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성고.(총동창 행사)

계성고등학교 총동창 산우회 기수별 등반대회를 경남 고성군에 있는 "거류산" 에서 개최.

용암2000 2015. 5. 26. 18:40

2015년 5월 17일 (일요일)

 

1. 산행 출발과 개회식.

매년 5월이면 나의 모교가 되는 계성고등학교 산우회에서 동반대회를 개최하는데, 금년 제17회 기수별 등반대회는 경남 고성군에 있는 "거류산(巨流山)" 에서 거행한다는 연락을 받고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탑승하기 위하여 10분 전 모교 운동장으로 올라가니 8대의 버스가 줄을 형성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 모교 운동장에서 기다리는 "산행 버스" >

 

내가 탑승 할려고 하는 1호차 앞으로 들어가니, 박창달 총동창회장님을 비롯하여 상임부회장님, 산우회장님, 집행부 간부, 나의 기수가 되는 56회 몇 명의 동문들과 함께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금일 등반대회를 참석하는 동문들은 나의 기수보다 한참 선배가 되는 49회에서 부터 후배가 되는 82회 까지 동문 및 동문 가족을 포함하여 약 320여 명이 참석하여 지는데, 이 중에서 51회, 62회, 63회, 65회 동문은 단독으로 버스를 운행 할 정도로 많은 인원이 참가하므로 성대한 잔치가 되어진다.

7시 30분 정각 기수별 등반 대회를 개최하기 위하여 경남 고성군에 있는 거류산으로 달려가는데, 나의 기수가 탑승하는 1호차에는 산우회장님을 비롯하여 원로 선배님 및 집행부 간부, 다수의 69회 동문들로 구성 되어진다.

버스는 이내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경남 고성군으로 달려가는데, 버스 속에서 총무님의 사회로 산우회 회장님을 비롯하여 상임부회장님, 전임 산우회장님의 소개와 더불어 인사의 한마디를 나누게 하고 산대장이 배포한 유인물과 산행 지도를 보면서 금일 산행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하게 한다.

배포한 유인물 내용을 요약하여 보면 계성학교 총동창회 산우회(山友會)는 1999년 산우희가 출발한지 어인 17년의 세월이 흘려갔으며, 매월 첫번째 일요일을 등반일로 잡아 동문간 대화의 장(場)을 만들고 심신의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함으로 결성하였다고 한다.

매년 맞이하는 눈꽃산행, 섬 일주등반, 계곡 트레킹에 이어 단합 대회를 겸한 야유회 및 대경(大京) 합동산행을 실시하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동문들의 역경을 잠시 내려놓고, 정신을 자연과 접하므로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고자 한다.

또한 "계성학교(啓聖學校)" 라는 소속감으로 뭉쳐 선배와 후배들이 서로 존경하고 아껴주는 화합(和合)의 장을 만들어 가는 매우 뜻 깊은 계성 동문의 친목모임으로, 향후 등산을 즐기는 후배기수들의 지속적인 참여로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는 산행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동창회에서 나누어 주는 푸짐한 선물과 더불어 아침을 먹지 못한 동문을 위하여 버스 속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주먹밥을 제공하므로 맛 있게 식사를 하고 나서, 중간에 있는 고속도로 영산휴게소로 들어가 간단하게 휴식을 겸한다. 

이내 버스가 출발하여 창원시의 들머리가 되는 "내서 Toll gate" 를 통과하자 마자 나의 기수가 되어지면서 진해에서 거주하는 56회 백봉회장님이 탑승하므로 우리 동문은 산우회장님을 포함하여 총 7명이 동행하게 되어진다.

창원시가지 변두리와 진동면을 통과한 버스는 이내 바다를 접하면서 달려가 10시 20분 경 산행의 들머리가 되는 엄홍길 전시관 앞 주차장에 도착하여 지는데, 다소 넓은 주차장에는 우리 일행이 타고온 버스로 인하여 문전성시가 이루어진다.

