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 문화와 산행.

백봉회 4월 산행은 성주군 용암면과 고령군 운수면 경계선에 있는 "의봉산" 을 올라 가면서.

용암2000 2013. 4. 14. 21:30

2013년 4월 13일 (토요일)

 

고등학교 동문으로 이루어진 "백봉회" 제252회 산행은 나의 고향과 인접지역에 있으면 옛 추억을 가진 "의봉산(儀鳳山)" 을 산행하기 위하여 길을 나서는데, 법원 앞에서 츨발하는 마이크로 버스에서 5명 및 서부정류장 앞에서 추가로 5명이 탑승하여 고속도로를 달려서 "남성주 Toll gate" 에서 내린다.

이곳 남성주 Toll gate에서 북쪽 방향으로 10분 정도 올라가면 나의 고향 마을이 있지만 오늘 산행은 이곳에서 남쪽 방향인 용암면사무소를 지나 지방도로 67번을 이용하여 고령군 운수면으로 넘어가는데, 용암면과 운수면 경계지점에 있는 이례재 고개에 도착한다.

이례재 고개는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성주군으로 바로 가는 성주대교가 없어 성주 북부지역 사람들은 왜관읍으로 하여 돌아서 다녔고, 성주 남부지역 사람들은 고령읍을 통과하여 고향과 대구로 오고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의 길이 되어졌다.

그 교통수단 중에서 대구에서 나의 고향으로 가는 버스가 하루에 2대로써, 한대는 대구 내당 정류장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나의 모교 성암초등학교가 있는 마월동에서 머물어 있다가 오후에 출발하여 대구로 되돌아간다.

다른 한대는 대구에서 오후에 출발하여 성암초등학교 앞에서 하루밤을 지내고 나서, 아침에 대구로 출발하는 경상북도에서 최고의 오지 중에서 오지에 속하는 고향이다.

그러므로 그 시절 대구로 유학 다니는 학생은 거의 한 부락에 한명 정도가 대부분이면서, 학생들이 타는 버스는 동일하게 토요일 오후 버스를 이용하고 집으로 갔다가 일요일 오후 버스로 대구로 가는 것이 정례화가 되는 길이다.

그래서 각 동네 마다 버스가 서면 학생들이 자취를 하기 위하여 많은 보따리를 지고서 버스에 오르는 용암과 운수 학생들 대부분 면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할까?

아울러 한번은 집으로 가기 위하여 버스를 타고 고령군 운수면까지 왔다가 가야산에서 내리는 집중 호우로 불어나는 물로 버스가 운수천을 건너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다수의 사람은 왔던 버스로 되돌아 갔지만, 몇몇 사람들이 내려가 걸어가므로 나는 꼭 집으로 가야하는 사정이 있는 것 같아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내려서 걷기로 하였다.

처음 함께 걷는 몇몇 사람들은 운수면에 있는 중간 마을로 들어가 버리고 마지막으로 혼자서 이례재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그 때 비포장 길의 이례재 고개을 넘어 갈 때 짖은 안개로 앞도 가리지 못하여 무서움으로 마음 조이면서 걸었던 추억의 길이다.

그래서 오늘 산행을 할려고 하는 의봉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버스 속에서 의봉산 산자락에 살고 있는 "물한리" 마을 사람들의 자랑스러운 이야기 소리가 아직도 귀전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추억의 산이다.

 

< 옛날 학창 시절부터 많이 본 "의봉산" 정상 >

 

어찌하던 오늘 무명의 의봉산 산행은 이례재 고개에서 대가야요양원을 운행하는 친구의 건의로 산행이 진행되므로, 마이크로 버스는 요양원 마당에 주차하고 동문의 안내 속에서 11명의 단출한 식구가 10시 30분 요양원 정문을 출발한다.

 

< 동문이 운영하는 "대가야요양원" >

 

요양원 관람은 2012년 2월 가야산 남산제일봉 산행을 끝내고 오던 길에 방문한 경험이 있으므로 바로 산행 들머리로 들어가는데, 산행 들머리는 요양원 앞에 있는 그린빌리지 호텔과 토굴 찜질방 건물 사이로 들어가는 산행길이 된다.

                                                                                               

< 요양원 건너편에 있는 "그린빌리지 호텔" >

 

< 호텔 옆에 있는 "토굴 찜질방" >

 

산행길 초입부터 울창한 숲으로 이어지는 길따라 한참 올라가면 산행길은 조그마한 능선에 올라서면서 오른편 능선으로 조금 가다가 본격적으로 오르막 길 입구에 이르면서 산행길이 끊어지고, 나무에 달려있는 몇 개의 리본이 희미한 산행길을 안내하여 준다.

