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0일.(토요일)
얼음골 관람을 끝내고 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를 몰고 표충사 방향으로 넘어가 보는데, 네비게이션은 잘 만들어진 4차선 국도로 안내하지 않고 1.077호 지방도로 따라 지름길로 안내한다.
그 길은 높은 "도래재"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에어콘을 켠 상태에서 애마가 힘이 부족라여 올라가지 못 하므로, 창문을 열고 시원한 자연 바람에 의존하면서 한 20분 정도 달려가면 표충사 입구에 도착한다.
3. 밀양 표충사 방문.
인당 3.000원의 입장료와 2.000원의 주차비를 지불하고 사찰 입구로 들어가면, 일주문 뒤편에 있는 넓은 나무 단지에 임시 주차장으로 활용하므로 나무 사이에 차량이 빽빽하게 주차하고 있다.
< 울창한 숲 속에 주차하고 있는 "임시주차장" >
안내원이 지정하여 주는 나무사이로 주차하고 다시 일주문 까지 걸어서 내려가 일주문을 사진에 담고 천천히 숲길로 통과하여 표충사로 들어가는데, 표충사는 양쪽 계곡으로 흘려내리는 물 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 아무런 현판도 없는 표충사 "일주문" >
우리도 냇가로 내려가 물 속으로 들어가 손발과 얼굴을 씻고 바위 위에 돗자리를 펴고, 엄습하여 오는 피로에 풀기 위하여 간단하게 토막 잠을 자다가 아들과 Wife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혼자서 표충사를 돌아보기 위하여 경내로 들어가 본다,
<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표충사 "계곡" >
< "Wife와 아들" 도 휴식을 가지면서 >
"표충사(表忠寺)" 는 신라 무열왕 원년(서기 654년) 원효대사가 삼국통일을 기원하고자 이곳에 터를 잡아 산문을 열고 죽림정사라고 하였는데, 이후 흥덕왕 4년(서기 829년)에 인도의 스님이신 "황면선사" 가 현재의 자리에 중창하였고 경내에 3층석탑을 세워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당시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의와 명약을 찾던 중 이곳 죽림정사의 약수물을 마시고 병이 치유하였다고 하며, 이에 왕이 크게 기뻐하여 가람을 크게 부흥시키고 사찰 이름을 "영정사(靈井寺)" 라 명하였다고 한다.
표충사는 보우, 해린, 일연, 천희 등 4명의 국사가 거주하면서 선풍을 크게 일으켜 국내 제일의 사찰로 만들어 고려 충렬왕이 이곳을 찾아 찬탄하였고, 일국지명산(一國之名山), 동방제일선찰(東方第一禪刹) 이라 명명하기도 한다.
일연국사는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하였다고 하며, 또한 조계종 초대 종정을 역임하신 "효봉대선사" 께서 주석하시다가 1966년에 열반하신 곳 이라고도 한다.
표충사당은 조선 영조 20년(1744년) 왕명으로 조정에서 임진왜란 때 구국구민을 하신 서산, 사명, 기허 등 3대 선사를 모시고 있는 것을 조선 헌종 5년(1839년)에 이곳 영정사로 옮겨 다시 표충서원을 세워 추증사액(追贈賜額)을 내리면서, 사찰 이름을 표충사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사찰 뒤편에 재약산과 앞쪽으로 천황산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표충사는 사당과 사찰이 함께 공존하는 호국불교의 본산으로, 사명대사의 호국성지로 널리 알려지게 만들어진 사찰이다.
입구에 있는 일주문 다음으로 표충사의 2번째로 나타나는 문이 "수충루(酬忠樓)" 로써 이 수충루는 표충사당으로 들어서는 서원 정문 형태의 누각으로 되는데, 이는 유교적 공간 서원과 사당이 사찰 경내에 공존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표충사 만이 독특한 가람의 구조이다.
