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7일.(첫날 : 수요일)
1. 모임의 개요. 경북대학교 기계과 제1회 가을 야유회 모임은 2018년 10월 17일 및 18일의 양일간으로 결정하는데, 금년에는 서울 지역에서 거주하는 동문의 초청으로 모든 행사가 이루어진다. 모임의 장소는 전국에서 거주하는 동문의 이동거리를 감안하여 첫날 오후 1시 까지 지하철 종로3가역과 연계하고 있는 피카디리 빌딩 내 CGV 극장 로비에서 만남을 가지도록 하는데, 주어진 시간에 서울 동문 7명과 지방 동문 5명(대전 1명, 대구 3명, 포항 1명) 등 총 12명이 집결 된다. 그러고 나서 첫 나들이는 지하철 역 인근에 있는 '창덕궁(昌德宮)' 을 관람하기로 하는데, 창덕궁은 5년 전이 되는 2013년 2월 23일 및 24일 양일간 서울 동문의 초청으로 한번 방문한 경험이 있는 장소가 된다.
< 창덕궁의 정문이 되는 '돈화문' >
그 때에는 다소 쌀쌀한 겨울 날씨로 인하여 다소 황망한 분위기 속에서 관람이 이루어졌지만, 이번에는 단풍이 내리는 가을 날씨에 창덕궁을 관람하므로 또 다른 고궁(古宮)의 풍치에 빠져 보기로 한다. 창덕궁 관람은 메인 궁궐(宮闕) 및 후원(後園)의 구경으로 2원화가 되는데, 메인 궁궐에는 입장료를 지불하면서 자유 관람이 가능하지만 후원은 한정 되는 인원만 관람이 가능한 인터넷 예약제로 이루어진다. 서울 동문 한명이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는데, 황금시간에 되는 오후 3시 시간에는 사전 예약 인원의 초과로 할 수 없이 한 시간 앞이 되는 오후 2시 관람시간을 선정하므로 다소 서둘려야 하는 시간이다.
2. 청덕궁 후원의 관람. 창덕궁 입구에 있는 돈화문 옆에 있는 매표소로 들어가 메인 궁궐의 입장은 경로(敬老)의 혜택으로 각자가 무료 입장권을 발매하여 입장을 하는데, 입장 후 신속하게 메인 궁궐이 되는 인정전(仁政殿) 영역을 통과하여 후원 입구에 있는 매표소로 올라가 사전 예약한 입장권을 발매한다.
< 사전 예약한 '입장권' 을 발매 할 동안 >
조금 기다림을 가지고 있으니 해설사의 등장과 함께 입장권 확인을 하고 관람에 따른 주의점을 설명하는데, 이곳 후원은 자연의 풍경에 거슬러지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는 창덕궁 일원이 되므로 모든 것은 해설사와 함께 행동하면서 한 발자국도 동선(動線)의 영역을 벗어나는 행동이 용납되지 않는다고 한다.
< 창덕궁 '후원' 으로 들어가는 입구 >
관람의 시간은 약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후원 내에는 유일하게 한곳의 화장실 만 존재하므로 급한 용무에도 많은 제한이 따르는 유의점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한다. 더불어 간략하게 후원의 유래를 설명하는데,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전 기간을 통하여 어느 궁궐보다 왕실에서 거주하는 임금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넓고 아름다운 후원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청덕궁 후원과 그 동쪽에 있는 창경궁 후원은 본래 돌담이 없이 서로 구획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후원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일제시대 때 창경궁의 격(格)을 낮추기 위하여 창경궁 내에 식물원 및 동물원을 개설하면서 입장권을 징수하기 위하여 양쪽 궁궐의 이동을 통제하기 위하여 담장을 쌓았다고 한다. 창덕궁 후원은 북쪽의 북한산(北漢山)과 응봉(鷹峰)에서 뻗어내리는 자연스러운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는 옥류천 계곡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원인데, 넓이가 약 9만 평에 이룬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임금의 휴식공간으로 일찍 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조선 초기 부터 백여 개의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들이 휴식처로서 건립되었지만, 현재는 누각 18채와 정자 22채가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의 구릉과 계곡, 폭포, 수림 등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으면서도 연못, 정자, 화계, 취병 등 모두 시설을 갖추는데,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하는 전통적인 한국 정원의 대표적 명소가 된다고 한다. 후원의 문이 열리면서 내부로 올라가는데, 좌측에는 메인 궁궐이 되는 창덕궁 돌담과 우측으로 이궁(離宮)이 되는 창경궁(昌慶宮)으로 구획하는 돌담으로 이루어지므로 다소 긴 돌담 사이로 올라가 조그마한 언덕을 넘어서면 본격적인 후원 영역에 들어선다.