 

< 울창한 숲속으로 걷는 "동문" >

 

여기서 부터 산행길은 거의 살아지고 너들바위 길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조금 더 앞으로 올라가면 너덜바위 무덤이 나타나면서 거대한 바위 덩어리들이 비탈면을 형성하고 있다.

 

< 뒤 사람의 안전을 위하여 거리를 두고 걷는 "산행길" >

 

< 많은 "너덜바위" 로 이루어진 비탈면 >

 

너들바위 가장자리를 통과하면서 뒤 사람에게 바위가 굴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대한 안전거리를 두고서 한참 올라가면 바위길을 끝나지만, 또 다시 길은 완전히 낙옆으로 뎦혀있는 길을 개척하면서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오르막 길을 올라가야 한다.

 

< 너덜바위를 지나면서 만나는 "낙옆 길" >

 

발 아래는 풍족하게 떨어진 낙옆으로 인하여 한발 올라가면 2발이나 후퇴하는 길이 되므로 손으로 나무가지를 의존하면서 고도를 상승하면 산행길 옆으로 Rope가 매어져 있어, 로프와 나무를 이용하여 최대한 자세를 낮추면서 걸어가니 앞서가는 동문이 가끔씩 낙옆을 치워주므로 뒤에서 걷는 사람은 다소 수월한 산행길이 된다.

한 40분 정도 씨름하면 아담한 능선에 도착하면서 휴식과 갈증 해소를 위하여 능선에서 자리를 잡고, 요양원 동문이 아침부터 준비한 삶은 애기 돼지고기 한 Box를 풀고 분산하여 지고온 막걸리로 갈증을 해소시켜 본다.

 

< 능선에서 휴식과 함께 "막걸리 파티" 를 가지면서 >

 

그런데 아침에 준비한 돼지고기가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오면서 기름이 졸졸 흘려내리는 고기로 인하여, 맛이 천하 일품이 되므로 막걸리 수십 병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는 듯 황급하게 살아진다.

 

< 참 맛있게 요리된 "애기 돼지고기" 를 먹으면서 >

 

완벽한 포식을 끝내고 나서 천천히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서 몇 걸음만 더 올라가면 돌탑이 나타나면서 해발 449.4m "삼각점" 에 이르면서 주변 시야가 다소 열리지만, 앙상한 나무가지와 운무로 인하여 그렇게 멀리까지 잘 보이지는 않는다.

 

< 삼각점 바로 가기 전에 만나는 "돌탑" >

 

이 삼각점에서 산행의 정점인 의봉산 봉우리를 보고서 앞으로 나아가면 한쌍의 잘 만들어진 무덤이 나타나지만 오른편 무덤 위에 맷돼지로 인하여 파손된 모습이 흉물스럽게 보이고 있는데, 아마 후손은 이곳까지 거의 올라오기가 어려운지 보수가 되지 못하고 방치 되어짐이 애절하여 진다.

 

< 삼각점 바로 아래 "허불어진 무덤" 을 보면서 >

 

이 삼각점에서 능선 따라 조금 내려가면 고개 마루에 도착하면서 고개에는 희미한 4거리 길이 나타나는데, 이 4거리에서 앞으로 전진하면 의봉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되고 왼편으로는 나의 친척이 살고 있는 용암면 칠성리로 내려가는 길로 추정 되며 오른편으로 오늘 하산 할려고 하는 물한리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된다.

그런데 오늘 산행은 여기서 의봉산 정상까지 갔다가 이곳으로 되돌아 오는 원점회귀의 산행이 되고 마지막으로 물한리로 내려가기로 계획 되므로 다시 오르막 길로 접어들어 능선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오르막 길에는 아직도 진달래 꽃이 만발하게 피어있어 무릉도원의 길이다.

 

< 아직도 만개하고 있는 "진달래 꽃" >

 

진달래 밭으로 한참 올라가다가 왼편 계곡 방향으로 내려보면 조금 전 대구에서 남성주 Toll gate로 달린 고속도로가 발아래에 머물고 있으며, 그 도로 끝에는 남성주 Toll gate가 한 야산 뒤편에 살짝 숨어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길이다.

 

< 낙옆에 딩굴고 있는 "진달래꽃 길" 을 걸어가면 >           

 

< 앙상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남성주 방향" 고속도로 >

 

진달래 밭을 지나 야트마한 능선에 올라서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희미한 길에는 낙옆이 수북하게 쌓여 완전히 카펫트를 걷는 기분으로 한참 걸어가면 본격적으로 의봉산 정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여기에서 부터 완전히 낙옆으로 인하여 작난이 아닌 길이 된다.

