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중국)

장가계의 마지막 날 오전 후난성을 지배하고 있었던 소수민족 "토가족 풍경원" 의 관람.

용암2000 2014. 6. 11. 10:04

다섯째날 (5월 20일 : 목요일)

 

1, 여행의 개요.

오늘 오후 3시 50분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므로 인하여, 오전에는 Eye Shopping과 더불어 토가족 풍경원 한 곳을 구경하는 것으로 4박 5일의 장가계 여행을 종결한다고 한다.

 

2. 호텔 출발과 더불어 진주을 판매하는 보석상 방문.

"시작과 동시에 끝난다" 는 속담과 같이 4박 5일의 장가계 일정이 손살같이 지나가면서, 마지막 날 아침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므로 인하여 아침 늦게 식당으로 내려가서 가벼운 식사를 하고 나서 호텔 앞으로 흐르는 강변 따라 간단한 산책을 끝내고, 방으로 되돌아 올라와 짐을 챙기고 로비로 내려간다.

 

< 마지막으로 산책하여 보는 호텔 앞 "리슈" 강 >

 

프론트에 열쇠를 반납하고 로비에 머물고 있으니 전속 사진사 아가씨가 개인적으로 주문한 USB와 사진을 가지고 왔는데, 우리부부가 찍혀진 사진이 전부 9장이라 일만팔천원의 한국지폐를 원한다고 한다.

이윽고, 약속시간 10시 30분 그 동안 정이 들었던 호텔을 떠나, 전용 미니 버스는 호텔에서 장가계 시가지 변두리 따라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진주를 가공하여 판매하는 보석상을 구경하기 위하여 한 아파트 앞에 주차하는데, 벌써 다른 관광객이 타고 온 몇대의 버스들이 주차하고 있다.

 

< 진주 보석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아름다운 "분수대" >

 

아름다운 분수대 정원을 가진 마당을 통과하여 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한 안내원이 나와 일행을 인도하면서 여기는 절대로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프론트 입구에 있는 행운(幸運)을 준다는 누워 있는 여인의 연옥(軟玉) 조각품에 대하여 설명하여 준다.

 

<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진주" 보석 매장 >

 

< 매장 입구에 진열하고 있는 "연옥" 제품의 여인상 >

 

그러고, 내부에 있는 회의실로 안내되어 진주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나서 사장님이 간단하게 인사나 하겠다고 하면서 들어와 수 인사와 더불어 고향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현재 50대 중반의 나이로 대구 오봉산 언덕 아래에 태어나서 침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지역으로 이사가 성장하였다고 한다.

고향 까마귀를 보아도 반갑다고 하면서 다른 고객들에게는 거의 주지 않지만, 특별히 고향 사람이라 연옥(軟玉)으로 만든 단추 한개씩을 선물하면서 사장님의 성장배경을 간단하게 설명하여 준다.

사장님은 옛 향수를 가져보기 위하여 지금으로 부터 13년 전 대구를 한번 방문하여, 오봉산과 침산동을 비롯하여 제일모직 자리 등 곳곳으로 돌아보았다고 하면서 그날의 추억 이야기가 이어진다.

본인은 어릴적 성장기에는 다소 부유하게 자랐지만 중간에 많은 굴곡진 삶을 살다가 현재는 자수성가로 성공하게 되었는데, 처음 북경에 보석공장을 설립함과 동시에 크게 성공하여 연이어 이곳 장가계에서 분점을 내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올 여름에는 베트남에 또다른 분점을 내어 운영할 준비가 착착 진행하므로 인하여 현재 매우 바쁜 시간 속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본인의 최후 목적은 한국으로 진출하여 또다른 분점과 동시에 돈을 모아 한국에서 크게 봉사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目標)라고 한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므로 인하여 바로 현금을 한국으로 송금이 불가능하여 현재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서, 몇년 이내로 중국의 상호로 한국에서 분점을 Open하면 그때 만난 사람을 기억이라도 하여 주면 좋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미래에 대한 포부를 당당하게 이야기하여 준다.

