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8일 (토요일)
제주도 올레길에 수 많은 육지 사람들이 찾아와 심신을 단련하기 위하여 걷기운동에 참여하는 모습을 근간으로 하여, 산림청에서 작년 부터 개발한 한국의 명품인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은 옛 보부상들이 생계를 위하여 넘나 다닌 길을 복원하여 일반인들에게 야심차게 선을 보이므로 새롭게 부각하는 트레킹 길이다.
금강소나무 숲길은 울진 앞 바다에서 생산하는 해삼물과 소금을 지게에 지고 봉화군 내성천에 있는 시장까지 가서 쌀과 곡식으로 물물교환하기 위하여 다였던 길이다.
이 길 중에 울진군에 속하는 북면 두천리에서 부터 서면 쌍전리 까지 71Km 길을 4개 구간 코스로 개발하고 있는 중, 1차로 두촌리에서 부터 소광리 까지 13.5Km가 개발 완료되어 걷는 길로 선 보이고 있다.
특히 산림청에서 이 숲길을 가능한 원형으로 보존하기 위하여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한 사람으로써, 하루 8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또한 산림청 산하 몇몇 직원이 직접 안내를 하고 숲의 해설을 받으면서 함께 움직이도록 되어 있는데, 그러므로 공무원이 출근하는 아침 9시 까지 집결지 두촌리에 도착하여야 한다.
이러한 제약으로 인하여 서울 등 먼거리 지역에서 당일로 트레킹을 시도하기가 무척 어렵지만, 대구에서는 새벽 여명도 열리기 전 아침 5시 출발하면 당일로 트레킹이 가능한 지역의 이점을 가진 도시이다.
몇일 전 부터 일기예보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대구에 있는 D 산악회에 사진 예약하고서 당일 새벽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는데, 가랑 비가 한없이 내리고 있다.
빈자리가 없도록 사람들이 예약이 되어 있어 트레킹에 임하는 사람이 많겠다고 생각하면서 막상 버스에 오르는데, 비로 인하여 거의 1/3 정도 사람이 빠짐으로 넉넉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버스는 비 속을 뚫고서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통하여 7번 국도에 올라선다.
비 속에서 장사해수욕장 휴게소에 들어가 산악회에서 제공하여 주는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북쪽으로 올라가 울진군으로 들어서는데, 이곳 지역은 비는 고사하고 밝은 햇빛이 온누리를 펴지면서 초여름의 기온으로 급상승하고 있다.
울진이 자랑하는 덕구온천 방향으로 한 4km 정도 들어가다가 갈림 길에서 왼편으로 조금 돌아가면 트레킹 시발점이 되는 두천리 마을 주차장에 8시 40분 도착하는데, 벌써 개인 승용차를 이용한 많은 사람들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 "금강소나무 숲길" 로 들어가기 위한 두천리 주차장 >
9시 정각 울진군청에서 파견한 공무원 한명이 나와서, 울진 금강송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트레킹에 따른 주의점을 설명한다.
숲 해설에 대한 효율성을 높이고 인원 관리의 편리성을 위하여, 산림청 산하 단체에서 몇 명의 숲 해설사가 20-30명 단위로 세분화하여 밀착 관리를 하겠다고 한다.
< 군청에서 파견된 "공무원" 의 설명을 들으면서 >
공무원은 단체인 우리 산악회와 함께 동행하면서 숲을 해설하여 주는 해설사 "최윤석" 씨를 소개하는데, 해설사는 주차장 가장자리에 부착되어 있는 안내판을 보면서 오늘 걷는 길을 부각시키면서 주의 사항을 설명한다.
트레킹 코스 중에는 전연 변소가 없으므로 출발 전에 완벽하게 정리하고 출발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여분의 시간을 더 활애하여 준다.
