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1일 (일요일)
금년 기상 이변의 속출로 지루하게 많은 비가 내리므로 한반도 곳곳에 물 폭탄에 대한 많은 피해를 불려오는 여름날씨로 변변한 산행도 한번하지 못하고, 올 여름도 무료하게 지나가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세월을 낚고 지낸다.
그러한 사이에 모처럼 기상청 일기예보에 전국적으로 맑은 주말이 된다는 소식을 접하므로, 평상시 마음에 두고 있었던 "외씨 버선길" 트레킹 코스 중 영월군의 1개 구간을 선정하여 동참하여 본다.
외씨 버선길은 경북 청송군에서 출발하여 영양군과 봉화군을 지나 강원도 영월군까지 연결되는 약 150Km 길에 일본놈들이 한국 내륙지방에서 생산하는 수탈품(收奪品)을 운반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던 옛길을 4개 군(郡)에서, 각 군별 3개 구간으로 재 개발하여 연결하는 CY2B(각 군청의 영어 첫글짜 이니셜) 트레킹 코스 길이다.
또한 이렇게 외씨 버선길이라는 아름다운 길의 이름으로 작명한 것은 경북 영양군 주실마을에서 출생한 한국 문단의 대표적 시인이 되시는 "조지훈" 씨 "승무" 에 있는 한소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 승무 -
(지은이 : 조지훈 )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초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작명 할 때에 많은 의견이 있었지만, 만장일치로 승무의 한 문구를 인용하였다고 외씨 버선길의 홍보대사로 일하고 있는 코메디언 "전유성' 씨가 선정된 배경을 각구간 출발지 마다 기록되어 있다.
2011년 1차 년도에는 각 군마다 1개 트레킹 코스를 개발 운행하고 있지만 년차적으로 한개 구간씩 더 정비하여 2013년도 까지 전체 구간을 완성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 여름철 최고의 계곡 미(美)를 자랑하면서 산과 물 따라 개발 되어진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에 있는 트레킹 코스를 제일 먼저 선정하여 걸어본다.
< 영월 지역을 홍보하는 "박물관 고을" >
대구 드림산악회에서 주최하는 산행버스는 가푼 숨을 몰아 쉬면서 충북 단양소재지를 지나 강원도 영월 땅으로 넘어가 남한강 지류 따라 한참 올라가면 트레킹 제1구간 종착 지점 "김삿갓면사무소" 에 도착한다.
출발점은 이곳 면사무소에서 조금 더 상부로 올라가다가 태백시로 가는 길과 경북 봉화군으로 넘어가는 3거리 이정표에서 시작한다.
이 삼거리에서 오른편 봉화 방면으로 약 5-6Km 계곡 옆으로 만들어진 도로 따라 올라가면 난고(蘭皐) "김삿갓 문학관" 으로 들어가는 넓은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문학관 주차장 마당이 외씨 버선길의 출발지로써 벌써 많은 관광객들이 머물고 있다.
< 많은 "관광버스" 가 주차하고 있는 김삿갓 문학관 주차장 >
넓은 공터에 조성된 문학관에는 입장료 1.000원을 지불하면 김삿갓 일생의 모든 사연과 애환 등을 진열하여 놓은 자료를 관람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트레킹이 주 목적으로 참석하였므로 관람을 생략하고, 문학관 주변에 조성된 수십 개의 김삿갓 동상과 조각품 및 시를 주마간산(走馬看山) 같이 음미하다가 트레킹 길을 재촉한다.
< "김삿갓 문학관" 건물과 조각품 >
< 넓은 광장 구석구석에 조성된 "김삿갓 동상" 과 시비 >
영월 외씨 버선길의 제1구간은 김삿갓 문학관에서 김삿갓 면사무소까지 약 10.4Km이지만, 마대산 중터에 자리잡고 있는 "김삿갓 생가" 까지 1.8Km를 돌아보려면 총 걷는 길이가 14.0Km가 되므로 주어진 5시간 이내에 트레킹 종료는 그리 녹녹치 않는 거리인 것 같다.
< 아침 일찍 부터 "김삿갓 문학관" 앞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
다리를 건너 아스팔트 도로에서 출발하여 100m 정도만 내려가면 김삿갓 무덤을 발굴하여 공원과 같이 조성되어 있는 풍경이 도로변에서 잘 보이고 있다.