 

< 거류산 산자락에 있는 "엄홍길 전시관" 앞에 있는 주차장 >

 

집행부에서 전일 하루 동안 산행의 준비를 위하여 거류산의 사전 답사와 더불어 엄홍길 전시관 뒤편에 등반대회 행사를 거행하기 위한 천막 및 현수막과 더불어 무대를 만들어 놓았다고 하면서, 전시관 뒤편으로 안내하여 준다.

 

< 엄홍길 전시관 뒤편에 있는 "등반대회" 행사장 >

 

먼저 기수별 모임을 가지면서 일정한 장소에서 기다림을 가졌다가 줄을 형성하면서 행사장으로 행진하여 들어가 총무님의 사회로 제17회 등반대회 개회식(開會式)을 거행하기로 하는데, 먼저 국민의례와 더불어 산대장의 산행 선포식으로 행사가 진행 되어진다.

 

< 제17회 "등반대회" 를 알리는 현수막 >

 

< 계성고등학교 "총동창회" 에서 보낸 현수막 > 

 

< "산우회" 에서 제공한 현수막 > 

 

< 입장식을 완료한 약 320명 "동문" > 

 

< "국민의례" 행사를 하는 동문 >

 

다음으로 참석 임원의 소개와 더불어 총동창회장님의 축사(祝辭)가 있을 예정이었으나, 대구에서 급한 업무가 발생하여 산행을 끝나는 시점에 도착하여 폐회식을 참석하기로 하고 상임부회장님 대독으로 축사를 전하기로 한다.

 

< 총동창회장님 축사를 대독하는 "상임부회장님" >   

 

이어 산우회장님 인사와 더불어 총무님의 경과보고 및 동문의 협찬 내용을 발표하고 나서 산대장이 금일 등반대회의 진행 방법을 이야기 하는데, 제17회 등반대회는 지금까지 진행한 방법과 약간의 차별화를 두면서 비밀로 심사를 하겠다고 한다.

 

< 인사 말씀을 전하는 "산우회장님" >

 

심사 내용은 알려주지 않지만, 각 기수별 선수들은 최선을 다 하면서 시합에 동참하여 준다면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설명과 더불어 금일 산행 할려고 하는 거류산은 해발 571m에 왕복 약 6.5Km로 소요시간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산행 초입과 마지막 정상 부위에서 약간의 급경사 오르막 길과 다수의 너들바위 지역이 있지만, 대부분 산행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지므로 산림욕을 겸하면서 걷기에 최상의 코스가 되어지면서 원점회귀 산행을 선정하므로 힘이 들어 지친 동문이 발생하면 선두가 도착할 때 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하산하면 된다고 한다.

특히 이 거류산에는 한국을 빛낸 산악인 엄홍길씨가 어릴적 거류산을 오르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워 유명한 산악인이 되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행사장 앞에 전시관이 자리하므로 여분의 시간을 활용하여 관람하여 보는 것도 유익하겠다고 한다.

 

< 행사장 앞에 있는 "엄홍길 전시관" >

 

이렇게 간단하게 등반대회 방법과 코스를 설명하고 나서 금일 산행에 있어 음주가 허용되지 않지만, 대구 팔공산 막걸리에서 근무하는 동문의 협찬으로 막걸리 400병 및 진주에서 거주하는 동문에서 협찬한 지리산 생막걸리 400병을 포함하여 합계 800병의 막걸리가 준비되어 있으니 안전하게 하산 후 만찬시간을 가지겠다고 한다.

 

2, 거류산 등반대회 참석.

기수별 4명의 선수 등록으로 등반대회가 개최하므로 우리 56회에도 한팀을 참석하기로 하고, 나머지 동문은 기수별 선수의 응원과 더불어 함께 즐기는 산행을 수행하므로 속도(速度) 보다는 인화(人和)를 중심으로 산행이 이루어 진다면 좋은 점수가 부여 되어진다고 한다.

