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0-11일.(1박2일)
다사 다난했던 신묘(辛卯)년 한해도 대과 없이 무사히 저물어가는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고등학교 동기생으로 구성된 "적설회(赤雪會)" 회원 8명이 매년과 동일하게 저물의 가는 한해를 정리한다.
더불어 새롭게 다가오는 신년에도 건강하고 무탈하게 생활하고 우정을 돈독하게 만들기 위하여 회원 중 한 친구의 어릴적 고향 경북 예천군 용문면에 있는 "금당실(金塘室) 전통" 마을이라는 조용한 농촌에서 1박을 하면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하기 위한 모임을 개최한다.
< 예천군 "금당실 전통" 마을 조감도 >
예천 지역은 2010년 10월 30일 Wife와 아들과 함께 구석구석 돌아 다니면서 좋은 인상을 가진 고을이지만 마지막 관광지 "삼강나루터" 에서 다소 나쁜 이미지가 머리에 맴돌고 있지만, 나와 예천 친구를 제외하고 전부가 애향의 도시 예천지방 방문이 처음 대면하는 고을이라면서 한번 방문을 갖기를 원하여 겨울철에는 큰 볼거리가 없지만 그래도 예천에서 모임을 추진하여 본다.
< 경북 예천군이 품고 있는 "관광지" 현황 >
나는 전일까지 심한 감기와 몸살로 참석이 불가능 할 정도의 콘디션이 억망이지만 서울과 인천 등 전국에서 생활하는 친구들도 불원천리(不遠千里) 참석하는데, 인접지역 대구에서 살면서 조금의 무리가 따라도 길을 나선다.
첫날이 되는 12월 10일 토요일 오후 1시까지 모임을 추진하였지만, 생활 터전의 차이로 몇 명이 다소 늦게 도착하여 지므로 1차 대구에 거주하는 3명의 친구와 경인지역에 거주하는 3명의 친구 등 6명 만이 먼저 예천읍내에 있는 군청 앞에서 도킹하여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금당실 전통 마을로 들어간다.
금당실 전통마을은 우리나라 이상형을 대표하는 십승지(十勝地) 중 하나로 꼽힐 정도의 길지이며,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할려고 했었다는 곳이며 병화와 질병 및 기근이 없다는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 이며 금당실 마을은 조선시대 양반문화가 서려 있는 곳이다.
수 많은 고택과 미로처럼 이어진 흙돌담 길이 정겨움과 멋스러움을 자아내며, 역사와 문화, 전통을 간직해 오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 전통마을 중에 하나이다.
< 전통의 한옥과 더불어 "흙돌담" 길을 걸으면서 >
조선시대 세상이 어지러울 때에는 많은 세력가들이 이곳으로 찾음으로써 한 때는 서울과 같이 번창하기도 했고, 수 많은 인재들이 배출하는 등 유교문화가 활발했던 곳이기도 하지만 현재는 100여 호 만의 크고 적은 고택과 돌담길과 유적이 남아 당시의 모습을 짐작해 주고 있다.
<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고목 "느티나무" >
금당실 마을은 마을 곳곳에 고인돌과 무덤 등이 산재하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청동기 시대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상으로는 600년 전 15세기 무렵 "감천문" 씨가 이곳에 처음으로 정착하였다.
그 후 "함양박" 씨 및 "원주변" 씨가 입향하면서 번성하여 크게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하며, 인근 마을에는 "예천권" 씨, "안동권" 씨 등의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지자체에서는 약 100억 원의 예산을 배정하여 년차적으로 시설을 확장하면서 하회마을이나 양동마을 같이 세계적 문화 유산으로 탈 바꿈을 꿈구면서 마을 내부를 정비하고 있지만, 아직도 관광객이 머물고 갈 정도의 식당, 오락시설, 숲길, 주변문화 및 놀이시설, 산책길, 농장 체험장, 놀이공원, 연회장, 목욕탕, 공연시설, 조명시설, 전통마을 해설사 등 연계 관광 인플라 시설이 너무나 미흡하여 밤이 되면 완전히 대문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적막강산이 되는 곳이다.
