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어젠, 진종일 내리는 비로 인하여 북녁에서 부터 하강하고 있는 가을 단풍 마중도 하지 못하고 친구와 소주로 소일하다가, 오늘 아침 일찍 5시30분 경 집을 나서 지하철 첫차 타고 정류장으로 나아가서 평소에 자주 이용하는 "Dream 산악회" 버스에 몸을 싣는다.
새벽을 깨우는 버스는 단풍이 내려오고 있는 북쪽으로 달음질하여 강원도 땅 들어서니 고속도로 전체가 풍락객으로 몸살 알고 있어, 가다 서다를 반복하여 긴 차량 행렬 뒤꽁무니 따라 거북이 걸음하여 10시 30분 대관령 주차장에 이르니. 많은 산꾼들이 산행 준비에 여염이 없다.
오늘 산행은 옛 관서 지방에서 관동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벼슬아치, 선비, 시인, 묵객과 더불어 많은 보부상들이 넘나들면서 생계를 영위한 "대관령 바우길" 로 걸어가면서 옛 선비의 정서를 체험하여 보기 위함이다.
현재, 이 대관령 바우길은 강원도에서 야심차게 개발하여 총 11개 구간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대관령에서 강릉시내까지 아흔아홉 구비 넘어가는 제2구간, 제3구간, 제10구간 및 제11구간 총거리 57Km를 "대관령너머길" 로 명(名)하고 있다.
이 중에서 제1코스인 선자령 정상까지 왕복하는 "선자령 풍차길" 과 제2코스인 "대관령 옛길" 이 제일 많은 풍락객이 찾는 길이다.
특히, 제1코스는 눈이 많이 쌓인 겨울철에 찾는 것이 적격의 코스이지만, 제2코스는 아름다운 단풍을 구경하면서 트레킹하는 가을철이 Pick의 장소이다.
트레킹 들머리는 제1코스와 제2코스가 동일하게 대관령 휴게소 건너편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왼편으로 양떼목장 들어가는 반대편 방향인 오른편으로 조금만 걸어가며는 산행 이정표를 만난다.
< "대관령 바우길" 의 시작점인 버스 주차장과 옛 고속도로 전경 >
산대장은 오늘 "대관령 바우길" 제2코스는 이곳 대관령 휴게소에서 시작하여 약 16Km 끝지점에 있는 "보광유스호스텔" 까지 되어 있지만, 마지막 4-5Km 정도는 아스팔트 길 따라 걷는 단순한 길로 이루어져 있고, 또한 별다른 풍광도 없으므로 약 12km 지점인 "가마골" 까지 가는 것으로 종결하고, 그 대신 단풍이 우거진 대관령 산자락에서 충분한 시간과 여가를 즐기는 트래킹으로 꾸며진다고 한다.
< "대관령 바우길" 제2구간 도형도 >
트레킹 초입에서 오솔길 따라 올라가며는 전일 내린 비로 인하여 풍족하게 흘러내리는 개울 옆으로 만들어진 산길 이용하여, 10여분 만 발품을 팔며는 삼양목장과 양떼목장의 시야가 활짝 열리는 철조망 가장자리에 이른다.
< 물기를 머금고 있는 "산행 초입 길" >
철조망 사이로 바라보는 양떼목장 풍경은 발왕산까지의 광활한 평원 앞에 넓은 초지를 형성하고 있는 초원 위에 한가롭게 양들이 방목하고 있는 모습과 초원 사이로 한무리의 사람들과 어린들이 손잡고 거닐고 있는 목가적인 풍경도 하나의 그림과 같은 형성하고 있다.
< 철조망 넘어로 펼쳐지는 "양떼목장" 전경 >
< 양떼목장 내부를 걷고 있는 "어린이와 어른들" >
철조망을 경계로 하여 야산을 한참 걸어가며는 울창한 숲속으로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소나무에서 품겨나오는 피톤치드의 냄새가 폐부까지 찔려오는 상쾌한 공기로 인하여 정신이 혼란스러워 진다.
<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걷는 산행인들 >
< "피톤치드" 가 풍겨나오는 숲길을 걸어면서 >
약 20여분 정도 산책길 따라 걸어가며는 3거리 이정표가 나타나면서, 이곳에서 부터 왼편으로 선자령 정상으로 올라가는 제1코스와 오른편 대관령 옛길로 가는 제2코스가 분리 되어지므로 인하여 각자의 갈길로 방향이 정하여 진다.
< "대관령 바우길" 이 갈려지는 지점의 이정표 >
우리 일행 전부가 제2코스로 선택하여 오른편으로 접어들어 아름답게 조성된 숲길 따라 조금 걸어가면, 선자령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대관령국사성황당" 에 이른다.