묘소로 올라가는 입구 공원에는 죽장을 들고 삿갓쓰고 방랑 생활을 떠나야만 하는 김삿갓의 기구한 운명을 표현한 조각품과 설명서가 잘 만들어져 있다.
< "김삿갓" 의 기구한 운명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판 >
< 김삿갓의 두상을 표현한 "조각품" >
< 난고 "김삿갓"의 유적비 >
난고 "김병연(일명 : 김삿갓)" 은 1807년도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에서 부친 "김안근" 씨와 어머니 함평 이씨 사이에 2남으로 태어 낳지만, 그의 나이 5살이 되는 1811년 홍경래 난이 발생한다.
난의 격전지가 되는 선천지역 부사가 되시는 그의 조부 "김익순' 씨가 난을 진압하지 못하고 오히러 홍경래에게 항복 함으로써, 나라의 대역죄인이 되어 3족이 멸 할 처지가 된다.
하지만 안동 김씨의 세도와 집안 일을 돌보는 종 "김성수" 씨 노력으로 위기 일발의 김삿갓 가족을 구출하여 황해도 곡산에서 키운다.
그후 목숨을 연명한 어머니는 여러 곳으로 전진하다가 김삿갓이 10살 때, 어머니 이씨는 김삿갓 형제와 함께 강원도 영월 땅으로 깊숙하게 숨어든다.
김삿갓은 첩첩산중이 되는 이곳 "어둠이골" 에서 성장하여 20세가 되기도 전 천재적 재능을 보여 영월에서 실시하는 백일장 과거시험에서 당당히 장원이 되는데, 그의 선친 김익순씨를 욕한 죄책감에 대하여 선영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진다.
그래서 22세 부터 삿갓을 쓰고 방랑길로 떠나면서 온갓 풍문을 남기는데, 희대의 풍운아로 살다가 57세(1863년)의 나이로 전라도 화순군 동북면 구암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3년 뒤 그의 2째 아들이 되는 김익균이 아버지 시신을 수습하여 생가로 올라가는 길의 입구이면서 이곳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으로 이장하여 현재에 이른다.
무덤 입구에 들어서면 안내소와 같이 "난고정(蘭皐亭)" 이라는 나무집 한채가 있는데, 그 안에는 몇 달전 영월 단종 묘에서 보았던 현대판 김삿갓 "최상락" 아저씨 한분이 머물면서 묘와 생가를 관리하며 김삿갓 일대기를 해설한다고 한다.
< 현대판 김삿갓 최상락씨가 머물고 있는 "난고정" >
묘소 앞에는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좌판이 놓여 있고 그 옆에는 김삿갓 묘비 명을 알리는 기다란 돌이 서 있지만, 김삿갓 아저씨는 단체 관광객이 아니라서 그런지 수 많은 산꾼들이 올라와 참배만 하고 지나간다.
하지만 해설도 한번 하지 않고 정자에 머물면서 한무리의 여자들과 정담을 나누고 있는데, 아마 현대판 김삿갓도 남자라써 그런지 여자들만 좋아 하나 보다.
< 잘 조성된 김삿갓 "묘소" 전경 >
트레킹만 즐기려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 까지 구경하고 내려가지만 일행 몇 명은 1.8km 떨어진 생가로 올라가 보는데, 이 길은 해발 1.052m "마대산" 정상 산행 코스의 초입과 동일하여 산행하는 많은 사람들로 길이 이어진다.
올라가는 길은 100m 단위로 이정표가 잘 부착 되어있어 지루함 없이 올라가기가 편리하지만 곳곳에 물을 건너야 하는데, 물을 한번 건널 때 마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과 충청도 단양군 영춘면으로 9번이나 왔다갔다 해여야 한다.
< 충청도와 강원도를 넘나드는 "개울" >
한 30분 정도 올라가면 3거리 오솔길이 나오면서 왼편으로 한채의 민가가 있고, 오른편으로 마대산 정상 2.3Km와 김삿갓 생가 200m라는 최종 이정표가 나온다.
< "마대산" 정상과 김삿갓 생가를 나타내는 이정표 >
3거리에서 크게 한숨을 몰아 쉬면서 작은 개울 하나를 더 건너면 아담한 초가집 한채를 만나는데, 이 집이 김삿갓 생가를 재현하여 놓은 건물이다.
