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둘째날. (9월 21일 : 토요일 오전)
반면 건축학적인 관점에서 이화원은 '옛 중국인들이 건축에 품은 이상' 을 여실이 보여 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하는데, 옛 중국인의 관념 속에 지상 낙원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이화원을 통하여 알 수 있다. * 가이드와 대화. 아침 9시 정각 호텔 정문에서 기다리는 가이드와의 조우(遭遇)가 이루어지면서 반가운 인사로써 첫 여정의 길을 나서는데, 금일 부터 본격적으로 베이징시가지 곳곳에 건국기념 70주년 행사의 준비 과정으로 교통의 통제가 수시로 발생하므로 여행의 코스를 그때 그때 조정하면서 진행을 하겠다고 한다. 더불어 가이드의 본인을 소개하는데, 가이드의 할아비지가 한국 경상도에서 출생하여 독립운동을 위하여 헤이룽장 성(省)의 성도가 되는 하얼빈으로 이주를 하였고, 현재 부모님은 하얼빈에서 거주를 하고 있으면서 전직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으로 근무를 하였다. 본인은 하얼빈에서 공부를 하면서 짬짬히 할아버지의 강요에 따라 한국말로 대화를 하였는데, 그래서 한국어 책을 읽은 것이나 쓰는 것에는 다소의 어려움으로 가지고 있지만 대화에는 큰 문제가 없이 자유자재(自由自在)로 구사가 가능하다. 학교를 마친 후 하얼빈에서 부모님이 운영하는 예식장 및 노래방 사업을 경영 하였는데, 하얼빈에도 점진적인 인구의 감소로 인하여 경기의 부진으로 아내와 함께 3명의 딸을 거닐면서 베이징으로 이주하여 여행 가이드에 종사한지가 벌써 11년이 되었다. 현재 나이는 41세가 되어지며 베이징에 거주하면서 3명의 자녀 학비 및 생활비가 너무나 많이 요구가 되어 많은 돈이 필요하였지만, 천만 다행으로 첫번째 딸이 금년 1월 독일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에 입사하여 1년간 독일에서 연수를 받고 있어 다소 숨통이 트인다고 한다. 베이징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로써 하베이 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으로는 텐진직할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베이징의 행정구역 면적은 서울과 경기도를 합한 것 보다 더 큰 16,412km²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거주하는 인구는 약 2.200만명이 넘는다고 설명하여 준다. 1) 이화원 방문. 베이징의 첫번째 여행 코스는 만리장성을 관람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금일에는 지방에서 보유하고 있는 군사시설을 천안문 광장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만리장성 방향의 도로가 통제되어 관광을 내일로 변경하고, 베이징의 중심지에 있는 자금성(紫禁城)이 불가능하므로 자금성에서 다소 북서쪽으로 떨어져 있는 '이화원(頥和園)' 부터 관람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하루에 자금성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입장료 수입이 한국의 돈으로 약 50억 정도가 되는데, 오늘 부터 11일간 자금성 관람을 통제하므로 입장료 수입에서 적어도 550억원 정도가 살아지지만 중국은 대표적인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져 눈도 한번 깜짝이지 않고 관람을 차단하는 배짱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호텔에서 약 1시간 정도 달려가면 이화원의 동궁문(東宮門)에 도착을 하는데, 이화원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동서남북 4개의 궁문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코스는 동궁문으로 들어가서 남궁문으로 나오는 것이 제일 효과적인 관람의 동선(動線)이라고 한다. 우리의 일행도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동궁문으로 들어가기로 하는데, 동궁문의 매표소는 도로에서 다소 떨어져 있으면서 대형 버스가 매표소 앞까지 운행이 불가능하므로 도로 가장자리에서 하차하여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오른편으로 자리하고 있는 상가를 구경하면서 한 5분 정도 들어가면 동궁문이 나타나면서 동궁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수 많은 관광객들이 이화원을 관람하기 위하며 입장권을 구입하고 있는데, 우리 가이드도 일정한 장소에 일행을 머물게 하면서 입장권을 구입한다. < '이화원' 의 조감도 > < '동궁문' 입구에 있는 매표소 > 가이드로 부터 수령한 입장권을 소지하면서 단체 개찰구를 통과한 일행은 이내 수 많은 관광객과 함께 혼합이 되어지면서 인수문 앞 광장의 한 장소에 서서 이화원의 유래를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이화원은 청나라의 여름 궁전이자 중국을 대표하는 황실원림(皇室園林)으로 부지가 약 100만평(290ha)이 넘는다고 한다. < 인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인수문' > < 인수문 앞 앙쪽에 세워져 있는 '사자' 상 > < '이화원' 내력을 설명하고 있는 가이드 > 원명원 내에 있는 호수는 원나라와 명나라 때 물의 저장고로 사용하면서 서호(西湖)이라고 불렀는데, 청나라 때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한 건륭제가 눈에 들면서 황실원림인 '원명원(圓明園)' 을 조성한 것이 시초가 된다고 한다. 