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11월 14일 : 일요일)
앙코르왓트 유적지는 크게 4개 구역으로 구획되는데, 첫번째는 우리들이 대표적으로 이야기하는 "앙코르왓트(Angkor Wat)" 이며 두번째는 이곳 앙코르왓트 북편에 자리하고 있는 "앙코르 톰(Angkor Thom)" 이다.
세번째는 앙코르 톰 동쪽편에 있는 "동 바라이(E. Baray)" 유적지이고, 마지막으로 동 바리이에서 약 25Km 정도 떨어진 "반티 스레이" 로 구획을 한다.
캄보디아는 이 네곳 이외에도 수 많은 유적지가 존재하고 있지만, 대부분 관광객들은 3곳(앙코르왓트, 앙코르 톰 및 동 바라이)이 인접하게 모여 있는 장소만 돌아보는 것이 기본여행 코스이다.
아침 8시 조식을 마치고 캄보디아가 자랑하는 앙코르왓트 관광 길로 나서 보는데, 호텔에서 부터 유적지 까지 약 6Km 이내 거리에 있으므로 10여 분 만에 앙크르왓트 관광지 도착한다.
3곳 유적지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자국민들에게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입장료 20불($)이 요구되는데, 들어가기 전 반듯이 사진 촬영하여 출입증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출입증을 만든 이유는 캄보디아 공무원과 공공기관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부정이 심한데, 부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베트남 국가가 도입한 제도이라고 한다.
캄보디아는 베트남 침공으로 수십년 간 베트남 속국으로 존재하다가 베트남 군인들이 철수하는 조건으로 앙코르왓트 수입금 20% 지불하는 조건으로 생돈을 빼았기고 있는데, 약속 국가의 비극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슬푼 역사를 가진 민족이다.
앙코르왓트를 방문하는 외국인이 년간 300-400여 만명에 이르고 한국인들이 년 25여 만 정도 방문하다고 하는데, 베트남에서는 가만히 앉자서 년간 1천 6백만불($) 정도 외화벌이 하는 샘이다.
출입증을 목에 걸고서 울창한 밀림 숲속으로 들어가면 "앙코르왓트" 의 서쪽문에 도착하는데, 앙코르왓트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서향 건축물로써 동서축으로 하여 좌우대칭으로 건립된 사원이다.
< 뱀의 신화를 가진 "앙코르왓트" 로 들어가는 서쪽문 >
왕코르왓트 역사는 1세기 경 인도 승려에 의거 건설된 "푸난지역" 을 발판으로 시작되었는데, 3세기에서 부터 5세기 까지 중국에서 사신을 보낼 정도로 부강한 왕국이 유지되었다.
특히 앙코르 왕조는 크게 구분하면 1차 왕조 "롤루스" 시대와 2차 왕조 "왕코르왓트" 시대 및 3차 왕조 "앙코르 톰" 시대로 구분하는데, 왕코르 왓트와 앙코르 톰 시대 유적 주위에 약 100여 만명 사람들이 거주하는 거대한 왕국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인도에서 유입된 힌두교와 불교 문화가 상호 융합하여 장엄하고 독특한 예술 문화를 꽃피운 앙코르 왕조는 태국 "아유타야" 왕족의 침입으로 급속히 멸망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오래 동안 앙코르 왕조에 지배를 받았던 점령자 "피리마라자" 왕은 복수심으로 앙코르 유적을 철저하게 유린하여 멸망의 길로 들어가게 만들므로 인하여, 화려한 영광을 뒤로 하고 600여 년 동안 정글 속에 묻혀지도록 한다.
1860년 1월 프랑스 동식물학자 "앙리 무어" 가 탐사 팀을 이끌고 들어와 3주 동안 탐사한 결과를 종이에 채색화하고, 탐사 일기를 서방에 발표 함으로 그 때 부터 비로써 세상에 알려지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왕코르왓트 사원 크기는 동서 1,500m에 남북 1,300m의 크기를 가진 성(城)으로 구성되어져 있는데, 성의 중앙에 거대한 탑을 기준으로 하여 석조의 대사원이 건립되어 있다.