< "두천리에서 소광리" 까지 걷는 13.5Km 안내도 >
마을 중앙을 통과하여 트레킹 초입으로 들어서는데, 초입에는 트레킹의 이정표가 없어 출입구 찾기가 무척 어려운 길로 안내하면서 조금 걸어가고 나서야 비로써 트레킹 초입 안내판이 붙어있다.
< 마을과 많이 떨어진 곳에 설치된 트레킹 초입 "이정표" >
짐검 다리를 건너 트레킹 길로 들어가는 입구에 한채의 비각과 더불어 2개의 장승이 서 있는데, 비각 내에는 이 길을 다니면서 장사하기 시작한 보부상 행적을 나타내는 안내문과 더불어 보부상 선행을 기리는 2기의 "불망비(不忘碑)" 가 서 있다.
< 비각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숲 해설사" >
비각 안에는 보부상의 접정(두목)이 되는 "정한조" 씨 및 반수(부두목)가 되는 "권재만" 을 기리기 위하여 보부상 일행들이 만든 기념 비각이 서 있다.
비각 모양이 글을 새긴 주물로 만들며서 독특한 형상을 가진 철(鐵)형으로 만들어져 있는데,역사적으로 연구 할 가치가 매우 높은 비각이다.
< 보부상 행적을 기리는 "불망비" 설명서 >
< 주물인 쇠(鐵)로써 양각한 "비각" 모습 >
먼저 보부상 길 초입을 가르키면서 우뚝 서 있는 2기의 장승 중 왼쪽에 있는 장승은 험상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십이령 대장군" 이고, 오른쪽은 활짝 웃는 "보부상 여장군" 이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 "금강소나무 숲길" 을 안내하고 있는 2기의 장승 >
오늘 걷고 있는 이 길은 몇 가지 이름으로 불려지는데, 울진에서 부터 봉화 까지 가는 산길이 12개 고개로 이루어져 있어 "십이령(十二嶺) 고개길" 이라고 하며 보부상이 다녔다고 하여 "보부상 옛길" 이라고도 한다.
울진 방향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려 간 길이라서 "과거길" 이라고도 하지만, 산림청에서 이 길을 복원하면서 명명한 "금강소나무 숲길" 이 정식 명칭으로 등록되어 진다.
오솔길로 이어지는 숲길 입구 따라 올라서면 보부상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서낭당" 당집이 아담한 언덕 위에 건립되어 있는데, 주위 길가에는 무단으로 출입을 통제한다는 출입금지구역이라는 경고문이 무언의 질서를 유지토록 강요하고 있다.
< 트레킹 초입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서낭당" >
< 출입통제구역을 표시하고 있는 "안내 표시판" >
옛날 무리지어 걷고 있는 보부상 행렬과 같이 자연적이고 일렬로 줄이 형성되면서 솦속으로 한발한발 걸어가면 울창한 금강송 나무가 길 옆으로 도열하기 시작하는데, 맑은 공기가 코 끝을 자극하면서 산림욕이 시작된다.
< 보부상 행렬과 같이 일렬로 걷고 있는 "일행" >
학명에 따르면 소나무는 겉씨 식물로 이루어진 소나무 과(科)에 속하는 상록 교목으로 세계적으로 11속 290 종류가 분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소나무 속(屬)은 중세대(中世代) 백악기에서 부터 지금 까지 약 90종이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소나무의 꽃말은 "불로장생" 또는 "변하지 않는 사랑" 등 이고, 또한 씩씩함, 굳은 절개, 우정, 깊은 부부애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소나무는 기운을 맑게 하기 때문에 큰 손나무 밑에 있으면 건강하여 진다고 하는데,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오래 전 부터 소나무로 재목을 사용하여 집을 지어 살고 왔으며 땔감으로 소나무의 뿌리에서 부터 잎 까지 전부 사용하여 좋은 솔 향기를 맡으면서 살아왔다.
또한 솔잎을 이용하여 송편으로 만들어 먹고 송화 다식과 솔잎 술을 마시면서 풍류를 즐기면서 살아왔고, 서민들에게는 배고품을 달래기 위하여 솔 가지에서 나오는 즙과 속살을 깍가 먹으면서 연명한 생명의 나무이라 하겠다.
