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문화와 산행.

퇴계 이황 선생님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서원" 을 돌아 보고서. (전편)

용암2000 2011. 11. 7. 18:31

2011년 11월 5일 (토요일)

 

주말마다 발생하는 사적인 업무로 인하여 산행이나 여행 갈 시간적인 여유가 발생하지 않아 차일피일 하다가, 오늘 모처럼 업무를 좀 일찍 종결하고 나서 안동에 거주하는 고등학교 친구 초대에 응하기 위하여, 나와는 한때 모회사 직장 동료이면서도 나의 안동 친구와는 초등학교 소꼽 친구인 한명과 함께 안동으로 떠난다.

약속된 장소에서의 Meeting과 동시에 간단한 인사로 대면하고 나서 친구와 친구간에 약 50년 만에 처음 회후가 이루어 진다고 상호 불알 이야기만 하다 보니, 진작 나는 그들 사이에 찬밥 신세가 되어진다.

초대한 안동 친구의 안내로 지역 유적지 중 하나인 "도산서원(陶山書院)" 을 관광하기로 하고,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안동의 명소 안동댐 방향으로 들어가서, 안동댐 아래 보조댐 중간을 가로질려 건립되어 있는 "월영교(月映橋)" 나무다리를 거닐면서 구경하여 보는데, 다리 중간 지점에 있는 정자까지만 걸어가 댐의 운치를 감상하여 본다.

 

 < 안동댐 아래에 있는 "월영교" 표시석 >

 

이 안동댐 월영교는 몇년 전 Wife와 아들과 함께 관광하여 본 장소이지만, 고운 단풍이 내리고 있는 월영교 주변 산천이 강물과 대칭을 이루면서 너무나 아름다움 풍경 연출하고 있어, 월영교의 새로운 운치에 젖어본다.

 

< 보조댐을 가로 질려 만들어진 "월영교" 모습 >

 

< 파란 하늘과 단풍이 물에 비치는 "안동댐" 전경 >

 

그러고, 친구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과 같이 주린배를 채우기 위하여 안동의 특미인 "잉어찜 요리" 를 강력하게 추천하므로 댐의 상부 방향에 있는 동악골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는 "동악골 원조식당" 에 들어가서 잉어찜으로 허기진 배를 충진하여 본다.  

 

< 안동댐 깊숙하게 숨어 있는 "동악골 원조 식당" >

 

안동 친구는 수 십년간 한국전력에 근무하면서 안동 지사장 시절 외지에서 방문하는 많은 회사 간부나 둉료들에게 안동의 여러 별미 중 하나인 안동 잉어찜을 많이 대접하였다고 하면서, 그 시절 안동댐에서 직접 잡은 잉어로 만든 토종 잉어찜을 먹어 본 경험으로 능숙하게 요리를 한다.

아직도 식재료인 잉어가 안동댐에서 잡힌 것 인지 모르겠으나, 이 식당 요리 방법은 아직도 변함없이 옛 맛을 유지한다고 하면서 자꾸 권장하므로 완전히 허리띠 풀고 본격적으로 소주와 함께 분주하게 젖가락을 운전하여 본다.   

 

< "잉어찜 요리" 를 손질하고 있는 친구 >

 

이어 만수의 물이 잠겨 있는 안동댐 풍경을 감상하면서 약 10여 분간 안동내륙 지방으로 깊숙하게 올라가 아득하게 먼 옛날 몇번 방문하여 본 도산서원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주변 풍경이 너무나 많은 변화를 간직한 장소로 변모되어 있다.

 

 < 만수의 물을 담고 있는 "안동댐" 전경 >

 

1. 도산서원(陶山書院)  

 

주차비와 더불어 풍족한 입장료를 지불하고 나서 도산서원 내부로 들어가는 초입에 이르니, 주변에 아름답게 물들고 있는 애기 단풍 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모습이 이제는 가을도 만추 속으로 깊숙하게 파고들고 있나 보다.

 

< "도산서원" 내역을 기술하고 있는 안내도 >

 

< 도산서원으로 들어가는 "오솔길" >

 

수 많은 관광객이 이동하고 있는 오솔길 따라 도로 한 모퉁이를 돌아 서며는 오늘의 목적지 도산서원 입구에 이르는데, 도산서원 전면에 서며는 넓은 들과 함께 만수의 댐 수면 위로 볼록한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 섬이 "시사단(試士壇)" 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 도산서원 전면 만수의 물 속에 잠겨 있는 "시사단" 전경 >

 

이 시사단은 조선 정조대왕이 평소 흠모하던 퇴계 "이황(李滉)" 선생님의 학력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하여 어명으로 특별과거 시험인 "도산별과(陶山別科)" 를 치룬 장소인데, 시사단 정자는 본래 낙동강 주변과 같이 평지에 건립되어 있었지만 안동댐 수몰로 인하여 10m 정도 높게 단을 만들어 그 위에 건립하여 놓으므로 인하여, 현재 섬과 같이 댐의 중앙에 머물고 있다.