사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약 200m 폭을 가진 "해자(垓子)" 라는 인공호수가 유적지를 뺑돌아 만들어져 있는데, 이렇게 해자를 만들어 놓은 이유는 사원을 건축하기 위하여 무거운 돌을 운반하기 위한 "수로" 로 사용하였다는 설(說)과 적의 침공을 방지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설로 해자 속에 악어를 서식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왕코르왓트와 분리시키고 있는 "해자" 의 모습 >
이 해자를 가로 질려 참배길이 놓여 있는데, 참배길 오른쪽은 복원하여 돌이 가지련하게 놓여 있지만 왼쪽은 아직도 발견 당시 모습을 하고 있어 대조의 미(美)를 자랑하는 참배길이다.
< "참배길" 로 걷고 있는 관광객 >
이 참배길 앞에 거대한 보리수 나무 한그루가 관광객을 맞지하고 있고, 참배길 초입에 들어서면 양쪽 난간에는 거대한 코브라 뱀의 머리가 오똑 솟아 있으며 기다란 몸통이 참배길의 안전난간을 이루고 있다.
< 참배길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보리수" 나무 >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참배길로 건너가면 사원의 "출입문" 이 눈 앞을 가로 막는데, 규모면에서나 조각면에서 처음으로 대면하고 있는 출입문이라 신비스러움 보고 있으니 숨이 콱 막혀온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칭되는 웅장 함과 더불어 화려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앙코르왓트 왕국은 12세기 전반 "수리야 바르만 2세(1113-1150년)" 가 건립하였다.
힌두교의 "비슈누" 신과 일체화하여 자신의 무덤(墓)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는데, 건립 할 때 투입된 인원이 년 2만 5천여 명에 36년 간 만들었다고 한다.
건축에 사용하는 자재는 목재, 라테나이트, 벽돌, 사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재 목재는 다 썩어서 흔적만 남아 있다고 한다.
성곽 테두리와 사원 기초는 "라테나이트" 라는 자재를 사용하였는데, 라테나이트는 열대 지방에 널리 분포된 적갈색 흙으로 철분과 알루미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공기와 접촉이 되면 벽돌보다 더 단단해 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건축물 기초로 많이 사용되고 태양열에 수분이 증발하고 나면 구멍이 숭숭 뚫려지므로 마치 "화산암" 으로 연상되는 돌이다.
나머지 모든 사원과 탑은 "사암" 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사암이 오래 동안 빛에 노출되다 보니 검은 색갈로 변색이 되어 고전미를 자랑하고 있다.
출입문의 가로 길이가 약 900m 정도 되는 성곽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 성곽에 5개 출입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 출입구를 기준으로 하여 좌우대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성곽 벽에는 앙크로왓트 역사와 축조 배경을 조각하여 놓아 간접적으로 앙크로 왕조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 왕코르왓트로 들어가는 "출입문과 성곽" >
출입문을 통과하면 "중앙성전" 까지 중앙통로 기준으로 하여 좌우에 넓은 광장이 이루어져 있으며 이 광장 중간 쯤에 아담한 건출물 하나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건축물은 책을 보관하는 "도서관' 이라고 한다.
< 중앙성전으로 들어가는 "중앙통로" >
< 중앙통로 좌우에 있는 "도서관" 건물 >
도서관 건물을 통과하면 크다란 연못이 나타나면서 연못 속에는 아름다운 연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는데, 그 연못에는 중앙성전의 탑 건축물이 연못에 반사되고 있다.
그래서 물의 표면과 또 다른 좌우 대칭 이루고 있어 최적의 기념사진 촬영 장소로 꼽히고 있는데, 수 많은 관광객들이 좋은 장소를 선정하여 추억의 사진을 찍고 있다.
< 연못의 물에 반사되고 있는 "중앙성전 및 연꽃" >
연못 좌측편에는 관광객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도열하고 있는데, 상점 주위에는 물건을 판매할려는 어린들이 관광객을 성가시게 할 정도로 강매 함으로 땀으로 범벅되어져 있는 몸이 많게 지쳐서 짜증도 발생하게 만든다.
< 연못 옆에 자리하고 있는 "판매점" 과 물건을 강매하는 어린이들 >
Guide가 야수자 열매를 구입하여 주므로 야지수 물을 충분하게 섭취하고 나서, 5개의 탑으로 이루어진 "중앙선전" 으로 들어가기 위한 중앙 출입구가 되는 "십자성 테라스" 는 보수 중이라 좌측 옆문을 이용하여 성전에 들어간다.
성전은 3개의 화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제일 외곽 화랑은 가로 215m에 세로 187m의 장병형 모습을 하고 있는 아치형 복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복도 벽면에는 전부가 조각되어 있어 왕코르왓트 역사를 해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는 벽화이다.
