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8일.(토요일)
3. 반야사 관람.
월류봉 건너편에 있는 백화산 방향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석천 강변 따라 깊은 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골짜기로 한 10여분 정도 운전하여 가면, 백화산 산행 들머리가 되는 작은 다리에 도착하여 진다.
백화산 산행의 들머리에서 한 모퉁이를 돌아서 들어가면 반야사의 방문객을 위하여 마련한 주차장에 도착하여 지는데, 주차장 옆으로 흐르는 계곡에는 보(湺)가 만들어져 있으므로 풍족한 물이 반야사 앞 마당 까지 넘치고 있어 매우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길이 되어진다.
< "반야사" 로 들어가는 입구 차량 통제소 >
< "보" 로 인하여 사찰 마당까지 차 있는 물 >
울창한 숲으로 가려지고 있는 도로 따라 조금 들어가면 반야사의 첫 관문이 되는 일주문을 만나고, 일주문에서 한참 더 들어가면 우측의 야산 언덕 위에 사찰의 명성을 가름할 수 있는 부도탑 군락지가 자리하고 있다.
< 반야사의 첫 관문이 되는 "일주문" >
< 야산 언덕 위에 있는 "부도탑" >
여기에서 조금 더 골짜기 안쪽으로 들어가면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는 반야사 경내에 도착하여 지는데, 입구에는 화장실과 더불어 심검당 및 종무소 건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 반야사 경내로 들어가 처음 만나는 "심검당 및 화장실" 건물 >
심검당 건물 우측 방향에 있는 계단 따라 올라가면 주불을 모시고 있는 반야사 본찰이 있는 경내에 도착하여 지는데, 입구에 한 여성 해설사가 상주하므로 해설을 부탁하기 위하여 반가운 인사를 나누어 본다.
< 반야사 "심검당" 건물 전경 >
< 심검당 건물 우측 벽면에 붙어있는 "반야사" 의 명소 사진 >
< 명소 사진 앞에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해설사와 스님" >
해설사는 반야사의 역사를 이야기하여 주는데, “반야사(般若寺)” 는 법주사의 말사로써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성덕왕 19년(720년) 의상(義湘)대사의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인 상원(相源)스님이 창건하였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다.
그 뒤 수차례의 중수를 거쳐서 세조 10년(1464년)에 세조의 허락을 얻어 크게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거의 소실되었으며,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 극락전(極樂殿)과 그 앞에 있는 보물 제1371호 3층 석탑이 반야사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곳 반야사의 주요 관람 포인트는 반야사 안쪽에 있는 적묵당이라는 요사채 건물 뒤편으로 호랑이 형상을 하고 있는 너들 바위가 펼쳐지고 있지만, 일반적인 불자들이나 관광객들은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고 한다.
< 반야사 후면 적묵당 뒤편에 있는 "호랑이" 형상의 너들 바위 >
아울러 반야사 사찰 뒤편으로 한 20분 정도 올라가면 문수암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문수암으로 올라가는 길의 계곡에는 조선 제7대 왕이 되는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목욕한 만경대 바위가 있다고 한다.
그 바위에서 급경사의 돌계단을 올라가며 문수암을 만나는데, 문수암 앞 계단에 서서 멀리 백화산 정상이 되는 11시 방향으로 바라보면 문수보살과 더불어 문수보살을 호위하고 있는 사자의 모습을 친견하고 내려오라는 거대한 숙제를 안겨준다.
이러한 반야사의 숨은 비경을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불자나 관광객들에게는 너무나 안스럽다고 해설을 하면서, 호랑이를 만들고 있는 너들 바위를 배경으로 동문들과 함께 사진 한장을 찍어주는 수고 함의 봉사정신도 발휘하여 준다.
< 해설사가 "호랑이" 를 배경으로 찍어준 사진 >
일단 해설사가 설명하여 주는 반야사 경내와 더불어 대웅전 및 극락전을 구경하면서 사찰을 돌아보는데, 극락전 앞에 있는 500년의 수령을 가진 배롱나무 2그루가 한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지만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하여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 반야사에서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 >
< 대웅전 내에 모시고 있는 "석가모니불" >
< 대웅전 왼편에 있는 "극락전" >
< 극락전 내에 모시고 있는 "아미타불" >
< 극락전 앞 보물 제1371호 "삼층석탑" 과 500년의 수령을 가지고 있는 배롱나무 >
< 대웅전 오른편에 있는 "지장전" >
< 대웅전과 극락전 뒤편 사이에 있는 "산신각" >
< 3층석탑 앞에 있는 "범종각" 건물 >
< 용의 입에서 나오는 "감로수" >
해설사가 이야기하여 주는 문수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선택하는데, 사찰 오른편에 있는 다소 수월한 길을 선택하여 문수암으로 올라가고 하산을 세조대왕이 목욕하였다는 만경대 바위 방향으로 내려오기로 한다.