그러고, 매장 진열대까지 함께 이동하면서 보석에 대한 가치를 설명하는데, 특히 진주로 만든 크림 Powder 화장품을 얼굴과 손에 바르면서 효능을 입증하기 위한 체험을 시켜주는데, 지금까지 피눈물 나게 노력을 통하여 개발에 성공하여 세계 특허를 받았다고 한다.

 

< 매장 내에 진열하고 있는 "진주 목걸이" >

 

최후까지 곳곳의 Room으로 안내하면서 진열하고 있는 보석을 설명하여 주므로 인하여 견물생심(見物生心)이 발동하지만, 언제나 나의 주머니 사정으로 인하여 제일 먼저 매장을 떠나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으니, 다소 미안함이 묻어난다. 

 

3. 토가족 풍경원 구경.

진주 보석상을 벗어난 미니 버스는 시내 방향으로 조금 이동하여 토가족이 살고 있는 "토사성(土司城)" 에 11시 35분에 도착하여 지는데, 야산 속에 있는 토사성은 몇단의 계단을 통하여 올라가는 길과 야산 옆으로 만들어진 도로 따라 한 200m 정도 돌아서 주차장에 도착하여 진다.

 

< 토가족의 왕궁으로 사용하였던 "토사성" 전경 >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서 "토가족(土家族)" 만큼 토속적이고 친근하면서도 신선한 명칭을 지닌 민족이 없다고 하는데, 이름만 들어도 토가족의 이미지는 어디 깊은 산속에서 땅을 벗 삼아 문명을 등지고 사는 원시민족 일 것으로 상상 되어진다.

그러나, 실제 토가족은 인구 800만명이 넘는 대규모 민족으로 중국의 후남성 및 후배이성에 많이 살고 있는데, 사는 곳이 워낙 개방적인 곳이라 한족(漢族)과 현대 문명에 동화되어 잘 살고 있다.

외모나 옷차림으로는 소수민족 임을 알 수 없으며 토가족의 원류(元類)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분분하지만, 진나라에 의해 파국(巴國)이 멸망한 기원전 3세기 경 충칭에서 후난성과 후베이성으로 이주한 고대 파인(巴人)의 후손이라는 것이 정설로 내려온다고 한다.

마오족과 함께 장가계에서 살고 있는 토가족은 오랫 동안 단일민족으로 인정 받지 못하다가 1957년 정식 소수민족으로 인정 받았으며, 늦게나마 소수민족으로 인정 받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다고 한다.

토가족 사람의 외형은 외소하면서 키가 매우 적은데, 남자는 155Cm, 여자는 150Cm를 넘지 않은 작은 키를 가지고 있고 고유의 언어와 문자가 없어 한자(漢字)를 쓰고 있으며, 토가족의 대표 생산품으로는 염색과 편직물이 유명하다고 한다.

 

< 키가 적은 "토가족 왕" >

 

Guide는 마지막 관광 코스로 토가족이 살았던 풍경원을 구경하기 위하여 토사성으로 들어가서 옛 토가족 왕이 살았던 궁궐 건물을 관람하게 하는데, 현재 이 궁궐 건물은 박물관으로 변경하여 장가계를 찾아오는 많은 관광객에게 개방한다고 한다.

 

< 토사성으로 들아가는 "보루문" > 

 

성으로 들어가는 보루문을 통과하면 곳곳에 토가족의 기념품 가게, 상가, 음식점, 판매점이 자리하고 있으면, 다른 한편으로 토가족의 전통의식을 행하는 행사가 수시로 진행하므로 인하여 관람에 필요한 무한정 시간을 부여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궁성 입구가 되는 보루문에서 입성하는 사람의 숫자와 국적을 기록하고 나서, 문을 통과하여 마당에 올라서면서 한국말을 구사하는 토가족 아가씨 한명에게 인수하는데, 이 아기씨는 유창한 한국어로 토가족의 궁궐 내부로 안내하면서 해설하기 시작한다.

