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들째 날.(8월 6일 ; 월요일)
1. 천년고찰 신륵사 탐방.(오전)
새롭게 입주하고자 하는 세입자가 이사 하루 전 아파트 대청소를 하겠다는 이야기로 아침 일찍 짐을 정리하고 대구로 내려가기로 하는데, 대구로 내려가는 길에 평소 한번 방문하여 보고 싶었던 경기도 여주시(驪州市)를 돌아보기로 한다.
오늘 내가 방문하고 싶은 곳은 여주시가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 중에서 신륵사, 명성황후 생가, 세종대왕의 영릉, 효종대왕의 영릉 등을 목표로 삼고 출발하기로 하는데, 문제는 금일이 월요일이라서 휴관의 여부가 관건이 된다.
네비게이션을 의존하면서 중앙고속도로 및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여주 Toll gate를 벗어나면서 여주시가지를 관통하는 남한강을 건너자 마자 남한강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신륵사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 공원과 함께 하고 있는 '신륵사' 주차장 주변 >
일반적으로 유명한 사찰은 산속에 자리하고 있어 약간의 산행이 필요하겠지만 이곳 신륵사는 남한강변에 자리하므로 주차장에서 부터 경내로 들어가는 길 전체가 평지로 이루어지고 있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소 걷기가 수월한 편이라 하겠다.
주차장에서 사찰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입장권을 구입하는 매표소가 있으면서 매표소 인접하게 사찰의 경내를 구획하는 일주문이 자리하고 있고, 일주문에서 부터 울창한 소나무 숲속으로 조금 걸어가면 왼편으로 템플 스테이(Temple stay)를 할 수 있는 한옥촌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 '신륵사' 를 구획하는 일주문 >
< '템플 스테이' 를 하는 한옥촌 >
한옥촌 건물에서 부터 조금 더 내부로 걸어가면 사찰의 2번째 관문이 되는 불이문(不二門)을 만나고, 불이문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이제는 오른편 남한강변으로 매우 운치가 있는 정자 '보제루(普濟樓)' 가 아름다운 자태를 가지고 있다.
< 2번째의 관문이 되는 '불이문' >
< 남한강변에 있는 '보제루' 정자 >
< '보제루' 정자에서 내려보는 남한강 >
보제루에서 부터 한참 더 내부로 걸어가면 신륵사 경내에 도착이 되는데, 신륵사는 남한강변의 왼편에 오똑솟아 있는 해발 156m 봉미산(鳳尾山)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사찰의 앞에는 남한강과 더불어 넓은 여주평야가 펼쳐지는 천하의 명당이라 하겠다.
< 봉미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신륵사' 전경 >
경내의 입구 세심정(洗心亭)이라 정자 속에 우물이 있어 쪼롱박으로 한 바가지의 물을 떠서 갈증을 해소시키고 나서 본격적으로 경내를 투어하여 보기로 하는데, 입구에 있는 범종각 건물과 함께 2층의 구룡루(九龍樓)이라는 누각 건물이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다.
< 경내 입구 마당에 있는 '세심정' >
< 세심정 뒤편에 있는 '범종각' >
< 범종각 오른편에 있는 '구룡루' >
구룡루 건물 옆을 통과하여 일단의 축대 위로 올라서면 다소 아담한 마당을 만나면서 마당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적묵당(寂默堂)과 심검당(尋劍堂)을 비롯한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마당의 중앙에는 보물 제225호가 되는 '다층석탑(多層石塔)' 이 자리하고 있다.
< 마당의 오른편에 있는 '심검당' >
< 극락보전 앞 보물 제225호 '다층석탑' >
다층석탑 뒤편에 있는 높은 돌 계단으로 올라서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가 되는 극락보전(極樂寶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극락보전 내에는 보물 제1791호가 되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木造阿彌陀如來三尊像)' 이 인자하게 자리에 앉아 있다.
