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군 문화와 산행.

경북 영덕군 장사해수욕장 내에 장사상륙작전을 기념하고 있는 '전승기념관' 의 관람.(2)

용암2000 2021. 9. 30. 07:26

 

2021년 9월 25일.(토요일)

 

칠포항을 떠난 일행은 해안선 따라 만들어져 있는 20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왕복 2차선 도로에는 많은 차량들이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집 또는 실내에 머물면서 지내는 것 보다 시원한 풍경이 펼쳐지는 야외로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포항시가지에서 동해의 북쪽 방향에 자리하고 있는 이가리항 및 월포항(月浦港)을 지나면서 20번 지방도로는 교통 체중으로 악명(惡名)이 높은 7번 국도와 만남을 가지면서 계속하여 북쪽으로 올라가 보는데, 포항시와 경계 지점에 있는 영덕군 남정면에 있는 장사해수욕장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는 '장사해수욕장' >

 

이곳 장사해수욕장에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뼈 아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6.25의 참사 중에서 유명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교란작전으로 하루 먼저 실시한 장사상륙작전의 격전지가 자리하고 있다.

나는 이곳 장사상륙작전 격전지를 2017년 2월 14일 및 2018년 6월 15일 등 2번이나 방문하여 나의 블로그에 그 내용을 기술한 장소가 된다.

2번의 방문을 통하여 바다 중앙에 거대한 배를 건조하고 있었는데, 거대한 배는 이곳 장사상륙작전 때 활동한 'LST 문산호' 가 침몰한 배를 복원하기 위하여 공사를 하면서 장사상륙작전에 따른 전쟁사를 홍보하기 위한 '전승기념관(全勝記念館)' 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장사해수욕장의 남쪽 끝지점에 새롭게 만든 넓은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를 시키고 나서 바다에 정박하고 있는 전승기념관으로 들어가 보는데,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길은 기나긴 나무테크의 다리를 만들면서 배의 입구로 바로 들어가도록 인도교가 가설되어 있다.

 

< 바다의 가장자리 따라 만들어진 '전승기념관' >

 

배의 입구로 들어서면 먼저 발열검사기와 함께 매표소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성인들에게는 3.000원의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지만, 나와 같이 퇴물의 인간이 되는 경로(敬老)에게는 신분증 제출로 무료 입장이 가능하게 만든다.

 

< 'LST 문산호' 로 들어가는 입구 >

 

배의 특성에 따라 이곳 전시관의 전시실은 갑판의 하부에 1층 및 2층으로 만들어져 있고, 배의 데크(Deck)가 되면서 갑판의 상부에는 3층와 4층 및 5층에는 전망대 및 휴식처로 만들어져 있다.

배의 크기는 길이 90m에 넓이 30m 및 높이 26m에 연면적이 4,881m² 넓이를 가진 배가 되는데, 먼저 1층 전시실로 들어가면 제1전시실에는 '프롤로그(Prolog)' 제2전시실에는 '배경' 제3전시실에는 '결성' 제4전시실에는 '출동' 이라는 주제로 다앙한 설명문과 더불어 유물 또는 디오라마(Dioroma) 모형으로 꾸며져 있다.

전시실 내부에는 배의 특성을 전연 느끼지 못하면서 일반적인 전시실과 동일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제1전시실로 들어서면 먼저 '청춘의 불꽃 아! 장사 학도병' 이라는 노래 가사가 펼쳐지면서 잔잔하게 음악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 '청춘의 불꽃 아 장사 학도병' 이라는 노래 가사 >

 

더 내부로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장사상륙작전에 관련되는 년표(年表)와 함께 날짜 및 시간별로 장사상륙작전에 대한 전시물을 전시하고 있다.

장사상륙작전에 활용한 LST 문산호는 1950년 9월 14일 부산항을 출발한 이후 9월 15일 새벽 06 : 00에 상륙작전이 개시되었다.

 

< '장사상륙작전' 을 나타내고 있는 년표 >

 

장사상륙작전에는 학도병 772명을 주축으로 하여 지원요원 56명을 포함하여 총 828명으로 구성된 제1독립유격대대(대대장 : 이명흠 대위) 대원이 LST 문산호를 타고 장사리 해안에 상륙한다.