또한 옛 선비들은 담장 안에는 매화나 대나무를 심고 담장 밖에는 분재 같은 소나무를 심어 감상하면서 오우가(五友歌) 등 시의 주제를 담당하는 장수의 나무이다.
소나무가 우리 내 생활에 의(衣). 식(食). 주(住) 및 정신적 지주 까지 제공하여 주는 인간과의 밀접한 연관을 유지하고, 동행하면서 살아가는 나무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산천과 생활 주변에 머물고 있는 대표적 소나무로써 크게 백송, 반송, 금솔, 적송 등 4개로 구별되는데, 그 나무의 특성을 요약하여 보면,
"백송(白松)" 은 나무 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 이라고 하는데, 중국이 원산지로써 백송은 흔히 보기 어려운 희귀한 소나무로써 잎은 한다발에서 3개씩 나며 문지르면 향기가 나는 것이 특색이다.
옛 선비들이 중국으로 사신이나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몇 뿌리씩 가지고 와서 정원수 같이 키우는 경향이 있다 보니, 한양의 궁궐이나 중요시설 지역(헌법재판소 및 조계사 마당 등)에 몇 그루가 존재하고 있으면서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반송(盤松)" 은 줄기 밑부분에서 1-2m 이내 굴은 가지가 여러 개로 갈려져 자라는 나무로써 두 갈래 잎이 나는 것이 보통인데, 전남 선운사 도솔암 앞에 있는 약 600여 년 수령을 가진 장사송이 대표적인 반송나무이다.
"금솔" 은 바다가에 자라는 나무로써 일명 해송(海松)이라고 하는데, 잎이 일반 소나무 잎보다 억센 편이고 줄기 껍질의 색갈이 검은 빛을 띠고 있으며 바닷가 바람을 막아주므로 방풍림 또는 방조림으로 많이 심는다.
"적송(赤松)" 은 껍질과 더불어 가지 끝에 붙은 눈의 색갈도 붉으며 일반적으로 황장목, 춘양목, 금강송이라고 불려지는데, 적송의 특징은 더디게 성장하기 때문에 나무 조직이 조밀하고 송진 함유량이 많아 잘 썩지 않으며 갈라지지 않고 강도가 매우 높다.
특히 적송 중에서 속에 황금빛을 띠는 소나무를 "황장목(黃腸木)" 이라고 불려지는데, 금강송 전체 중에서 약 10% 이내만 황장목으로 존재하고 있다.
금강송과 황장목의 구별에는 일반 사람에게는 쉽지가 않지만, 울진에서 거주하는 산림 전문가는 성장하는 외부 모양을 보고서 식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무아지경으로 한참 걸어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올라가면 조그마한 고개 마루에 이른데, 이곳 고개가 십이령 고개 중 첫번째로 만나는 "바릿재" 고개이다.
< 십이령 고개 중 처음으로 만나는 "바릿재" 고개 >
고개 마루에서 숨을 고루면서 해설사가 이야기하는 숲에 대한 해설을 들어보는데, 지금까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무심코 지내온 숲에 대한 고마움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가져보는 순간이다.
< 바릿재 고개에서 숲을 해설하고 있는 "해설가" >
지금 걷고 있는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은 앞에서 요약한 설명과 같이 적송으로 이루어진 길인데, 나무의 평균 년수가 150여 년에 키가 20m 정도의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이 만든 바람과 물소리에 귀 기울리고, 숲속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새소리에도 동화되면서 걷는 보폭(步幅)을 적게 하면서 아름다운 금강송 향기에 젖어보기를 바란다고 긴 설명으로 이어진다.