나의 기수가 되는 56회 동문에서는 선수로 출전 할 인재의 부족으로 무릎 통증으로 가능한 산행을 억제하고 있는 내가 할 수 없이 선수로 참가하여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는데,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선수에 등록 함과 동시에 등 Number 100번을 부여 받는다. 

56회 출전 선수에게 만약 나로 인하여 등수에 들어가지 못하여도 원망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출발에 앞서 동문과의 화합 차원에서 단체사진 한장을 찍고 화이팅과 함께 산행의 들머리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 금번 등반대회를 참석한 "56회 동문" >

 

산행 들머리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잘 가꾸어 놓은 참꽃 단지로 인하여 매우 아름다운 꽃길로 걷기 시작하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길로 안내 되어지지만, 약 320여 명 동문이 동시에 출발하므로 다소 혼잡이 일어나는 초입길이 되어진다.

 

< "거류산" 산행의 들머리 >

 

< 지방자체단체에서 조성한 "참꽃 단지" 길을 걸으면서 >

 

< 아름다운 색을 가지고 있는 "참꽃" >

 

조금의 기다림 후에 자연적으로 줄을 형성하면서 아름다운 꽃과 울창한 숲속 길로 조금 올라가면 이내 체력의 한계로 인하여 선두와 후미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우리 기수 동문은 당년하게 제일 후미에서 허우적 거리기 시작한다.

 

< Number 100번을 달고 달리는 "56회 선수" >

 

한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3거리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오른편으로 거류산이 품고 있는 "장의사(藏義寺)" 사찰로 들어간다는 이정표 주변에서 무겁게 지고가는 베냥을 내려 놓고 간단하게 휴식를 취하면서 시원한 냉수 한모금 마시면서 갈증을 해소시켜 본다.

 

< "장의사" 사찰 방향을 알리는 3거리 이정표 >

 

나의 동기 중에서 상임부회장님의 격려 차원에서 함께 산행을 즐기면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고도를 상승하지만 이내 에너지 고갈로 종종 휴식시간을 가지는데, 그래도 선수로 출전하는 팀이라 비록 등수에는 꿈도 꾸지 못하지만 후배들에게 모범이나 보여 주자는 의견으로 가능한 쉬지 않고 걷기로 한다.

 

< 중간 "깔닥고개" 에서 휴식을 가지는 동문들 >

 

특히 오래 동안 해군에서 군생활로 단련되어진 백봉회장님이 체력의 강약을 조절하는 노련한 솜씨로 무리 없이 한 30분 정도 고도를 상승하니까, 능선 중간지점에서 부터 주변 조망이 서서히 열리면서 상쾌한 바람까지 불어오므로 등반대회에 참가하는 선수에게 흐르는 땀을 날려 보내어 주는 고마운 산들바람이 된다.

다소 암릉구간으로 형상하고 있는 능선의 한 지점에 도착하니까 넓은 공간을 가진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는데, 이 바위 전망대에 서서 남쪽 방향으로 구경하여 보면 발 아래에는 넓은 공장이 자리하고 있고 그 뒤편 산맥 사이로 통영 앞바다와 더불어 원유를 저장하는 많은 탱크들이 자리하고 있다.

 

< 암릉구간의 전망대로 올라가는 선두 "동문" >

 

< 전망대 바위에서 내려보는 "통영 앞바다 및 원유 탱크" >

 

원류 탱크 오른편 옆으로 대전에서 통영으로 내려가는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가 높은 벽방산 자락을 뚫고 지나가는 터널이 자리하고 있고, 터널의 정점으로 해발 651m "벽방산" 이 자리하고 있다.

 

<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와 "벽방산" 정상 >

 

나는 2010년 5월 12일 통영시가지 가장자리에 있는 천개산에서 부터 벽방산 까지 중주하여 본 경험이 있는 산으로, 벽방산 정상에는 매우 거대한 바위와 더불어 산의 허리 지점에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처음 출가한 의상암과 더불어 원효대사가 창건한 "안정사(安靜寺)" 사찰의 방문이 불현듯 생각이 난다.

