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1일(목요일)
모처럼 수도권으로 장거리 여행 중 서울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고향 친구와 함께 경기도 파주시와 양주군의 경계선이 있는 "감악산(紺岳山)" 으로 산행을 하기 위하여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여 양주역에 내린다.
9시 30분 먼저 도착한 내가 양주역 대합실에서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고향 친구가 도착하므로 구내 상점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조우(遭遇)의 인사를 나누어 본다.
< 고향 친구와 만남을 가지는 "양주역" >
이어 역을 벗어나 도로 건너편에서 감악산으로 가는 25번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약 1시간 정도 달려가면 산행의 들머리에 있는 범륜사 입구에 10시 35분 경에 도착을 한다.
주중이라서 그런지 같은 버스에서 산행을 시도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고, 단지 산행 입구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범륜사 절에서 불공을 드리기 위하여 서울에서 출발한 한 아주머니만 하차를 하므로 함께 산행 들머리로 들어선다.
< 감악산 산행 들머리에 있는 "범륜사" 입구 주차장 >
오늘 산행을 갈려고 하는 감악산은 개성의 송악산(489m), 과천의 관악산(631m), 포천의 운악산(945m), 가평의 화악산(1450m)과 더불어 경기 5악(岳) 중에 하나의 산이 되어지는데, 북한에 있는 송악산은 지리적인 위치로 산행이 불가능한 산이다.
감악산은 남한에 있는 100대 명산으로 대구에 있는 산악회에서 몇 번 산행을 추진하였지만 시간적인 한계로 차일피일 하다가 기억 속에 묻어둔 산으로써, 불원천리 길을 찾아가는 곳이다.
우리나라 산경표(山經表)에 따르면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원산, 낭림산, 금강산을 지나 태백산까지 내려와 소백산, 지리산까지 뻗은 제일 큰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 한다.
이 백두대간이 금강산을 향하여 달리다가 분수령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것이 한북정맥(韓北正脈)이며, 한북정맥이 양주에서 갈려져 적성쪽으로 뻗어 내려간 산줄기가 감악산이다.
그래서 감악산은 파주시 적성면과 양주군 남면을 경계로 하는 위치에 있는 해발 675m의 산으로 삼국시대 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왔는데, 지역 주민들에게는 감박산으로 더 알려져 있으나 고려사(高麗史)나 동국여지승람에서는 "감악" 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이 산에는 범륜사(梵輪寺)를 비롯하여 수월사, 봉암사, 미타사 등의 사찰이 존재하고 있어 중부 지역에서 중요한 신앙 처의 구실을 하고 있으며, 지금도 봄철에는 많은 불교 신자들이 찾는 산이라고 하겠다.
산의 정상에는 "감악산신라고비(속칭 빗돌대왕비, 설인귀 사적비)" 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일대는 삼국시대 부터 한반도의 지배권으로 다투던 삼국간의 혈투장이었고 거란 침략과 한국 전쟁의 중심지 역활을 한 역사적인 장소라고 한다.
전일 내린 비로 많은 물이 흘려내리는 개울 따라 조금 올라가면, 산불 감시초소가 나타나면서 근무중인 아저씨가 즐거운 산행이 되면서 전체 산행 시간이 약 3-4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하면서 천천히 걸으면서 산의 묘미를 느껴 보라고 이야기하여 준다.
아스팔트 포장길 따라 고개의 모퉁이를 돌아서 한 30분 정도 올라가면 범륜사 마당에 도착하여 지는데, 사찰 규모는 제법 크지만 법당과 요사채 건물 등 짜임새가 매우 혼란 스러운 사찰이 되어진다.
< 범륜사의 "대웅전" 모습 >
경내로 들어가면 먼저 아담한 대웅전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대웅전 건물의 왼편으로 범종각 건물과 극락보전 건물이 보이고 있는데, 이 극락보전 주변에 흰 백옥으로 만든 십이지상과 관음상(觀音像)을 모시고 있다.
< 대웅전 왼편에 있는 "범종각" 건물 >
< 사찰 왼편 끝자락에 있는 "극락보전" >
그런데 이 관음상은 좌대 높이가 4m에 불상 높이가 7m 로써 동양 최초의 백옥으로 만든 불상이라고 하는데, 이 불상은 1995년 중국 하북성 아미산에서 만들어서 우여곡절과 시련을 꺽으면서 머나먼 여정을 통하여 이곳 범륜사에 안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 극락보전 앞에 있는 백옥으로 만든 "관음상" >
< 극락보전 가장자리에 백옥으로 만들어진 "십이지상" >
이 밖에 경내 구석구석을 돌아보면 많은 불상과 조각품들이 백옥으로 만들어져 있어, 완전히 백옥으로 치장을 한 거부의 사찰이 되어지는 것 같다.