특히 편백나무에서 피톤치드가 많이 발생하므로 말기암 환자에 좋은 치료 효과가 부여하지만, 금강송은 테르핀(Terpene)이라는 방향성 물질이 많이 발산하므로 피부의 접촉과 더불어 인체 호흡을 통하여 치료 효과를 극대화 시켜주므로 호흡기 환자에게 특별한 효과를 가진다고 한다.
고개를 넘어 조금 내리막 길에는 터널과 같은 숲길을 통과하듯 울창하게 도열한 금강송으로 인하여 햇빛이 전연 들지않아 암흑의 길로 이어지다 보니 올라오는 길에 맺힌 땀방울도 이내 살아지는데, 숲길을 약 1.6Km 정도 걷고 보니 트레킹 길이 임도길로 접어 들므로 걷기가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 울창한 "금강송" 나무 길로 걷고 있는 일행 >
이곳에서 부터 약 5Km 정도 임도길로 가는데, 임도길의 반 정도가 시멘트로 포장되어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촉감으로 인하여 무릎에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길 옆으로 아름다운 계곡 속으로 흘려가고 있어 물과 풀벌레 소리 및 숲속 곳곳에서 울고 있는 새소리 등 자연이 만든 소리와 지천에 열려있는 빨간 산딸기 등을 구경하면서 걷다 보니, 마음의 위안을 느낀다.
< 걷기가 제일 싫어하는 시멘트 포장 "임도길" >
한 모퉁이를 돌아서면 양쪽 골짜기에서 흘러오는 물이 합수되는 지점에 도착하는데, 거대한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소(沼)를 형성하면서 아름다운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어 모두가 물가로 내려가 땀을 식히면서 세수를 한다.
< 두 계곡의 물이 합수되는 지점에 있는 "소(沼)" >
특히 이 지점에는 희귀종으로 분류되는 "산양" 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라고 정숙을 요구하는 안내문이 붙어있는데, 남한 전체에 약 500 마리 정도 산양이 서식하고 있는 것 중 이 부근에서 약 100마리 정도가 서식하고 있는 한국 최고의 산양 서식지이라고 한다.
< "산양" 이 서식하는 지점이므로 조용하게 하라는 표시판 >
또 다시 곳곳에 나타나는 희귀 동. 식물도 관찰하면서 조금 걷다보면 길게 하늘을 찌르고 있는 잘 생긴 금강송 군락지에 이르는데, 휴식과 더불어 금강송에 대한 해설이 본격적으로 설명한다.
< 가는 길에서 만나는 "연리근" 나무 >
< 나무의 암 덩어리가 되는 "축령" 모습 >
금강송은 일본 식민지 시대 일본 놈들이 한국의 금강송을 보고 아름다움에 놀램이 발생하여 일본학자들이 세계 식물학계 단체에 Japenese Red Pine(일본 적송) 이라고 소개하다 보니, 적송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적송은 순수한 일본식 표현이고 한국식 표현으로는 한국의 최고 풍광을 자랑하는 금강산을 모방한 "금강송" 이 정확한 이름인데, 아직도 적송이라고 일부 논문에 기제하고 또한 한국 학자들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고 한다.
이어 금강송의 성장은 일반적인 소나무와 달리 양지성 식물이다 보니, 보통의 나무 보다 많은 햇빛을 받기 위하여 위로 쭉쭉 자라면서 작은 나무가지 만들면서 성장하는 특성을 가진 나무이다.
다른 나무보다 키가 크게 성장하고 나서 밑에서 성장하고 있는 작은 나무가지는 자연적으로 성장이 멈추고 비바람에 의거 떨어져 나아가는 특성에 따라 나무의 둥치 부분이 길고 쭉쭉 뻗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답게 성장한다고 한다.
< 밑 둥치의 작은 나무 가지가 스스로 떨어지고 위로 성장하고 있는 "금강송" 모습 >
또한 나무의 성장이 더디다 보니 나무의 나이테가 춤촘하면서 단단한 내부를 가지므로 비틀림이 적어 건물을 짖는 목재로서 최상의 조건을 가지므로 옛날 왕실의 궁궐이나 신궁을 건축하는데, 필히 사용한 나무이다.