원명원이 완공되었을 때 건륭제는 더 이상 국고를 낭비하면서 까지 원림을 조성하지 말라고 당부했으나 스스로 지시를 어기는데, 이유는 1750년 어머니 황태후의 60세 생신을 경축하는 의미에서 청의원(淸漪園)을 건설하기 시작해서 1764년에 완공한 것이다. 청의원을 이화원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886년 서태후에 의해서 불려지게 되었는데, 폐허가 되어진 원명원을 복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서태후가 해군을 창설하기 위하여 마련한 예산 중에 은 2,400만냥을 유용해 자신의 여름 궁전을 조성했다. 이화원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서태후는 자금성으로 돌아가기 싫어했다고 하는데, 청일전쟁의 패배를 무력한 해군 탓으로 보는 중국 입장에서 서태후는 개인적인 탐욕 때문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한 인물로 꼽힌다. 이화원의 관람 코스로는 크게 2개의 구역으로 대별하는데, 동문의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 궁전구(宮殿區)로 들어가 관람을 끝내고 나서 마지막으로 곤명호가 있는 호수구(湖水區)로 나오는 관람의 코스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화원은 1924년에 공원으로 바뀐 이후 매년 약 4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는 중국의 조경 풍치림의 대표작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황실원림으로 '황실정원 건축'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공원의 전체 면적 중에 3/4을 차지한 '곤명호(昆明湖)' 이라고 하는 호수를 비롯하여 황제가 정무를 처리하던 궁전의 구역, 아름다운 누각, 우람하게 자란 고목, 관상용 태호석, 아치형 다리, 종교적인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더불어 서태후(西太后)를 간략하게 응급하면 서태후는 1835년 음력 10월 10일 만주에서 출생하여 16세에 궁내로 입궁하여 '함풍제(咸豊帝)' 의 총애를 받아 귀빈이 되었으며 1856년에 태자를 생산하였다. 1861년 8월 함풍제가 사망하자 당시 6살이 되어지면서 자신의 아들 '건륭제(健隆帝)' 가 제위에 올랐는데, 아들의 나이가 너무나 어려 섭정을 하기 시작하였지만 19세의 어린 나이로 건륭제가 사망을 하자 4살이된 '광서제(光緖帝)' 를 제위에 올리고 수렴청정을 계속하였다. 1885년 서태후가 50세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거액의 비용을 들여 자금성에 있는 여러 궁(宮)을 개축하였고, 탄생일 전후 24일 동안 자금성 안에서 '경국(京劇)' 을 공연하게 하였던 경극의 광(狂)이라 하겠다. 60세가 되던 1895년 만수(萬壽)를 축하하기 위하여 해군의 경비를 사용하여 이화원의 북해와 동남해를 크게 보수를 하였는데, 청일전쟁에서 크게 패한 후 1895년 10월 국가 존망이 걸린 위급한 상황에서도 연일 축하연을 열면서 사치생활에 극(極)을 달하였다고 한다. 이름뿐인 황제 광서제는 1908년 어느 날 의문의 죽음을 맞이 하는데, 이틀날에는 서태후 또한 73세의 일기로 사망하면서 청나라의 정권은 어린 황제 '푸이' 에게 넘어가면서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영화를 통하여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의 종말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서태후는 하나의 궁인으로 들어와서 3명의 황제를 거닐면서 53년 동안 사치를 위하여 어떠한 악행(惡行)도 개의치 않고 실천을 하였는데, 그것이 현재 베이징을 여행의 강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이화원 및 서태후의 유래를 설명하고 나서 내부로 이동하면 제일 먼저 '인수전(仁壽殿)' 앞에 도착하는데, 인수전은 황제들이 머물 때 정사(政事)를 보았던 장소이다. < 황제가 정사를 보았던 '인수전' > 또한 광서제가 어린시절에서 부터 수렴청정을 하였던 서태후에 의해 꼭두각시 역활을 하였던 장소인데, 서태후의 환갑을 맞아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근정전(勤政殿)을 인수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인수전 내부는 자금성의 황궁처럼 꾸몄지만 대전 앞 뜰에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심고 태호석으로 장식해서 원림 분위기를 살리고 있는데, 대전 앞에는 용과 봉황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중국의 국목(國木)이 되어지는 '측백나무' > < 수백년의 수령을 가지고 있는 '연리지' 나무 > < 이화원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태호석(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 석회암 덩어리)' > 인수전 건물의 뒤편에는 광서제가 서태후에 위해 10년간 감금을 당한 옥란당(玉爛堂)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관람을 생략하고 인수전 우측 옆으로 덕화원(德和園)이라는 건물을 만나는데. 