< 한무리 등산객들이 머물고 있는 "김삿갓 생가" >
김삿갓 생가 전체 건물은 초가 3칸으로 구성된 집과 김삿갓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난고당(蘭皐堂)' 으로 단촐하게 구성되어 있다.
생가 마루 앞에는 죽장에 삿갓을 쓰고 방랑길을 나서는 김삿갓 목각 인형이 서 있는데, 인형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을 남겨본다.
< 김삿갓 생가 마루 앞에 서 있는 "목각" 을 배경으로 >
< 김삿갓 영정을 모시고 있는 "난고당" >
생가 안방에는 사람이 기거하는 흔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 먼저 김삿갓 묘소에서 대면한 현대판 김삿갓 최상락씨가 이곳에서 생활하는 집이라고 한다.
생가 주변에서 머물고 있는 한무리 산꾼들은 마대산을 종주하기 위하여 능선 따라 올라가고, 생가만 구경하기 위하여 올라온 몇몇 관광객들은 집안 구석구석을 배회하다가 올라온 길로 다시 하산길로 내려간다.
우리들은 일행보다 약 1시간 정도 늦게 원점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시작하는데, 초기 약 3Km는 아스팔트 길 따라 내려가는 코스로 되어 있어 지나가는 자동차 소음으로 인하여 짜증도 많이 발생한다.
도로 옆으로 잘 조성된 가로수 및 계곡으로 흘러가는 1급수 풍족한 물소리와 도로변 약 10m 간격으로 크다란 돌에 새긴 김삿갓 시비가 너무나 잘 만들어져 있고, 그 옆의 검은 돌에는 한시의 내용을 간결하게 설명하여 놓아 읽어보는 재미로 인하여 소음도 망각하게 만든다.
< 도로변 따라 조성된 "김삿갓" 시가 적혀 있는 바위와 설명서 >
< 도로 따라 흘러가는 "청정 1급수" 냇물 >
일생 동안 김삿갓은 약 1.000여 편의 시를 남겼다고 하나 현재 400여 편의 시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알기쉽고 해학적인 시를 선정하여 만들어져 있어 음독하기에 많은 재미를 더하여 준다.
약 2Km 정도 걸어가면 거대한 돌로 만든 장승 2기가 서 있는 중간에 "조선민화 박물관" 이라는 안내석이 서 있는데, 그 장승 뒤편으로 이어지는 나무 계단 따라 야산으로 올라가면 붉은 건물로 만들어진 조선민화 박물관 마당에 이른다.
< 거대한 장승과 더불어 "조선민화 박물관" 을 표시하고 있는 안내석 >
조선민화 박물관은 "오석환" 관장이 25년 간 민화 4.000여 점을 수집하여 매년 100여 편씩 바꾸어 전시하고 있는데, 개인 박물관이라서 그런지 입장료 4.000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곳도 트레킹 시간으로 인하여 관람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만약 충분하게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꼭 보아야 하는 박물관인데, 전시품으로 재미있는 민화 작품이 너무나 많이 전시하고 있다고 하지만 시간이 원수가 된다.
< 수천점의 "조선민화" 를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 입구 >
약 1Km 정도 더 아스팔트 길 따라 내려가면 본격적으로 트레킹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숲속으로 길이 이어지는데, 이 길은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계곡 낭터리지 옆으로 길이 조성되어 있다.
트레킹 길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철구조물과 시멘트를 전연 사용하지 않고, 오직 자연석과 흙으로만 만들어진 길이라 발바닥을 통하여 오는 느낌이 최상의 콘디션을 발휘시켜 준다.
< 절벽 낭터리지 옆으로 조성된 "외씨 버선길" >
계곡 좌우를 건너면서 산 중터에 있는 와석리 마을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방향에도 외씨 버선길이 만들어져 있는데, 한 여름 울창한 숲속에서 무한정 땀을 흘려보는 고난의 길도 걸어본다.
< 중요한 지점마다 만나는 "외씨 버선길" 을 표시하고 있는 이정표 >
와석리 산촌 동내에서 내려오면 계곡 반대편 "묵산미술 박물관" 으로 들어가는 출령다리가 아름답게 놓여 있으며 미술관 뒤편으로는 장군봉과 세종대왕 바위가 병풍처럼 감쌓고 있다.