동문들과 함께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지고 나서 다시 고도를 상승하는대, 다수의 암릉구간을 지나가므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천천히 걸어가니 곳곳에 철제(鐵製)로 만든 계단과 다리가 놓여 있다.

 

< "돌탑" 옆으로 지나가는 동문 >

 

< "철제 계단" 으로 올라가는 56회 동문 >

 

< 위험한 "다리" 구간도 건너면서 >

 

몇 번의 암릉구간을 통과하여 앞으로 전진하여 나아가면 하늘까지 숨이 차오른다는 해발 492m "문암산" 정상이 되는 깔닥고개에 도착하여 지는데, 정상에는 많은 나무 의자들이 자리하면서 의자 주변으로 다수의 다른 산악회 회원들이 휴식과 함께 점심식사 시간을 가지고 있다.

 

< 깔닥고개가 되는 "문암산" 정상 >

 

이 문암산 정상에서 부터 능선길이 되어지므로 무아지경(無我之境)으로 조금 걸어가면, 오늘 산행의 최고봉이 되는 거류산 정상 부분을 조망할 수 있는 또 다른 바위 전망대에 도착하여 진다.

여기에서 거류산 정상에서 길게 뻗어내리는 "거류산성(巨流山城)" 이 계곡까지 이어지고 있고, 반대 방향이 되는 오른편으로 뻗어내리는 다른 산맥에는 거대한 거북이 한마리가 거류산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 거류산 정상에서 뻗어내리는 "거류산성" >

 

< 또 다른 전망대 바위에서 바라보는 "거북바위" >

 

< 거류산 정상으로 향하고 있는 "거북바위" 확대 모습 >

 

여기에서 부터 능선의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10여 분 정도 걸어가면 거류면사무소 방향에서 올라오는 산행길과 만남이 일어나면서, 그 방향에서 올라오는 다수의 산악인과 조우가 이루어 진다.

 

< 산행길 옆에 있는 "기암괴석" 도 구경하면서 >

 

이 3거리 지점에서 약간 고도를 상승하니 아름다운 나무 한그루가 햇빛을 차단하고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고 있으므로 아무리 등반대회도 좋지만 민생고를 해결하고 나서 정상을 도전하자는 의견의 일치로, 등산객들의 움직이는 시선을 무시하고 난전(亂廛)을 열고 점심식사 시간을 가진다.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대부분의 기수별 선수와 동문들이 벌써 거류산 정상을 정복하고 나서 내려오는 길에 아직도 여기에서 점심식사 시간을 가지고 있으니, 언제 정상까지 갔다가 올 수 있는지 모두가 걱정하므로 눈 앞에 깜깜하여 진다.

에둘러 점심식사를 끝내고 마지막 한 300m 정도 남아 있는 거류산 정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여기에서 부터 정상으로 올라가는 경사도가 작난이 아니면서 또한 빵빵하게 부른 배로 더욱더 곤욕스러운 산행이 되어진다.

상임부회장님의 격려로 고도를 상승하니 거대한 너들바위 지대와 더불어 거류산성의 측면 따라 조금 올라가면 무너진 거류산성의 일부분을 넘어 산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거류산성은 고성군 동쪽에 있는 거류산 정상 부위에서 서쪽의 허리 면에 위치하고 있는 산성이다.

 

< 거류산성 옆으로 묵묵하게 걷고 있는 "상임부회장" >

 

성벽은 자연석 바위로 된 절벽을 이용하여 낮은 곳에는 돌로 쌓아 보강 하였지만, 원형의 성벽이 너무나 많이 무너져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으나 돌레 1.4Km 정도의 크기로 축조 되어진 산성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현재 거류산성은 부분적인 보수로 인하여 잘 조성되어 있는 약 600m 정도의 성벽에는 높이가 3m 정도가 되어지고 넓이가 4m가 되어지는데, 성내에는 우물이 있고 남쪽과 서쪽으로 2개의 성문이 있었다고 한다.