덕화원은 건륭제가 신하와 연회를 배풀었던 장소로써 서태후가 새롭게 복원을 하였다. 덕화원은 경극을 좋아하는 서태후의 공연장으로 활용한 건물인데, 현재 건물 내에서 경극을 공연하고 있지만 공연시간을 맞추어야 입장이 가능하여지는 건물이라 한다. < 경극을 공연하고 있는 '덕화원' 으로 들어가는 문 > 또 다시 다양한 문을 통과하여 뒤편으로 넘어가면 낙수당(樂壽堂) 건물을 만나는데, 이곳 낙수당 건물은 서태후가 침실로 사용하여던 건물이면서 건물 앞에는 봉황을 비롯한 다양한 조형물이 서 있다. < '낙수당' 으로 들어가는 인파 > < 서태후가 기거한 '낙수당' > 낙수당 건물에서 부터 울창한 편백나무 숲을 통과하면서 궁전구(宮殿區)를 벗어나 호수구(湖水區)로 넘어가는 입구에 장랑(張廊)이라는 긴 복도를 만나는데, 이 복도의 길이가 728m가 되어져 세계에서 제일 긴 복도가 된다. < '장랑' 으로 들어가는 입구 > 양쪽으로 훤하게 트인 누각식(樓閣式) 복도는 들보가 매우 아름답고 들보의 전체에는 고전소설 속에 나오는 대표적인 장면과 동시에 동식물들을 화려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은 무려 14,000폭에 달한다. < 많은 관광객이 머물고 있는 '장랑' > 이곳의 장랑은 원래 효심이 지극한 건륭제가 어머니 서태후가 불공을 드리기 위하여 만수산(萬壽山)의 정점에 있는 불향각(佛香閣)까지 왕래를 하는데, 눈과 비를 맞지 않고 산책을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 한다. 장랑의 왼편으로 곤명호가 펼쳐지고 있어 관람을 하면서 한참을 걸어가면 다소 넓은 광장과 함께 배운문와 배운전(排云殿)을 만나는데, 배운전은 만수산으로 오르는 길목의 정 중앙에 위치한 건물로써 건륭제가 황태후의 60세 생신을 맞이해 지은 황실의 사찰(寺刹)이다. < 장랑에서 바라보는 '곤명호' > < 장랑과 함께 하는 '곤명호' > 배운문을 통과하면 대보은연수사(大报恩延寿寺)라고 불렸던 사찰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대웅보전의 건물인데,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을 침략했을 때 잿더미가 되었다. < '배운전' 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배운문 > 배운전 뒤편으로 높이 9층의 불향각 이라는 누각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불향각은 3층 4겹의 처마지붕으로 세워져 있으면서 그 웅장함을 자랑하는 건축물이라 하겠다. 가이드는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배운전과 불향각에서 바라보는 풍광보다 멀리 호수 중앙에 있는 '남호도(南湖島)' 이라는 섬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일품의 풍광이 되어진다고 하면서 관람을 생략하고, 호수가에 정박하고 있는 유람선을 타기 위한 선표를 구입한다. < '유람선' 선착장으로 들어가는 문 > 배운문 광장 앞으로 끝이 보이지가 않은 곤명호가 펼쳐지고 있는데, 이 호수는 약 70만평의 넓이를 가지면서 10만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인공으로 만든 호수이라고 한다. < 약 70만평의 넓이를 가지고 있는 '곤명호' > < 곤명호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관광객' > 호수의 평균 깊이가 4m 정도가 되는데, 더욱더 놀란 것은 이곳의 호수에서 나오는 흙과 돌로써 배운전과 불향각이 자리하고 있는 높이 60m 만수산(萬壽山)을 쌓았다고 한다. 유람선은 호수에 떠 있는 많은 보트 사이를 누비면서 호수의 동남쪽에 있는 남호도로 달려가는데, 남호도에는 서태후가 종종 들리면서 불경을 올렸던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 일행이 승선하고 있는 '유람선' > < 옆으로 지나가는 '유람선' > 남호도 선착장에 내린 일행은 섬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경내로 들어가 보기로 하는데, 경내에는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작은 불당을 비록하여 좌측으로 다양한 사찰의 부속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호수의 남동쪽 방향에 있는 '남호도' > < 남호도에 내리는 '선착장' > < 남호도 중앙에 있는 불당' 으로 들어가는 문 > < 남호도 중앙에 있는 '불당' > < 불당의 좌측편에 자리하고 있는 '부속 건물' > 좌측에 있는 건물을 통하여 밖으로 나아가면 남호도 가장자리 따라 한바퀴 돌아볼 