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9일.(월요일)
* 다시 찾아가는 해인사의 관람.
작금 지속적으로 쏟아지는 더위를 피신하기 위하여 우리부부는 가능한 농촌에 머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오늘 오후 대구로 나가기 전에 몇일 전과 동일하게 가야산 백운동으로 올라가 점심식사 시간을 가진다.
풍족한 점심식사 후 가야산에서 최고의 피서지가 되는 소릿길 따라 맨발걷기 운동을 하기 위하여 해인사 방향으로 넘어가는데, 오늘도 홍류동 매표소로 올라가 주차비를 지불하고 나서 해인사를 탐방하기로 한다.
나는 수시로 해인사를 방문하여 나의 블로그에 해인사 역사를 기술한 경험이 있는 사찰이지만,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최근 해인사를 방문한 날짜는 3년 전이 되는 2021년 8월 6일이라 하겠다.
그래서 다시 해인사를 구경하기 위하여 경내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경내로 들어가 보는데,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을 포함하여 많은 방문객들이 탐방하고 있다.
먼저 해인사 입구에 '가야산해인사(伽倻山海印寺)' 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일주문을 만나는데,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울창한 나무들이 도열하고 있는 오솔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우측에 2그루의 고사목 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 '가야산 해인사' 이라고 쓰여 있는 일주문 >
2개의 나무 중 하나의 나무는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나머지 한그루의 나무는 벌써 죽어 나무등걸로 변하고 있는데, 이곳 나무등걸은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 및 이정' 스님이 심었다는 나무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 해인사 창건 당시에 심었다는 '고사목' >
나무등걸을 지나면 이내 해인사의 2번째 관문이 되면서 '해인총림(海印叢林)' 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문을 만나면서 문의 내부에는 4천왕상(四天王像)을 모시고 있는데, 현재 4천왕을 새롭게 단장하기 위하여 가림막으로 덮혀 있다.
< 해인사 2번째의 관문이 되는 '4천왕문' >
4천왕문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해인사 경내로 진입하는데, 해인사는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 도량이자 우리 민족 믿음의 총화가 되는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로써 한국인의 정신적 귀의처(歸依處) 이면서 이 땅에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 되어왔다.
신라시대 도도한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한다는 가치 아래 해인사는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세워진 가람인데,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무렵 중앙 아시아에서 성립된 대승 경전의 최고봉이라 하겠다.
본래의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이라 하면서 동양문화의 정수이라고 일컬어 왔는데, 경전 내에 '해인삼매(海印三昧)' 라는 구절이 나오므로 해인사 이름은 바로 이곳 해인삼매에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해인삼매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 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는데,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써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의 '해(海)' 와 비치는 '인(印)' 경지를 말한다.
이렇게 여실(如實)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을 인지하게 하는 모습이요, 우리 중생의 본래 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인삼매의 가르침이라 하겠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해인사는 해동 화엄종의 초조(初祖) 의상대사(義湘大師 : 625~702년)의 법손인 '순응(順應)화상' 및 제자인 '이정(理貞)화상' 이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년(802년)에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지금의 대적광전 자리에 창건하였다.
4천왕문을 통과하면 조그마한 마당과 더불어 마당 왼편으로는 우화당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오른편에는 토속신앙과 함께 한다는 국사단(局司壇) 건물 및 소원나무이라고 쓰여 있는 당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나무 둘레에 노랑색 종이로 치장하고 있다.
< 4천왕문 뒤편 마당 가장자리에서 자라고 있는 '소원나무' >
작은 마당 앞에서 다소 급경사가 되는 돌계단 위에 3번째 관문이 되는 '해탈문(解脫門)' 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해탈문은 일반적으로 사찰의 중문으로써 불이문(不二門)이라고 불려지면서 '해동원종대가람(海東圓宗大伽籃)'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 해인사의 3번째 관문이 되는 '해탈문' >
해탈문을 지나면 넓은 마당과 함께 정면에는 2층 구조의 '구광루(九光樓)'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구광루는 경내의 중심 건물로써 화엄경에는 부처님이 아홉 곳에서 설법을 하셨으며 그 때마다 설법(說法)하기 전 백호에서 광명을 놓으셨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 해탈문의 뒤편 넓은 마당과 함께 하고 있는 '구광루' >
구광루 앞에 있는 마당의 좌측에는 해인종각(海印鐘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앞에 '해인십바라밀도' 라는 전(田)자와 같은 도형이 그려져 있는데, 십바라밀도는 길이 상호 엉키지 않고 시작점과 도착점이 함께 하는 기하학적 도형이라 하겠다.
< 마당의 좌측에 자리하고 있는 '해인종각' 건물 >
< 해인종각 건물 앞에 자리하고 있는 해인십바라밀도' >
아울러 종각 건물 주변으로 요사채 건물이 되는 사운당(四雲堂)과 청화당(淸和堂)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마당 오른편으로는 불교회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보경당(普敬堂) 및 만월당(滿月堂)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구광루 좌우측 계단으로 올라서면 대적광전 앞 마당에 도착하면서 마당의 중심에서 오른편으로 약간 비켜 석등 및 3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렇게 석등과 석탑이 한쪽으로 기울러져 있는 이유는 기(氣)의 평행을 유지함이라 하겠다.
