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문화 및 박물관.

365일 참외 향기가 나는 성주군 "참외생태학습원" 관람 및 "성산가야고분군" 을 돌아보며.

용암2000 2013. 5. 10. 00:06

2013년 5눨 5일 (일요일)

 

고향 성주 용암에 있는 산소를 방문하여 몇일 전 잡풀을 죽이는 잔디 제초제를 살포하면서 심어 놓은 묘목과 코스모스 묘종이 살아 있는지 확인도 할 겸, 일요일을 이용하여 Wife와 아들을 대동하고 재차 방문길을 나선다.

무덤에 도착하니 제초제로 인하여 많은 잡풀을 죽었지만, 그래도 모질게 자라고 있는 잡풀을 제거 시킴과 동시에 일전에 심어 놓은 코스모스 묘종에 물을 주는 노가다 일을 아들과 분업(分業)을 통하여 실시하여 본다.

간단하게 제초 작업을 끝내고 점심도 겸하는 식사를 하기 위하여 성주읍으로 넘어가 성주읍에서 대가면 뱡향으로 가는 길 중간지점에 있는 성주 Toll gate 입구 "별고을 한우촌" 으로 들어가 한우고기를 좀 먹을려고 하니 어린이날이라써, 그런지 대기표 15번을 주면서 한 3-40분 정도 기다려라고 한다.

많은 기다림 속에서 옆에 있는 한우고기 판매점에서 부위별 한우 2봉지를 구입하여 식당으로 들어가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인접하게 있는 참외생태학습원과 성산가야고분군을 관람하여 보는 시간을 가진다.

 

1. 참외생태학습원.

성주 "참외생태학습원" 은 별고을 한우촌 인접지역인 성주군 성주읍 대흥리 783-1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성주군 농업기술센터 내에 있는데, 잘 가꾸어진 정원을 통과하여 건물 방향으로 들어가면 참외를 형상화한 석조물을 만난다.

주차장을 지나면 단층 건물 옥상 테라스에 노란색 참외를 언져 놓은 전시관 건물을 만나는데, 이 건물 내부에는 참외 풍경, 전시실, 기회전시실, 영상실, 뮤지엄 숍으로 꾸며져 있다.

 

< 농업기술센터 입구에 있는 "참외골 지킴터" 입석 >

 

< 성주 "참외생태학습원" 현판 >

 

< 건물 옥상에 참외를 언져 놓은 "전시관" 건물 >

 

< 전시관 앞에 있는 "석조 참외" 형상물 >

 

< 참외생태학습원 앞에 꾸며진 "휴식공간" > 

 

또한 전시관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외부 전시관이 지어져 있는데, 오른편으로는 참외를 키우는 유리온실이 자리잡고 있으며 왼편으로는 분재원 비닐하우스 건물이 지어져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여 준다.

 

< 전시관 뒤편에 있는 "유리온실" >

 

먼저 전시관 건물 입구의 문을 열고 내부 전시실로 들어가면 성주 참외에 관련된 재배분야, 유통분야 등의 설명문과 더불어 참외 Sample이 진열하고 있어, 참외에 관련된 많은 상식을 얻게한다.

 

< 전시관 내부에 있는 참외 "홍보물" >

 

< 성주 참외의 "마스코트" >

 

참외의 본고장이 되는 성주군에 참외의 기원, 역사, 참외재배 농기구, 참외로 만든 음식 및 자료 등을 전시 및 소개하고, 365일 참외 향기가 솔솔나는 체험학습을 목적으로 건립된 학습원이다.

참외 유래를 읽어보면 우리나라 참외는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에 중국으로 부터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며, 고 문헌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황과(黃瓜)와 함께 참외에 대한 재배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또 고려사에 의하면 숙종 2년 고려자기에 천자과형병을 비롯하여 참외를 형상화한 자기와 주전자에 대한 기록이 있어, 이 시기에 참외 재배가 활발하였음을 부여주는 도자기이다.

