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7일.(수요일)
3. 동춘당 역사공원의 관람.
비래사 관람을 끝낸 일행은 경내에서 20여 분 정도 내려가면 경부고속도로 아래로 만들어져 있는 굴다리를 지나면 대전시 대덕구 송촌동 내 선비마을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는데, 선비마을 4단지 아파트 앞으로 들어가면 '동춘당 역사공원' 을 만난다.
< '동춘당 역사공원' 의 조감도 >
동춘당 역사공원(同春堂 歷史公園) 내에는 작은 연못과 더불어 다양한 정원으로 꾸며져 있고, 다른 한편으로 대전 동춘당(同春堂), 동춘당 종택(同春堂 宗宅), 소대헌 & 호연재 고택 및 대전 '무형문화재 전수 회관' 등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 '동춘당 역사공원' 의 전경 >
< 역사공원 내에 피고 있는 '배롱나무 꽃' >
< 역사공원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선비마을 아파트' >
1) 동춘당 송준길 선생님의 연역.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 1606-1672년)' 선생님은 조선 후기의 문신(文臣)이자 학자로써 본관은 은진 송(恩津 宋)로써 어릴 적 부터 아버지 '송이창(宋爾昌)' 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20세 때 '김장생(金長生)'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동춘당은 인조 2년(1624년)에 진사가 된 뒤 세마(洗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학업을 연마하였는데, 그는 1649년 효종이 즉위를 하자 집의(執義)로 기용되면서 공서파(功西派)의 거두 '김자점(金自點)' 을 탄핵하므로 권력의 선두로 부각한다.
그후 우암 '송시열(宋時烈)' 과 함께 자의대비의 복상 문제가 되는 '예송(禮訟)사건' 에서 승리하므로 병조판서, 우참찬(右參贊), 이조판서 등 벼슬을 하였는데, 송시열과 학문적 경향이 같았고 율곡 '이이(李珥)' 선생님의 학설을 지지한 분이다.
2) 동춘당 건물을 돌아보면서.
동춘당 역사공원의 중간지점에 보물 제208호 '동춘당(同春堂)'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 입구에 동춘당을 소개하고 있는 안내문과 함께 오른편으로 작은 모형의 동춘당 건물을 만들어 놓고 있다.
< '동춘당' 건물을 소개하고 있는 안내문 >
< '동춘당' 건물의 모형 >
동춘당은 송준길의 아버지가 되시는 '송이창(1561-1627년)' 선생님이 세웠지만, 집의 일부가 허물어지자 인조 27년(1649년) 송준길 선생님의 나이 44세 때 새롭게 중건한 별당(別堂) 건물이라 하겠다.
매우 작은 일직대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담장으로 구획하고 있는 다소 넓은 마당의 뒤편으로 몇 그루의 나무와 함께 '동춘당(同春堂)' 건물 한채만 자리하고 있는데, 집의 구조가 매우 간결하다.
< '동춘당' 으로 들어가는 일직대문>
동춘당 건물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우측 4칸은 대청을 두고 좌측 2칸은 온돌방으로 꾸며져 있는데, 하나의 집에 온돌과 마루가 함께 구성되어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전통적 양식의 건축물이다.
< 매우 간결한 모습을 하고 있는 '동춘당' 건물 >
3) 담장 넘어로 종택 건물의 구경.
동춘당 건물의 왼편으로 들어가면 '동춘당 종택(同春堂 宗宅)'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동춘당 종택은 송준길 선생님의 5대 조(祖)가 되시는 '송요년' 선생님이 15세기 후반에 지었다고 한다.
< '동춘당 종택'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그후 몇 차례 옮겨 지었으며 종택 내부에는 사랑채, 안채, 별당, 별묘, 가묘 등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특히 사랑채에는 일자형으로 규모가 크면서 큰 사랑방과 작은 사랑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곳 종택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어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낮은 담장 넘으로 종택을 구경하여 보는데, 종택에는 아름다운 정원과 더불어 넓은 마당을 가진 건물들이 보이고 있다.
< 문이 잠겨져 있는 '동춘당 종택' 의 대문 >
< 담장 넘으로 바라보는 '종택' 건물 >
<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는 '종택' 건물 >
<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고 있는 '종택' >
4) 소대헌 & 호연재 고택의 방문.
소대현(小大軒) & 호연재(浩然齋) 고택은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가 되는 동춘당 송춘길의 둘째 손자가 되는 '송병하' 선생님이 1674년에 분가하여 건립한 고택인데,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 선생님이 1714년에 이곳으로 이축하였다.
호연재는 호연(浩然)의 기운을 가지고 여성의 자존감을 고양시키고 양성 평등을 추구했던 시대를 앞서 간 여성이면서 안주인이 되는 '호연재 김씨' 가 살림과 함께 시(詩)를 짓었던 공간인데, 안채를 보면 호연재 김씨의 위세를 알게하는 고택이다.
조선 중기 건축의 원형이 잘 보전되어 대전지역의 살림 집을 이해할 수 있는 건축적 가치 및 충청지역에서 보기 드문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를 나란히 배치하고 있는데, 그러므로 매우 희소성을 가진 고택이라 하겠다.
소대헌 & 호연재 고택으로 들어가는 정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먼저 2채의 사랑채를 만나고 이어 사랑채 뒤편으로 들어가면 안채가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 사랑채와 안채에 '반아호연(盤牙浩然)' 이라는 작품전을 개최하고 있다.
< '소대헌 & 호연재 고택' 으로 들어가는 정문 >
<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사랑채' >
<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사랑채' >
< 일직선으로 지어져 있는 2개의 '사랑채' 건물 >
< 사랑채 뒤편 ㄱ자 형태의 '안채' >
반아호연 작품전은 2024년 7월 12일 부터 8월 25일 까지 45일 동안 2채의 사랑채와 ㄱ자 형태의 안채 및 안채 마당에서 전시하고 있는데,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맹자(孟子)' 에 나오는 말로 천지간에 넓게 퍼진 올바른 기운을 의미한다.
< '반아호연' 의 작품전을 알리고 있는 현수막 >
< 안채의 마루에 전시하고 있는 '작품' >
< 안채의 방에 전시하고 있는 '작품' >
< 안채의 다른 방에 전시하고 있는 '작품' >
< 안채 앞 마당에 전시하고 있는 '석불' >
< 사랑채 방에 전시하고 있는 '작품' >
< 사랑채 다른 방에 전시하고 있는 '작품' >
< 사랑채 또 다른 방에 전시하고 있는 '작품' >
< 안채의 뒤편 마당에 전시하고 있는 '작품' >
반아(盤牙)는 '이어가고 서로 연결한다는 뜻' 이고 호연재 김씨의 '호연과 반아' 를 묶어서 '반아호연' 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한다고 하는데, 한국 예술의 과거 및 현재 그리고 미래가 어우러진 모습의 작품으로 보여 주고 있다.
< '소대헌 & 호연재 고택' 을 떠나는 쪽문 >
나 같이 무지(無知)한 사람이 작품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봤다는 증거로 몇 장의 기념사진을 남기고 소대헌 & 호연재를 떠나기로 하는데, 나가는 문은 고택의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쪽문을 이용한다. - 3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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