< "대관령국사성황당" 건물 전경 >
국사 상황당에는 이곳 강릉 출신인 신라의 고승 "범일" 스님이 양 옆 2마리의 호랑이를 거닐고 있는 그림이 봉안되어 있고, 뒤편 산신각 건물에는 신라를 통일한 "김유신" 장군을 모신 산신각인데, 산신각 앞에 한 젊은 무속인 아줌마가 무당 굿을 시작하기 위하여 제단과 더불어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 "산신각" 앞에서 굿을 준비하는 무속인 >
산신각 뒤편 약수터 옆 서낭목 아래에도 한 할머니 무속인이 굿을 열중하고 있어, 한 모금의 약수물을 마시면서 굿소리 경청하여 보았지만, 간간히 두두리는 징소리로 인하여 듣기가 어려워 아쉬운 발길을 조기에 돌려만 한다.
< "서낭목" 앞에서 굿을 하고 있는 무속인 >
국사 성황당을 뒤로하고 조금더 숲속으로 들어가며는 한 능선에 이르는데, 이 능선에서 부터 아흔아홉 구비 대관령 고개를 내려가는 오솔길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트레킹에 몰입하게 된다.
대관령 고개의 정점(頂点)인 산 고지가 약 1000m가 넘다보니, 고산(高山) 쪽에서는 벌써 단풍 잎에 다 떨어져 겨울을 준비하는 앙상한 나무가지 만이 산꾼들의 길을 삭막하게 만들고 있지만, 반대로 발 아래는 수북하게 쌓인 낙옆이 나 딩굴고 있는데, 나무 잎이 전일 내린 비로 인하여 녹녹하여 마치 카펫트 위를 걷는 폭신함을 만들고 있어, 걷는 발걸음의 감촉도 너무나 부드러워 최상의 트레킹 길을 만들고 있다.
< 길 양옆으로 높은 둔덕으로 이루어진 길과 떨어진 단풍 길을 걷다가 잠깐 >
더구나, 걷는 길 양옆으로는 인공적으로 만든 협곡 같이 높은 둔덕을 형성하고 있어 푹 파인 골 사이로 길이 만들어져 있다 보니, 바람 한점 햇빛 한점도 들어오지 않는 미로의 길을 구절양장(九折羊腸) 같이 고불고불하게 내려가므로 인하여, 이렇게 완만하게 길이 형성되어 짐으로 정신을 단풍에 쏟아도 안전하게 걷는 발길이 되어진다.
내려가는 길 옆에는 대관령 고개를 넘나들던 유명한 시인이자 문장가인 김시습, 정철, 허준 등 이 쓴 "시(詩)" 들도 지자체에서 잘 조성하여 놓고 있어, 그 것 읽어보는 재미도 첨가시켜 준다.
< 길가에 설치한 "시(詩)" 도 읽으면서 >
제일 꼴치에서 동료 일행을 보호하는 산대장과 함께 거닐면서 세상 근심 걱정 다 내려 놓고 한 30분 정도 무아지경으로 걷다보니, 갑자기 옛 영동고속도로가 오솔길을 끊어 놓고 있다.
도로에 내려서기 전, 잘 조성된 나무의자에 앉자 하염없는 시간도 가져 보면서 여가를 즐기다가 횡단보도 도로 건너 "반정(半程)" 전망대로 들어가서 주변 풍광을 감상하는데, 특히 동해바다를 품고 있는 강릉 시가지를 내려보니 일품이다,
< 잘 조성된 "나무의자" 에 앉자 여유도 가지면서 >
< 옛 고속도로 가장자리에 있는 "반정" 전망대 >
< 전망대 옆에 있는 "대관령 옛길" 입석을 배경으로 >
푸른 나무 사이로 만들어진 하얀 건물들이 졸고 있는 강릉 시가지와 더불어 동해 바다로 뻗어 있는 비행기장 활주로에는 하얀 물체 하나가 하늘로 비상하고 있는 모습도 그림 같이 시야에 들어온다.
< 반정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강릉" 시가지와 동해 바다 >
이곳 반정 전망대 자리에는 겨울철 눈이 내릴적에 대관령을 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얼어죽는 사고가 발생하여, 강릉 고을 향리 "이병화(李秉華)" 씨가 손수 집을 지어 강풍과 비바람을 피하면서 안전하게 넘도록 초막이 건립 되어졌던 장소라고 한다.
전망대에서 주변 풍광 구경하면서 잠시 머물어 보는데, 정말로 아름다운 금수강산(錦繡江山)이다는 생각을 가슴에 새기고 나서 트레킹 코스로 연결하여 보는데, 여기서 부터 단풍의 색갈이 절정 이루면서 장관을 연출하는데, 모두가 감탄의 얼굴 표정으로 걷기를 주저한다.
