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기타)

부산 임시수도 시절에 사용하였던 '이승만 대통령 관저 및 기념관 전시실' 을 돌아보고 나서.

용암2000 2019. 5. 28. 18:25

2019년 5월 24일. (금요일)

 

1. 서언.

동아대학교 부민 캠퍼스 정문을 통과하여 학교 앞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따라 야산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높은 계단을 만나는데, 그 계단의 끝지점에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정문이 자리하고 있다. 

 

< 동아대학교 부민 캠퍼스에서 '임시수도기념관' 으로 올라가는 길 >

 

< '임시수도 기념관' 으로 들어가는 정문 >

 

부민동에는 6.25 전쟁 당시 임시수도가 부산으로 이관하면서 정부청사로 사용하였다가 현재로는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이 되는 건물과 더불어 주변으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 관저 및 부산고등검찰청의 검사장 관사가 함께 하는 바운다리 내에 있다.

 

< 부산 '임시수도 기념관' 조감도 >

 

1983년에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하게 되자 부산광역시에서는 이 관저 건물을 매입하여 1년이 경과한 1984년에는 건물 내부에 한국 전쟁기의 각종 사진자료 및 관련 유물 등을 전시하고, 이 관저를 '임시수도 기념관(臨時首都 記念館)' 이란 이름으로 일반인에게 공개가 되어진 장소이라 하겠다.

2000년 이후 대통령 관저 건물의 복원공사와 내부 꾸미기 공사가 연이어서 진행이 되었고, 2018년 11월 6일에 대통령 관저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46호로 지정이 된다.

정문을 통과하여 조그마한 마당으로 들어서면 마당의 주변으로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어져 있는데, 정원에는 휴식의 공간이 되는 의자와 함께 6.26 전쟁 당시 종군 화가가 되는 '김성환' 선생님의 전쟁 참화의 스케치 그림이 곳곳에 붙어있다.

 

< '김성환' 선생님의 6.25 스케치 >

 

정원으로 둘려 쌓여있는 마당을 중심으로 2개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앞에 있는 건물은 부산 '임시수도 대통령관저(臨時首都 大統領官邸)' 의 건물이 되고 뒤편에 있는 건물은 '임시수도 기념관 전시실(臨時首都 記念館 展示室)' 이 된다.

 

2. 부산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의 관람

먼저 앞에 있는 대통령 관저의 내부를 관람하기 위하여 미닫이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면 안내원과 더불어 책상 위에는 관람에 도움이 되는 팜플릿이 진열하고 있는데, 먼저 팜플릿 한장을 취득하면서 간단하게 정독을 하고 나서 내부를 관람하여 보기로 한다.

 

< 임시수도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었던 부산 '대통령 관저' 전경 >

 

팜플릿에 따르면 이곳 대통령 관저는 1926년 8월 10일에 준공하여 경남도지사 관사로 사용하였으나, 한국전쟁기 부산 임시수도 시절(1950년 에서 1953년 까지)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관저의 내부에는 대통령 내외 및 비서들이 거주하면서 집무를 수행하고 중요한 국빈들을 맞이한 공간으로 활용하였는데, 임시수도 시기에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을 당시의 실내 구조와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한다.

1층은 응접실과 더불어 서재, 내실, 거실, 식당, 부엌, 욕실, 화장실, 증언의 방, 생각의 방 등으로 꾸며 임시수도 시기의 모습으로 연출하였고, 2층에는 집무실과 화상의 방으로 꾸며두고 있다. 

 

< '대통령 관저' 의 내부 구조 >

 

내부를 관람하기 위하여 신을 벗어 신발장에 두고 슬리퍼로 바꾸어 신고 내부로 올라가 먼저 오른편으로 들어가면 응접실(應接室)을 만나는데, 응접실은 다소 넓은 공간의 중앙에 회의용 탁자와 함께 한쪽 벽면에는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 '응접실' 내 회의용 탁자 >

 

응접실의 남쪽 방향으로 작은 방이 하나가 있는데, 이 작은 방은 서재(書齋)가 되면서 서재에는 각종 서적과 함께 중앙에는 한개의 책상 및 밀납으로 만든 이승만 대통령이 의자에 앉아 있다. 

 

< 응접실과 함께 하고 있는 '서재' >

 

다시 응접실을 나와 안내실 왼편으로 이동하면 입구에 변소로 들어가는 문을 만나는데, 변소는 3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지면서 각 구간마다 3개의 문이 달려 있다.

건물을 신축할 당시에 한국에서는 변소가 건물 내부에 둔다는 것을 상상도 못하는 시기인데, 첫번째의 문을 열면 일정한 공간을 두고 두번째의 문 안에는 벽면으로 매우 작은 소변기가 붙어있고 마지막 문을 열면 재래식 변기가 자리하고 있다. 

 

< 2번째 공간의 벽면에 붙어있는 '소변기' >

 

< 제일 안쪽에 있는 '재래식' 변기 >

 

이렇게 3중의 문을 사용하는 것은 1926년 건물을 신축 할 당시에는 수세식 변기는 꿈도 못 꾸는 시절이라 아마 냄새의 제거 방법으로, 3중의 문을 사용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을 가진다고 안내원이 설명하여 준다.

화장실 앞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다소 넓은 계단과 함께 각 방으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가 자리하고 있지만, 통로의 폭이 너무나 좁아 2명이 교행하기에는 불편 할 정도의 폭이 된다. 