< 주불을 모시고 있는 '극락보전' >
< 극락보전 내에 모시고 있는 보물 제1791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
<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의 안내문 >
이곳 신륵사는 예로 부터 전하는 이야기의 의하면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어느 날 원효대사의 꿈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있던 연못을 가리키면 신성한 가람이 설 곳이라고 알려준 후 사라졌다고 한다.
그 말에 따라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 하였으나 뜻대로 잘 되지 않았는데, 이에 원효대사가 7일 동안 기도를 올리고 정성을 드리니 아홉 마리의 용이 연못에서 나와 하늘로 승천한 후에야 비로써 절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절의 이름을 신륵사라고 칭하여 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하나는 고려 우왕 때 여주에서 신륵사에 이르는 마암이라는 바위 부근에서 용마(龍馬)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나옹선사가 신기한 굴레를 가지고 그 말을 다스렸다는 설화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이를 사람들이 붙잡을 수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 (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지면서 신력으로 제압하였다고 하여 신력의 신(神)과 제압의 뜻인 륵(勒)을 합쳐서 '신륵사(神勒寺)' 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극락보전 뒤편으로 돌아서 가면 오른편으로 삼성각(三聖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삼성각 건물에서 왼편으로 내러가면 수백년의 수령을 가진 향나무와 더불어 뒤편으로 보물 제180호 '조사당(祖師堂)"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조사당 건물은 정면 1칸에 측면 2칸의 매우 적은 건물이 된다.
< 극락보전 뒤쪽 오른편에 있는 '삼성각' >
< 극락보전 뒤쪽 왼편에 있는 보물 제180호 '조사당' >
< 조사당 앞 수령 600년 된 '향나무' >
조사당 내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7호가 되는 삼화상진영(三和尙眞影) 이라는 3분의 초상화가 붙어있는데, 중앙에는 자공화상이 되고 오른쪽에는 나옹화상의 그림이며 왼편에는 무학대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조사당 내에 붙어 있는 '3분의 초상화' 및 범종 >
조사당 왼편으로 명부전(冥府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 새롭게 건축이 되어진 봉송각(奉送閣) 건물과 부처님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건물은 어느 독지가가 기증한 개인 자산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 조사당 왼편에 있는 '명부전' >
< 명부전 왼편에 있는 '봉송각' >
조사당 뒤편으로 만들어져 있는 돌계단을 이용하여 한 5분 정도 야산으로 올라가면 다소 넓은 공터에 둥근 형태의 석종부도 한기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부도가 '보제존자석종부도(普濟尊者石鐘浮屠)' 로 보물 제228호가 된다.
보제존자는 나옹화상의 승명(僧名)으로 나옹화상은 말년에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하므로 경내 곳곳에 나옹화상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특별하게 극락보전 정문 위에 '천추만세' 이라는 현판도 남아 있다고 한다.
< 신륵사 경내 왼편 뒤산 중터에 있는 '석종부도' >
< 보물 제228호 '보제존자 석종부도' >
< '보제존자 석종부도' 의 안내문 >
이곳 석종부도로 들어가는 입구에 보제존자석종을 설명하는 석종비가 서 있고 반대로 석종부도 앞에는 석등 한기가 자리하고 있는데, '석종비(石鐘碑)' 는 보물 제229호가 되고 '석등(石燈)" 도 보물 제231호가 되어져 있어 석종부도를 중심으로 주변에 3개의 보물이 산재하고 있다.
< 보물 제229호 '석종비' >
< '석종비' 의 안내문 >
< 보물 제231호 '석등' >
< '석등' 의 안내문 >
<화사석 가장자리에 세겨진 '비천상과 이무기' >
석종부도 군락지를 한참 구경하고 나서 천천히 경내로 내려와서 구룡루 앞으로 나오면 다소 넓은 마당과 함께 한쪽 구석에 '김병기' 선생님의 공덕비가 자리하고 있고, 그 앞에 수령 600년이 되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으며 이 은행나무 중간지점에 죽은 나무가지 하나의 모습이 마치 관세음보살 상을 하고 있다.
