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박물관.

한국의 모든 문화유산을 보여주고 있는 국립 '중앙박물관' 을 방문하면서.(2)

용암2000 2026. 1. 3. 04:20

2025년 12월 26-31일.(5박6일)

2. 둘째날 : 12월 27일.(토요일)

(6) 백제의 유물.

간이 휴게소에서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진 우리부부는 다음 전시관에 되는 '백제의 유물' 전시관으로 입실하는데, 백제 문화는 석촌동 고분군에서 보이듯 초기에는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백제, 가야, 신라의 유물' 전시관의 조감도 >

< '백제의 유물' 전시관의 전경 >

< 백제 지역에서 발굴한 '토기' >

하지만 '옹진(熊津)' 으로 도읍지를 옮기면서 이후에는 중국 남조와 교류하면서 부드럽고 세련된 독자적인 양식을 만들어 내었는데, 백제 사람들은 고유의 전통 위에서 개방적으로 왜래문화를 받아드렸다.

< 백제의 유물' 을 구경하고 있는 방문객 >

< 백제인들이 사용한 '기와' >

이렇게 독자적인 문화를 만드는데 불교와 도교 등 종교의 역활이 컸었는데, 왕권 강화를 위하여 불교를 받아 들이면서 '사비(泗沘)' 시기에 많은 사찰을 세웠고 정교한 불교 공예품을 만들었다.

< 백제인들이 사용한 '목걸이' >

< 백제 지역에서 발굴한 '토기' >

< 농촌에서 사용한 '도구' >

 

백제는 이옷하고 있는 신라, 가야, 왜(倭)와도 서로 문화를 주고 받으면서 동아시아의 문화 발전에 기여 하였는데, 특히 왜에게 불교를 전하고 학자와 기술자를 파견하므로 일본 '아스카' 문화를 발전시켰다.

< 다른 나라에 전파한 '유물' 들 >

< 건물의 용마루에 사용한 '치미' >

< '백제금동대향로' (모조품) >

(7) 가야의 유물.

가야는 낙동강 유역에서 자리하고 있었던 '변한(弁韓)' 의 여러 작은 나라에서 출발을 하였는데, '가야(加耶)' 이라는 이룸은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성산가야 등 여러 나라를 아루러는 말이다.

< '가야'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가야의 유물' 전시관의 전경 >

가야에서는 철(鐵)의 생산 능력 발달과 함께 해운업으로 인하여 주변 나라와 교역이 왕성하였는데, 이른 시기에는 금관가야가 중심이 되어 세력을 확충하였지만 5세기 후에는 대가야의 세력이 막강하여 졌다.

< 가야인들이 사용한 '토기' >

< 원통 모양의 '그릇 받침대' >

그로 인하여 부드러운 곡선이면서 아름다운 토기와 금속 공예품, 구슬 장식구, 철제 갑옷 등에는 가야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고, 지배자의 무덤에서는 다채로운 유물과 함께 순장 문화도 보여주고 있다.

< 가야인들이 사용한 '금속 공예품' >

< 다양한 모양의 '귀걸이' >

< 가야인들이 사용한 '구슬 장식품' >

< 철로 만든 '갑옷' >

< 가야인들이 사용한 '칼' >

(8) 신라의 유물.

신라는 기원 전 57년 한반도 동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진한(辰韓)' 12개국의 작은 나라 중 하나가 되는 '사로국(斯盧國)' 을 모태로 하는데, 신라는 주변을 통합하여 4세기 중반에 고대 왕국으로 성장하였다.

< '신라'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고구려, 백제, 가야, 왜(倭)와 경쟁하면서 국가의 기틀을 다진 신라는 '마립간(麻立干)' 시기이라고 불려지는데, 6세기에는 국왕을 중심으로 중앙 집권 체제를 이루고 불교를 국교로 삼았다.

< '신라의 유물' 전시관의 전경 >

< 진흥왕의 '북한산 순수비' >

진흥왕은 북쪽으로 함경도 및 서쪽으로는 한강 유역 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통일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았는데, 신라사에서 중고기(中古期)는 신라가 이루고자 하는 일통삼한(一統三韓) 시대를 이루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 '새' 모양의 주전자 >

< 말을 탄 사람의 '토기' >

< 신라인들이 사용한 '무기' >

신라에서 황금 문화의 전성기는 5세기 부터 6세기 전반 까지 약 150년 정도가 되는데, 이때 지배층에서는 금관을 비롯하여 허리띠, 귀걸이, 팔찌, 반지, 목걸이, 장식대도(裝飾大刀) 등을 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 신라인들이 사용한 '갑옷' >

< 철로 만든 '칼' >

< 고분에서 발굴한 '금관' >

< '금관' 의 주인공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신라인들이 사용한 '황금' 문화 >

< 금으로 만든 '그릇' >

< 금으로 만든 '관꾸미개' >

< 다양한 모양의 '유리' 제품 >

(9) 통일신라의 유물.

통일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넓어진 영토를 다스리기 위하여 여러 가지 제도를 정비하는데, 우선 새로운 국가 운영을 위하여 관료제를 정비하여 왕경인과 지방인 사이에 차별하지 않고 관등을 주는 방식으로 채택하였다.

< '통일신라' 시대의 전시관 >

행정구역은 지방을 9주(九州)로 나누고 다시 특별 구역으로 5소경을 두었는데, 이러한 제도의 개선과 행정구역의 개편은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 집권 국가의 틀을 완성하는 과정이며 새로운 국가 위상을 강조하기 위함이라 하겠다.

< '통일신라' 시대의 조감도 >

경주 왕경 유역과 월지(月池)에서 나온 많은 유물은 이러한 진골 귀족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금과 은으로 장식한 생활용품 및 녹유(綠釉)기와는 당시 진골 귀족의 호사스러운 생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귀족이 사용한 '생활용픔' >

< 충남 부여 지역에서 발굴한 '정병' >

< 황해도에서 발굴한 '발걸이' >

< 경주 월지에서 발굴한 '용 머리 꾸리개' >

< 철로 만든 '철불' >

< 불법을 수호하고 있는 '팔불신중' >

< 통일신라 시대에 사용한 '생활도구' >

(10) 발해의 유물.

고구려 출신 대조영과 유민들이 주축이 되어 건국한 '발해' 는 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통일 신라와 공존하면서 남북국 시대를 열었는데, 전국을 5경 15부 62주로 정비하면서 중앙 집권을 강화하여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였다.

< '발해의 유물' 전시관의 전경 >

< '발해' 의 영토 조감도 >

선진 문물도 적극적으로 받아드려 각종 제도를 개선하면서 유교 정치 이념의 수용과 함께 불교를 통하여 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면서 황제국으로 표방하였는데, 발해의 지배층에서는 건국 당시에서 부터 고구려를 계승하였다고 한다.

< 발해인들이 사용한 '토기' >

평양 원오리 절터에서 출토된 고구려 불상과 발해 수도에서 출토된 불상을 비교하여 보면 발해 문화는 고구려 문화의 전통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데, 또한 발해의 수도에서 출토된 와당(瓦當)도 고구려의 와당과 너무나 비슷하다.

< '발헤' 에서 발굴한 유물 >

(11) 또 다시 휴식을 취하면서.

발해 전시관에서 부터 고려 전시관으로 넘어가는 통로에 의자들을 비치하면서 휴식의 공간으로 설치되어 있다.

< 통로에 설치하고 있는 '의자' >

또 다시 우리부부는 긴 관람에 따른 피로(疲勞)의 누적으로 인하여 잠깐 동안 휴식 시간을 갖기로 한다. - 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