약 30분 정도 씨름하면 이윽고 의봉산 정상 언저리에 도착하는데, 그 정상 언저리에는 옛날 봉수대에서 근무하였던 사람들이 텃 밭으로 사용하였는지 넓은 공터에 산딸기 나무 등 잡풀과 고목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정상으로 접근하기가 무척 어렵게 만든다.

 

< 정상 인근에 있는 "산딸기 나무와 잡목 나무" >

 

앞 사람이 다녀간 길을 곡예하듯 찾으면서 겨우 의봉산 정상에 오후 1시 20분에 도착하는데, 정상 주변에는 넓은 산성(山城)으로 되어있는 돌담이 어지럽게 연결되면서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고 원형에 가까운 산성이 곳곳에 보이고 있다.

 

< 허물어진 "산성" 에 도착한 동문 >

 

이곳 지방자치단체에서 역사적인 고증과 더불어 살아져가는 지역 노인들이 죽기 전에 이야기를 수집하여 가능한 봉수대를 원형으로 복원하면서 그 배경 유래를 기술하므로써, 좋은 관광지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으려만....

정상 봉수대 중앙에는 지역 운봉회(雲鳳會)에서 걸어놓은 리본과 함께 심어 놓은 한그루의 어린 측백나무가 측은하게 자라고 있으며 의상봉 정점에는 몇 개의 돌탑들이 쌓여있는데, 그 돌탑 중 하나에 메직으로 쓴 해발 557m "의봉산(儀鳳山)" 정상을 가르키고 있다.

 

< 운봉회에서 심어 놓은 어린 "측백나무" >

 

< 메직으로 쓴 해발 557m "의봉산" 정상석 >

 

먼저 동문들은 이곳 돌탑 주변에 모여서 제252회 등정식을 간단하게 가지면서 힘차게 교가를 불러보는데,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그렇게 크게 소리치는 것은 의봉산 정상에는 우리 일행 말고는 아무도 없이 완전히 전세를 낸 산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밑에서 어린 돼지고기를 너무 많이 먹은 것 인지 잘 모르겠다.

 

< 의봉산 정상에서 대구 뱡향을 보면서 "등정식" 을 가지는 동문 >

 

그렇게 꽥꽥거리고 나서 산딸기 나무가 자라고 있는 공한지 옆에 자리를 잡고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가지는데, 여러 사람의 밥과 반찬을 내어 놓으니 누구집 잔치를 하는 건지 너무나 호화판의 식사가 된다.

또한 아직도 남은 돼지고기가 너무나 맛을 내므로 한참 동안 음주와 식사를 하면서 내리 쪼이는 봄 햇살에 앉아 약 1시간 정도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주변을 정리하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 "점심식사" 를 하고 있는 모습 >

 

내려가는 길은 낙옆으로 인하여 최대한 몸을 낮추면서 엉금엉금 기면서 하산하여 4거리 지점까지 와서 물한리 마을 방향으로 내려서는데, 이 방향의 산행길은 홍수로 인하여 도로가 많이 유실되어져 곳곳에 길을 개척하면서 걸어야 한다.

인고의 노력 끝으로 물한 저수지 위쪽에 있는 임도에 내려서면서 요양원 동문이 직원에게 전화하여 요양원 마이크로 버스를 임도 끝지점까지 올라오도록 하여 마이크로 버스 타고 요양원으로 들어가는데, 처음 약 3시간 정도 산행이 가능하겠다고 예정한 시간이 오후 4시 정각에 끝나므로 총 5시간 30분이나 소요되는 산행길이다.

요양원 마당에서 대기하고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요양원 동문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대가야 축제" 를 한번 돌아보라는 이야기와 더불어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서, 마이크로 버스는 운수면을 통과하여 대가야 축제가 열리고 있는 고령읍으로 달려간다.

 

< "대가야요양원" 을 떠나면서 >

 

축제장 입구에 도착하니 아직도 행사장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으므로 행사요원이 차량 출입을 통제하면서 사람만 하차하고, 버스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여 주차하면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하니 대부분 동문들은 산행에 따른 피로감으로 대구로 바로 떠나자는 의견이 많아진다.

축제장 입구까지 왔지만 다수의 의견으로 대가야 축제 구경을 생략하고, 대구로 출발하여 서부에 있는 관문시장에서 합동으로 추가 하산주를 즐기도록 계획을 수정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