< 표충사로 들어가는 2번째 문 "수충루" >
이 루각을 통과하면 넓은 마당이 나타나면서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해발 1.108m "재약산(載藥山)" 기슭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표충사 서원 영역으로 구성되고, 정면 몇 단의 계단 위에 사천왕문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계단 아래 왼편으로 표충사 "호국박물관(護國博物館)" 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 재약산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표충사 서원" 영역 >
< 새롭게 건립한 표충사 "호국박물관" >
호국박물관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축대로 올라가면 축대 좌우로 거대한 나무로 만든 밥숱과 더불어 불을 끄는 소방기구 등의 전시물이 놓여 있으며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여닫지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 오른편으로 돌아가면서 유물을 관람하여 보는데, 석불과 더불어 불교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 박물관 입구에 있는 나무 "밥통" >
근래에 새롭게 건립한 호국박물관은 국보 제75호 "청동은입사향완(靑銅銀入絲香琓)" 을 비롯하여 3층석탑에서 출토된 유물 및 사명대사 유품 3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사명대사와 관련된 것이 16건 79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 호국박물관 내에 전시하고 있는 "불상" >
< 박물관 내에 있는 "금동불상" >
< 국보 제75호 "청동은입사향완" >
금란 가사와 중요 민속자료 제29호가 되는 "장삼" 을 비롯하여 평소에 모시고 다녔다는 원불(願佛), 선조 임금이 하사하였다는 패도와 여러 종류의 사령 문서들도 질서 정렬하게 전시하고 있다.
< 선조 임금님이 하사한 "교지" >
선조 37년(1604년)에 사명대사가 강화사절로 일본으로 갈 때 그 호위 문제와 일본에서 조선 포로의 송환 문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비명을 새긴 목판, 서산대사의 사적을 새긴 목판, 다라니경 목판, 금강경, 아미타경 등이 포함하면서 전시하고 있다.
이 자료들은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활약과 더불어 그 이후 강화사절로서 역할을 고찰할 수 있다는 학술적인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 중 많은 수의 유물들이 국가지정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활동한 문서 >
간단하게 관람을 끝내고 호국박물관을 나와 왼편에 있는 "표충사당(表忠祠堂)" 으로 올라가 보는데, 사당 내부 중앙에는 사명대사 영정과 더불어 좌우로 스승이 되는 서산대사와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한 기허대사의 영정이 함께 모시고 있다.
< 3명의 대사 영정을 모시고 있는 "표충사(表忠祠)" >
< 표충사 내에 있는 "사명대사" 영정 >
호국박물관 앞으로 "표충서원(表忠書院)" 이 자리잡고 있는데, 여기 표충사에서 유교를 바당으로 두고 있는 사당과 서원이 함께 공존하는 것은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하여 유교가 사찰 속에서 깊숙하게 점유하게 만드는 결과물에서 유래되고 있다.
< 호국박물관을 마주보고 있는 "표충서원" >
수충루 오른편으로 넘어가면 설법전(說法殿) 건물과 더불어 기념품을 판매하는 전시관과 변소가 자리잡고 있어, 만약 서원 구역을 세심하게 관람하기 위해서는 다소 오랜 시간이 요구 되므로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돌아본다.
< 사찰 오른편에 있는 "설법전" >
다시 중앙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 사천왕문(四天王門)을 통과하여 불정토 구역으로 들어가면 다시 넓은 마당을 만나는데, 그 마당 왼편에는 종무소(宗務所)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오른편으로는 담장으로 구획하면서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 건물이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입구에 스님들의 기도 증진을 위하여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길을 막는다.
< 경내로 들어가는 3번째 문 "사천왕문" >
마당 중앙으로 들어가면 보물 제467호 "3층석탑" 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3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며 석탑 모습은 전체 높이가 7.7m 이고 단층의 기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995년 해체 보수 할 때 부처님 진신사리와 더불어 많은 유뮬이 출토되어 표충사 호국박물관에 보관 및 전시하고 있다.
< 보물 제467호 "3층석탑" >
그 3층석탑 뒤편에 여름철 오동나무에 매달려 있는 매미와 같이 석탑 뒤편에 석등(石燈)이 자리잡고 있는데, 석등은 사찰 안에 어둠을 밝힐 뿐 아니라 빛으로 부처님 진리를 비추면서 온갖 중생에게 선한 길로 인도하는 의미를 가진 것이 석등이다.
< 3층석탑 뒤편에 숨어있는 "석등" >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석등은 본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 등 Main 건물 바로 앞에 두는 것이 상식인데, 표충사는 이렇게 높은 석탑 뒤에서 숨겨져 있어 무슨 빛을 발하면서 중생들에게 길을 안내할지 의심이 일어나는 석등이다.
이 석탑 좌측으로 또 다르게 담장으로 구획하면서 독립된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건물 앞 대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면 "H" 자 형태의 건물이 보이고 있으며 건물 현판에는 "서래각(西來閣) 및 만일루(萬日樓)" 이라고 쓰여있다.