수 있는 산책의 길이 만들어져 있는데, 섬의 가장자리에 서면 눈 앞으로 만수산 중터에 자리하고 있는 불향각 건물이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 남호도 가장자리에서 바라보는 '만수산 및 불향각' > 시야를 조금 왼쪽으로 돌리면 또 다른 높은 산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곳의 산도 곤명호에서 파낸 흙으로 만든 산이라고 하는데, 산의 정점에 높은 전망대가 아련하게 보이고 있다. < 곤명호의 왼편에 있는 '전망대' > 선착장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면 매우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아취형 돌다리를 만나면서 이곳 돌다리의 명칭을 '십칠공교(十七孔橋)' 이라고 불려지는데, 돌다리의 밑에 있는 아취형의 교각과 교각 사이에 17개의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 남호도와 연결하고 있는 '십칠공교' > 돌다리의 총 길이가 150m 이면서 돌다리의 난간에는 54마리의 사자상(獅子像)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동일한 사자상은 한마리도 없이 다양한 모습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십칠공교에서 바라보는 '만수산' 전경 > < 동일한 모양이 하나도 없는 십칠공교 돌다리의 ' 난간' > < 십칠공교 난간에 있는 '사자' 상을 배경으로 > 돌다리를 건너면 다리의 입구에 아름다운 8각형 정자 한채가 자리하고 있고 정자의 왼편 옆 호수가에 '동우(銅牛)' 한마리가 누워 있는데, 풍수지리에 따르면 동우는 곤명호의 범란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동상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 돌다리 끝지점에 있는 8각형 '정자' > < 정자 옆 호수가에 자리하고 있는 '동우' > < 동우 앞에서 바라보는 '십칠공교' > 이 동우에서 북쪽 방향으로 조금만 이동을 하면 남궁문(南宮門)이 자리하고 있는데, 짧은 코스로 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관광객은 이곳까지 관람을 끝내고 나서 남궁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화궁을 관람하는 기본 코스이라 하겠다. < 다소 한가한 '남궁문' > 2) 점심식사. 잃행도 밖으로 나와 원거리에 주차하고 있는 마이크로 버스를 호출하여 탑승하면서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 명언과 같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한 식당을 찾아가는데, 가는 도로의 건너편에 2008년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메인 경기장이 자리하고 있다. < 식당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 > 메인 경지장 앞에서 우회전을 하면서 조금 떨어져 있는 식당을 찾아가는데, 식당의 정문을 지나면서 옆에 있는 측문 앞에 대형버스 주차장으로 들어가서 버스를 주차를 시킨다. |
식당의 건물에는 외곽을 보수하기 위하여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으면서 안전망 밑으로 식당의 명칭이 되어지는 '격립단동주제찬청(格粒丹東主題餐廳)' 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데, 내부로 들어가면 식당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 현지식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찾아가는 '식당' >
이곳 식당은 한번에 1.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홀(Hall) 및 방을 보유하고 있는 식당인데, 식당 주인정은 티벳 출신의 중국 사람으로 식당의 입구에는 기도를 들릴 수 있는 작은 불당(佛堂)과 더불어 티벳 사진 및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 식당 내 전시하고 있는 '티벳' 기념품 >
미로와 같이 만들어져 있는 식당의 통로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이드가 예약한 원탁 테이블이 놓여 있는 홀로 안내가 되는데, 원탁 테이블에는 10명분의 식사가 준비되어져 있어 바로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
< 많은 사람들이 '점심식사' 를 즐기고 있는 홀 >
< 일행이 먹을 '현지식' 점심식사 >
중국의 식사는 대부분 볶음 요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면서 한국에 있는 중식당과 비슷한 요리가 되지만, 다소 강한 향신료를 사용하므로 한국인의 입 맛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식사가 된다. -둘째날 오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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