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기계과 행사.(서울, 경기도)

경북대학교 기계과 동문 자녀 결혼식으로 인한 임시모임 개최에 따른 "서울나들이" 여행 길.(2)

용암2000 2013. 10. 2. 21:46

둘째날.(29일 : 일요일)

 

전날부터 쏟아지는 비가 계속하여 내리므로 아침에 느근하게 일어나 호텔에서 운영하는 실내 골프장 1층에 있는 해장국집으로 들어가 전일 밤에 먹은 막걸리로 인한 쓰린 속을 해독하여 본다.

다시 호텔 방으로 올라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면서 이야기에 빠지다가 오전 10시 경 부터 빗줄기가 점점 약해지면서 가랑비로 변화가 발생하므로 호텔을 떠나 계획과 같이 여행길로 들어간다.

   

1.북촌 마을의 나들이.

호텔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양재역까지 이동하여 지하철 3호선을 이용하여 북촌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서 먼저 "윤보선길" 로 걸어본다.

  

< 북촌 마을의 한 골목이 되는 "윤보선길" >

 

오늘 걸어보는 복촌 마을은 서울의 도심 한 복판에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서 시계가 멈추어 버린 상태로 정지한 것과 같은 동네가 되는데, 청계천 및 종로의 윗 동네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동네의 명칭을 "북촌(北村)" 이라고 불려진다.

북촌 마을은 경북궁 및 창덕궁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전체를 말하는데, 행정구역 상으로 이름도 아름다운 가희동, 송현동, 안국동, 계동 그리고 삼청동이 포함하고 있다.

북촌 마을은 축대를 사이에 두고 윗 동네에는 한옥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아랫 동네에는 현대식 거리가 어우러져 현대와 과거가 함께 공존하고 있어 골목 Tour 하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지역이다.

 

< 경북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다는 "북촌 마을" 길거리 바닥에 표시하고 있는 그림 >

 

윤보선길은 일방통행의 아스팔트 길로 되어있어 길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 북촌 마을 초입에는 대부분 양옥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단지 몇 채의 한옥집이 보이는 평범한 거리가 된다.

 

< 일반통행으로 이루어진 "윤보선길" >

 

약 200m 정도 올라가면 오른편으로 높은 담장과 더불어 솟을대문이 나타나는데, 이곳 솟을대문이 윤보선 대통령의 집이지만 문에 굳게 잠겨져 있어 내부 관람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 윤보선 집을 보호하고 있는 "돌담" >

 

< 굳게 잠겨져 있는 윤보선 집의 "솟을대문" >

 

윤보선씨 집과 연결하여 담장 끝지점에서 부터 조그마한 겔러리 "담" 과 다양한 문화공간의 집들이 도열하고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여 주고 있고, 좁은 골목을 빠져 나오면 마을 버스가 다닐 수 있는 복촌로(北村路)에 도착한다.

 

< 윤보선 집 돌담 끝지점에 있는 겔러리 "담" >

 

< 문이 열려있는 겔러리 "담" >

 

< 독특한 건물에서 영업하고 있는 "커피 집" >

 

이곳 북촌로 따라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도로 좌우로는 이색적인 상가 건물들이 도열하고 있는데, 그 도로 한 코너에 3.1운동 때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중 한 분이 되시는 "손병희" 선생님의 생가가 있다는 펫말이 나온다.

 

< 개성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 >

 

< 버스가 다니는 "도로" 변 을 걸으면서 >

 

< 관광버스를 이용하여 단체 관광하는 "중국인" >

 

< 도로변에 있는 "손병희" 생가 터 안내문 >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다가 도로를 건너 반대편 북천로 12길로 표시하고 있는데, 이 좁은 골목따라 올라가면 이곳이 가희동 11번지로 많은 한옥들의 지붕들이 이마를 붙이고 건축되어진 고풍의 한옥촌이다.

 

< "가희동 11번" 에 있는 관람지 안내도 >

 

< 가희동 11번지로 올라가는 "골목길과 관광객" >

 

가희동 11번지에 있는 한옥에는 전통 공예 체험실 또는 공방을 만들어 놓고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여 주는 길이 되는데, 그래서 내국인 보다 중국, 일본, 외국인들이 더 많이 관광하고 있는 거리가 된다.