< 창덕궁과 청경궁을 구획하는 '돌담' 사이로 걷는 관람객 >
후원의 영역 가장자리에 서면 먼저 발 아래로 4각의 부용지(芙龍池)이라는 연못이 자리하고 있는데, 연못의 가장자리에 '부용정(芙龍亭)' 의 정자가 자리하면서 정자의 지붕은 버금 '아(亞)자' 모양의 팔작지붕 합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 후원에서 처음 만나는 '부용지' >
< 부용지 가장자리에서 해설을 경청하는 '관람객' >
부용정은 부용지의 남쪽 방향에 2개의 다리를 연못 속에서 세워지므로 정자의 난간은 연못 까지 돌출하므로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고 있고, 연못의 서쪽 가장자리에 '사정기비각(四井記碑閣)' 건물이 보인다.
< 합각 지붕으로 매우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는 '부용정' >
< 부용지 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사정기비각' > 눈을 연못의 뒤편으로 올라보면 좁은 대문을 하고 있는 '어수문(魚水門)' 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대문의 뒤편 다단(多段)의 축대 위에 2층의 건물이 되는 '주합루(宙合樓)'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부용지 뒤편에 있는 '주합루' 건물 >
< 주합루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어수문' >
주합루 건물은 정조 임금이 즉위하였던 1776년에 건립한 누각으로써 1층에는 규장각(奎章閣) 건물의 되고 2층에는 주합루 건물이 되는데, 건립 당시 1층과 2층 모두 현판에 붙어있었다고 한다. 1층 규장각 현판은 건물 내에 보관하고 있었던 왕조의 유물와 어진 및 서적 모두를 다른 곳으로 이관하므로 현판도 함께 이관하여 졌고, 현재 2층의 주합루 및 정문의 어수문 현판은 보수를 하기 위하여 임시로 내려졌다고 한다. 주합루 건물 주변으로 다양한 건축물이 보이고 있지만 어수문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문으로 내부 관람이 불가능하여 다소 아쉬움이 발생하는 지역이 된다. 부용지 동쪽 방향에는 다단의 축대 위로 팔작지붕을 하면서 곱게 단청으로 칠을 한 '영화당(暎花堂)' 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건립 년도는 불명확하다고 한다.
< 부용지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영화당' > <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영화당' >
< 영화당 대청마루 가장자리에 비치하고 있는 '서적' >
그러나 선조의 재위 5년에 영화당 앞에 있는 춘당대(春塘臺) 마당에서 선비들에게 과거 시험을 치루었는데, 시험 때 영화당 앞 마당에서 차일을 치고 임어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임진왜란 이전에 건립되어져 있었음을 알게 한다.
< 영화당 앞에 있는 '춘당대' 마당 >
해설사는 영화당으로 올라가 옛날 임금과 같이 대청마루에 앉아 동서남북 사방의 풍경을 구경하여 보면 정말 다양한 산수화가 펼쳐지고 있는데, 풍경도 사시사철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명소의 장소가 된다. 춘당대 가장자리에 매우 작은 매점과 더불어 후원에서 유일하게 화장실이 자리하므로 해설사는 다소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도록 배려하여 준다.
< 춘당대 마당에서 해설을 경청하고 있는 '관람객' >
다시 관람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춘당대에서 안쪽 방향으로 조금 이동하여 들어가면 '기오헌(奇傲軒)' 이라는 건물로 들어가는 금마문(金馬門)을 만나는데, 기오헌은 내려오면서 관람하기로 하고 금마문 뒤편에 있는 불로문(不老門)으로 들어간다.
< 춘당대에서 금마문으로 가는 '오솔길' >
< 기오헌으로 들어가는 '금마문' >
<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 가 머물었던 기오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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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문은 한 개의 거대한 돌을 사방으로 깍아서 만든 일체의 석문(石門)이 되는데, 이름과 같이 이곳 석문을 통과하면 불로장생(不老長生)을 기원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하겠다.