장사상륙작전의 목적은 국도 제7호선을 봉쇄하고 조선 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데 기여하고 나서, 철수하는 작전이라 하겠다.

 

< 장사상륙작전' 의 의의 >

 

이곳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과 양동작전으로 실시하면서 양동작전으로서는 성공하였는데, 원래는 제8군의 임무였으나 유엔군의 상륙지점 교란을 위해 인민군 복장을 입고 특수 작전을 하여야 했다.

그래서 사정상 북한군과 외모가 비슷한 남한 출신 17세에서 부터 19세의 학생들로 겨우 2주간 훈련을 시킨 학도병에게 '작전명 174' 를 부여한 것 이다.

 

< '인사' 로 환영하고 있는 전시실 >

 

< '전시실' 내부의 전경 >

 

< '전시실' 내부를 돌아보고 있는 관광객 >

 

90%가 학생의 신분이면서 호국일념으로 자원 입대를 하였던 대원들은 전선의 전후방을 교란시키는 유격부대로 편성하였는데, 이 전투를 수행하는 중 식량 보급도 없이 극한 상황에서 적의 보급로 및 퇴각로 차단 등 혈전을 치루었다고 한다.

부대는 3일간 물자만 보급 받아 9월 14일 2시에 장사리 해안에 상륙하여 잠깐 동안 교란작전을 전개하고 나서 바로 철수 할 예정이었지만, 때 마침 불어닥치는 태풍 케지아(파고의 높이 3-4m)로 인하여 LST 문산호가 좌초되는 바람에 작전 계획은 뒤틀려 버렸다.

 

< 'LST 문산호' 의 운명 >

 

적의 포화 속에서 대원들은 구국일념(救國一念)의 투혼 및 악전고투 속에서 상륙에 성공하여 적의 후방 교란 및 보급로 차단를 하면서 막대한 전과를 올렸는데, 그로 인하여 간접적으로 인천상륙작전에 크게 기여를 시킨 작전이라 하겠다.

 

< 작전에 투입하고 있는 '학도병' >

 

< '보급품' 도 없이 버티는 군인 >

 

배의 좌초로 인하여 발이 묶인 제1독립유격대대는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7번 국도 차단 임무를 계속 수행하였는데,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 9월 19일 유엔군 정찰기에 포착되었다.

해안선 따라 항행(航行)하던 미국 제7함대 소속 USS 휄레나(CA-75)가 이끄는 포격 임무대(Bombardment Task Force)의 엄호를 받아 퇴각선 'LST 조치원' 호에 승선하면서 철수를 단행한다.

철수 중 39명의 학도병이 남겨졌는데 그들의 생사는 알 수 없고 작전의 결과로 제1독립유격대대원 중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을 포함하여 수백 명의 행불자(行不者)가 발생하였는데, 부대는 휴식을 취하고 인원을 보충 받으면서 정비를 한 뒤 새로운 전선으로 복귀하였다고 한다.

LST 문산호는 좌초된 상태로 바다에 버려져 있으면서 시간이 지나 1991년 3월 6일에 난파선으로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그후 난판선에 대한 기록이 전연 없는데, 비록 폐선(廢船)이 되어진 문산호를 직접 개조하여 전시관으로 만들었다면 더욱더 관람의 효율성(效率性)이 클 것 같은데 아쉬움이 일어난다.

내부로 이동하면 6.25 전선에서 발발한 비극의 현장에서 부터 낙동강 전선, 장사상륙작전을 빛낸 인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맥아더 장군, 학도병 및 인민군의 복장, 유격대 사격훈련 체험실 등의 부스(Booth)에는 설명서와 더불어 모형을 만들어져 있어 전쟁사를 공부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된다.

 

< '인천상륙작전' 을 도운 3대 작전 >

 

< '맥아도 원수' 도 실패한 원산상륙작전 >

 

< '학도병 및 인민군' 의 군복 대비 >

 

< '유격대' 훈련 체험실 >

 

다른 한편으로 한 벽면 전체에 LST 문산호가 좌초가 되므로 배에서 탈출하고 있는 모습의 디오라마가 설치되어 있고, 다른 벽면에는 LST 문산호(2.700톤)의 제원(諸元)과 더불어 설명문이 붙어있어 전쟁의 참사를 직접 알게 만들어 준다.

