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5일.(금요일)
오늘도 농원에서 잡일을 조금 하다가 지겨움이 발생하여 나의 고향과 인접하게 있는 고령군에 있는 다수의 관광지을 돌아보기로 하는데,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은 가야대학교 고령 캠퍼스 뒤편에 있는 "도암서원(道巖書院)" 으로 발길을 잡아본다.
고령읍에서 쌍림농공단지를 지나자 마자 오르편 골짜기로 한 1Km 정도 들어가면 가야대학교 뒤편이 되면서 아담한 골짜기에 도암서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오늘로 두번째 방문의 길이 되는 서원이다.
작년(2016년) 합쳔군 초계면에 있는 모 고등학교에 근무할 적 퇴근 길에서 한번 방문하였지만 그 때에는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으므로 그냥 서원을 관람하는 것으로 만족하였지만, 오늘은 기록을 남겨보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방문하여 보는 곳이라 하겠다.
넓은 주차장과 함께 하는 도암서원은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한 송암 "김면(金沔)" 장군의 유적지로 조성 되었는데, 유적지 내에는 도암서원을 비롯하여 도암서당, 사당, 추념재, 기념관, 묘소 등 일괄적으로 조성이 되어진 장소이다.
< 넓은 주차장과 함께 하고 있는 "도암서원" 전경 >
도암서원은 조선 현종7년(1666년)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암(松菴) 김면 및 옥산(玉山) 이기춘(李起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고령읍 연조리에 건립하여 지는데, 정조13년(1789년) 현재의 자리가 되는 칠동으로 이전하여 지지만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거 고종5년(1868년) 훼철된다.
도암 선생님은 선조25년(1592년) 임진 4월 14일 왜적의 무리 약 20여 만명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질풍과 같이 북으로 진격하니, 관군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국왕은 다급하여 국경선이 되는 의주로 몽진을 한다.
이 때 초야에 묻혀있던 지사와 의인들이 의병을 일으키니 그 중에서 태산과 같이 우뚝선 이가 있으니 송암 선생님이 되는데, 영남지역 의병장으로 의령의 곽재우 장군 및 안동의 김성일 장군과 함께 3대 의병장이 된다.
송암은 강개지사(慷槪之士)의 한사람으로서 전란의 소식을 듣고 "나라가 위급한데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면 어찌 성현의 글을 읽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라는 말을 남기고 고령에서 의병을 모집한다.
토적의 기치를 올려 문위(文緯), 곽준(郭䞭), 박성(朴惺) 등과 더불어 다수의 동지들과 함께 거창으로 본진을 옮겨 의병을 모집하니, 몇일 만에 2천명 정도의 의병이 형성되어 진다.
그러고 낙동강 주변을 염탐하면서 적을 섬멸하면서 많은 전공을 세우는데, 특히 개산포, 정진, 무계 전투에서 왜군을 격파하면서 많은 적을 죽이고 또한 왜선을 나포하므로 궁중에서 약탈한 많은 보물을 회수하기도 한다.
10여 회 큰 전투와 30여 차례의 교전을 통하여 적을 섬멸하므로 국왕은 교지를 내려 경상도 의병도대장(義兵都大將)으로 특서하여 도내의 모든 의병을 통솔하게 하였다가 그 이듬해가 되는 계사년(1593년) 정월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제수가 된다.
그러하므로 관군과 의군을 아울러서 통솔하게 하므로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郭再祐) 장군을 의병좌장(義兵左將)으로 두고 합천의 정인홍(鄭仁弘) 장군을 의병우장(義兵右將)으로 두면서 김면 장군의 휘하가 되어진다.
선산(善山)에 집결한 왜적의 세력이 강성하여 김면 장군은 김천에 진을 치고 싸우니 적이 위축되어 민가에 불을 지르고 달아날 기색이 역력하였는데, 그 동안 쌓인 피로가 누적이 되어 갑자기 병을 얻어 계사년(1593년) 3월 11일 진중에서 순국하니 그 때 향년 나이 53세가 되었다고 한다.
넓은 주차장 가장자리 이면서 도암서원으로 들어가는 외삼문 오른편 입구에 송암 선생님의 어록을 돌에 새긴 입석과 더불어 안내문이 붙어있어 그 내용응 정독하여 보는데, 입석의 어록은 "지지유국(只知有國 : 나라 있는 줄만 알았고), 부지유신(不知有身 : 내 몸 있는 줄 몰랐다.)으로 나라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켜 주고 있다.