그래서 황장목이 자라는 강원도와 경상도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지역에 자생하는 금강송의 벌채 남발을 막기 위하여, 선조 임금은 한국의 5곳에 황장목의 벌목을 제한 한다는 표시로 "황장봉계(금장금표)" 세워 산의 출입을 통제하였다고 한다.
황장봉계가 있는 곳으로 첫째는 강원도 인제 한계리에 있는 "황장금산" 표시석이고, 둘째는 강원도 원주 학골리 치악산 입구에 있는 "황장금표" 이다.
세째는 강원도 영월 수주면 두산리에 있는 "황장금산" 이라는 표시석이며 네째는 경북 문경 동로면에 있는 황장산의 "봉산" 이라는 표시석이고, 마지막으로 오늘 트레킹의 끝지점이 되는 경북 울진 서면 소광리에 있는 "황장봉산" 의 표시석이다.
이렇게 소중한 자연의 보고를 유지하고 있는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을 훼손시키지 않고 후손에서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주기 위하여 약 5시간 거리 까지 변소도 건축하지 않을 정도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소중하게 보고 즐기면서 모든 것은 되돌아 가지고 가고 오직 발자국만 남기는 트레킹이 되어지기를 기원한다고 한다.
임도가 끝나면서 오솔길로 들어가는 지점에 아담한 "찬물내기 쉼터" 이라는 정자 한채를 만나면서 정자는 이곳에서 생산하고 있는 금강송으로 만든 정자인데, 특히 정자에 붙어 있는 현판과 의자가 황장목으로 만들어져 있어 색갈이 매우 아름답다.
<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만들어져 있는 "정자" 모습 >
< 붉은 황장목으로 만들어진 정자의 "현판" >
< 의자로 사용하고 있는 "황장목" 단면 모습 >
여기에서 조금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한대의 승용차에서 점심식사를 운반하여 오는데, 이 식사는 사전 인터넷으로 예약한 점심으로 이곳 지역 산천에서 자생하는 나물로 만든 반찬과 밥이다.
지역 주민의 소득 증대와 더불어 타지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향토음식 맛을 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주는 별미의 음식이라 하겠다.
정자 이름과 같이 주위의 물이 너무나 차가워 "찬물내기" 라는 계곡 곳곳에 자유롭게 자리를 잡고 먹어보는 음식 맛이 별미를 제공하고 있는데, 푸짐한 시골 인심으로 인하여 무한 리필로 추가 공급을 받아본다.
< "찬물내기" 계곡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일행 >
약 1시간 정도 여유를 가지면서 천천히 점심식사를 끝내고 나서 다시 오솔길로 들어서는데, 너무나 많이 먹은 음식으로 인하여 이내 숨이 매우 가빠지는 걸음이 된다.
약 30분 정도 올라가면 해발 640m "샛재" 고개에 도착하는데, 이 고개에는 옛 보부상들이 넘고 다니면서 기원을 드린 또 다른 "조령 성황사(鳥嶺 城徨祠)" 라는 사당 한채가 자리하고 있다.
< 해발 640m "샛재" 고개 마루를 넘어면서 >
<"샛재" 고개에서 만나는 "조령 성황사" 모습 >
여기서 지금 까지 동행하여 온 솦 해설사는 짧은 작별인사와 함께 되돌아가고, 새로운 해설사 한분으로 교대하면서 바톤을 넘겨 받는다.
이렇게 해설사를 교환하는 이유는 앞 해설사가 되돌아가는 시간적 거리와 더불어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해설을 하므로, 더 많은 지식을 부여하기 위함이라 하겠다.