< 아름다운 "단풍길" 을 걷고 있는 여인들 >
단풍 터널을 조금 통과하며는 길가에 산수풍경 그림 한점을 만나는데, 이 그림이 대관령 옛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단원 "김홍도" 선생님의 작품 "대관령(大關嶺)" 이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 시대 대관령 고개 모습과 오늘날 잘 다듬어진 대관령 길과의 대비가 상상력의 날개를 편다.
< 단원 "김홍도" 선생님이 그린 대관령 풍경 >
또 다시, 한 모퉁이를 돌며는 반정(半程) 터의 안내 설명서와 더불어 조그마한 비석 한 기가 길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관리가 되지 않으면서 서 있는데, 이 비석이 마을 주민들이 반정에 초막을 지어 대관령 오르내리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헌신한 강릉고을 향리 "기관 이병화 유혜불망비(記官 李秉華 遺惠不忘碑)" 세워 그분의 공덕을 찬양한 비석이지만, 옛 비석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모습이 너무나 초라한 것 같다.
< 기관 "이병화" 씨의 유혜 불망비 전경 >
함께 걷는 버스의 동석 아줌마 부대 뒤 꽁무니 졸졸 따라서 오솔길을 무아지경으로 내려가니, "신사임당" 의 "사친시" 를 기술한 안내판이 또 다시 크게 서 있다.
< 내려가지도 않고 농띵치는 아줌마..... >
오늘 아침 산행에 필요한 회비가 없어 Wife에게 돈을 좀 구걸하니, 꼬깃하게 접은 5만원짜리 지폐 한장 주면서 10월 달 용돈 전부라고 큰소리 치고 준 화폐에서 본 할머님 모습이 여기에서 시(詩)로써 다시 만나다니.....
< 모처럼 나의 주머니에 들어온 5만원짜리 지폐가 살아지기 전에 >
< 정자관 모자를 쓴 "율곡 선생님" >
이 대관령 길이 5만원 화폐에서 본, 비녀 머리 할매와 5천원 화폐에서 종종 보는 정자관(程子冠) 쓴 아들 "율곡 선생님" 과 손잡고 걸었다는 이 길을 오늘 내가 500년이라는 세월의 시차를 두고서 현판 앞에 서서 할머님 글을 읽고 있다.
< 신사임당이 지었다는 "사친시" 안내판 >
-사친시(思親詩)-
늙어신 어머님을 강릉에 두고.
이몸은 홀로 서울길로 가는 이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구름만 저문산을 날아 내리네.
그 때, 화폐의 할머니가 친정집 강릉 오죽헌에서 두고 떠나 온 친정 어머니를 그리면서 이 자리에서 지었다는 시, 무식한 내가 아무리 읽어 보아도 저문산이라는 뜻을 이해할 수가 없으니, 역시 역사적인 인물은 아무 곳이나 배출되지 않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나 저러나, 나의 평생 모처럼 획득한 5만원짜리 지폐 한장 산대장에게 회비로 주어 버렸으니, 언제 할매 얼굴 다시 한번더 대면하여 질지 걱정이 앞 선다.
< 시 안내판 앞을 떠나지 않은 "아줌마 부대와 산대장" >
같이 걷는 아줌마 부대가 영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도통 내려올 생각도 하지 않고 시(詩) 앞에 머물고 있어 할 수 없이 산대장과 둘이서 먼저 발길을 잡는다.
< 아름다운 "단풍나무" 도 바라 보면서 >
< 끝없이 이어지는 대관령 단풍길을 걸으면서 >
오색으로 물든 단풍길을 하염 없이 걷다보니, 한참 후 물소리가 일어나는 계곡에 이르면서 좌우 산에는 아름들이 금강소나무가 군락을 형성하고 있어, 소나무에서 발산하는 피톤치드가 내몸에 기생하고 있는 모든 병균과 암덩어리를 소리없이 몰아내는 기분이다.
< 대관령 하부로 내려 오면서 만나기 시작하는 "금강소나무" 군락지 >
전일 가을 비로 인하여 다소 많은 물이 흘려가는 물소리를 친구 삼아 한참 걸어 내려서며는 옛 길손들이 머물었다가 간 대관령 주막집에 이른다.
< 대관령 주막집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전시하여 놓은 "시" >
< "대관령 유래" 와 주막집 전경의 그림 >
한때, 왕성한 주막집이 허물어져 없어진 옛터에 2008년 10월 강릉시에서 새롭게 전통 귀틀 초가집 3칸을 복원하여 주위 풍경과 조화를 잘 이루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마당 가장자리에서 돌고 있는 물레방아에 개구리 한마리가 처녀들과 아줌마 앞에서 빤스 벗고, 자탈 스럽게 오줌 누는 형상으로 물을 공급하는 모습도 하나의 혜학이 되어진다.