< 도암서원 앞 오른편에 있는 "입석" >
또한 안내문에는 송암 선생님은 고령 김씨의 시조가 되는 고양부원군 휘 남득(南得)공의 7세손으로, 중종 36년(1541년) 고령 양전동에서 부사 휘 세문(世文)과 어머니 김해 김씨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약관의 나이에 퇴계 선생님과 남명 선생님으로 부터 사사를 받아 행실이 돈독하고 학문이 탁월하여, 유현으로서 6품직이 되는 공조 좌량에 제수되어 조정의 부름에 간곡하여 부임하였다가 곧 사퇴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와 성리학 연구와 더불어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도암서원을 관람하기 위하여 높은 돌계단 위로 외삼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외삼문 처마에는 "지지문(知止門)"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으며 외삼문을 통과하자 마자 새롭게 건축되어진 2층의 루각 건물을 만나는데, 루각에도 항상 모든 것이 고르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상평루(常平樓)"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 도암서원으로 들어가는 외삼문이 되는 "지지문" >
< 외삼문을 통과하면 만나는 루각 "상평루" >
상평루 중앙이 되는 1층을 통과하여 내부로 올라가면 넓은 마당과 함께 오른편으로 경묵재(敬默齋) 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동재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왼편으로 수의재(修義齋) 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서재 건물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 도암서원 내 동재가 되는 "경묵재" >
< 도암서원 내 서재가 되는 "수의재" >
마당에서 조금 더 앞으로 전진하면 도암서원의 중추적 건물이 되는 전면 5칸에 측면 2칸의 "강당(講堂)"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강당 처마에는 도암서원(道巖書院)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으며 마루의 뒤편 벽면에는 묵일당(默一堂) 이라는 현판과 더불어 주변으로 상량문 등 다수의 시문 글씨들이 붙어있다.
< 도암서원의 중추적 건물이 되는 "강당" >
< 마루 뒤편 벽면에 붙어있는 "묵일당" 현판 >
< 강당 마루에서 바라보는 "상평루" 후면 >
강당 건물 오른편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돌담으로 구획하고 있는 "추념재(追念齋)" 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잠겨져 있는 쪽문 안에 사람이 거주하므로 내부 관람이 불가능하여 담을 넘어 사진 한장을 남겨본다.
< 돌담으로 구획하면서 "추념재" 로 들어가는 문 >
< 옛 서원 건물이 되는 "추념재" >
< 추념재 앞 사람이 기거하는 "사랑채" >
강당 뒤편으로 돌아서 가면 높은 돌담 위에 좌우로 작은 쪽문 2개가 자리하고 있는데, 오른편 쪽문으로 올라가면 송암 선생님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우(祠宇)가 자리하고 있으며 왼편의 쪽문으로 올라가면 도암서당(道巖書堂) 건물이 된다.
< 강당 건물 뒤편에 있는 2개의 "쪽문" >
< 오른편 "사우" 로 들어가는 계단 >
< 송암 선생님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우" >
< 왼편 "도암서당" 으로 들어가는 계단 >
< "도암서당" 의 건물 전경 >
< "도암서당" 을 알리는 현판 >
이 밖에 도암서원의 왼편 구석지에 기념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문이 잠겨져 있어 담을 넘어 한번 구경을 하고, 서원의 왼편 쪽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가 야산 방향으로 올라가면 야산의 능선 따라 송암 선생님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 도암서원 왼편 구석지에 자리하고 있는 "기념관" >
< 도암서원 왼편 송암 선생님 "묘소" 로 올라가는 길 >
묘소의 제일 아래에는 송암 선생님의 공덕비가 자리하고 있고 공덕비와 많은 차이를 두면서 야산의 기슭면으로 묘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묘소 앞에는 각종 석물이 되는 문인석, 무인석, 망부석, 묘비, 장명등, 좌판 등이 함께 하고 있는 명당 터가 된다.
< 묘소의 입구에 있는 "공덕비" >
< 각종 석물과 함께 하고 있는 송암 선생님의 "묘소" 전경 >
< 송암 선생님의 "묘소" >
묘소에서 오른편으로 내려보면 도암서원을 비롯하여 유적지 건물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송암 선생님은 7년의 임진왜란 중 전쟁이 발병하자 마자 1년도 안되는 시기에 병사하므로 장기적으로 투쟁한 이순신 장군 또는 곽재우 장군과 같이 국민의 가슴에 각인도 하지 못하여 역사적으로 크게 평가도 할 수 없는 의병장이 된다.
< 묘소 가장자리에서 내려보는 "도암서원" 전경 >
묘소에서 내려와 서원의 서쪽 쪽문을 이용하여 내부로 다시 들어가면 2층의 루각이 되는 상평루 옆을 지나 외삼문을 통과하여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김면 장군의 업적이 크게 부각하지 못하여서 그런지 아무도 찾지 않아 적막감만 흐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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