< 경내 곳곳에서 만나는 백옥 "조각품" >
사찰을 돌아서서 나오면 사찰 앞으로 개울이 흘려가고 있으면서 이곳 개울에는 2011년도 대홍수로 완전하게 파괴되어 복구한 흔적이 보이고 있는데, 용하게도 사찰에는 홍수의 피해를 주지 않고 물이 지나간 흔적이 불처님의 염원이 아닌지 모르겠다.
< 2011년 대홍수 때 "파괴된 개울" 을 복구하는 모습 >
본격적으로 피괴된 개울 옆으로 산행이 시작하면서 고도를 상승하여 보는데, 곳곳에 산사태로 인하여 허물어진 비탈면과 그곳에서 발생한 토사가 산행 길을 억망으로 만들고 있다.
더욱더 범륜사를 되돌아 보게 하는데, 정말 이렇게 많은 토사를 감당하면서 사찰이 무사하다는 것은 백옥으로 만든 관음상의 신통력에 의한 발로가 아닌지 궁궁하여 진다.
< 처음으로 만나는 "산사태" 흔적 >
< 다시 만나는 산사태로 "복원" 하고 있는 모습 >
토사가 흘려내리는 장소를 벗어나 조금 올라가면 숯 가마터가 나타나는데, 옛날 감악산에는 울창한 참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여러 곳에서 숯 가마터가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 산행길에서 만나는 "숯 가마터" >
이 숯 가마터에서 부터 울창한 소나무 숲을 형성하고 있어 삼림욕을 즐기면서 조금 올라가면 처음으로 3거리 길을 만나는데, 이 3거리가 임꺽정봉으로 시작하여 감악산 정상을 오르고 나서 까치봉으로 한바퀴 돌아서 오는 원점회귀의 산행길이 되는 지점이라고 한다.
< "삼림욕" 을 즐기면서 걷는 등산객 >
모처럼 고향 친구와 함께 산행이 이루어지다 보니 소꼽시절 등 어린시절의 추억과 얼마남지 않은 인생 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데, 친구는 서울에서 경찰로 정년 퇴임하고 나서 현재 개인택시를 운행하고 있다.
그의 집이 있는 수유동 산악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매주 산행을 추진하고 있으나, 금년 하반기 부터 모든 것을 정리하고 혼자 고향으로 내려가 삼림(森林)사업 방향으로 일을 하기 위하여 실천 단계로 접어 들었다고 한다.
아직 몇년 더 개인택시를 운전하여도 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본인의 꿈을 실천할 수 없다고 하면서 용감하게 인생 3막을 진행 할려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먹고 잠자는 상팔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너무나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후반기 인생의 꽃을 피우면서 무아지경으로 계곡 따라 걷다보면 또 다시 3거리 이정표를 만나는데, 여기서 오른편 임꺽정봉으로 올라가는 길을 선택하여 본다.
< "임꺽정봉" 을 가르키는 이정표 >
본격적인 오르막으로 형성된 길로 한 30분 정도 올라가면 능선에 도착하여 지면서 조금씩 감악산 조망이 열리면서 곳곳에 암릉 길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 나무테크 길과 Rope를 많이 설치하여 주므로써 매우 안전한 길이 되어진다.
한 바위 능선에 올라서서 앞으로 내려다 보면 넓은 경기도 지방의 산맥이 눈 앞에 머물고 있으나 그 산맥으로 부터 먹구름이 물려오고 있어 넓은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여 애석하지만, 반대로 능선 뒤편으로 오늘 산행의 최고점인 감악산 정상에는 거대한 통신 안테나가 높게 서 있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자리잡고 있다.
< "먹구름" 이 움직이고 있는 산맥의 조망 >
몇 고비의 바위를 타고 오르 내림을 반복하여 올라가기 시작하면 곳곳에 방공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 방공호들이 파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농사용으로 사용하는 검은 비닐 천막으로 눈 가림만 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감악산 풍경을 많이 저하시키고 있다.