 

< 국적과 인원을 Check 하는 "출입문" >

 

< 출입문 옆에서 환영의 음악을 연주하는 "토가족" 청년 >

 

마당 복판에는 약 20m 높이의 탑과 더불어 마당 가장자리에서 거대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건물 내부에는 토가족들이 숭배하는 신(神)을 모신 신당이라고 하면서 안내원은 짧은 설명과 함께 그냥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하면서 지나가, 사당 오른편 옆으로 만들어진 길 따라 들어가면 높은 산 비탈면 따라 건립되어진 옛 궁궐 건물 앞에 선다.

 

< 마당으로 둘어가는 "돌계단" >

 

< 마당 가운데 있는 높은 "탑" >

 

<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신당" 건물 >

 

이 궁궐 건물은 12층으로 이루어지면서 전체 높이가 42m 로써, 건물의 각층에는 토가족의 농경문화, 전투문화, 건축문화, 공예문화 등 다양한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면서 한층 한층 돌아보고, 제일 위쪽 3개 층은 조상의 신을 모시는 제단(祭壇)으로 사용하므로 출입을 금지한다고 한다.

 

< 야산 비탈면을 의존하면서 건축되어진 12층 "궁궐" >

 

풍경원 내의 각 건축물은 대부분 나무와 돌을 사용한 구조로 기둥과 대들보에는 금빛의 색으로 휘황찬란하게 장식하면서 위로 살짝 들려진 처마가 매우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 건물 3층 처마에서 부터 거대한 룡(龍)이 건물을 휘감고 1층 까지 내려오고 있는데, 룡의 몸 속으로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을 흘려 내려보내는 물받이 통으로 사용하고 있어 조상의 슬기로운 지혜가 숨어 있다고 한다.

간단하게 설명이 이어지고 나서 나무계단을 이용하여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데, 연속적으로 관람을 이루어지고 있는 중국 관광객을 위한 해설사 마이크 소리가 얼마나 큰지, 한국말로 소리치는 해설사도 감당할 수가 없는지 귀를 막고 멍하게 서 있다.

앞팀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따라 갈려고 하니 연이어 뒤에서 따라오는 총각 해설사 목소리가 더욱더 커, 이제는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표기하고 눈으로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한층 한층 올라가면서 전시품을 관람하는데, 진열하고 있는 대부분의 전시품이 우리나라 옛 조상들이 사용한 것과 너무나 흡사하여 토가족의 조상은 한국에서 이주한 민족으로 착각이 일어나게 만든다.

 

< 박물관 내에 전시하고 있는 "가마" >

 

< 가정에 사용한 각종 "생활용품" >

 

< 토가족들이 제사 때 사용한 "호로 병" >

                                                                                                                                       

건물 구조가 너무나 복잡하여 곳곳에 방과 마루 및 휴게소 또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어 가끔씩 전망대로 나와 토가족 풍경원을 구경하고 있으며, 퐁경원 내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과 더불어 외성의 보루와 파수당, 토가산채, 후왕궁의 건물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어 매우 복잡하면서도 포근함이 묻어난다.

 

< 전망대에서 내려보는 "신당" 뒤 모습 >

  

각층 곳곳에 전시하고 있는 토가족의 혼인풍속, 징신구, 나염으로 만든 천, 직조, 은장, 석장, 조각품 등을 구경하면서 계속하여 위로 올라가면, 8층과 9층에서는 토가족이 사용한 각종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매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 토가족 왕이 입었던 "옷과 장신구" >

 

< 나무로 조각한 "공예품" >

 

< 기념품을 판매하는 "토가족 여인" >

 

마지막 10층에는 여왕의 침실로 꾸며져 있는데, 토가족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생활력이 강하였다고 하면서 선대의 토가족 대부분이 여왕이 나라를 통치하였다고 하면서 여왕의 남편이 기거하는 장소는 여왕 침실 입구에 있는 마루 바닥에 개(犬) 같이 생활하였다고 한다.