 

< 전시실 내부에 있는 "홍보물" >

 

< 참외 "변천사" 와 기록물 > 

 

참외의 순수한 우리말로써 "참" 이란 "허름하지 않고 썩 좋은 뜻" 이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으며 "외" 는 "오이" 를 가르키고 있는데, 참외가 오이보다 맛과 향기가 썩 좋다고 표현하는 언어이다.   

시대별 참외 품종의 변천사를 보면 1950년 후반 까지 전국 각지에서 재래종이 재배되었으며 1957년 일본에서 "은천" 참외가 도입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 육종하여 보급한 "신은천" 참외가 저온 저장성이 우수하여 시설 참외 조기재배가 급속하게 보급되었다.

1984년에 개발된 "금싸래기 은천" 참외가 당도가 높고 육질이 아삭아삭하여 우리 입맛에 맞고 품질이 우수하여, 성주에서는 1993년 부터 재배 면적이 급속하게 확대되어 대부분 금싸래기 은천 참외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 "재래종과 은천 참외" 설명서 >

 

< 개량종 "신은천과 금싸라기 은천" 참외 설명서 > 

 

< 년도별 변천하고 참외 "Sample" >

 

성주 참외 생산 면적이 3.900 ha으로 전국의 70%에 재배농가 4.900여 호로 생산량 142.240M/T, 조수입 3.100억원으로 전국 최고를 자랑하는 있는 고을이다.

 

< 성주 참외 "재배 현황과 축제" 안내문 >

  

이렇게 성주가 우수한 참외를 생산하는 이유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가야산국립공원의 맑은 물과 최적의 기후조건, 낙동강 주변의 넓은 평야에 토심(土深)이 깊고 비옥한 토질을 갖추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더불어 약 50년 이상 축적된 참외 재배 기술과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여, 깔끔한 외형과 색깔 및 사근사근한 육질로 맛과 향기가 뛰어난 세계 제일의 참외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 참외를 키우는 "온실" 변천 과정 >

 

< 우수한 참외 생산에 적합한 "재배조건" 설명서 >

 

맛 있는 참외를 구입할 때 주의점으로 첫째로 참외 고유의 맑은 노란색으로 광택을 띠는 것이 최상품이고, 둘째로 골이 깊게 패이고 골의 색갈은 선명한 백색인 것이 꿀 참외이며, 셋째로 너무 크면 육질이 질기고 단맛이 덜하다고 한다.

이 밖에 두드렸을 때 "통통" 울리는 소리가 나고 눌려봐서 단단해야 아삭아삭 하고 저장성이 좋은 것을 선택하고, 물에 넣어 참외 골이 3개 정도 수면 위로 나오는 것이 최상의 참외를 구입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 "좋은 참외" 를 구입하는 방법 >

 

< 참외로 만든 각종 "식료품과 음로수" >

 

2004년 농촌진흥청 농업공학 연구소에서 호박 뿌리에서 참외 순을 접합(接合)하는 로봇기계를 개발하므로 시간 당 600주 이상 접목이 가능하므로 인력의 4배 이상의 생산성으로 올리기 되었다.

또한 접목 실패율도 숙련자가 5% 이상의 실패율이 발생하는 것을 로봇에는 3% 이하로 만들어 주므로 능률의 제고(提高)와 원가절감에 크게 기여하게 하였다고 한다.

 

< 참외의 "접목 방법" 설명서 >

 

< 참외 착과 과정을 설명하는 "벌과 꽃" 의 역활 >

 

이렇게 다방면으로 R & D(기술 개발)를 통하여 참외 품질 향상과 더불어 고객의 만족도가 높은 참외를 생산코자 노력을 기울리고 있으며 매년 4월에서 5월 중에 성주 "생명문화축제(일명 : 참외축제)" 라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데, 금년에는 5월 16일(목요일)에서 19일(일요일)까지 4일간 성주 성밖 숲 일원에서 펼쳐진다고 한다.