< 잘 만들어진 나무테크와 곳곳에서 만나는 "방공호" >
가는 길 주변 곳곳에 암릉 사이에 천년의 세월 동안 인고의 힘으로 성장하고 있는 낙낙장송의 소나무가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면서 암릉길 따라 한참 올라가면 "장군봉" 정상에 도착하여 진다.
< 아름다운 "바위" 모양을 구경하면서 >
< 바위 위에서 곧곧하게 살아가고 있는 "소나무" >
< 바위 위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에도 올라보며 >
< "장군봉" 정상을 알리고 있는 조감도 >
이 장군봉에서 앞으로 바라보면 거대한 임꺽정봉 바위가 직벽의 낭터리지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 환상적으로 펼쳐지므로 빨리 걸어갈려고 하는데, 먹구름이 이곳으로 날아와서 눈으로 변화시키면서 내리기 시작한다.
< 장군봉에서 바라보는 직벽의 "임꺽정봉" >
< 눈 빨이 휘날리고 있는 "감악산" 정상 모습 >
장군봉에서 눈 내리는 바위길로 조금더 올라가면 이윽고 해발 676.3m "임꺽정봉" 정상에 도착하여 지는데, 임꺽정봉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면서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있어 한 산행객에게 부탁하여 사진 한장 찍어본다.
< "임꺽정봉" 정상석을 배경으로 >
그러고 나서 임꺽정봉에 대한 내력을 읽어보는데, 임꺽정봉은 감악산 정상 앞에 있는 봉우리로써 생긴 모양이 매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일명 "매봉재" 라고도 불려진다고 기술되어 있다.
< "임꺽정봉"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임꺽정봉에서 주변 조망을 구경하여 보면 눈 앞으로 북한산과 수락산 및 도봉산 등 서울 근교의 산과 임진강, 임진강 뒤편으로 연결되는 개성 송악산 등이 한 눈으로 들어온다는 안내 지도에 나타나지만, 오늘은 흐린 날씨로 그렇게 멀리까지 조망이 열리지 않아 애석하여 진다.
< 임꺽정봉 정상에 있는 "감악산" 안내도 >
주변에 있는 임꺽정 바위로 넘어가 임꺽정이 앉아서 나라를 걱정하였다는 의자 바위가 있어 그 바위에도 한번 앉자 보고, 바위 아래 편에 임꺽정굴 혹은 설인귀굴이 있다고 하여 내려가 보니 낭터리지 아래를 가르키면서 출입금지를 시키는 안내문과 새끼줄로써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임꺽정이 앉아 있었다는 "의자" 바위 >
< "임꺽정굴" 이 있다고 하는 안내문 >
< 이곳 낭터리지 아래에 "임꺽정굴" 이 있다고 하나 >
휘날리는 눈으로 인하여 다소 추위가 엄습하므로 에둘러 임꺽정봉 뒤편에 있는 감악산 정상으로 발길을 잡아보는데, 감악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방송국과 군사용 통신기지의 안테나가 숲 사이로 간간히 보이고 있는 그 방향으로 조금 내려갔다가 올라가야만 하는 길이 되어진다.
그런데 이곳 임꺽정봉과 감악산 정상 사이의 능선에는 더욱더 많은 군사 시설물이 흉물 스럽게 방치하고 있는데, 분단의 아품을 한없이 느끼게 하는 곳으로 가슴 아프게 지나치면서 조금 올라가면 아름다운 정자가 지어져 있어 정자로 들어가 양주역에서 구입한 김밥 몇 줄로 점심식사를 대신한다.
< 아름다운 조망을 가지고 있는 "정자" 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
비록 좋은 풍광을 가진 정자에서 점심을 먹고 있지만, 추위의 엄습으로 에둘어 자리를 비워주고 감악산 정상으로 올라가니 정상에는 헬기장으로 넓은 공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 헬기장 뒤편으로 통신용 건물과 함께 높은 안테나 서 있고, 철조망 옆으로 만들어진 초소에서 군인들이 추위로 인하여 중무장을 하면서 보초를 서고 있다.
이 통신 시설을 보호하는 철조망 앞에 감악산 정상 표시석과 더불어 높은 "감악산비(紺岳山碑)" 가 서 있는데, 이 비석에는 기단부, 비신, 개석을 갖춘 화강암으로 만든 비석으로 높이 170Cm에 너비가 70-79Cm의 비석이다.