미술관 앞으로는 맑은 물이 휘감아 돌아가는 절경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래서 박물관 자체가 또한 한폭의 동양화를 연출하고 있다.
< "묵산미술 박물관" 으로 들어가는 출렁다리 >
< 병풍같은 산맥으로 쌓여 있는 "목산미술 벅물관" 전경 >
미술관 내부로 들어가면 이곳 미술관도 "임상빈" 씨라는 화가가 개인 사재를 떨어 수집한 조선시대의 회화 등을 상시 전시하고 있는데, 여기도 조선민화 박물관과 동일하게 입장료 4.000원을 징수하고 있다.
내부에는 세계 어린이 미술관, 고미술 전시관, 현대미술 전시관, 기획 전시실, 연구실, 미술 체험실, 민박시설 등의 건물들이 울창한 숲속에서 상호 조화를 이루면서 거대한 새집 같이 둥지를 만들고 있다.
건물 내부에 커피, 전통차, 주스, 컵라면, 아이스크림을 갖춘 무인 셀프 찻집도 겸하고 있는데, 이곳도 입장료가 아까워 도적놈과 같이 한 전시장에 잠시 문을 열어보고 주인 없는 빈틈을 이용하여 몰래 사진 한장만 찍고 나온다.
< 상호 조화를 이루면서 건축된 "묵산미술 박물관" 전경 >
< 전시관 내부에 진열하여 놓은 "그림" 을 몰래 찍어 보면서 >
구름다리로 되돌아 나와 100m 정도 내려가면 왼편으로 거대한 바위 하나가 조그마한 돌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는데, 이 바위가 "든돌(든바위)" 바위이라고 한다.
든돌의 바위 옆에 기록한 내용을 읽어보면, 이곳 든돌바위는 "아기장수" 와 용마 이야기가 내려오는 전설을 간직한 돌이라고 한다.
와석리 마을에 태어난 아기장수가 거대한 돌을 들어 작은 돌들 위에 올려 놓았는데, 지금은 도로 확장으로 든돌 주변에 많이 메워졌다.
옛날에는 긴 실로 바위 밑으로 당겨서 돌아도 돌뿌리에 걸리지 않고 통과하였는데, 그래서 영주 "부석사" 의 부석바위와 같이 공중에 떠 있었다고 한다.
< 돌이 떠 있는 "든돌" 바위와 전설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석 >
아기장수가 죽은 뒤 용마가 나타나 울부짖다 죽었는데, 용마를 묻은 무덤이 와석1리 들 모랭이 논 가운데 있어 마을 주민들은 매년 용마제를 지냈지만, 1972년도 대홍수 때 유실되어 없어졌다고 한다.
와석 1교를 건너 물길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따라 20분 정도 걷다 보면 88번 도로에 이르면서 곡동교 다리 위에 도달하는데, 다리 아래에는 지금까지 같이 병행하여 내려온 곡동천 물이 태백방향에서 내려오는 옥동천과 합수하는 지점이다.
곡동교 다리를 건너자 마자 올라갈 때 버스로 확 지나간 태백과 봉화로 갈라지는 3거리에 이르는데, 3거리 주변에는 조그마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봉화로 가는 도로변에는 반 아치형 철구조물과 더불어 김삿갓 동상이 서 있다.
한쪽 길가에는 가수 "명국환" 씨가 불려 희트 친 "방랑시인 김삿갓" 노래비가 마지막으로 김삿갓의 애환(哀歡)을 다시 한번 더 회상시키고 있다.
< 3거리에서 봉화로 넘어가는 도로에 설치된 반 아치형 "철구조물" 과 김삿갓 동상 >
< 철구조물 옆에 있는 "김삿갓 동상" 을 배경으로 >
삼거리 "김삿갓 상회"·식당으로 들어가 잠시 땀을 식히고 나서, 와석1리 마을 안 길로 이어지는 외씨 버선길로 들어선다.
마을회관 앞에 이 지역의 지명 유래를 적은 안내판이 서 있는데, 와석리는 일제 강점기 시절 행정지명 개편 때 와인리와 거석리를 합쳐 부른 이름이라고 한다.
