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기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자리하고 있는 다산 '정약용' 생가를 다시 찾아.(7)

용암2000 2026. 7. 16. 11:05

2026년 7월 7-9일.(2박3일)

3. 세째날 : 7월 9일.(목요일)

2)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생가를 다시 찾으면서.

세미원 앞에 자리하고 있는 한 식당에서 연잎밥으로 점심식사를 끝낸 일행은 북한강 끝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두물머리 위를 관통하고 있는 신양수대교를 건너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도착한다.

이곳 조안면 능내리 마을 가장자리에 넓은 주차장과 함께 야산 기슭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님의 생가와 함께 그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데, 먼저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를 시킨다.

<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생가 조감도 >

< 주차장에서 '다산' 생가로 들어가는 길 >

나와 집사람은 두물머리와 다산 정약용 생가 및 생가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는 '실학박물관' 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2018년 8월 1일에 방문을 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이번에도 간략하게 관람하기로 한다.

주차장에서 도로를 건너 정약용 생가 방향으로 들어가는데, 거리 공원과 함께 만들어져 있는 도로 따라 걸어가면 먼저 '다산문화관(茶山文化館)' 건물을 자리하고 있어 내부로 들어가 본다.

< 생가 앞 거리 공원 내 다산이 저술한 '책' 의 조형물 >

< 거리 공원 내 다산이 발명한 '거중기' >

< 다산 생가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다산문화관' >

다산문화관에서는 다산 선생님의 연역이 기술되어 있는데, 다산은 1762년 음력 6월 16일 진주목사(晋州牧使)를 역임하신 아버지 나주정씨(羅州丁氏) 정재원(丁載遠)과 어머니 숙인(淑人) 해남윤씨(海南尹氏)의 넷째 아들로 탄생하였고 1836년 향년 74세 때 생가에서 타계하신다.

<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일대기를 기슬하고 있는 안내문 >

정약용 선생님의 자는 미용(美鏞)이고 호는 다산(茶山), 여유당(與猶堂) 등 30여 개를 사용하였는데, 그는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사환(仕宦)을 엮임 했으나 청년 때 접하였던 '서학(西學)' 으로 18년 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 '다산문화관' 의 내부 전경 >

< 다산 생애의 '년표' >

유배 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더 연마하여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하여 일표이서(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는데, 저술을 통하여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성호 '이익(李瀷)' 선생님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는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그의 사상은 조선 왕조의 기존 질서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혁명론' 이기보다 파탄에 이른 당시의 사회를 개량하여 조선 왕조의 질서를 새롭게 강화를 시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조선의 왕조적 질서를 확립하고 유교적 사회에서 중시하여 오던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이념을 구현 함으로써, '국태민안(國泰民安)' 이라는 이상적 상황을 도출해 내고자 하였다.

정약용은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고 소년 때 부터 이러한 학문적 분위기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가 태어난 이곳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일대를 훗날 많은 학자들로 부터 실학자로 불리게 되는 새로운 학풍을 형성한 곳이라 하겠다.

< 선비 체험용 '옷' >

< 다산이 저술한 '서책' >

< 가족에게 쓴 '편지' >

이렇게 다산문화관을 돌아보고 나서 더 안쪽으로 이동하면 다산 선생님의 생가(生家)로 들어가는 정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정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매우 넓은 마당이 자리하고 있다.

< '생가' 로 들어가는 정문 >

< 정문을 통과하면 만나는 '마당' >

넓은 마당의 오른편 구석으로 화장실과 함께 매우 작은 '여유당 다산 도서관' 이 자리하고 있고. 마당의 정면에는 거대한 다산의 생가가 되는 '여우당與猶堂)'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마당의 오른편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여유당 다산 도서관' >

< 마당의 정면에 자리하고 있는 생가 '여유당' 건물 >

여유당 건물의 오른편에 만들어져 있는 대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내부에는 돌담으로 구획하고 있는 'ㄱ' 자 형태의 안채를 비롯하여 사랑채 및 곡간채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여유당으로 들어가는 '대문채' >

< 여유당의 '안채' 건물 >

< 안채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우물' >

< '여유당' 의 내력을 설명하고 있는 입석 >

< '여유당'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여유당 왼편의 쪽문을 통과하며 마당으로 나오면 마당 중앙에 다산 선생님의 동상 및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마당 왼편으로 '다산기념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공사로 인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여유당의 왼편 쪽문으로 나오면 만나는 '마당' 의 전경 >

< 마당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다산' 의 동상 >

< 동상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느티나무' >

< 마당의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다산기념관' >

마당 뒤편에는 다산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문도사(文度祀)' 라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사당의 정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일단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사당 내에 다산 초상화가 걸려있다.

< 마당의 뒤편 '문도사' 의 정문 >

< 위패를 모시고 있는 '문도사' >

< 문도사 내에 모시고 있는 '다산' 의 초상화 >

< 무덤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에서 내려보는 '문도사' 전경 >

사당 오른편으로 야산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야산 입구에 다산이 직접 쓴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이 서 있고, 그 옆으로 만들어져 있는 나무테크 계단을 이용하여 능선으로 올라가면 다산의 무덤을 만난다.

< 계단 입구에 만들어져 있는 '비석' >

<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면서 쓴 '자찬묘지명' >

무덤에는 그의 부인이 되는 '풍산홍' 씨와 합장으로 묻혀 있고 무덤 가장자리에서 앞으로 내려보면 생가와 더불어 멀리 팔당댐이 훤하게 보이고 있는데, 한 눈으로 보아도 범상치 않은 명당 임을 알게한다.

< 능선에 자리하고 있는 '다산' 의 무덤 >

< 무덤 앞에서 바라보는 '생가와 팔당댐' >

무덤의 반대편이 되는 오른편으로 내려와 다산 생가를 떠나기로 하는데, 정문으로 나서면 바로 앞에 실학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지만 나는 2018년 8월 1일 다신 생가 방문 때 관람하여 오늘은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 무덤 오른편으로 내려오면 만나는 '생가' >

< 생가 앞에 자리하고 있는 '실학박물관' >

3) 한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젠 집으로 들아가야 하는 시간의 임박으로 인하여 다산 생가를 떠난 일행은 한강변으로 만들어져 있는 '다산로' 지방도로 따라 서울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다산로 좌우 곳곳에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다.

많은 카페 중에서 다소 넓은 주차장을 가지고 있는 '9 BLOCK' 카페로 들어가 보는데, 카페에는 1층과 함께 지하 1층으로 구성하면서 한강을 내려다 불 수 있는 조망을 가지고 있다.

< '9 BLOCK' 카페의 전경 >

< 카페에서 판매하고 있는 '음료수와 빵' >

< 1층 창가에 앉아 커피를 즐기고 있는 '손님' >

< 지하 1층에 자리하고 있는 '카페' 내부 >

<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는 '한강' >

< 일행이 주문한 '커피' >

일행은 커피 한잔을 시키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데, 지금 까지 머물었던 자연휴양림과 더불어 탐방한 관광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 7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