< 감악산 정상에 있는 "감악산비" 모습 >
이 비(碑)에는 글씨가 전연 확인되지 못하고 있어 "몰자비(沒字碑)" 라고 부르기도 하며 혹은 "설인귀비" 또는 "빗돌대왕비" 등으로 구전(口傳)되어 내려오고 있고, 감악산 주변에 있는 감악산비 전설도 읽어보면서 시간을 허비하다가 몇 사람이 올라오므로 그분들에게 부탁하여 친구와 함께 인증샷 한장을 또 남겨 본다.
< "감악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
감악산 뒤편 한 능선 위에 높은 마리아 상이 보이므로 다소 시간적 여유가 많이 남아 나무테크 길로 조금 내려갔다가 봉우리로 올라가 마리아 동상을 돌아보는데, 이 동상은 양주 인접지역에 있는 천주교 여신자 한분이 기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감악산의 또 다른 봉우리에 설치하고 있는 "마리아 상" >
< 마리아상 뒤편에서 바라보는 "임꺽정봉 및 감악산" 정상 >
다시 감악산 정상으로 올라와 하산길로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하산 방향은 까치봉을 가르키는 화살 지시표 따라 내려가면 이내 이 능선에도 아름다운 정자 한채가 지어져 있으면서 한쌍의 젊은 부부가 정자 주변에서 맛 있게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도 행복하게 보인다.
< 까치봉으로 내려가는 방향에 있는 "정자" >
< 정자에서 내려보는 "까치봉" 모습 >
몇 개의 나무테크 길 따라 능선을 내려오면 까치봉에 도착하여 지는데, 까치봉 전망대 테크에 서면 임진강의 넓은 강폭에는 많은 물이 흘려가고 있는 모습과 주변 농촌 풍경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임진강 뒤편에는 북한이 평화스러운 우리나라 시골을 파괴하기 위하여 발악하고 있는 뉴스를 매시간 접하고 있으니, 꼭 그렇게 파괴하면 자기들에게 무슨 이득(利得)이 있겠는지 자문하여 본다.
< 희미하게 보이는 "임진강" 과 농촌 마을 >
복잡한 머리를 식혀 보기 위하여 머너먼 이곳까지 찾아왔지만, 이곳 임진강 주변에 살고 있는 혼미스러운 사람들의 심정을 무엇으로 위로 하여야 하는지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산행 길을 재축하는데, 왔던 길을 한번 되돌아 보니 감악산 정상에 있는 안테나가 높게 서 있는 모습이 아련하게 보인다.
< 까치봉에서 바라보는 "감악산" 정상 풍경 >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능선 따라 소나무 숲속으로 한참 내려 가다가, 능선에서 왼편으로 꺽어서 내려서면 울라갈 때 처음으로 만났던 원점회귀의 3거리 이정표에 도착하여 진다.
< 능선에서 왼편으로 꺽이는 지점을 알리는 "이정표" >
이 3거리에서 부터 한 30분 정도 더 걸어서 내려가면 많은 홍수에도 불구하고 건재하게 자리잡고 있는 범륜사에 도착하여 지면서 비포장 산행 길은 끝이 나고, 여기서 부터 아스팔트 길 따라 내려서면 산행의 들머리 버스정류장에 오후 2시 55분에 도착하면서 총 4시간 20분 정도의 산행이 이루어지는 등산이 된다.
15분 마다 출발하는 버스를 한참 기다리다 보니 버스가 도착하므로 승차하여 양주역으로 달리는데, 중간 지점에서 한차례 소나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지만 오늘 비도 맞지 않고 산행이 끝나는 행운의 날씨를 안겨주는 감악산 산신령에게 감사를 표현하여 본다.
양주역에서 지하철로 바꾸어 타고 친구의 집이 있는 수유역에서 내려 하산주 한잔을 가져보는데, 모처럼 마시는 술자리 이라서 그런지 정신없이 마시다 보니 과음이 발생하여 진다.
겨우 몸을 추수리면서 서울역에 도착하여 새마을 기차에 몸을 싣고 대구로 내려가는데, 그만 기차 내에서 술에 떨어져 잠을 자다가 깨어보니 기차는 내가 내려야 하는 동대구역을 훨씬 지나 경남의 창원역에 접근하고 있다.
과음을 후회하면서 이제 부터는 다시는 술에 만취하면서 기차를 타지 않겠다는 명세와 더불어 창원역 앞에 있는 한 찜질방으로 들어가 하루밤 더 외박하여야 하는 블상사가 벌어지는 추억의 산행이 되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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