< "와석리" 주변의 지명 유래 설명서 >
와석리는 이른바 ‘양백지간(兩白之間 : 소백과 태백 사이 지역)' 으로 산이 깊은 곳에다가 곳곳에 물길이 가로 막고 길이 험준한데, 그래서 난을 피할 수 있는 영월 10승지 중에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넓은 농로 길 따라 걷다 보면 논의 가장자리에 외롭게 서 있는 정자 하나를 만나고 이어 옥동천 제방에 올라서면 옥동천을 건너는 옛 다리 옆으로 새로운 다리를 만나는데, 그 다리 끝에는 도로를 직선화 하기 위하여 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넓은 물길을 오른편에 두고 조금 걸어 가면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에 또 다른 아담한 정자가 나타나고 이 정자를 기점으로 숲속으로 길이 이어지는데, 그 길 또한 절벽 난간 사이로 길이 만들어져 있어 트레킹의 최상 조건을 선사하고 있다.
< 암벽 낭터리지에 걸쳐 있는 "외씨 버선길" >
참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 한참 걷다 보면 외씨 버선길이 2개로 나누어지는 이정표가 나타는데, 오른쪽은 옥동천 물길의 보(洑) 따라 건너 옥동리로 질러가는 "지르내" 길이고 왼쪽 산길은 옥동천 물이 불어 막혔을 때 에돌아가는 "가랭이봉" 산길이다.
지금까지 너무나 힘들게 걷다 보니 체력 소진으로 가랭이봉 방향의 외씨 버선길을 선택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 아래쪽 보 방향으로 내려가니 한 가족이 살고 있는 민가가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집에는 인기척이 전연 없고 오직 한마리 개가 낮선 손님에게 무섭게 울부 짖는다.
< 넓은 밭 가장자리에 지어진 고즈넉한 "민가" 전경 >
집 앞으로 조성된 넓은 밭을 통과하여 보 앞으로 가니 한 할아버지가 물가에 앉자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물이 많아 보를 건너기가 힘들 것이라고 충고한다.
현재까지 산행하는 사람 한명도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걱정하는데, 절대 위기의 순간을 탈출하기 위하여 Guide에게 긴급하게 SOS를 요청하니 모두가 물의 건넘이 걱정되어 가랭이봉으로 갔다고 하면서 뒤돌아서 산으로 올라오라고 하니 죽을 맛이다.
할아버지가 지금 그 방향으로 돌아서 갈려면 1시간 이상 더 소요된다고 하는데, 중 늙은이 2명이 너무나 불쌍하게 보여 자기가 운행하는 고기잡이 용 보트로 태워 주겠다고 하니 지옥에서 소생하는 기분이다.
물 한가운데 쯤 갔을 때 할아버지는 보트를 운행하여 천엽하는 것도 불법이지만 특히 보트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면 대책이 없다고 하면서 많이 망서렸다고 하는데, 할아버지 인생 이야기도 들으면서 즐거운 보트 놀이가 겸하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트레킹이 된다.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노를 저어 반대편 강 기슭에 무사히 안착시켜 주므로 코가 땅에 닿도록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여 보는데 "할아버지 만수 무강하십시요" 라고 중얼거려 본다.
< 보를 건너고 나서 바라보는 "가랭이봉" 전경 >
< 청정 냇물을 옆으로 두고 함께 걷는 "늙은이" 일행 >
어찌하든 이렇게 지름길로 오다 보니 제일 끝에서 걷는 늙은이가 김삿갓 생가도 가지 않은 다른 일행보다 두번째로 종착점이 되는 "김삿갓면사무소(옛 지명 : 옥동면사무소)" 에 도착하는데, 한 가게로 들어가 시원한 막걸리로 갈증을 풀어본다.
< 영월 외씨 버선길 제 1구간 최종 목적지 "김삿갓면사무소" >
이번 트레킹은 마지막에서 조금 반칙을 범하여 걸었지만 영월 "외씨 버선길" 제1구간 무사히 마침표를 찍는데, 그렇게 풍족한 물과 1급수 청정 물이 지천으로 흘려가고 있다.
지천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알탕이나 족탕도 한번 하지 못하고, 오직 걷는 방향으로 전력을 투자하다 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 트레킹 코스가 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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