< 금마문 뒤편에 있는 '불로문' >
이 석문을 통과하면 동쪽 방향으로 애련지(愛蓮池)와 더불어 연못의 가장자리에 사우정자(四隅亭子)가 되는 '애련정(愛蓮亭)' 이 자리하고 있는데, 애련정은 숙종 18년(1692년)에 건립하면서 연꽃을 심어 즐겨 보았다고 한다.
< 불로문 동쪽에 있는 '애련지 및 애련정' >
이곳 애련지를 통과하여 북쪽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단풍이 내리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통과하면서 울창한 숲속에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기다란 문간채 건물은 만난다.
< 애련정 북쪽에 있는 '정원' >
이곳은 '연경당(演慶堂)' 이라고 하면서 건물의 외형을 단청도 칠하지 않은 사대부 집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일반적으로 사대부 집은 99칸을 넘지 못하지만, 이곳은 왕실의 집이 되므로 건물 전체가 120칸이 넘는다고 한다.
< '장락문' 앞에서 해설을 경청하고 있는 관람객 >
장락문(長樂門)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문간채를 통과하면 내부로 들어가는 2개의 문을 가지고 있는 행랑채가 자리하고 있는데, 왼편에 있는 문은 여자들의 생활 공간이 되는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이라서 그런지 알반적인 대문이 되고 오른편에 있는 대문은 사랑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되므로 솟을대문을 하고 있다.
< 행랑채 왼편에서 '안채' 로 들어가는 대문 >
< 행랑채 오른편 '사랑채' 로 들어가는 솟을대문 >
왼편의 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넓은 마당에서 우측의 방향으로 'ㄱ자' 형태의 안채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안채를 중심으로 마당 좌측과 뒤편으로 건물이 자리하므로 크게 보면 전체가 큰 'ㅁ자' 형태의 폐쇄형 건축물이 된다.
< 'ㄱ자' 형태의 안채 >
안채와 사랑채를 구획하고 있는 작은 쪽문을 이용하여 오른편 방향으로 들어가면 연경당이라고 불려지는 사랑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의 사랑채 건물에도 마당을 중심으로 큰 'ㅁ자' 형태로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사랑채가 되는 '연경당' >
사랑채의 동쪽 방향으로 별당이 되는 '선향재(善香齋)'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건물의 처마에는 햇빛 가리개가 되는 차양 지붕이 설치되어 있는데, '차양은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어 우리나라 고택에서 보기 어려운 건축물이다.
< 독특한 치양 지붕을 가지고 있는 '선향재' >
선향재 건물의 왼편 구석자리 코너에 '농수정(濃繡亭)' 이라는 정자가 높게 자리하고 있으면서 농수정 앞을 통과하여 뒤편으로 만들어져 있는 쪽문을 통과하여 야산으로 들어가면, 우리나라에서 정원의 백미가 되는 정자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 선향재 왼편 구석자리에 있는 '농수정' >
야산을 넘자 마자 오솔길 오른편 언덕 위에 네모가 난 '승재정(勝在亭)' 이 자리잡고 있고, 오솔길의 왼편에는 일자형의 정자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정자에는 많은 책을 비치하고 있어 시간이 허락하면 독서를 하여보는 것도 좋은 여가를 부여하는 정자이다.
< 오솔길 오른편 언덕 위에 있는 '승재정' >
< 오솔길 왼편에 있는 'ㅡ자' 형 정자 >
이곳 정자 아래 방향에는 정자의 백미가 되는 '존덕정(尊德亭)" 이 자리하고 있는데, 반월형의 작은 연못을 품고 있는 존덕정 주변에는 유독 고운 단풍이 내리고 있으면서 이곳에는 유별나게 가을이 더욱더 깊게 하는 정자가 된다.
< 존덕정 주변에 물들고 있는 '단풍' >
존덕정 지붕은 6각형의 2층으로 되므로 다른 이름으로 육우정(六隅亭)이라고도 불려지는데, 선조 때 건축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하여 인조 22년(1644년)에 새롭게 지었다고 한다.
< 6각형 2층 구조의 지붕을 가지고 있는 '존덕정' >
존덕정 주변에 있는 연못의 물이 돌다리 아래로 흘러 내려서 하부 연못으로 들어가는데, 이곳의 하부 연못은 한반도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연못의 왼편 가장자리에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觀覽亭)' 을 두고 있다.
< 하부 연못 주변에 있는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 >
관람정 주변에 있는 자연에는 봄, 여름, 가을 , 겨울 등 사계절의 풍경이 최고가 되므로 해설사는 4계절 풍경을 스마트 폰에 담아 구경을 시켜주면서 해설이 이어지는데, 사계절 이곳에 머물어 보지 않고 창덕궁 후원에 대하여 논(論)하지 말라고 한다.