 

< 잘 보수되어져 있는 "거류산성" 모습 >

 

< 거류산성 주변에 있는 "기암괴석" >

 

이 산성의 축조과정은 고려말 극성을 부렸던 왜구(倭寇)를 맊았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가라산(加羅山)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소가야의 시조가 탄생하였다는 태조산(太祖山)으로 불렸다는 지역민들의 전승(傳承)도 내려오므로 거류산이 고성읍의 진산(鎭山)임을 감안한다면 가야시대의 산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한다.      

이 산성에서 얼마 남지 않은 정상을 향하여 최후의 힘으로 10여 분 정도 고도를 상승하면 거대한 통신시설과 더불어 거류산 정상석이 서 있는 정점에 도착하여 지는데, 정상에는 등반대회의 심사를 주관하는 몇 명의 선배와 후배가 우리 동문에게 격려의 응원을 보내어 준다.

 

< 거류산성 옆으로 흐르고 있는 "너들바위" >

 

< 거류산 정상을 지키는 "통신시설과 정상석" > 

 

다른 기수별 선수와는 너무나 시간적인 격차가 발생하므로 에둘러 정상석을 배경으로 정상 정복을 증명하는 기념사진 한장을 찍고 나서 주변의 조망을 구경하기 시작하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 거류산 "정상석" 을 배경으로 단독사진 한장 > 

 

< 함께 등정한 "동문" 도 한장 >

 

< 거류산 정상석 앞에 있는 300년 수령의 "소사나무" >

 

한편에 있는 거류산 유래를 읽어보는데, 거류산은 고성의 명산 중 하나로 산 높이가 570.5m 이고 고성읍에서 동쪽으로 3Km 가량 떨어진 들판 가운데 솟아올라 한국의 마터호른이라고 불려지며 이는 산의 모양이 알프스 산맥의 마터호른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의 명칭이 거류산으로 불려지게 된 이유는 해가 넘어가는 저녁무렵 부엌에서 밥을 짖던 한 처녀가 밖으로 나와 보니 커다란 산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부찌갱이를 두드리면서 "저 산이 걸어 간다" 라고 세번 외쳤더니 그만 산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추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이에 크다는 뜻을 가진 "거(巨)" 자와 흐르다는 뜻을 가진 "류(流)" 자를 써서 거류산(巨流山)이 되었다고 한다.

밑에서 본 것과 같이 8부 능선에 있는 거대한 거북바위는 거북이가 정상을 향하여 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자손이 귀한 집안의 아낙네들이 거북바위에 오르면 자손이 번창 함과 동시에 수명도 연장되어 진다는 전설을 간작하고 있는 진산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아울러 주변 조망으로는 정상 동쪽으로는 2012년 3월 25일 한번 종주하여 본 해발 559m "구절산" 능선이 뻗어내려 남해 바다에 꼬리를 담그고 있는데, 꼬리 끝지점에 EK 중공업(주)의 높은 골리앗 크래인이 우뚝 솟아있고 내쪽으로는 당동만과 더불어 당동만 안쪽으로 거류면사무소 마을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 "구절산" 정상에서 뻗어내리는 산맥 끝지점에 있는 다도해 해상 >

 

< EK 중공업 내쪽으로 형성하고 있는 "당동만 및 거류면사무소" 전경 >

 

이 구절산을 줌심으로 하여 구절산의 뒤편으로도 깊숙하게 파고 들어온 당항포구가 자리하고 있는데, 당항포구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일본 해군을 2번이나 유인 격퇴한 유명한 당항포해전이 일어난 만(灣)이라 하겠다.

 

< 구절산 뒤편으로 깊숙하게 들어오고 있는 "당항포구" >

 

고개를 더 오른편으로 돌리면, 한국의 "나폴리" 라고 불려지는 통영 앞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는 다도해 해상과 더불어 한산도, 미륵도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상호 어께를 나란하게 하면서 마주하고 있는 풍경이 한폭의 수채화에 머물고 있다.