인터넷 상에는 민박 등 다소의 시설이 완성되어 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전연 사실과 다름이 발생하여 아직도 관광지로써 머뭄을 완성하기에는 다소 시기 상조가 되는 장소이다.
< 인터넷에 선전하고 있는 "김대기" 민박집 >
인터넷 상에는 잘 소개되어 있는 금당실 최고의 시설이라고 자랑하는 "금당실한옥 체험관" 집에 하루 민박하였지만, 방에는 시골의 풍치를 즐기 수 있는 장작불로 군불도 지피지 않고 전기 시설로 방을 따뜻하게 하므로 시골의 정서를 느끼기에 많은 부족 함이 일어난다.
< 일행이 하루 머물기로 한 "금당실 전통" 체험 한옥 >
< 일행이 머물려고 하는 "별채의 집" 구조 >
< 본채 앞 한양에서 내려온 "친구" 도 한 컷 >
무엇보다도 전통 식사를 준비하여 준다고 예고 하였지만 전연 그런 시설이 없고 단지 마을 입구에 있는 한 식당에서 겨우 해결하여야 하는데, 매우 불편하다.
< 마을 입구에 있는 한 식당에서 겨우 "오리고기" 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
이러한 사정으로 인하여 마을 입구에 있는 한 식당에서 오리고기로 저녁식사를 끝내고 숙소에 들어가니 개인 사정으로 서울에 있는 친구 한명이 늦게 부인과 함께 도착하여, 추가 방을 하나 더 요구하나 빈방이 많이 있지만 사전 준비가 되지않고 긴급하게 불을 지피기에 많은 시간이 요구 된다.
그래서 지나가는 길손이 불시에 찾아왔을 때에는 전연 준비가 되지 않으므로 그냥 지나가야 하는 곳이다.
일단 예약된 곳이라 취소가 불가능하여 추위로 예정 시간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전일 저녁을 먹으면서 예약하여 놓은 식당으로 내려가 간단한 아침식사 끝내고 예천 근교 관광을 나서본다.
2일차 관광지는 2010년 10월 30일 구경한 곳과 동일한 장소로 이동하면서 관광을 추진하지만, 추위로 인하여 건성으로 답습만 반복하여 본다.
먼저 금당실 전통마을 인접하게 있는 예천의 명소 "용문사" 사찰로 올라가 보고, 이어 대구와 서울로 가는 방향에 있는 "회룡포" 를 보기 위하여 시내로 돌아나와 장안사 입구에 주차하고 회룡포 전망대까지 관광이 이어진다.
< 예천군이 자랑하는 "용문사" 전경 >
< 총 5개의 보물을 보유하고 있는 용문사에서 단일 건물로 3개의 보물을 보유하고 있는 "대장전" >
< 나무로 조각한 보물 제 989호 "목불 좌상 및 목각 탱화" >
< 용문사가 자랑하는 "성보박물관" 전경 >
< 용문사를 배경으로 "8인의 악당" 들 모습 >
< 회룡포로 올라가는 길에서 만나는 "장안사" 전경 >
< 삭막한 겨울 잠으로 들어가는 "회룡포" 전경 >
< 가을의 회룡포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마지막으로 회룡포 인접하게 있는 낙동강과 내성천 및 금천의 3개의 강이 합류하고 있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삼강나루터" 로 이동하여 간단한 막걸리로 이별주를 나누어 본다.
< 예천의 마지막 여행지 "삼강나루터" 전경 >
< 삼강나루터를 지키는 "회나무" >
< "주모와 뱃사공" 은 없어지고, 현대식 다리가 옛 향수를 부른다. >
< 삼강 주막집의 "메뉴와 계산서" 전경 >
< 친구 부인을 임시 "주모" 로 모시고 2011년 송년회를 보낸다. >
이젠 1 Cm도 더 늙지 말고 현재와 같이 젊음을 유지하면서 종종 만남을 가지고, 노후를 좀 더 보람차게 살자는 굳은 악수를 나누면서 각자 생활 터전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2011년 송년회 모임을 조촐하게 종결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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