약 20분 정도 고도를 상승하면 새의 집과 같이 낭떠러지 위에 자리하고 있는 문수암으로 들어가는데, 건물을 건립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나 협소하여 문수암은 매우 좁고 작은 건물이 되어진다.
< 새의 둥지와 같이 높은 바위 틈에 자리하고 있는 "문수암" >
일단 문수암 건물 내에 모시고 있는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나서, 해설사가 이야기하여 주는 문수보살과 사자 모습의 바위를 찾기 위하여 백화산 정상 언저리 방향으로 눈을 고정하여 본다.
< 문수암 처마에 있는 "문수전" 현판 >
< 사자의 등에 앉아 있는 "문수보살" >
우리 일행을 포함하여 몇 명과 함께 문수보살과 사자 모습의 바위를 찾았지만 그렇게 쉽게 발견되지 않으므로 내가 먼저 문수보살을 지적하여 보는데, 모두 인정을 하지만 사자 모습에 대하여 많은 의견을 가지므로 사자 형상을 스마트 폰으로 찍어 하산하여 해설사에게 심판을 받기로 한다.
< 문수암 앞에 펼쳐지고 있는 "백화산" 전경 >
< 제일 위쪽에 있는 "문수보살" 형상의 바위 >
<백화산 중터에서 문수보살을 옹호하고 있는 "사자" 바위 >
문수암에서 내려가는 길은 세조가 목욕하였다는 계곡 방향으로 내려가니 문수암을 휘감아 돌아가는 계곡의 물가에 넓은 망경대(望景臺)라는 바위가 자리하고 있어 이곳 바위에서 세조가 목욕하여 피부병을 완치하였다고 하는데, 이 전설은 강원도 오대산에 있는 상원사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전설과 너무나 유사함을 느끼게 한다.
< "세조대왕" 이 목욕하였다는 안내문 >
< 세조가 목욕하였다는 "망경대" 바위 >
< 만경대 바위에서 바라보는 "문수암" >
냇가에 펼쳐지고 있는 바위로 들어가 풍족하게 흘려내리는 물가에 머무면서 땀을 시키고 나서, 개울 따라 조금 내려가면 다시 반야사 경내에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적묵당 앞에 도착하여 진다.
경내로 들어가 약 1시간 전에 해설한 해설사를 찾았지만, 자리에 없으므로 문수암에서 찾고 찾아도 못 찾아서 스마트 폰에 기록하고 있는 사자의 모습을 확인하지 못함이 아쉬워 진다.
<해설사를 찾아서 다시 들어간 "반야사" >
숙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미완의 일로 둔 상태에서 반야사 경내를 떠나기로 하면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내려가는 길에는 반야사 사찰을 관람하기 위하여 더 많은 방문객들이 올라오고 있다.
4. 노근리 평화공원 견학.
반야사 사찰을 구경하여도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남아 영동군에서 6.25 때 비극의 현장이 되는 “노근리평화공원(老斤里平化公園)” 을 돌아보기 위하여, 영동군 황간면 시가지를 통과하여 국도 4호선 따라 영동읍내 방향으로 달려간다.
약 4만평의 넓은 터에 자리하고 있는 노근리 평화공원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까지 5일 동안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하기리 및 황간면 노근리의 경부선 철도 및 쌍굴다리 일대에서 미 공군기에 의한 공중 폭격과 미 제1기병사단 소속 미군들의 무차별적인 기관총 및 소총 사격에 의하여 수백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된 사건의 현장에 건립되어진 추모공원이다.
당시 영동군청에 신고되어진 피해자의 숫자는 사망 177명, 부상 51명, 행방불명 20명 등 총 248명의 선량한 양민들이 원인도 모르고 죽음을 당하거나 부상에 따른 고통의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특히 이곳 노근리 사건은 역사 속으로 묻혀질 사건을 50년 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유족들의 끈질긴 진실규명 활동의 결과로 2004년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이 제정되었고, 이에 근거로 하여 노근리 평화공원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 정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노근리 평화공원" 입간판 >
< "노근리 평화공원" 을 알리는 현판 >
< "노근리 평화공원" 의 조감도 >
노근리 평화공원의 설립 목적은 우리 현대사의 잊혀진 과거를 정당하게 재평가하고, 올바르게 기록하여 노근리 사건의 진실을 국민들에게 바르게 알리면서 인권과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어짐과 동시에 사건 현장과의 연계성을 가지는 관광지로 조성 함이라 한다.
이제 노근리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딛고 국내외적으로 평화의 소중함을 각인시키는 장소로 거듭 태어나기 위하여 다양한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으로 체험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욕관이 되어진다고 한다.
