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3일 (일요일)
백봉회 5월 산행은 매월 2째주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하여 실시한다는 통보를 받고서 참석 여부에 다소 주저 함이 일어나는데, 이유는 지금까지 56회 동창회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아 동창회 총무에게 얻어 터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눈앞에 아롱하게 만든다.
동창회 및 백봉회를 동시에 참석하는 회원이 많다 보니 매년 동창회 총회는 참석 인원의 극대화를 위하여 산행과 병행하여 실시함으로 인하여, 동창회 총무와 산악회 총무의 문자 메시지를 함께 받고서 머리가 아파진다.
그래서 5월 산행은 대구광역시 앞산의 한 부분이 되는 최정산 능선으로 올라갔다가 약 2시간 정도 짧은 산행을 끝내고, 최정산 통신탑으로 올라가는 아스팔트 길 옆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한 동문 부인이 운영하는 "산동성" 식당에서 모임을 개최하겠다고 한다.
산행 들머리는 남지장사 주차장에서 시작한다고 하면서 소형 버스는 1차로 8시30분 법원 앞에서 출발하여 2차로는 9시 정각 신천변 상동교 옆 지역이라 택시를 이용하여 2차 집결지에 나아가니, 평월 보다 많은 19명의 동문들이 산행에 동참하고 있다.
버스는 대구시내의 인접 지역이면서 휴식처로써 유명한 가창면 골짜기를 통과하여 우록(友鹿) 마을 안길로 들어가 남지장사를 가르키는 이정표 따라 숲속으로 한참 올라가면 주차장에 이른다.
대구광역시를 감쌓고 있는 2개의 명산 중 북쪽을 자리잡고 있는 팔공산 언저리에는 "북지장사(北地藏寺)" 라는 고찰이 있는 반면에 대구의 남쪽인 비슬산과 지맥(枝脈)을 같이 하는 최정산 산자락에는 "남지장사(南地藏寺)" 라는 고찰이 자리하고 있다.
< 우록리 근교에 있는 "남지장사" 산행도 >
동문들이 이곳으로 몇번 산행하여 본 경험이 있어 남지장사 관람을 생략하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산행길 따라 가버였지만, 나는 살아생전 처음 방문하는 사찰이라 높은 돌계단으로 올라가 사찰 내부로 들어가 본다.
< 남지장사로 올리가는 "돌계단" 모습 >
돌계단의 끝지점에는 다소 허물어진 "불이문(不二門)" 같은 사찰문이 있지만 전면의 대문에는 명판도 없고, 오히려 사찰 안쪽의 처마 밑에 "광명루(光明樓)" 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 사찰 안쪽에서 바라보는 "광명루" 현판 >
이 문을 통과하면 넓은 마당으로 이루어진 마당 복판에는 사월 초파일을 기념하기 위한 연등을 달아 놓은 철구조물이 가득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그 철구조물 뒤편에 사찰의 주불을 모시고 있는 건물이 고즈늑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본절의 처마 밑에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하는 현수막이 내려 있어 옆으로 돌아서야만 겨우 대웅전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 남지장사의 주볼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 >
남지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9교구 본사가 되는 동화사의 말사로써, 신라 신문왕 4년(684년) "양개조사" 가 청건한 사찰이며 지장도량으로 잘 알려진 사찰이라고 한다.
신라 때에는 왕이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고 지역 유지들도 시주를 많이 하여 사철 규모가 매우 컷었고, 한 때 8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수도하는 승려만도 약 3여 천명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대사 "유정스님" 이 사찰에서 승병을 훈련시킨 장소로 사용하였지만 그 보복으로 왜군들이 불을 질려 소실되었고, 1940년 신원(信元)스님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사찰은 이름과 같이 지장도량으로써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지장전(地藏殿)" 으로 건축하지 않고, 이곳 남지장사는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시는 "대웅전(大雄殿)" 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이니컬하게 만든다.