다소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해설과 더불어 휴식의 시간을 가지다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산행의 길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다소 넓은 길이 되지만 울창한 숲으로 하늘이 가려지는 길이 된다.
< 다소 언덕으로 올라가는 '산행의 길' >
약간의 경사도 길로 올라가면 도로 왼편 가장자리에 '취규정(聚奎亭)' 이라는 정자를 만나는데, 이곳 정자에도 많은 책을 비치하므로 풍류객 2명이 정자에 앉아 망중한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선경의 경지에 도달하는 사람인 것 같다.
< 산행의 길 가장자리에 있는 '취규정' >
이곳 취규정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옥류천(玉流川)을 가리키는 방향 표시판을 만나는데, 화살표 방향으로 들어서면서 약간의 내리막 길로 내려가면 맑은 물이 흐르는 옥류천변에 도착이 된다.
< '옥류천' 을 가르키는 방향 표시판 >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의 가장 북쪽 깊숙한 곳에 널쩍한 바위와 폭포 및 정자들이 어우러지는 곳으로 한폭의 선경(仙境)을 연출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옥류천은 인공으로 만든 곳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이용한 정원이라 하겠다.
한국의 정원에서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옥류천은 조선 인조 임금이 처음으로 조성하기 시작하였는데, 널다란 바위에 어필로 옥류천(玉流川) 이라는 세 글자를 먼저 새겼다고 한다.
옥류천 입구에 "취한정(翠寒亭)' 이라는 정자를 만나는데, 이곳 취한정은 마루가 깔린 정자로써 숙종 임금이 '온 뜨락의 꽃 그림자는 봄밤에 머문 달이요, 정원 가득한 솔 소리는 밤에 듣는 파도이네' 라고 노래를 불렸다고 한다.
< 옥류천 입구에 있는 '취한정' >
취한정에서 계곡 방향으로 약간 올라가면 '소요정(逍遙亭)' 이라는 정자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정자의 군락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소요정 뒤편으로 인조 14년(1636년) 가을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바로 전에 옥류천 바닥돌을 조금 깍아 계곡의 물이 흘러 들어오게 하였다.
<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소요정' >
옥류천 물은 암반에 둥글게 휘돌아 흘러서 소요정 앞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게 하였는데, 그 모습이 경주에 있는 포석정(包石亭)의 곡수(曲水) 물을 연상하게 만든다.
< 바닥돌을 깍아서 만든 '곡수 물길' >
곡수가 흐르는 물의 뒤편에 있는 바위에는 숙종이 지은 소요유상(逍遙流觴) 중에서 한 수의 시(詩)가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아마 소요정 앞 곡수에서 술잔을 돌리면서 지은 시(詩)라 하겠다.
- 흩날리는 물 삼백 척 높이 멀리 구천에서 내리네,(飛流三百尺 遙落九天來)
보고 있으면 흰 무지개 일고 골짜기마다 우레 소리 가득하네.'(看是白虹起 飜成萬壑雷)
< 바위에 새긴 '시' >
이곳에서 조금 뒤편으로 올라서면 '태극정(太極亭)' 이 자리하고 있고 개울 옆에는 작은 논과 함께 많은 정자 중에서 유일하게 볏짚으로 지붕을 엮어서 만든 '청의정(淸漪亭)' 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정자는 시골의 모정(茅亭)을 궁 안으로 옮겨 놓으므로 궁궐에서도 농민의 정서를 체험하는 임금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 소요정 위쪽 골짜기에 있는 '태극정' >
< 볏짚의 지붕을 하고 있는 '청의정' >
태극정에서 왼편으로 조금 내려가면 후원에서 유일하게 부엌과 함께 2칸의 마루 바닥과 2칸의 온들방을 갖추고 있는 '농산정(籠山亭)' 을 만나는데, 이곳 정자는 정조 임금이 종종 머물면서 독서를 즐겠다는 정자이다.
< 정조 임금이 종종 머물었던 '농산정' >
이 밖에도 후원에는 신 신원전 등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아직도 개방이 되지 않아 관람이 불가능하므로 여기에서 해설을 종결하기로 하는데, 내려가는 길은 올라왔던 길의 역순으로 내려가면서 미흡한 장소를 재 방문하여 추가 관람을 하면서 출발지점으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후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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