 

< 좁은 공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통로' >

 

먼저 앞으로 들어가면 대통령 부부가 거주하였던 내실(內室)이 자리하고 있는데, 내실에는 자개장을 비롯하여 반닫이, 함, 옷 등을 비치하고 있어 대통령의 검소한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 대통령 부부가 기거하는 '내실' >

 

그 앞으로는 거실(居室)이 자리하고 있는데, 거실에는 이승만 대통령 가족들이나 경무대 내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현재에는 임시수도 시절의 정치, 교육, 피난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미니어처를 전시하고 있다. 

 

< 가족 또는 경무대 직원이 머물고 있었던 '거실' >

 

거실의 안쪽에는 식당과 부엌이 자리하고 있으며 집의 제일 안쪽 구석으로 다른 문을 사용하여 들어가는 욕실(浴室)이 연속적으로 자리하고 있고, 욕실의 앞에는 생각의 방과 증언의 방이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다. 

 

< 부엌과 함께 하고 있는 '식당' >

 

< 건물의 제일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욕실' >

 

생각의 방에는 다수의 서적를 비치하고 있고, 증언의 방에는 6.25 당시 특공대원으로 참가하였던 이정숙 할머니의 밀납 인형과 함께 전쟁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육성 녹음기를 통하여 연속적으로 해설이 흘러 나오고 있다.

 

< 욕실의 앞에 있는 '생각의 방' >

 

< 증언의 방에서 방송하고 있는 '이정숙' 특공대 할머니 >

 

이렇게 1층의 내부를 관람하고 나서 2층으로 올라가 보기로 하는데, 2층의 올라가는 계단은 변소 앞에서 올라가는 다소 넓은 계단과 더불어 생각의 방과 증언의 방 사이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의 2중 구조로 되어져 있다.

 

<증언의 방과 생각의 방 사이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 >

 

좁은 계단을 이용하여 2층으로 올라가면 다소 넓은 공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집무실(執務室)과 함께 한쪽 코너에 화상의 방이 자리하고 있는데, 집무실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이 6,26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현수막이 한쪽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 다소 넓은 공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집무실' >

옆에 있는 화상의 방에는 한대의 TV를 통하여 전쟁시대에 부산의 생활상을 설명하고 있는데, 6.25 당시 부산의 시민이 40만 정도가 되지만 약 70만명의 피난민들이 운집하므로 부산의 애환을 그린 내용을 보고 있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끼게 하는 영상물이라 하겠다.

 

< TV로 6.25의 참상을 방영하고 있는 '화상의 방' >

 

이렇게 하여 대통령 관저를 관람하고 나서 건물 밖으로 나갈려고 하니, 안내원이 친절하게 건물을 돌아서 전면으로 가면 임시수도 기념관 전시관도 관람하여 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첨언(添言)하여 준다.  

 

3. 부산 임시수도 기념관 전시실 관람.

대통령 관저의 건물을 돌아서 전면으로 이동하여 가면 잘 가꾸어져 있는 정원이 대통령 관저의 건물과 조화를 이루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망중한에 빠지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아름다운 꽃을 가꾸고 있는 '정원' >

 

< 대통령 관저 앞에 자라고 있는 '이대나무(대나무 종류)' >

 

대통령 관저의 전면 정원에서 한 단계의 아래 방향으로 붉은색을 하고 있는 기념관 전시실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문을 통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이곳에도 안내원과 함께 안내 팜플릿을 비치하고 있어 잠시 읽어보는 시간을 가진다.

 

< 대통령 관저의 앞 정원 보다 다소 아래에 있는 '기념관 전시실' >

 

안내 팜플릿에 따르면 이 전시관은 1987년 9월에 개원한 부산고등검찰청의 검사장 관사 용도로 지어졌던 건물로 검찰청사의 이전에 따라, 2002년에 임시수도 기념관 영상실(映像室)로 개편하였다.

 

< 기념관 전시실 입구에 붙어있는 '포스터' >

 

2012년에는 전면 리모델링 공사를 통하여 한국전쟁기 임시수도로서의 부산의 위상과 역사성을 보여주는 전시실로 거듭 탄생하였는데, 1부에서는 전쟁과 삶을 주제로 한국전쟁이 조망되어 있을 뿐 아니라 피난민의 생활상과 전쟁기의 예술활동 등을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임시수도 1.000일을 주제로 당시 부산의 정치, 행정, 경제, 문화의 실상을 세부적으로 기술 함과 동시에 영상물로 처리하므로 우리 피난민들의 아푼 역사를 알게하여 준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 전시실은 대통령 관저와 다르게 신을 벗지 않은 상태에서 각 전시실을 관람하여 보기로 하는데, 전시실 마다 우리의 국민들이 어떠한 고충을 꺽으면서 전쟁을 치루었는지 알게하여 준다.

 

< '전시실' 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벽면 >

 

각 부스를 통하여 전쟁의 실상을 하나하나 구경하여 보지만 모두가 비극의 참상을 표현하고 있는 소품 또는 디오라마(Diorama)가 전부가 되므로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관람을 끝내기로 한다.

 

< 피난민들이 살았던 '나무 집' >

 

< 피난민들이 입었던 '옷과 생필품' >

 

< 피난민들이 먹었던' 밀면' >

< 전쟁 시기에 공부를 하였던 '학교' >

 

< 전쟁시기에 만든 '도자기' >

 

< 사람의 손으로 그린 '도자기' 도형 >

 

< 임시수도 1.000일을 홍보하는 '부스' >

 

< 기념관 전시실 앞 마당에 설치하고 있는 '천막' 학교 >

 

< '천막' 학교의 내부 모습 >

 

오늘 부산의 옛 건물이 되는 부산 임시수도 기념실을 돌아보면서 6,25의 참상을 알게하는 시간을 한번 더 상기하면서 기념실 주차장 앞으로 이어지는 다른 통로를 통하여 기념실을 벗어나 아들과 손녀가 기다리고 있는 하단으로 달려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