< 외곽 화랑의 통로에 그려져 있는 "벽화" >
초기 힌두교의 교리에 따라 만들어진 벽화와 후기 불교 사상이 혼재된 그림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그림은 쿠루평원의 전쟁 및 시바 신과 관련된 신화 등이 조각되어 있다.
또한 수리야 바르만 2세의 행렬, 천국과 지옥의 풍경, 천지창조 및 우유의 바다 젓기, 비슈누 신의 승리, 21명의 신과 21명의 아수라 사이 전투 등 이루 해아릴 수 없는 많은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 20개의 손을 가진 "신의 모습" 으로 조각한 벽화 >
특히 남쪽 벽면에 있는 천국과 지옥의 풍경에는 3계(천상계, 연욕계, 지옥계)로 구획하여 조각하여 놓은 것 보고만 있어도, 신비의 세계로 몰입되어 진다.
< "3계의 세계" 를 그린 벽화의 설명을 들으면서 >
한국사람들의 관광 주 특기를 따르면서 성전 속에서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 Guide 뒷 꽁무니만 졸졸 따라 걷다 보니, 무엇 한번 똑똑히 본 것도 없다.
단지 몇장의 사진과 더불어 앙크로왓트에 왔다는 흔적만 만들기 위해 성전 한 구석에 씹다가 말고 남은 껌 조각 살짝 붙여놓고 돌아 서야만 했다.
외곽 및 중간 화랑 사이에 4개의 노천 목욕탕이 있고, 중간 화랑은 돌아 볼 시간도 없어 건너 뛰고 내부 화랑으로 들어가 본다.
내부 화랑의 지붕 각 모서리에는 4개의 탑이 서 있는데, 신전 중앙에 있는 중앙 탑의 전체 높이가 65m의 거대한 주탑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주위 4개의 탑을 호령하고 있다.
< 외곽 화랑과 중간 화랑 사이에 있는 "노천 목욕탕" >
중앙 탑은 세계의 중심지가 되는 "수미산" 을 나타내며 주위 4개의 화랑 탑은 희말라야 산맥을 나타내고 있는데, 내부 화랑의 정 중앙에 "링가의 신" 을 모신 장소이므로 아무나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 65m 높이를 가진 "수미산" 을 나타내고 있는 중앙 탑 전경 >
그래서 신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급경사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그 계단은 동서남북으로 총 9개 계단이 있으나 계단의 경사 각도가 65-70도 됨으로 여간한 배짱이 없으면 올라 감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현재 한 곳에 나무로 만든 계단와 더불어 안전 난간대를 만들어 놓아 오르 내림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는데, 종교 의식이 있는 날에는 출입을 통제 한다는 펫말이 붙어 있으면서 금일에는 출입 할 수 없다고 한다.
< "중앙신전" 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모습 >
만약 종교 의식이 없는 날에 왔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올라 갈 것인데, 고소공포 덩어리가 되는 내가 안 올라 간다면 다른 사람들 보기에 체면이 말도 아니 될 것을 종교 의식으로 인하여 올라가지 못하는 금일에 왔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 중앙신전에 못 올라가는 대신 휴식을 취하면서 설명하고 있는 현지 "Guide 아가씨" >
사원 내부에 있는 모든 통로에는 나무로 만든 방이 있었으며 그 방에 사람들이 생활하였다고 하나 나무가 모두 썩어 없어지므로 성곽만 존재하고 있는데, 그래서 옛 영광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울러 유네스코 본부와 캄보디아 국가 및 일본에서 사원의 부분 부분에 파손되어진 곳을 보수 하였다고 자랑스럽게 안내판을 붙여놓고 홍보하고 있다.
문제는 보수 부위가 초기 사용한 "사암" 으로 보수하지 않고, 위대한 시멘트 덩어리로 떡칠하여 놓아 일본놈들의 보수 실력에 실망을 크게 만든다.
< 계속적으로 보수하고 있는 "앙코르왓트" 전경 >
이렇게 문화유산이면서도 세계 7대 불가사의한 유적을 단 2-3 시간으로 관람 끝내고 돌아서는 나의 관광 실력이 세계 최고 능력 보유자 임을 자랑하여 보는데, 사원의 떠남 시간이 당돌하게 만든다.
< 사원으로 들어오는 서쪽문 반대편에 있는 동쪽으로 나아가는 "문" >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동쪽에 있는 출입문과 해자를 건너 버스를 타고 한인이 운영하고 있는 한 식당에 도착하는데, 벌써 관광을 끝내고 식사하는 한국인들이 소복하다.
