경이다.
< 눈 위에서 절을 하고 있는 한국의 "아줌마" 부대들 >
절하고 있는 수 많은 아줌마 궁둥이만 처다보다가 시장기가 엄수하다 보니 금강산도 식구경이라, 적멸보궁을 탈출하여 비로봉 정상으로 올라가다가 눈꽃이 만개하게 피여 있는 주목나무 밑 곳곳에서 돗자리 피고 식사하고 있는 군중들 틈에 끼여, 간단한 김밥 한줄로 허기진 배를 채워본다.
햐안 눈을 덮어 쓰고 있는 주목나무 사이로 오대산의 정상인 비로봉이 눈앞에 머물고 있는 눈길 따라 위로 올라갈려고 하는데, 내려오는 사람들로 인하여 좁은 눈길로 교차 할려고 하니 교통체중이 막심하게 만든다.
<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오대산 "비로봉" 정상 >
< 눈길을 교차하면서 걷고 있는 "등산객" 들 >
내려오는 일부 사람들이 산길을 벗어나 나무 밑으로 내려가는데, 허리까지 눈속으로 다리가 빠져 어우적 거리는 모습과 일부지역에는 1m가 넘는 곳도 있는지 눈의 저항으로 내려가는 것도 힘에 부딛쳐서 고역하는 모습이 어린시절 동심으로 돌아 가는듯 해 맑은 웃숨으로 눈 썰매 타는 사람 보고 있으니 정겨움도 묻어난다.
1시간 정도 정상을 향하여 눈과의 사투를 벌리며는 올라가면 키가 낮은 고산목 군락지로 들어서는데, 이내 해발 1563m "비로봉" 정상에 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 오대산 정상에 머물고 있는 "산행인" 들 >
정상에 이르니, 따뜻한 온기가 온몸으로 느끼는 포근한 날씨가 힘들게 올라온 등산객들에게 정상에 머뭄을 허락시키면서, 정상석 주위에서 점심식사하는 산꾼들이 장터를 만들고 있다.
아울러 정상석을 배경으로 하여 사진찍는 곳도 기다란 줄을 형성하고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과 더불어 이렇게 겨울철 해발 1,000m 넘는 고산에서 여유로운 산행 즐기면서 머물고 있는 것 살아 생전 처음 꺽어보는 기후이다.
<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위하여 줄을 선 모습 >
느근한 줄 끝에서 기나긴 기다림 후, 정상적을 배경으로 하여 기념사진 한장 만들어 놓고서 주위 조망을 감상하기 시작한다.
< 오대산 "비로봉" 정상석을 배경으로 >
정상 주변에는 하얀 눈으로 포장한 오대산의 5개 봉우리가 올망졸망 눈 앞으로 자리 잡고있는데, 동쪽으로는 오대산 국립공원의 다른 한쪽으로 "노인봉" 과 더불어 대관령 목장의 뒤편에 있는 "황병산" 의 군사 시설물이 머물고 있다.
조금 고개를 남쪽으로 돌아보면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하기 위하여 3수에 도전하는 발왕산 "용평스키장" 의 기다란 슬로프의 몇 가닥이 한얀 빨래줄 같이 펼쳐놓은 듯 조망이 아련하게 보이고 있어 정겨움이 묻어난다.
< 눈 덮흰 "대관령 목장" 과 황병산 정상에 있는 군사 시설물 >
< 희미하게 보이는 발왕산의 "용평스키장" 슬로프 >
뒤로 돌아, 북쪽으로 바라보니 설악산 대청봉만 순박꼭질 하듯 얼굴만 구름속에 숨기고 몸통은 다 내어놓고 있는데, 어릴적 눈 속에 토끼몰이를 하며는 토끼가 급하며는 머리만 돌 속에 집어넣고 몸통은 내어놓고 숨어있는 모습하고 비슷한 풍경도 보여주고 있다.
< 구름 속에 숨어있는 설악산 "대청봉" 과 설악산 능선 >
북쭉 앞으로는 상왕봉으로 종주하는 기다란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지만, 산행하기 전 이미 생각한 것과 같이 그 곳으로 종주함을 포기하고 정상에 머물면서 무한정 시간이나 잡아먹어 보면서 조망에 취하여 보는데, 오대산 정상까지 올라와서 이렇게 오래동안 정상에 머뭄을 허락하는 겨울 날씨에 무한정 정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 멀리 보이는 "상왕봉" 정상과 가는 능선 길 >
내려가는 길을 올라오는 곳으로 역행하면서 내려가므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천천히 안전을 우선으로 하여 Rope에 의존하면서 느릿느릿 내려오는데, 내려오는 길에도 아름들이 울창하게 뻗어 있는 전나무와 눈꽃을 감상하면서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에 도착하니까, 제일 먼저 도착되어 진다.
< 아름들이 "전나무" 가지에 붙어있는 눈 >
오늘 산행은 안전을 위하여 종주하는 사람들에게 5시30분까지 도착하도록 시간을 부여 하였는데, 1시간 30분이나 일찍 도착되어지다 보니 기다림에 지쳐 기사님에게 억지 쓰면서 차량 시동을 걸어 공해전을 시키면서 차량 내부를 훈훈하게 만들어 종주하는 일행이 도착 할 때까지 피곤에 지친몸을 늘어지게 겨울 동면에 빠져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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