< 구룡루 옆에 있는 '김병기' 공덕비 >
< 수령 600년이 되는 '은행나무' >
< 3개의 나무가지 사이에 있는 '관세음보살' 상 >
은행나무 앞에 있는 남한강변 따라 조금 올라가면 바위 위에 거의 파손이 되어 허물어져 가고 있는 3층 석탑과 함께 정자 한 채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정자에서 강월헌(江月軒)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데, 정자에 올라가 남한강을 내려보는 풍경과 더불어 강 건너편 여주시가지가 마치 한폭의 산수화와 같이 머물고 있다.
< 남한강변에 있는 '강월헌' 정자 >
< 파손 되어가고 있는 3층석탑과 함께 하는 '강월헌' >
아마 이곳 정자에서 달을 바라보면 천하 제일경이 되므로 정자의 이름도 강월헌 이라고 지었고, 예로 부터 농경사회에서 용은 물의 변화를 가져오는 신으로 여겨져 왔다.
< 강월헌 정자에서 바라보는 '남한강 및 여주시가지' >
이처럼 용과 관련된 설화는 신륵사가 강가에 있음으로 해서 생겨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홍수와 범람이 잦은 남한강의 자연환경과 지역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옛 선인들이 이곳에 절을 세우고 강을 돌보았을 것 이다.
정자를 내려와서 뒤편 야산으로 올라가면 정자 바로 뒤편으로 높은 탑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 탑은 경주에 있는 분황사 모전석탑과 비슷하게 벽돌을 만들어서 탑을 쌓았는데, 여기에 있는 탑의 명칭을 '다층전탑(多層塼塔)' 이며 보물 제226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 보물 제226호가 되는 '다층전탑' >
< '다층전탑' 에 대한 안내문 >
전탑의 바로 뒤편에 비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내부에 있는 비석은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로써 보물 제230호로 지정이 되어져 있는데, 이곳 신록사는 곳곳에 문화재가 산재하고 있어 문화재 보고의 사찰이 된다.
< 보물 제230호가 되는 '대장각기비' >
< '대장각기비' 의 안내문 >
비각 뒤편으로 이어지는 능선 따라 조금 올라가면 능선 주변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도열하고 있으면서 각 소나무 마다 고유의 명찰을 달고 있는데, 죽은 사람의 시신을 화장하여 나무 아래에 매장한 수목장 나무이라 하겠다.
< 비각 뒤편에 있는 '수목장' 소나무 >
다시 능선으로 내려와 신륵사 사찰 방향으로 들어가 한번 더 경내를 횡하게 돌어보면서 사찰을 떠나기로 하는데, 비록 나의 삶이 있는 대구와 멀리 떨어져 방문이 어려운 사찰이지만 많은 문화재와 더불어 부도탑 군락지가 산재하고 있어 항상 기억하고 싶은 사찰이 된다.
< 사찰의 왼편 산 속에 있는 '석조승탑' >
<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비석' >
더위로 인하여 세부적으로 관람하지 못하고 다시 세심정으로 찾아가 한 바가지 물을 마시고 나서 천천히 걸어 주차장으로 나아가는데, 불원천리(不遠千里) 여주시 까지 찾아온 보람을 느끼게 하는 사찰이 된다. -끝-
'문화유산 답사기.(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산 임시수도 시절에 사용하였던 '이승만 대통령 관저 및 기념관 전시실' 을 돌아보고 나서. (0) | 2019.05.28 |
---|---|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에 있는 '세종대왕 영릉(英陵)' 및 '효종대왕 영릉(寧陵)' 을 방문하면서. (0) | 2018.08.31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탄생한 다산 '정약용' 선생님 유적지 및 생가를 돌아보고. (0) | 2018.08.18 |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정산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금정총림 "범어사" 를 돌아보면서. (0) | 2014.11.21 |
문화의 도시를 자랑하는 수원시 "화성 및 화성행궁" 을 해설사와 같은 동문과 함께 걸으면서.(2) (0) | 2013.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