 

< 통영 앞 바다에 자리하고 있는 "한산도와 미륵도" >

 

고개를 서쪽으로 조금 더 돌리면 옛 삼천포 앞 바다에 있으면서 사량도와 육지 사이를 파고 들어있는 바다에 통영시의 명품이 되는 굴을 양식하는 하얀 부포가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는 진경(眞景)이 아련하게 머물고 있다.

 

< "사량도" 앞으로 파고 들어있는 바다 >

 

방향을 더 서북쪽으로 돌리면 넓은 평야를 품고 있는 고성읍시가지의 빌딩들이 상호 조화를 이루면서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고, 그 뒤편으로 고성군이 자랑하는 또 다른 산맥이 되는 연화산이 손에 잡힐 듯 보이고 있다.

 

< 연화산 품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는 "고성읍시가지" >

 

이렇게 다양한 풍경에 도취하면서 조금 머물려고 시도하는데, 심사를 주관하는 산대장이 꼴치에 머무는 선배들이 너무 심하게 농띵 친다는 호통으로 마음을 열어 놓고 좋은 산천도 감상하지 못한 생태에서 거류산 정상을 떠나기로 한다.

동문 모두가 하산하므로 다소 조용한 산행길이면서 올라왔던 너들바위 길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하산하기 시작하지만, 그래도 시야는 아름다운 풍경을 못잊어 발걸음을 잡고 있다.

휴식도 없이 계속하여 앞으로 전진하여 내려가니 산의 허리 정도에서 힐링(Healing)을 즐기면서 하산하고 있는 일부 동문과 만남이 일어나면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하산이 되어져 다소 여유를 가지면서 걷기에 동참하게 한다.   

 

< 앞에서 하산하고 있는 "동문" 과 만나면서 >

  

예정 하산시간 보다 약 40분이 지연되어진 4시 10분 경 행사장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모든 동문들은 구석구석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 파티가 벌어지고 있어, 일행도 본부석으로 들어가 도착 신고를 하고 나서 한쪽 구석에 자리를 만들어 막걸리 파티와 더불어 갈증을 해소시켜 본다.

 

< "하산주" 파티에서 안주를 축내고 나서 >

 

나는 몸의 콘디션 난조로 인하여 한잔의 막걸리와 더불어 집행부에서 준비한 많은 안주를 먹고 나서, 행사장 앞에 있는 엄홍길 전시관으로 이동하여 산악인 엄홍길씨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3. 엄홍길 전시관 방문.

엄홍길(嚴弘吉)씨 그는 1960년 9월 14일 이곳 고성군에 있는 거류산 산자락에 태어나 서울 도봉산 속으로 이사를 하여 성장하면서 아시아 최초 및 인류 역사상 8번째로 히말라야 8.000m 급 14좌를 완등(完登)하였고, 또 다른 8.000m 급 위성봉 얄룽캉, 2007년 5월 31일 8.400m 급 로체샤르도 오르므로 세계 최초로 16좌를 완등한 산악인이다.

엄홍길씨는 산을 오르는 것에 대해 "정복(佂復)" 이라는 단어를 절대로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데, 산이 정상을 잠시 빌려주는 것일 뿐 이지 사람이 어떻게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가 하는 말이다. 

엄홍길은 산에 오를 때 대원들에게 매우 엄격하게 대(對) 하는데, 그는 이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풀어지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다" 고 말하면서 동료들은 정상에 오르면 그의 엄격하였던 모습에서 온화한 모습으로 변하고 산에 내려와서도 그 동안의 나쁜 감정들은 다 잊어버린다고 한다.

엄홍길씨를 비롯하여 산악인에게는 보험에 들 수 없다고 하는데, 보험 약관에 전문 산악인은 가입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며 1년 중 6개월 이상 등정에 투입하므로 대부분 산악인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가 어렵다고 한다

14좌를 완등한 사람은 세계적으로 12명이 존재하면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이 3명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엄홍길은 "한국인의 끈기와 근성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를 종종한다고 한다.