 

< 여왕이 기거하였던 "침실" >

 

그러고,  마지막 3개층은 토가족 왕실의 선대 조상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영역이라 출입을 금지시키고, 건물 뒤편 야산으로 연결되어지는 비탈면의 계단을 이용하여 건물 밖으로 나와 후원에 있는 연못 주변으로 이동한다.

 

< 후원에 있는 "연못" 풍경 >

 

이 연못 주변에는 다양한 후궁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연못의 오른편으로 부터 제일 먼저 만나는 2층 건물에는 휴게소와 더불어 토산품을 판매하는 매점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그 다음에 있는 후원 건물에는 토가족 여인들이 출연하여 결혼식을 올리는 풍속을 재현하고 있다.

 

< 연못 주변에 있는 "휴게소와 매점" >

 

< 토가족 "전통 결혼식" 을 재현하는 공연 >

 

연못 내부로 더 돌아서 가면 한 정자 건물을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관광객이 자리를 잡고 앉으면 한분의 할아버지와 한명의 처녀가 토가족의 전통 춤과 더불어 노래를 부르면서 공연을 시작하고, 연이어 한명의 총각이 나와 3개의 칼을 가지고 다양한 무술 공연을 보여주고 있다.

 

< 연못 주변 공영장으로 사용하는 "정자" >

 

< 공연장에서 전통 춤을 추는 "처녀와 할아버지" >

 

< 무술의 연기를 시범 보이는 "총각" >

 

다시 연못을 돌아서 앞으로 나오면, 아담한 후궁 건물에는 토가족의 의상과 더불어 궁중음식 및 전통 술을 만들어 판매하는 상가가 도열하고 있어, 순박한 토가족도 돈의 맛을 느끼는지 장사 속으로 달려가고 있어 쓸쓸함이 묻어난다.

 

< 전통 음식과 물건을 판매하는 "상가" >

 

이 상가 건물 중앙으로 나오면 한편으로 토가족이 사용하는 물레방아와 소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던 옛 농경지 사회의 풍속을 재현하고 있으며, 이어 조금 내려오면 처음 출발한 신당 건물 옆으로 내려선다.

 

< 소를 이용하여 "곡식" 을 탈곡하는 모습 >

 

< 기하학적으로 돌아가는 "물레방아" >

 

< "작두" 타고 올라가기 시범을 보이는 야외 공연장 >

 

다시, 마당을 한바퀴 돌아보고 나서 천천히 정문을 통하여 주차장으로 나오는데, Guide가 무한정 관람 시간을 부여 하였지만 1시간 정도의 시간으로 관람을 끝내고 12시 30분에 집결하므로 인하여 인접하게 있는 식당으로 이동한다.  

 

4. 점심식사 및 농사물 참깨 판매점 방문.

아직 12시 35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시간에 식사 하기에는 다소 빠른 시간이지만 다른 특별한 대안이 없어 예약되어진 점심식사를 시작하는데, Guide는 오후 3시 50분에 출발하는 비행시간 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으므로, 좀 오래 동안 식사와 더불어 여가를 즐기라고 무한정 사천맥주를 공급하여 준다.

 

< 다소 일찍 점심식사를 하는 마지막 "식당" >

 

그래도, 성질이 급한 대구 사람의 기질로 인하여 빨리 문화가 발동하므로 인하여 25분 만에 식사를 끝내고 버스에 오르므로, 오후 1시 정각 식당 옆에 있는 농산물 판매점으로 인도하여 중국산 참깨를 구입하도록 유도한다.