<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주막집" >
< 주막집 가장자리에서 빤스 벗고 물레방아 돌리는 "개구리" >
이 주막에서 부터 넓은 개울 옆으로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풍부한 수량으로 인하여 거대한 바위 사이로 각종 소(沼)를 형성하면서 곳곳에서 푸른 물을 담고 있어 풍류객이 발이 떨어지지 않은 계곡이 무한정 펼쳐진다.
< 거대한 "암반" 사이로 흘러가는 계곡 물 >
약 30분 정도 걷다보며는 대관령 옛길을 관리하는 안내소에 이르니, 입구에 옛날 아전 복장을 한 할아버지 한명이 마중하므로 인하여 정답게 인사로 대면한다.
< 대관령 옛길을 안내하는 "할아버지" 와 안내소 >
안내소 입구를 통과 하자마자 주변에 건립된 우주선 변소가 먼저 대면하여 지므로 인하여 생리현상을 잠시 해결하고 나서, 폔션단지와 하산주를 즐기는 상가 건물을 통과하여 마을 끝에 이르면서 시멘트 포장길을 만나는데, 이곳에서 2개의 길로 나누어 진다.
< "우주선" 모형하고 있는 최신식 뒷깐 >
왼편으로는 "대관령 자연휴양림' 이라는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바우길이 계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야산 고개를 넘으면 오늘 트래킹의 종점에서 버스가 기다리는 "가마골" 에 이르고, 오른편으로 "대관령 박물관" 으로 내려가는 표시가 되어있다.
일행 전부가 왼편 버스가 기다리는 가마골로 가지만, 독불장군인 나만 혼자 나의 일생 동안 이곳 대관령 박물관 구경하여 볼 일 없다는 전재로 하여, 약 1Km 정도 떨어진 박물관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부터 박물관으로 내러가는 길에는 또 다른 금강소나무가 울창하게 하늘을 가리고 있어, 박물관을 관람하고 되돌아 가는 2Km 정도만 추가로 걸으면 된다는 오기가 길을 잘 선택하였다고 생각하면서 박물관 초입에 이르니, 여기에도 대관령 옛길이라는 입석이 서 있다.
< 울창한 "금강소나무" 로 이루어진 박물관으로 내려가는 길 >
< 대관령 박물관 입구에 있는 "대관령 옛길" 입석 >
그러므로, 대관령 너머길과 바우길의 끝지점이 조금 상이하게 만들어져 있어, 혼자 너무 Over Pass 했기 때문에 되돌아서 가야하는 생각에 은근히 후회가 되어진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장료 1000원 지불하고 나서 내부에 들어서니, 전시실 내부에는 동서남북 4개 방위를 수호하는 사신의 이름을 따서 전시실 만들어 놓았으며, 각 전시실 마다 많은 작품이 잘 진열되어 있다.
< "대관령 박물관" 외형 건물 >
이 대관령 박물관은 현재 강릉에 거주하시는 "홍귀숙" 선생님이 일생 일대에 수집한 고미술품과 전통 혼례품, 불교 유물, 선사 토기, 생활 도구 등 2000여 점을 모아 2003년도 강릉시에 기증하였으며, 강릉시에서는 이곳 강릉의 영산인 대관령 초입 어흘리 마을에 건립하여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 박물관 입구에 있는 "태실" 보관함 >
< 박물관 내부를 돌아보는 "관광객" >
< 시집오는 여인들이 타고 다니는 "가마" >
< 야외 전시실에 진열하고 있는 "문인상" 비석 >
혼자의 힘으로 이렇게 많은 유물과 유적품을 수집하였다는 것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지만, 버스가 기다리는 가미골까지 돌아 갈 길을 생각하니 관람도 건성으로 이루어 된다.
약 30분간 돌아보고서 구 영동고속도로 따라 약 700m 정도 걸어 올라가니, 이내 가마골 마을이 선자령 풍력 발전기의 풍차 아래에서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가깝게 가마골 마을이 있다는 안도감에 미리 초초하게 생각한 것에 대하여 다소 미안함도 묻어난다.
< 선자령 풍력 발전기의 풍차 아래 자리잡고 있는 "가마골" 마을 전경 >
버스에 오르니 좀 일찍 산행을 끝낸 모든 산악인들이 내 한명을 기다리다가 지쳐 목이 다 빠져 있는 모습 보니, 미안함이 발생하는 트레킹 길이 되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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