그는 16좌 완등 기념으로 네팔에 16개의 학교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 네팔의 대지진 참사로 인하여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위로와 더불어 구조 및 대민봉사 활등을 함께 전개하면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이 시대가 낳은 진정한 산악인이라 하겠다.

 

< "엄홍길" 전시관 앞에 있는 입석 >

 

전시관 내부로 들어가면 중앙 Hall 중심으로 돌탑이 쌓여 있으면서 그 돌탑 주변으로 산행을 하기 전 토템(Totem) 사상의 의식을 재현하는 제단이 만들어져 있고, 그 뒤편으로 산행을 통하여 정상으로 올라가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가 상영하고 있다.

 

< 'Hall" 의 중앙을 장식하고 있는 돌탑 >

 

< 정상에 도전하는 "엄홍길" 사진 >

 

< 엄홍길 산악인이 사용한 "장비" 전시 Booth >

 

다른 Booth에는 산행에 필요한 등산용 제품과 더불어 정상 도전에 관련 되는 사진들이 많이 전시하고 있으며, 출구로 나오면 엄홍길 산악인의 로그 또는 싸인(Sign)이 들어 있는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나 곧 이어 실시하는 폐회식 안내방송으로 전시관을 바로 떠나기로 한다.

 

4. 폐회식 및 귀가. 

곳곳의 나무 그늘 아래서 하산주를 즐기는 각 기수별 동문들은 안내 방송에 따라 행사장으로 집결하여 일렬로 줄을 형성하면서 폐회식(閉會式)을 거행하기로 하는데, 먼저 시상식을 실시하기로 한다.

산대장이 청년부와 OB팀으로 나누어 성적을 발표하는데, 성적 순서는 제일 많이 참석한 기수들에게 우수한 등수로 선정 되어짐과 동시에 푸짐한 격려금을 수령하면서 기쁨에 넘치고, 제일 꼴치를 담당한 우리 56회 동문에게 우정상을 부여하므로 기쁨의 배가 되어지게 한다.

 

< 등반대회 등수를 호명하는 "산대장" >

 

< "우정상" 을 받고 있는 56회 동문 >

 

이어 경품 추천권을 발표하는데, 너무나 많은 동문들의 협찬으로 끝없이 호명 되어지면서 곳곳에 환호성이 일어나지만 나에게도 많은 기대를 가지면서 호명을 기다렸지만 끝까지 이름을 등제하지 못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게 만든다.

 

< "경품권" 을 추천하는 집행부 >

 

< 경품권 시상을 하는 "산우회장님" >

 

< "현금 및 기념품" 을 협찬한 동문 명단 >

 

마지막으로 폐회식을 거행하면서 오전에 급한 용무로 불참한 총동창회장님의 기나긴 폐회사 말씀을 하시는데, 금일 같이 많은 동문 및 가족이 참석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와 함께 금년에는 모교도 새로운 둥지로 이전하는 시점으로 산우회도 초심으로 돌아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하는 마음으로 협조하여 주시기를 부탁한다는 요지의 말씀으로 종결한다.

 

< 폐회사를 말씀하시는 "총동창회장" >

 

아울러 계속하여 산우회장을 비롯하여 다수의 임원진 인사와 더불어 거류산 산자락에 우렁찬 교가를 부르고 나서 단체기념 사진 한장을 찍고, 최종적으로 만남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오후 5시 20분 경 공식적인 모든 행사가 종결 되어진다.

 

< "교가 제창" 을 지휘하는 55회 선배 동문 >

 

< 제17회 뜽반대회" 를 참석한 동문의 단체 사진 >

 

다음 6월에는 섬 산행이 되는 통영 앞 바다에 있는 연화도에서 개최한다는 공지사항 전달과 더불어 행사장을 떠나는 버스에 오르기로 하는데, 아침 출발할 때와 동일하게 탑승하여 대구로 출발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