< 지금까지 숲 해설을 담당하고 있는 해설사 "최윤석" 씨 >
새로운 해설사는 조금 연세를 가진 분으로 소광리에서 살고 있는 현지인이고, 1960년 도 말 까지 보부상 고개를 넘나들면서 장사한 사람들과 직접적인 친분이 있는 분이라 보부상들이 일어난 경험과 애환을 이야기 함으로 해설의 흥미를 첨가시킨다.
특히 여기 고개 마루에 있는 당집은 1817년 도에 처음 건립하였지만 건립 당시에서 부터 일반적으로 고개마루에 흔히 있는 성황당(堂)이 아니고 성황사(祠)로 건립된 배경을 정확하게 설명하는데, "당"과 "사" 의 구분은 사당 내부에 모시는 목표물을 두는 여부에 의거 결정한다고 한다.
현재 사당 내부에는 명판과 달리 목표물이 도난 당하여 없는 상태이지만 내부 벽면에는 옛 보부상들이 각출한 돈으로 성황사를 유지 보수하여진 과정을 나타내는 이름이 나열하고 있는데, 그 때 동참한 보부상 숫자가 자그만치 1.000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 "조령 성황사" 를 배경으로 한 컷 >
특히 성황사 앞에 있는 황장목 나무가 튼튼하게 성장하고 있는데, 그 중 제일 오래된 500여 년 된 황장목이 노란색으로 태두리 표시가 되어있다.
이렇게 오래된 나무를 표시하는 이유는 나무가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으니까 벌목을 예방하면서 나무에서 뿜은 정기를 덤푹 받고 출발하도록 여유로움을 준다.
< 수령 약 500여 년이 된 "황장목" 나무를 보면서 >
완만하게 내려가는 길마다 나타나는 비석과 마구 할멍이 타고 다니든 말의 무덤 등에 대한 보부상 전설도 들으면서, 조금 더 내려가면 한 언덕 위에 아슬하게 자라고 있는 "복짜기" 나무 한 그루를 가르켜 준다.
복짜기 나무는 추운 곳에서 성장하는 활엽수림(闊葉樹林)으로 나무의 재질이 너무나 단단한데, 우리 내 선조들의 제사를 지내는 제기(祭器)로 많이 사용한 나무이라고 한다.
< 길가에 세워진 보부상 행적을 기린 "비석" >
< 마구 할멍이 타고 다니든 "말" 의 무덤 >
현재 복짜기 나무의 멸종 위기로 인하여 거의 불 수가 없다고 하는데, 이 나무로 만든 제기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최상품의 기물(器物)이 된다고 한다.
< 제기를 만드는데 최고의 품질을 가진 "복짜기" 나무 >
가는 길 중간중간 새롭게 나타나는 명소와 개울가에 노닐고 있는 선천어 등을 구경하면서 개울 옆 산길 따라 한시간 정도 내려가면 다시 임도를 만난다.
이곳 임도의 끝에는 황장목 군락지로 가는 길목으로 가끔씩 다니는 차량으로 인하여, 비포장에서 발생하는 흙먼지로 다소 불편한 길이 된다.
< 수 많은 산천어가 살고 있는 "개울" >
내려가는 방향의 임도길 따라 10여 분 정도 걸어가면 3거리가 나타나면서, 도로의 한 모퉁이에 황장목 군락지를 나타내는 지형도가 나타난다.
< 약 10만 여 그루의 "황장목 군락지" 를 나타내고 있는 지형도 >
이곳 황장목 군락지 안에는 약 5.500 ha(1.600여 만평)에서 약 10만 여 그루의 황장목이 자생하고 있는 한국 최대의 군락지가 되는데, 국가에서 철저하게 관리 함으로 출입에 대하여 많이 제한되는 곳이라고 한다.
< 황장목으로 이루어진 "군락지" 모습 >
개울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다가 다시 고개길로 들어가면 고개길 중간에 옛날 사람들이 기거한 화전민이 살았던 몇 채의 집터가 나타나는데, 이렇게 첩첩 산중에서도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을 보니 옛날 사람들의 생존력이 얼마나 강인함을 느끼는 장소이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고개에 도착하는데, 최후의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저진터재" 고개를 넘어서면 모내기를 마친 다랭이논 사이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이렇게 논이 있다는 것은 마을이 인접하게 있다는 암시를 나타내고 있는데, 오늘 트레킹의 중착역으로 달려간다는 안도감으로 다시 발길을 가볍게 만든다.