 

< 좌초된 'LST 문산호' 에서 탈출하고 있는 학도병 >

 

< 'LST 문산호' 의 제원 >

 

계단을 이용하여 2층으로 올라가면 2층에는 긴 복도식으로 만들어지면서 벽면에는 작전 후 퇴각을 하기 위하여 배에 오르는 대원들이 거대한 파도와 싸우면서 위기를 돌파하는 학도병 활약상을 만들어 놓고 있는데, 얼마나 다급하게 배에 승선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 긴 복도 좌우에 기술하고 있는 '전쟁사' >

 

< '위령제 및 위령탑' 에 관련되는 내용 >

 

< 퇴각을 위하여 'LST 조치원' 호에 오르고 있는 학도병 >

 

< 파도와 싸우고 있는 '학도병' > 

 

긴 복도의 끝지점에 맥아더 장군이 쓴 친필의 편지를 전시하고 있고, 그 뒤편으로 장사상륙작전에서 산화(散華)가 되어진 학도병을 위로하는 분향소가 만들어져 있다.

더불어 유리로 만든 바닥면에는 학도병의 군번과 더불어 이름이 쓰여 있는데, 이름이 밝혀지지 않아 군번만 쓰여 있는 무명의 용사도 곳곳에 보인다.

 

< '맥아더 원수' 가 학도병을 위로하기 위하여 쓴 친서 >

 

< 상륙작전에 참석한 '학도병' 의 군번과 이름 >

 

분향소 뒤편으로 돌아서 가면 모래 아트 영상관(映像管)이 자리하고 있는데, 영상관에는 장사상육작전에 참여한 학도병의 활약상을 모래 아트 영화로 만들면서 연속적으로 상영하고 있어 다소의 시간을 활애하여 관람 시간을 가져본다.

 

< '모래 아트 영상관' 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 >

 

이상과 같이 1층 및 2층 전시실을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관람을 끝내고 갑판으로 올라가면 넓은 갑판 위에는 다양한 무기와 더불어 전망대로 사용하므로 배의 주변을 돌아가면서 구경하여 보는데,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므로 넓은 시야를 가진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 배의 갑판 위에 자리하고 있는 '전망대' >

 

배의 갑판 전면에는 북한군이 주둔하면서 강력하게 저항하였던 203m 남산 고지가 자리하고 있고, 그 앞 가까이에는 장사상륙작전에서 희생을 당한 학도병 영혼을 기리는 위령탑과 더불어 위령탑을 향하여 상륙작전을 전개하고 있는 학도병들이 총을 들고 돌파하는 모습이 보인다.

 

< 배의 갑판 전면에 있는 203m '남산' 고지 >

 

< 고지의 남쪽 '포항' 방향 바다 >

 

눈을 조금 위쪽으로 돌리면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고 있는 백사장 가장자리에 울창한 소나무 숲과 함께 숲의 앞에는 차박(車泊)을 즐기는 많은 차량들이 주차하고 있고, 그 위쪽에는 장사마을이 야산의 비탈면 따라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 차박을 즐기는 '차랑 및 장사마을' 전경 >

 

이렇게 전승기념관 내부를 구경하고 배에서 내려와 위령탑 주변을 구경하여 보는데, 위령탑 전면으로 건립 배경을 설명하고 있어 그 내용을 정독하여 보면 내용들이 조금 전에 전승기념관에서 보았던 내용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여 기술을 생략하기로 한다.

 

< 진격하고 있는 '학도병 및 위령탑' >

 

< 학도병이 버리고 간 '모자' >

 

< '전승기념관' 을 배경으로 상륙하고 있는 학도병 >

 

이곳 위령탑은 호국 충정(護國 忠情)을 기리면서 후세들에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자 1980년도 부터 매년 9월 14일 이곳에서 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더불어 특별하게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청운사 사찰에 계시는 '석일산' 주지스님의 도움을 받아 1991년에 위령탑으로 건립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 '위령탑' 에 기술하고 있는 안내문 >

 

오늘 방문한 장사상륙작전 공원에서 새롭게 개관한 전승기념관을 관람하여 보았는데, 잊혀져 가고 있는 6.25 참사를 더욱더 선명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다시는 이 땅에 6.25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투철한 무장 정신을 가지도록 다시 한번 더 다짐하게 만드는 유적지가 된다. - 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