< 대적광적 앞 마당에서 바라보는 '구광루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는 '지장전' 외 >
< 지장전 내에 모시고 있는 '부처' >
대적광전 앞 마당 좌우에도 많은 요사채 건물과 더불어 왼편으로 적묵당 및 오른편으로 관음전(觀音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마당과 대적광전 주변으로 4월 초피일에 설치한 연등이 아직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매우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대적광전 앞 마당에 설치하고 있는 '연등' >
< 연등 속에 자리하고 있는 '석등' >
< 석등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3층석탑' >
< '대적광전'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법당 건물 조감도 >
다시 높은 돌계단을 이용하여 상부로 올라가면 해인사에서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적광전(大寂光殿)' 을 만나는데, 대적광전 중앙에는 본존불이 되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비롯하여 5명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 본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적광전' >
< 측면에서 바라보는 '대적광전' 전경 >
< 대적광전 내에 모시고 있는 '비로자나불' 외 다수의 부처 >
대적광전 앞에 정료대와 더불어 왼편으로 '대비로전(大毘盧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오른편으로는 명부전, 응진전, 선열당 건물이 자리하고 있어 해인사가 얼마나 복잡하면서도 거대한 사찰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준다.
< 대적광전 앞에서 내려보는 '연등' >
< 대적광전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대비로전' >
< 대적광전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응진전' >
< 응진전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명부전' >
대적광전 뒤편으로 돌아가면 임금님이 마시는 '어수정(御水井)' 우물이 자리하고 있고, 우물의 뒤편 높은 돌계단 위에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판전(藏經板殿)' 건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자리하고 있다.
< 명부전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어수정' >
< '어수정'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대적광전 뒤편 '장경판전' 건물로 올라가는 돌계단 >
돌계단 입구에 팔만대장경판(국보 제32호 및 제206호)의 구조와 더불어 경판을 보관하는 장경판전(국보 제52호) 건물의 제작과정을 기술되어 있는데, 해인사 고려대장경은 석가모니 부처님 말씀을 담은 인류 최대의 기록물이다.
< '팔만대장경판'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장경판전' 건물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높은 돌계단으로 올라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 쓰여 있는 쪽문을 통과하면 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4채의 건물을 만나는데, 전면에 있는 건물은 '수다라장' 이고 뒤편의 건물은 '법보전' 이며 양쪽 측면에 있는 건물은 '사간판전' 이라 한다.
< 높은 돌계단 위 '대장경판전' 으로 들어가는 쪽문 >
< 전면에 자리하고 있는 '수다라장' 건물 >
< 수다라장 건물로 들어가는 '문' >
< 후면에 자리하고 있는 '법보전' 건물 >
< 수다라장과 법보전 건물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동쪽 '사간판전' 건물 >
법보사찰이 되는 해인사는 불보사찰의 양산 통도사 및 승보사찰이 되는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3대(三代) 사찰로 꼽히는 이유는 이렇게 팔만대장경이라는 세계적인 문화유산 및 기록유산을 간직하고 있게 때문이라 하겠다.
팔만대장경 경내를 관람하고 사찰 왼편 사잇길로 내려가면 '독성각(獨聖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독성각 건물 앞 학사대 위에 신라 말 고운 '최치원(崔致遠)' 선생님이 신선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 의지하고 다녔던 지팡이가 소생하여 살고 있는 전나무가 서 있었다.
< 팔만대장경판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독성각' 건물 >
이 전나무는 1.300년 수령을 가지고 있으면서 높이가 30m에 둘레가 5.1m가 되는 전나무로써, 최치원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살아 있으며 이 지팡이도 살아 있으니까 학문에 열중하라' 고 하면서 선경으로 들어갔다는 일화가 내려오고 있는 나무이라 한다.
하지만 이 전나무가 2019년 태풍 링링으로 인하여 쓰려져 고사(枯死) 하였는데, 해인사 측에서는 죽은 나무등걸을 제거시켜 최치원 선생님의 목상(木像)과 더불어 나무 의자를 만들어 휴식의 공간으로 다시 소생한 것과 같이 만들어 놓고 있다.
< 죽은 나무등걸로 만든 '최치원' 목상 및 의자 >
< 왕성하게 살아있는 '최치원' 전나무 : 2016년 1월 9일에 촬영>
< 태풍 '링링' 후 고사한 나무 모습 : 2020년 8월 22일에 촬영 >
< 최치원 선생님의 지팡이 '전나무' 에 대한 설명문 >
이렇게 해인사를 한바퀴 돌아보고 나서 주차장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수다라' 카페로 들어가 팥빙수 한그릇을 주문하여 더위를 날려 보내는데, 해인사에는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이라 언제 보아도 신비를 간직한 사찰이라 하겠다.
< 해인사 경내 앞에 자리하고 있는 '수다라' 카페 >
< 주문하여 보는 '팥빙수' >
카페에서 틀어주는 에어컨 바람으로 인하여 흐르는 땀을 멈추게 하고 나서 다시 운전하여 해인사 경내를 벗어나 홍류동계곡 따라 만들어져 있는 소릿길에서 맨발걷기를 하는데, 오늘은 소릿길 중 제3코스 일부분만 걷고 집으로 가기로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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