<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들어간 한인 식당 "늘봄" >
어디로 가나 한국사람들은 문화재 관람에 대하여 발 빠른 관람 문화을 가지는데, 대단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존경심이 묻어난다.
오후 일정에서는 마이크로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캄보디아의 운송 수단으로 자랑하고 있는 "툭툭"(캄보디아 Taxi 로써 오토바이로 끌고 가는 마차) 이를 타고 "동 바라이(East Baray)" 지역으로 들어간다.
< 캄보디아의 택시 "툭툭" 이를 타고 >
동 바라이로 가는길은 밀림 숲속으로 이루어지면서 포장 상태가 양호하지 못하여 교행하는 툭툭이와 선행하는 툭툭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황토먼지로 마스크를 착용해도 코 속으로 먼지를 실컨 호흡하고 있으니, 짜증이 발생하는 길이 된다.
동 바라이는 앙코르 톰을 건립한 "자야 바르만 7세(1181-1201년)" 가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건립된 사원으로 크기가 가로 0.6Km에 세로 1.0Km의 면적을 가진 사원이다.
사원 내에는 260개의 신상과 39개의 탑 및 566개의 집단시설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 사원에서 핵심적인 건축물이 "티프롬 사원" 건물이다.
10여 분 정도 달려 동 바라이 출입문에 도착하여 울창한 숲속으로 만들어진 오솔길 따라 걷다보면 한무리의 거리 악사들이 "아리랑" 연주하기에 돌아보는데, 지뢰 사고로 몸이 불편하다는 영어와 한글, 일본어, 중국어, 자국어로 쓰여 있다.
< 지뢰 장애인들로 구성하고 있는 "연주단" >
캄보디아는 세계에서 지뢰가 제일 많이 묻혀 있는 곳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장애자가 많은데, 정부에서 특별한 대책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곳 중 하나 이라고 하면서 적선을 요구한다.
여기서 조금 더 내부로 들어가면 울창한 숲속에 특색있는 거대한 3그루의 나무를 만나는데, 첫번째 나무가 "이앵나무" 이라 한다.
이앵나무는 나무를 절단하면 기름이 흘러 내리고 있는데, 허리부분에 성냥불을 붙이니까 불이 붙으면서 기름이 줄줄 흘려 내려오는 모습이 신비스럽다.
< 기름을 뽑아내는 "이행나무" 밑 둥치 >
또 다시 좌측편으로 동 바라이 내에 있는 "티프롬 사원" 을 들어가는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 입구에 거대한 "스풍(Supung)나무" 가 비스듬하게 누워 있고 그 뒤편에 "흑단나무" 가 서 있다.
스풍나무는 열대우림 지역에서 우후죽순(雨後竹筍) 같이 잘 자라는 나무인데, 스풍 나무가 "티프롬 사원" 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존재하는 나무이다.
< 티프롬 사원을 파손시키면서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스풍나무" >
흑단나무는 세계에서 최고급 가구 목재로 사용하다 보니 캄보디아에서 무 계획적으로 벌목이 이루어지므로써, 현재 나무가 멸종되면서 몇 그루 남아 있지 않아 지금은 고급가구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 최고급 가구로 생산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흑단나무" >
다리가 보수 중이라 옆으로 만들어진 임시 다리를 건너가는데, 티프롬 사원 내부로 들어가면 거대한 스풍나무가 사원을 삼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 사원의 입구 돌담을 잠식하고 있는 "스풍나무" >
앙코르왓트 및 앙코르 톰은 세계문화유산 본부에서 사원을 복원할 때, 스풍나무를 제거시킴으로 사원 모습이 드러나고 있지만 이곳 티프롬 사원은 스풍나무를 제거시키지 않고 자연 상태로 두고 있다.
그로 인하여 사원의 파괴가 너무 심하여 세계문화유산 당국에서 나무를 제거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는데, 언제 까지 나무가 사원을 침입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몰라 제거 전 일찍 잘 왔다고 Guide가 침이 마른다.
< 사원을 파손시키고 있는 "나무" 앞에서 >
곳곳에 거대한 스풍나무가 아기를 감 쌓듯 사원을 품고 있어 스풍나무와 사원이 한 몸이 되어 공생하는 것 같지만, 곳곳에 사원의 돌들이 나무의 무게로 항복하면서 무너진 돌들이 볼 사나운 모습으로 딩굴고 있어 애초로움이 묻어난다.