 

< 만주산 "참깨" 를 판매하는 농산물 가게 >

 

중국은 여려 곳에서 참깨를 생산하지만, 따뜻한 지역의 남부에서 생산하는 참깨는 이모작(二毛作)이 가능하므로 인하여 기름을 짤 때 많은 기름이 나오지 않지만, 추운 지역의 만주에서 생산한 참깨는 일모작(一毛作)으로 생산되므로 인하여 기름을 짤 때에 많은 기름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Sample로 제공하고 있는 참깨를 손으로 문질려 보면 윤기가 나면서 손가락에 묻어나는 것이 만주산 참깨이므로, 그것을 확인하면서 구입하라고 하면서 농산물 판매점 앞에 주차시켜 준다.  

 

< "참깨" 를 구경하는 관광객 >

 

많은 사람들이 매장 안으로 들아가서 참깨와 농산물을 관람하는데, 참깨 4Kg 한포에 3만8천원 한다고 하면서 먼저 도착한 다른 팀에서 다량의  참깨를 구입하므로 인하여 우리 팀에게는 그냥 바쁜 마음으로 인하여 몇명만 구입하고 매장을 떠난다. 

 

5. 대구로 출발.

농산물 판매 매장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장가계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1시 35분 밖에 되지 않으면서 제일 먼저 도착하여 공항 로비에서 기다림을 가지는데, Guide가 그렇게 천천히 움직일 것을 요청하여도 성질 급한 대구 사람들의 인격으로 인하여 비행기가 이륙하는 오후 3시 50분까지 약 2시간 15분 정도 멍청하게 기다림을 만든다고 투덜 거린다.

 

< "장가계 공항" 건물 전경 >

 

< 제일 먼저 도착하는 "장가계 공항" 입구 >           

 

그래서, 참깨를 구입하지 못한 몇몇 사람은 Guide에게 부탁하여 농산물 판매장으로 전화하여 추가 구입을 요청하여 배달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지는데, 정말 조금도 기다리지 못하는 대구 사람의 조급증이 화(禍)를 자초한다.

한참 기다림을 가지고 나서, Guide가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여 전달함과 동시에 이별의 인사를 하고 떠나 가고, 일행은 함께 입국 수속을 받으면서 2층 면세점으로 들아가 진열하고 있는 상품을 구경하여 본다.

 

< 한적한 공항 내부 "대합실" >

 

그런데, 이 면세점에서는 참깨 4Kg 한포에 3만에 판매하고 있으면서, 공항 면세점에서는 중국의 국격(國格)을 위하여 정품을 판매하지만 농산물 판매장에서 판매하는 참깨를 어찌 믿겠는가 하는 애매한 이야기를 흘려준다.

한국에서 부자간에도 못 믿을 것이 참깨기름이라고 하는데, 과연 Guide가 판매에 열을 올리면서 설명한 것이 사실일까 하는 생각으로 창 밖을 바라보니, 장가계 천문산 동굴이 눈 앞에 머물고 있다.

 

< 공항 면세점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는 "천문산" >

 

왜, 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중국 사람이 좋아하는 "만만디" 하게 관광하지 못하고 바쁘게 움직이면서 돌아다녀야 하고, 관광지의 Soft-ware 면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오직 Hard-ware 면을 찾아서 구경하고 사진이나 찍기 위하여 없는 경비를 만들어 여행하여야 하나 곰곰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이윽고, 안내 방송과 함께 공항 셔틀버스를 탑승하여 비행기가 기다리는 공항 가장자리로 이동하여 비행기에 올라가 자리에 앉으니, 정확하게 오후 3시 50분 이륙을 위하여 활주로 끝으로 이동한다.

 

< 승객을 기다리는 "사천항공 여객기" >   

 

< 비행기에 탑승하는 "관광객" >     

 

< 이윽고 "고향산천" 이 내려다 보이고 >        

 

오후 8시 경, 대구공항에 도착하므로 인하여 시계를 한시간 앞으로 돌림과 동시에 공항 앞에 있는 버스를 타고, 포근한 잠자리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한다. -다섯째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