그러고 가해 당사국인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2001년 1월 노근리 사건 피해자들과 한국 국민들에게 유감 표명 성명서를 발표하였으며, 이에 한국과 미국에서의 관계나 인권적 측면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주차장으로 들어가 승용차를 주차하고 나서 추모공원의 대표적인 건물이 되는 “평화기념관(平化記念館)” 건물로 들어가는데, 들어가는 출입구가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되어진다.
< 노근리 평화공원의 주 건물이 되는 "평화기념관" >
< 평화기념관으로 들어가는 "지하 통로" >
경사면의 통로 따라 내려가면 안내 데스크에 도착하면서, 입구에 있는 안내원의 도움으로 먼저 영상관으로 들어가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노근리 사건 영상물을 관람하는 시간을 가진다.
< 지하 1층에 있는 "출입문" >
< 평화기념관 내에 있는 "전시실" 조감도 >
영상을 통하여 노근리 사건의 전모를 먼저 이해하고 나서 전시실로 들어가 전시하고 있는 사진과 더불어 유품을 구경하여 보는데, 너무나 비참함을 느끼게 하는 전시실이다.
< "지하 전시실" 내부 모습 >
< 지하 전시실 내에 있는 "전시물" >
< 6.25 전쟁으로 집을 떠나는 "피난민" 조각품 >
< 피난민을 향하여 무차별 사격을 한 "기관총" >
지하층 전시실을 관람하고 나서 1층으로 올라가 또 다른 전시실의 전시물 관람을 끝내고 나서 건물 밖으로 나오면, 건물 앞에 있는 정원에는 조각공원과 더불어 위령탑이 조성되어 있어 더욱더 가슴을 올리게 한다.
< 1층 전시실을 관람하는 "동문" >
<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 방송 >
< 평화기념관 앞에 있는 야외 "조각공원" >
< 공원 내에 있는 "조각품" >
< 평화기념관 뒤편에 있는 "위령탑" >
이 조각공원 앞으로 지나가는 국도 제4호선을 건너가면 노근리 사건의 현장이 되는 쌍굴다리를 관람하여 보는데, 쌍굴다리에서는 그 당시 미군들이 사격한 총탄의 자국에 흰 페인트로 원과 삼각형을 그리면서 표시하고 있고 다리의 앞과 뒤 및 천장까지 전체가 총탄 흔적으로 얼룩이 지고 있다.
< 노근리 사건 현장이 되는 "쌍굴다리" 로 가는 길 >
< 노근리 사건 현장을 나타내고 있는 "조감도" >
< 많은 총탄 흔적이 있는 "쌍굴다리" 모습 >
< 쌍굴다리 뒤편과 천장에도 남아 있는 "총탄" 흔적 >
다리를 통과하여 뒤편에 있는 야산으로 만들어져 있는 계단 따라 올라가면, 노근리 사건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작은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어 묵도( 默禱)로서 간단하게 희생자의 위령을 추모하여 본다.
< 야산의 언덕 위에 있는 "분향소" >
< 유해 발굴 현장을 나타내는 "안내도" >
계속하여 산의 중간에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공원 전체를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만 산행에 대한 피로의 엄습으로 인하여 노근리 평화공원을 되돌아가기로 하는데, 야산의 언저리에 키가 작은 해바라기 밭에 노란꽃이 만발하게 피어있다.
< 야산 아래에 조성하고 있는 "해바라기" 밭 >
5. 올뱅이국밥으로 저녁식사.
황간역 주변에는 전문적으로 올뱅이국밥을 판매하는 다수의 식당이 있으면서, 그 명성이 너무나 유명하므로 TV 방송으로 많이 소개되어진 지역의 먹걸이 촌이라고 한다.
많은 식당 중 제일 허름한 건물이 되어지면서 30년이라는 전통을 가진 원조 "동해식당" 에서 깔끔한 올뱅이국밥을 만든다는 소문에 따라 식당으로 들어가 한그릇 7.000원 하는 국밥과 더불어 반주로 마실 "천덕막걸리" 한병을 주문하여 본다.
< 황간역 앞에 있는 원조 "동해식당" >
< 이 지역에서 생산하고 있는 "천덕막걸리" >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다소 일찍은 시간이지만 주인장이 요리하여 주는 올뱅이국밥을 먹어 보는데, 국밥의 맛이 지금까지 먹어보는 올뱅이국밥과는 차별화가 발생하면서 너무나 단백한 맛을 내므로 단숨에 한그릇의 국밥을 청소하게 한다.
< 단숨에 빈그릇을 만들게 하는 "올뱅이국밥" >
그러고 나서 귀가 길은 인접하게 있는 황간 Toll gate를 이용하지 않고, 여가의 시간을 즐기면서 국도 따라 운전하여 바람도 쉬어간다는 추풍령 고개를 넘어 김천 Toll gate 까지 내려가기로 한다.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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