 

< 체험실로 운영하고 있는 "동림매듭 공방" 한옥 >

 

< "동림매듭 공방" 의 홍보물 >

 

< "공예 공방" 체험실을 알리는 간판 >

 

< 공예 공방 내에 있는 "체험실" 방 >

 

< "민화" 를 체험하는 가희 공방 >

 

< 각종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한옥촌" 골목 >

 

이집 저집 돌아다니다 보면 과거의 시간 속으로 배회하면서 옛 풍속으로 빠져 들고, 야타마한 고개를 넘어가면 멀리 언덕 위로 현대식 건물 사이로 옛 기와집 지붕들이 상호 선(線)을 형성하면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너무나 목가적이다.

 

< "과거와 현재" 가 공존하며 살고 있는 북촌 마을 >

 

고개를 넘어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한때 고교 야구의 명문 중앙고등학교 정문에 도착하면서 정문에는 500년의 은행나무 한 그루가 늠늠하게 서 있는데, 이 은행나무는 조선 500년의 역사를 소리없이 지켜보고 있는 증인의 나무이라 하겠다. 

 

< 중앙고등학교 정문과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은행나무" >

 

학교로 들어가는 급경사의 오르막 길로 조금 올라서면 1907년 인촌 "김성수" 선생님이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부흥을 위하여 설립하여 현재 106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중앙고등학교 본관 건물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본간 건물의 왼편으로 인문학 박물관과 오른편으로 강당 건물을 "ㄷ" 자 모양으로 거닐고 있는 모습도 매우 고풍의 미(美)를 만들고 있다.

 

< 중앙고등학교 "본관" 건물 >

 

< 본관 건물 왼편에 자리잡고 있는 "인문학 박물관" >

 

< 본관 건물 오른편에 있는 "강당" >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학교 주변 풍경을 즐기다가 교문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가 계동 길로 들어서는데, 여기서 부터 또 다시 산책길 양쪽으로 많은 수공업 공방과 더불어 다양한 선물 판매점이 도열하고 있어 많은 일본어와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좁은 거리를 거닐고 있다.

 

< 중앙고등학교 앞으로 이어지는 "계동 길" >

 

< 계동 길 내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골목길" >

 

< 계동 길에 있는 "북촌 게스트 하우스" >

 

< 계동 길에 있는 각종 "공방" 안내도 >

 

좌우 상가 건물에 진열하고 있는 기념품을 구경하면서 앞으로 걸어서 내려가면 왼편으로 현대빌딩 건물을 만나는데, 현대 빌딩 인접하게 원점(原点)의 안국역에 도착한다.

 

2. 인사동 거리를 다시 찾으면서.

안국역에서 도로를 건너 인사도 사거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 가다가 소골목을 통과하여 인사동 거리에 도착하는데, 이 인사동 거리는 지금 함께 걷고 있는 대학교 동문들과 금년 2월 말 정기총회 때 서울 영등포에서 만나 1박2일 회의를 끝내고 나서 둘째날 창덕궁 관람 후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찾았던 길이라 눈에 익숙하여 진다.

그 때와 동일하게 인사동 거리를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걸어가 보는데, 오늘 인사동 거리에는 축제로 인하여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으며 거리 풍경도 호화스럽게 꾸며져 있다.

 

< 새로운 풍경의 길을 걸어보는 "인사동" 거리 >

 

< 많은 선물과 음식을 판매하는 "쌈지의 길" >

 

< "꽈베기 아이스크림" 을 판매하고 있는 상가 >

 

거리를 배회하면서 많은 구경을 하다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전에 방문한 식당 "목향" 을 찾아 소골목으로 들어 갔지만 골목이 너무나 미로 같아 몇 번이나 허탕을 치다가 겨우 식당을 발견한다.

 

< 잘못 된 "골목" 으로도 들어가 보고 >

 

< 금년 2월에 들어갔던 "목향" 식당 >

 

< 골목 담에 붙어있는 "목향" 식당의 메뉴 >

 

그런데 사전 예약을 하지 않고 불쑥 들어가므로 넓은 장소가 없어 2개 팀으로 분산되는 이산가족을 만들어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인당 15.000원 짜리 정식과 더불어 반주로 막걸리 잔이 춤을 춘다.

 

< 점심식사를 즐기는 "동문" >

 

< 이산가족으로 식사하는 또 다른 테이블의 "동문" >

 

한없이 긴시간 동안 대화를 하면서 인생 막장의 시간을 보내다가 주인장 눈총을 받고서야 비로써 자리에 일어서는데, 지금까지 서울 동문들이 너무나 많은 수고와 경비를 지불 함에 감사 드리면서 다음을 기약하면서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눈다.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