 

< 참외 "포장 단위" 의 규격화 개발 과정 >   

 

< 각종 "병충해" 를 예방하는 약재류 >  

 

< "참외 병충해" 를 조사하는 도구와 시약 >

 

 

2. 성산가야고분군.

성주읍의 남쪽 방향으로 해발 389m "성산(星山)" 이 자리잡고 있는데, 성산에서는 북향이지만 성주읍에서 보면 남쪽 방향으로 "성산가야고분(星山加耶古墳)" 약 129기가 안치되어 있어 오늘은 고분을 관람하기 위하여 성산 언저리로 들어가 본다.

 

< 성주 "성산가야고분군" 설명서 >

 

< "고분 번호" 만 부여하고 있는 성산가야고분 모습 >

 

일반적으로 역사책에 기술하고 있는 가야는 6가야(六伽倻) 라고 하는데, 성주에 있는 성산가야를 포함하여 대가야(고령), 금관가야(김해), 아라가야(함안), 소가야(고성), 고령가야(함창)로 구분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성산가야는 당시의 경산(京山 : 지금의 경북 성주) 지역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으면서 이를 "벽진가야(碧珍加耶)" 라고도 불려졌으며 삼국유사 지리지에서 고려시대 경산이라는 지명은 신라시대의 성산군(星山郡) 신안현(新安縣)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현재 성주군 성주읍에 해당되므로 오늘날에는 성산이라는 지명이 없어진 셈이다.

그런데 성산가야는 기록이 없어 어떻게 시작하였고 또 어떻게 망하였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실체를 밝혀주는 유적이 남아있는데, 그 유적이 성주읍 성산리에 있는 사적 제86호로 지정되어 있는 성산고분 군락지이다. 

이 밖에 성주군 선남면 신부동과 장학동, 금수면 명천동, 대가면 옥화동과 도남동, 월향면 인촌동 등에 흩어져 있는 많은 고분군들이 성산가야의 왕족 또는 지배 계층의 무덤으로 전하여 내려오고 있는데, 일제시대 대부분의 고분들이 도굴되어 완전하게 남아 있는 고분은 몇 기 없다고 보여진다.

특히 성산가야는 "성주 성산동 고분군 발굴 조사 보고서" 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고고학적 조사와 검증 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성주를 벗어나면 성산가야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본다.

성산리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에 1. 2. 6호 고분과 대분(大墳), 팔도분(八桃墳) 등 5기가 발굴되었고, 그 후 1988년 대구 계명대학교 박물관에서 5기(38, 39, 57, 58, 59호) 고분군에서 1.350점의 유물을 발굴하여 현재 계명대학교 박물관과 국립 대구박물관에서 분산 보관되어져 있다.

 

 < 대구 계명대학교에서 발굴 조사 완료한 "57호 고분" >

 

< 57호 고분을 나타내는 "입석" >

 

고분군의 묘제(墓制) 가운데 특이한 것은 매장 주체부 한쪽 벽에 잇대어 감실을 설치한 감실부곽 고분으로써, 이것은 막돌로 4면 벽을 쌓지만 한쪽 벽을 넓게 확장해 바닥보다 약간 높게 벽장 처럼 만들어 부곽(副槨)으로 사용한 묘제라고 한다.

입구에 도착하니 작년 홍수로 인하여 고분이 많이 파괴되고 허물어져 있어 많은 사람들과 중장비를 이용하여 임시 복구작업을 하고 있는데, 고분을 돌아보기 위하여 천천히 일을 하고 있는 장소까지 올라가 본다.

 

<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성산가야고분군" 전경 >

 

< 고분군 사이가 "유실" 된 계곡 모습 >

 

< 중장비로 보수하고 있는 "성산가야고분군" 모습 >

 

< 복구가 완료된 고분군 "축대" 모습 >

 

특히 제일 위쪽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신분이 높은 분의 무덤이 되는 대형 고분군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래 방향으로 내려오면 소형 고분군으로 이루어진 특색을 가진 성산가야고분이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