아름다운 새소리와 더불어 활짝핀 찔레꽃 군락지를 통과하면서 "찔레꽃" 이라는 옛 노래를 흥얼거려 보는데, 찔레꽃 노래 말에는 찔레꽃이 붉게 핀다고 하지만 보이는 찔레꽃 전부가 흰색이라 모순의 노래 가사를 만든 작사님의 재치가 아이러니컬 하다.
* 1절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잊을 사람아.
* 2절
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동창생
천리 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작년 봄에 모여앉아 찍은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그리운 시절아.
* 3절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산천에서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 흰색으로 피고있는 "찔레꽃" >
< 거대한 고목나무 같이 성장한 "찔레꽃" >
흥얼거리는 노래를 뒤로 하고 조금 더 걸어서 내려가면 금강소나무 숲길의 트레킹 코스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소광리 마을에 도착하는데, 마을이 병풍같이 둘려쳐 있는 첩첩 산골 속에 고즈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 울창한 숲속에 자리하고 있는 "소광리" 마을 >
마을 중앙에는 폐교가 된 학교가 펜션으로 거듭 탄생하여 도시민들에게 머뭄의 공간을 제공하여 주고 있는데, 운동장 끝에는 "십이령 주막집" 에서 지역 막걸리를 판매하는 주점으로 거듭 탄생하고 있다.
주점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하루에 한번 들어오는 마지막 4시 30분 행 버스를 기다리면서 머뭄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 폐교를 활용하면서 만든 "펜션" 모습 >
< 폐교 마당에 걸려있는 "십이령 주막" 현수막 >
주점 앞 처마 밑에는 주인장이 손수 만든 황장목 도마와 식기 그릇을 판매하고 있는데, 도마 한개를 무심코 들어보니 무게로 인하여 한손으로 들다가 큰 코를 다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 폐교를 활용하여 만든 "십이령 주막" 과 간이 판매점 >
< 주인장이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황장목 "도마" >
황장목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나이테가 균등하고 촘촘하면서 나무의 결이 곱고, 심제부가 황적색으로 이루어져 있어 도마가 매우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도마의 특징은 도마가 물에 닿으면 소나무의 향이 더욱더 퍼짐으로 향기가 진동하고, 적당한 충격을 흡수함으로 칼날과 손목을 보호한다고 한다.
특히 많은 피톤치드를 함유하고 있어 항균(抗菌)에 탁월하며 잡 냄새를 없애주고, 수분에 대하여 강하여 터짐이 발생하지 않아 거의 반 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도마가 된다고 한다.
아침 9시 부터 오후 4시 까지 약 7시간 동안 휴식과 더불어 금강소나무 숲길을 걸어본 하루가 되는데, 이 모두가 돈으로 환산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산소를 폐부 속 깊숙하게 흡수한 하루가 저물어간다.
떠나는 버스 까지 배웅하는 해설사의 인사를 나누면서 언제 다시 한번 더 찾아보는 길이 되어질지 여운을 가지면서 소광리 산골을 떠나기로 하는데, 생활 형편이 조금만 좋아진다면 몇 일이나 머물고 싶은 장소이다.
금강소나무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 속에 머뭄을 가질 수 있는 경제적 돈을 벌지 못한 나의 신세가 처량하고 한탄스러움을 느끼게 만든다.
죽으면 한푼의 돈은 못 가지고 가지만 많이 마신 산소 덩어리가 나의 폐부(肺腑) 깊숙하게 침투시켜서 저장하면 함께 가지고 갈 수가 있을 것 같은데, 그 놈의 돈이 왠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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