< H 모양하고 있는 "서래각 및 만일루" 건물 >
서래각 오른편으로 붉은색 꽃으로 장식하고 있는 배롱나무와 상사화 꽃이 만발하게 피고 있는 꽃 동산 뒤편으로, 표충사를 빛낸 역대 조사님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영각(影閣)" 이라는 건물이 또 다시 크게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 배롱나무와 상사화로 장식하고 있는 "영각" 건물 >
3층석탑 뒤편에는 표충사의 중심 사찰이 자리잡고 있는 팔상전(八相殿) 및 대광전(大光殿)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으며, 이 계단 좌측으로 약수물이 떨어지는 샘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이 샘이 흥덕왕 셋째 아들의 나병을 낮게 하였다는 약수물이 되므로, 더위로 갈증으로 지친 몸에 물을 보충하면서 몸 속에 기생하고 있는 독소를 퇴출하기 위하여 연거푸 2잔의 바가지 물을 마셔본다.
< 대광전 마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
< 흥덕왕 셋째 아들의 나병을 낮게한 "약수물" >
계단을 올라서면 또 다른 마당에 이르면서 마당 좌측 축대 위로 팔상전과 대광전 건물이 상호 지붕을 맞대고 고즈넉하게 건립되어 있는데, "팔상전(八相殿)" 은 경남문화재 자료 제141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 부처님 생애를 그린 8폭 병풍이 있는 "팔상전" 건물 >
팔상전 내에는 매우 단촐한 흰색의 좌상 석불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석불 좌우로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가지 모습으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는 8폭 병풍이 방 내부 좌우 4폭씩 진열하고 있다.
< 팔상전 내에 있는 "석가모니불" >
< 석가모니 생애를 그린 "8폭의 병풍" 그림 중 좌측 4폭 >
옆에 있는 "대광전(大光殿)" 도 경남유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된 건물인데, 이 대광전은 신라시대에 창건하였지만 화재나 병화(兵火)가 계속적으로 일어나므로 완전 소실되어 현재 전각은 조선 후기에 중건한 정면 5칸에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건축되어져 있다.
< 표충사의 본찰 "대광전"과 나란하게 지어진 팔상전 >
< 대광전 내에 모시고 있는 "3존불" >
이 팔상전과 대광전 뒤편으로 돌아가면 부처님의 16 제자를 모시고 있는 "웅진전(應眞殿)"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야산 기슭에는 한 지붕 아래에서 나란하게 자리잡고 있는 독성전(獨聖殿)과 산령각(山靈閣) 건물이 불자의 손길을 부르고 있다.
< 대광전 뒤편 한 지붕 아래에 있는 "독성전과 산령각" >
다시 대광전 앞으로 나오면 마당 건너편으로 범종각 건물과 더불어 "우화루(雨花樓)" 건물이 나란하게 건축되어 있는데, 우화루는 정면 7칸에 측면 2칸의 매우 긴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건물 마루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재약산에서 내려오는 남계천의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을 바라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로 만원이 된다.
< 대광전 앞에 있는 "범종각과 우화루" >
대광전과 우화루를 품고 있는 마당 끝지점에 또 다시 몇 단의 돌 계단 위로 올라가면 아담한 2개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오른편에 있는 건물이 죽은 인간이 외세(外世)로 들어가기 전 49일 동안 머물면서 죄의 심판을 받는 명부전(冥府殿) 건물과 왼편으로 천수천안의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는 관음전(觀音殿) 건물이 똑 같은 크기로 나란하게 자리잡고 있다.
< 표충사 제일 안쪽 오른편에 있는 "명부전" >
< 표충사 제일 안쪽 왼편에 있는 "관음전" >
< 관음전 내에 있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
이것으로 표충사 관람이 끝나므로 관람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오면서 천천히 다시 한번 더 돌아보고 나서 종무소에서 사찰 뒤편으로 들어가는 사잇길로 나아가면, 천황산으로 올라가는 산행길과 만남과 동시에 조금 올라가면 많은 부도와 사리탑이 보인다,
< 종무소 뒤편 천황산 산행길로 나아가는 "길" >
사리탑 입구에 거대한 기초바위 위에 세워진 탑이 효봉대선사의 사리탑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효봉대선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통합종단 초대 종정을 역임하였으며 말년에 이곳 표충사에서 열반하셨다고 한다.
< 표충사 뒤편에 있는 효봉대선사 "사리탑" 과 부도 군락지 >
< 부도 군락지를 지키고 있는 노송의 "소나무" >
제단 앞에 서서 간단하게 목례로 인사를 드리고 개울 따라 내려서서 물가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는 Wife와 아들에게 사찰 관람을 하도록 독려하고, 어둠이 내리는 시간을 맞추어 그리운 손녀가 기다리는 부산으로 달려간다.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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