< 대웅전 내부에 모시고 있는 "석가모니불" >
불교에서는 5명의 불(석가모니불, 아미타여래불, 노사나불, 비로자나불 및 약사여래불) 및 10명의 보살(보현보살, 문수보살, 미륵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 약왕보살 및 약상보살)로 이루어진 다신교의 종교이라 하겠다.
불(= 부처님)과 보살의 맡은바 역활이 다르고 사찰은 주불로 모시는 부처님이나 보살님 따라 사찰의 이름이 결정되는데, 일반적으로 "대웅전" 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여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시는 것이 사찰의 기본이다.
지장보살 역활은 석가모니불의 입멸로 인하여 미래의 부처가 나타나기 전까지 부처가 없는 기간 동안 육도 즉 중생이 저지런 업(業)에 따라 취하는 6가지 생존 양식(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하늘)으로 윤회하는 중생을 구제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보살이다.
지장보살의 특징으로는
첫째 : 자신이 5명의 불(즉 = 대통령)로 승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오직 보살(즉 = 국무총리)로 남아서 지옥에서 고생하는 모든 중생(衆生)을 구제하기 전에 성불이 되지 않게다고 맹세한 보살이다.
둘째 : 정한 업(業)을 면하기 어렵다는 불교의 일반설이 지장보살에게는 적용되지 않은 보살로써,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은 전생의 업보에 결정되는 운명으로 타고 나지만 지장보살은 정해지는 업도 모두 소멸시키는 보살이다.
셋째 : 지장보살은 부처님이 없는 기간 동안 용화산에서 머물고 있는 미륵보살이 불(부처)이 되어 이 세상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56억7천만 년 후에 내려 올 동안, 부처님을 대신하여 모든 중생의 행복을 책임지는 보살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간만 허락한다면 스님과 찬찬하게 대화하여 보겠지만 동문들 따라 가기 위하여 몇장의 사진만 찍고 속보로 산자락을 돌아가는데, 후미 몇명의 동문들이 2개의 갈림길에서 산행 길 선정에 옥신각신하고 있다가 오늘 산행 시간이 너무나 넉넉하므로 오른쪽 우회 방향의 산행 길로 가도록 결정한다.
< 2개의 갈림길에서 산행 방향을 협의하는 "동문" >
길은 이내 거대한 소나무가 우거진 숲속으로 지나가면 각 소나무 뿌리에는 수목장을 하기 위하여 번호표가 붙어있는데, 이곳 남지장사에서는 대구광역시로 부터 처음으로 수목장 허가를 받아 묘지를 조성하고 있는 지역 최초의 사업장이라 인터넷을 통하여 많은 홍보하고 있다고 한다.
< "수목장" 으로 관리받고 있는 소나무 >
< 관리되고 있는 나무의 "표시번호" >
이곳 수목장을 통과하면 이내 한 암자가 나타나는데, 이 암자의 이름이 "청련암(靑連庵)" 으로써 임진왜란 때 유정스님이 기거한 암자라고 하면서 대구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이 된 암자이지만 문이 잠겨져 있어 내부 관람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 문이 굳게 잠겨있는 "청연암" 입구 >
암자 앞에 있는 산행 길 이정표 따라 천천히 최정산 방향으로 고도를 상승하는데, 이내 울창한 숲속으로 길이 이어지면서 산행에 따른 최적의 장소를 제공하여 준다.
< 산행 길을 알리는 "이정표" >
< 녹음이 내리는 최적의 산길을 걷는 "동문" >
몇번의 고불고불한 산행 길 따라 걷다보니 이내 한 능선에 올라서는데, 여기 능선길은 임진왜란 때 일본인 장수 "사야가" 가 한국으로 귀화하여 크게 공을 세워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녹동서원" 뒤편의 "삼정산" 에서 올라오는 종주 산행코스와 만나는 지점으로 길가에는 많은 산행 리본이 붙어있다.
