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9일.(수요일)
2) 김유정 문학촌 및 김유정 생가를 방문하면서.
나는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 대학교 동문과 함께 2018년 8월 3일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春川市 新東面) 설레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김유정문학촌 및 김유정생가' 를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그 사이 어떤 변화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방문하기로 하는데, 춘천시가지에 자리하고 있는 공지천 유원지에서 부터 20분 정도 달려가면 김유정문학촌(金裕貞文學村) 입구에 도착한다.
(1) 김유정의 생가 구경.
김유정문화관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주차장에서 한 2-3분 정도 걸어가면 매표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매표소에는 매표원이 자리하지 않고 있어 그냥 생가의 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 본다.

< '김유정' 생가로 들어가는 문 >
생가의 마당으로 들어서면 왼편 방향으로 작은 연못과 함꼐 정자 한채가 자리하고 있으며 정면 일단의 축대 위로 생가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오른편에는 '기념전시관(記念展示館)' 이 자리하고 있다.

< 출입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정원' >

< 정원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연못 및 정자' >
정원을 통과하면서 축대 위로 올라서면 생가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 다소 큰 마당에 도착하는데, 마당의 왼편 구석으로 외양간 및 곡간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마당의 중심부에 생가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다소 큰 마당을 가지고 있는 '생가' 전경 >

< 마당의 왼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외양간' >

< 마당의 왼편 뒤에 자리하고 있는 '곡간채' >

< 곡간채 내에 만들어져 있는 '뒤딜방아' >

< 생가 건물과 곡간채 사이에 만들어져 있는 '조형물' >
생가 건물은 사방으로 둘려 싸여 있는 'ㅁ자' 형태의 초가집 건물이 되는데, 옛날에는 대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 관람이 가능 하였지만 현재는 건물 내부의 구경이 불가능 하도록 문이 잠겨져 있다.

< 'ㅁ' 자 형태를 가지고 있는 생가 건물 >
김유정 생가는 그의 조부(祖父)가 지은 집으로 조부 '김익찬' 은 춘천 의병봉기의 배후 인물로 재정 지원을 담당 하였는데, 당시 이곳 실레마을에서 제일 큰 갑부이면서 주변의 땅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중부지방에서 보기 힘든 ㅁ자 형태로 집을 짓고 기와집 골격에 초가를 얹어 지었는데, 이유는 헐벗고 못 먹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집의 내부를 보이지 않게 하고 외부의 위협으로 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특히 사랑채 아궁이를 집안에 배치하므로 인하여 이곳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면 사랑방 구들을 데우고 왼편에 있는 봉당(封堂)의 굴뚝으로 연기가 나가도록 되어 있고, 안채에서 밥을 짓던 부엌의 굴뚝은 생가 뒤편에 따로 있다.
부엌의 굴뚝도 봉당의 굴뚝과 같이 높이를 매우 낮게 하여 밥을 짓는 연기가 높게 올라가지 않게 하기 위함인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마을에서 끼니를 거르는 집들에 대한 배려이라고 한다.

< 생가 건물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우물' >
더불어 김유정은 1908년 2월 12일(음력 1월 11일)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에서 아버지 김춘식씨의 팔남매 중 일곱번째로 출생을 하였는데, 어려서 부터 몸이 허약하고 자주 아파고 또한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휘문고보(徽文高普) 2학년 때 언어 교정소에서 말을 고치긴 했으나 그 일로 인하여 늘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고,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 입학했으나 결석 때문에 제적 처분을 받았다.
그때 김유정은 당시 명창 '박록주' 에게 구애를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실연과 더불어 학교의 제적으로 인하여 크게 상처를 받고 고향으로 귀향하였는데, 학교가 없는 실레마을에서 '금병의숙(錦屛義塾)' 이라는 야학을 개설하였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김유정은 농촌과 도시의 밑바닥에서 체험한 내용을 소설로 쓰기 시작하였는데, 1933년 처음으로 잡지 제일선에 '산골 나그네' 와 신 여성지에 '총각과 맹꽁이' 를 발표한다.
이어 1935년 소설 '소낙비' 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1등으로 당선되고 '노다지' 가 중앙일보에 가작 입선함으로써, 떠오르는 신예 작가로 활발히 작품 발표를 하면서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가입한다.
1936년 폐결핵과 치질 등 최악의 환경 속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지만 병마가 끊임없이 김유정을 괴롭혔는데, 생의 마지막 해인 1937년 다섯째 누이 '유흥의 집' 으로 거처를 옮겨 죽는 날까지 펜을 놓지 못한다.
오랜 벗이 되는 '안회남' 에게 편지 쓰기를 끝으로 1937년 3월 29일 29살로써 짧았던 삶을 마감하는데, 사후(死後)가 되는 1938년 처음으로 삼문사에서 김유정의 단편집 '동백꽃' 이 출간된다.
마당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김유정 '기념전시관(記念 展示館)' 으로 들어가 보지만 이곳에도 문이 잠겨져 있어 관람을 불가능하게 하는데, 옛날에 보았던 생가 건물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이 적막감만 흐르고 있다.

< 마당의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기념전시관' >
(2) 김유정 문학촌을 돌아보면서.
생가의 정문 앞으로 김유정 문학촌이 자리하고 있어 구석구석을 거닐어 보기로 하는데, 이곳 문학촌에는 김유정 선생님의 작품을 실레마을에서 실제로 있었던 소재와 더불어 각종 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 '김유정 문학촌' 의 조감도 >

< 생가 건물 앞에 자리하고 있는 '카페' 건물 >

< 카페 건물 앞에 자리하고 있는 '공연장' >

< 각종 거리를 나타내고 있는 '이정표' >
골목골목 따라 거닐면 오솔길 주변으로 디오라마(Diorama)로 만든 모형과 더불어 소설의 내용 일부분을 기술하고 있어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하게 만들지만, 반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체험장이 문이 잠겨져 있다.

< 문학촌 내에 자리하고 있는 '사무국' >

< 김유정 '이야기 집' 의 건물 >

< 각종 '체험방' 의 건물 >

< 지역 상품의 '홍보관' >

< '기획전시실' 의 건물 >

< '촌장실' 의 건물 >

< '김유정' 선생님의 동상 >
실레마을은 춘천시에서 한 20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하게 돌아서 들어가면 만나는 조그마한 마을인데, 마을 앞으로 해발 652m '금병산' 을 비롯하여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빽하게 둘러싸여 있으면서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이 산속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와 같다고 하여 동네 이름을 '실레' 라 불려지는데, 현재 실레마을 전체를 빙돌아 보는 트레킹 코스와 더불어 금병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문학과 겸하면서 산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언제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도 이곳 금병산 또는 트레킹 코스를 거닐면서 설레마을 전경을 구경하여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지만, 오늘은 그냥 김유정 문학촌 및 생가를 떠나기로 한다. - 2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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