< "사원과 스풍나무" 와의 공생관계 >
< "스풍나무와 사원" 이 공생하는 나무 앞에서 >
미로 같은 사원 내부로 들어가면 곳곳에 부처님을 모셔 놓고 그 앞에 향불을 피우고 있는데, 공기가 소통되지 않아 숨이 막힌다.
서양에서 온 단체 손님들은 혼자 구석구석 관람에 열중하고 있지만, Guide는 자기 치마자락을 꼭 잡고 다녀야만 출입구 찾아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간다는 엄포로 인하여 30분 정도 사원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온다.
또 다시 툭툭이를 타고 번개와 같이 달려 "앙코르 톰" 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승리의 문" 을 통과하여 입성하는데, 앙크로 톰은 "거대한 성벽의 도시" 이라는 뜻을 가진 성으로써 "자야 바르만 7세" 가 건립한 성이다.
성의 크기는 가로 3Km에 세로 3Km의 정 4각형 성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 성의 주위에도 해자를 만들어 놓아 적의 침입을 방지하게 되어있다.
이곳 해자 중앙에는 동서남북 4개의 문과 더불어 동쪽으로 "승리의 문" 하나 더 있어 총 5개 출입문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성의 정 중앙에 "바욘(Bayon)"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 앙코르 톰을 감싸고 있는 "해자" >
앙크로 톰에 들어가는 동서남북 각 문의 해자 위에는 다리가 놓여 있는데, 이곳 다리 난간에는 좌우 각각 54명의 석상이 놓여 있으며 석상의 합이 108개가 되므로 불교의 108 번뇌를 나타낸다고 한다.
원편으로 도열하고 있는 석상은 머리카락을 원추모양으로 하면서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으나, 오른편에 있는 석상의 모습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어 대조적 얼굴 모습을 하고 있다.
< 왼편에 온화한 "얼굴" 모습을 하고 있는 54개의 석상 >
<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오른쪽 54개의 "석상" >
이곳 석상을 지나면 거대한 성문을 통과하게 되는데, 이곳 성문 주위에 높이 약 13m 까지 돌을 차곡차곡 쌓아 석성(石城) 만들어 적의 칩입을 막고 있다.
승리의 문을 통과한 툭툭이는 일렬로 줄을 이루면서 울창한 숲속에서 시원하게 달려가서, 성의 중앙에 있는 "바욘" 사원 입구에 도착한다.
< "바욘사원" 의 전경 >
사원 중앙에는 황금탑 바욘이 우뚝 솟아있는데, 그 높이가 약 64m가 되면서 각 방향으로 4면 불상이 세겨져 있으며 그 주위에 20여 개의 석탑과 더불어 돌로 만든 방이 10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이러한 바욘사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동쪽 출입문을 통과하여 돌로 만든 테라스를 걸어서 20m 정도 들어가면, 출입문과 더불어 첫번째 화랑을 만난다.
화랑의 벽면에 새겨진 그림의 내용을 보고 있으니까, 앙크로왓트의 벽에 새겨진 조각보더 더 웅장하면서 정교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 "바욘사원" 화랑에 새겨진 벽화 >
수 많은 휘장을 휘날리면서 걸어가고 있는 군대 행렬을 보면 기병과 보병 및 코끼리 부대 등이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고, 또한 각종 종교 의식도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 군대가 출동하고 있는 모습의 "행진도" >
출입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높은 계단을 이용하여 상부로 올라가게 되는데, 상부로 올라서면 주변에 4면 불상 탑이 눈의 높이와 일치하므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불상 모습을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다.
< 바욘사원의 4면 "불상 탑" >
그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전 세계에 소개되어진 "바욘의 미소(일명 : 크메르의 미소)" 이라는 석상에는 은근하게 미소짖는 입술의 형상이 세계 최고 걸작품이 되는데, 사진을 찍기 위하여 장사진의 인원이 대기하고 있다.
< "바욘의 미소" 의 석상 앞에서 >
사원 내부 곳곳에 불상을 두고 향을 피우는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사원의 파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나무를 받혀 놓은 곳도 눈에 많이 들어온다.
< 사원 내부 곳곳에 앉아 있는 "부처님" >
< 사원의 파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나무" 로 지지하고 있는 모습 >
이곳도 신속하게 바욘사원 내부를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돌아보고, 바욘사원 북쪽에 있는 "코끼리 테라스" 로 이동한다.