간간이 지나가는 등산객과 반가운 인사도 나누면서 조금 올라가다가 조금 넓은 공터에 자리잡고, 오늘도 대구 불로막걸리 대표가 하사한 막걸리를 풀어놓고 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자리를 편다.
먼저 총무가 만든 돼지 족발을 썰기 시작하는데, 언제나 인기가 짱이 되는 안주를 먹으면서 몇 순배의 막걸리 잔이 돌아가면서 다양한 이야기 꽃으로 상호 우정을 돈독하게 만들어 보는 시간을 길게 가져본다.
< '돼지고기' 썰기의 달인 총무 >
충분한 휴식과 더불어 각 일병의 막걸리를 마시고 나서야 비로써 자리를 정리하고 나서 일어서서, 계속적으로 산행이 이어진다.
천천히 고도를 상승하니 한 암릉으로 되어진 전망대가 나타나므로 바위에 올라가 지금까지 올라온 풍경을 구경하여 보는데, 남지장사 사찰이 발 아래에 머물면서 인접한 백록(白鹿) 마을이 고즈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 지금까지 걸어온 "남지장사" 방향으로 내려다 보면서 >
이어 오솔길 따라 조금더 올라가니 오늘 산행의 정점인 720m "삼각점봉" 에 도착하므로 여기에서 백봉회 등정행사를 하기 시작하는데, 사회자가 오늘이 241봉 등정이라고 소개하고 간단한 산행 행사가 진행한다.
< 720m "삼각점봉" 의 표시 >
< 산행에 동참한 "백봉회" 동문 >
< 산행 행사를 하는 "동문" >
간단하게 산행의식을 끝내고 나서 더 앞으로 나아가니 해발 905m "최정산" 정점에 있는 KT 통신탑이 아련하게 보이지만, 동창회 모임을 위하여 더 이상의 진행을 중단하고 하산길로 들어서기로 한다.
< 최정산 정상 능선에 있는 "KT 통신탑" 모습 >
< "삼각점봉" 에서 조금만 하산하면 만나는 3거리 지점의 시그날 >
< 급경사의 "내리막 길" 로 내려가는 일행 >
급경사의 낙옆 길로 한참 내려서면 최정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아스팔트 길을 만나고, 아스팔트 길 따라 10여 분 정도 내려서면 한 동문의 부인이 운영하는 "산동성" 식당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 진수성찬이 기다리는 "산동성" 안내판 >
산행이 다소 조기에 끝남으로 산행을 하지 않고 바로 동창회에 참석하는 동문과 합류하기 위하여 조금 기다렸다가 13시부터 점심식사가 준비되어 있어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마지막 마이크로 버스로 11명의 동문이 도착한다.
< 산동성 식당의 "본 건물" 전경 >
총 30명의 동문이 한자리에 앉자 상호 인사를 하는데, 방금 포항 도선사 배에서 출가한 "김영룡" 동문과 울산 "김성호" 동문이 먼 거리에서 동참하여 준 것에 대하여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회장 인사와 더불어 동창회 총무가 동문들의 근황과 더불어 간단하게 경과 보고를 하고 나서 만찬으로 들어가는데, 약 3시간 동안 산해진미가 계속적으로 나와 만취의 상태로 몰아간다.
< 회의를 주관하고 있는 "우병우" 회장 >
< 음식을 즐기는 "동문" 모습 >
이어 16시 경 대구로 내려와 2차를 즐기기 위하여 노래방으로 직행하는데, 약속이 있는 다수의 동문들이 먼저 헤어지고 약 10여 명이 노래방으로 들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 "뒤풀이 행사" 노래방에서 >
< 지역 "여가수" 를 초청하면서 >
< 전직 모교 교장 "사나이 눈물과 백마강" 을 부르며 >
약 3시간 정도 노래방에서 여흥(餘興)을 즐기다가 너무나 지쳐 다음을 기약하면서 각자의 집으로 귀가(歸家)하는데, 벌써 어둠이 내리면서 거리에는 가로등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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