코끼리 테라스 위에 건축한 목조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살아지고 거대한 테라스 형체만 그 시대 영광을 나타내고 있는데, 테라스 측면에 코끼리의 거대한 코 조각이 남아 있어 "코끼리 테라스" 라고 한다.
< 건축물이 없이진 상태의 "코끼리 테라스" 전경 >
< 기다란 "코끼리 코" 의 조각품 >
코끼리 테라스 뒤편에 앙코르 왕조의 초기 사원이 되는 "피이아카스" 사원이 자리하고 있지만, 복원 중이라 출입이 제한되므로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고 테라스 북편에 있는 "문둥이왕 테라스" 에 이른다.
< 코끼리 테라스 뒤편에 수리 중에 있는 "피이아카스 사원" >
문둥이왕은 앙코르 톰을 건립한 "자야 바르만 7세" 본인이라고 하는데, 동상의 손과 발이 뭉게진 상태로 외롭게 앉자 있는 이 동상은 모조품이라고 한다.
동상의 진품은 프랑스에서 동상을 훔쳐 밀반출 할려다가 캄보디아 정부에게 발각되어 회수가 되었는데, 현재 프놈펜 수도에 있는 박물관에 진열하고 있다고 한다.
< 문둥이왕 "자야 바르만 7세" 의 동상 >
코끼리 테라스 앞에 거대한 광장과 도로가 있으면서 그 광장 끝 부위에 12개 성곽 건물이 숲속에 숨어 있는데, 이 성곽은 앙코르 톰을 방문하는 외국 사절단이 먼저 머물면서 접견을 기다리는 장소이라고 한다.
< 코끼리 테라스 앞에 자리하고 있는 "광장 및 성곽 건물" >
이외에도 성내 많은 건물과 유적지가 산재하고 있지만 더 이상 관광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Guide 이야기에 아쉬운 관광을 종결하고, 툭툭이를 타고 Hotel 까지 시가지 관광도 겸하면서 돌아간다,
잔뜩 덮어 쓴 먼지를 간단하게 샤워로 씻어 내고 동남아시아 어디로 가나 여행의 필수코스로 넣고 있는 "발 맛사지" 를 받아 보는 가게로 들어간다.
이곳 씨엠림의 발 맛사지 가게에 종사하는 아가씨가 자그만치 300여 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캄보디아에서 최고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사업체이다.
1시간 정도 피로를 풀고 저녁식사와 더불어 캄보디아가 자랑하고 있는 "압살라" 춤을 보기 위하여 뷔페 식당으로 들어가는데, 약 1,000여 명 정도가 동시에 식사가 가능한 Table에 입체의 여지도 없이 사람들이 운집하고 있다.
< 약 1.000여 명이 식사 할 수 있는 식당에서 "압살라" 춤을 추는 모습 >
식사와 더불어 압살라 춤을 보고 있으니 압살라 춤은 단순히 손가락과 발만 사용하면서 정적으로 추는 춤으로 유연하게 움직이는 이색적 동작의 민속춤이라고 하는데, 공연이 끝나는 한시간 정도 눈을 무대에 고정시키게 한다.
< 손가락과 발을 온화하게 움직이면서 "압살라" 춤을 추는 무희들 >
씨엠림에는 이 정도 규모를 가진 식당 5-6개가 있으며 모두다 개인적으로 압살라 춤의 공연을 겸하고 있다고 하는데, 중국과 같이 국가적으로 관리하여 대규모 공연장을 통하여 전통 민속춤으로 승격이 되었으면 좋으려만....
식사를 끝내고 씨엠림이 자랑하는 "외국인 거리" 로 산책을 하여 보는데, 초기에는 미국과 유럽인들 만 출입하였으나 이제는 한국인들이 주름잡는 길거리로 변경되다 보니 곳곳에 한국인 목소리가 요란하게 만든다.
< 길거리 선술집에서 여흥을 즐기고 있는 "외국인 거리" >
그래도 길거리 선술집 테이블에는 서양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캄보디아 토종 음식에 빠지면서 깊어가는 앙코르왓트 밤의 매력에 젖어들고 있다.
우리 일행도 씨엠림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가 아쉬워 캄보디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생맥주 공장에서 무료 시식으로 제공하고 있는 호프집으로 들어가 보는데, 즐거운 맥주파티를 가지면서 2일차 일정을 소화시킨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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