도산서원 뒤편으로는 영지산(靈芝山)이 병풍같은 둘려쳐 있는 중앙 골짜기를 점유하고 있는 장소에 옛1000원 짜리 지폐에서 많이 본 선명한 한무리의 고즈넉한 기와집이 눈앞에 머물고 있다.

 

< "영지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도산서원 전경 >

 

< 친구와 함께 "도산서원" 을 배경으로 >

 

넓은 마당 주변에는 아름들이 고목의 버드나무 2그루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것 보다 거대한 철제 지팡이를 의존하여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어릴적 내가 본 우리 할머니 허리와 같이 휘어져 있어 애초로움이 묻어난다. 

나도, 이젠 몇년만 지나가며는 나무 지팡이 들고서......

 

< 도산서원 가장자리에서 철제 지팡이를 의존하고 있는 "버드나무" >

 

버드나무 옆에는 도산서원에서 일하고 있는 하인이나 공부하는 원생들의 갈증을 해소시키는 우물 한기가 고목나무 뿌리 가깝게 솟고 있는데, 아무리 가뭄이나 홍수가 일어나도 넘치도 줄지도 않으면서 일정한 수위를 가지는 "열정(列井)" 이라고 불려지는 우물이 있는데, 최근 우물 상부를 보수하면서 돌로 "우물정(井) 자"  형상 글씨로 만들어져 있다.

 

< 버드나무 곁에 수맥이 솟고 있는 "열정" 우물 >

 

도산서원 내부에 첫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정문을 만나고, 그 정문을 중심으로 하여 중앙통로 계단 중심으로 좌우측으로 건물이 도열하고 있는데, 도산서원 관람 방향은 올라가면서 오른편에 있는 건축물을 구경하고 나서, 내려오면서 왼편에 있는 건축물을 관람하면서 산책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정문 앞으로 다가 선다.

 

< 도산서원으로 들어가는데 첫발을 만들게 하는 "정문" >

 

정문을 통과하자 마자 오른편으로 들어서며는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 나무가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식묵한 금강 소나무이면서 우리나라 화폐 중 구권 1000원짜리 지폐에 잘 나타나고 있으나, 대통령이 식목한 나무가 고사하여 현재는 가짜 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함에 다소 애석하여 진다.

 

< 신권 1000원 지폐에 도안되어 있는 "퇴계" 모습 >

 

< 구권 1000원 지폐 뒤면에 나타내고 있는 "도산서원" 전경 및 "금송" >

 

< 구권 1000원 짜리 지폐에도 나오는 박정희 대통령 식목 나무 "금송" >

 

금강송을 통과하며는 "도산서당(陶山書堂)" 이라는 아담한 건물이 한채 있는데, 이 건물이 퇴계 선생님이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써 몸소 거쳐하시면서 제자를 가르켰던 건축물이다.

건물 왼편 사람이 기거하는 방을 "완락재(玩樂齋)" 라고 하였으며, 오른편 마루에서 제자를 가르키는 대청마루 상단에 "암서헌(巖栖軒)" 라는 현판이 붙어 있고, 이어낸 부섭 처마와 더불어 공기의 유통이 원활하게 하기 위한 부섭 마루가 엉성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도 또한 하나의 특색이다. 

 

< 퇴계 선생님이 기거한 "도산서당" 전경 >

 

이 도산서당 앞에 조그마한 연못 1개인 "정우당(淨友塘)" 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 연못 속에는 아직도 푸르름을 보이고 있는 연잎이 못을 잔뜩 채우고 있으며, 그 연못 옆에 "몽천(夢泉)" 이라고 불려지는 조그마한 우물에서도 맑은 샘물이 솟고 있다.

 

< 파란 연잎이 성장하고 있는 "정우당" 연못 >

 

< 도산서당 앞에 있는 우물 "몽천" > 

              

도산서당 좌편에 있는 작은문을 통하여 중앙 통로 방향으로 나아가며는 몇단의 축대 위로 아름다운 꽃과 나무의 조경이 잘되어 있는데, 특히 퇴계 선생님이 평소 좋아했던 매화나무가 잘 조성되어 있어 살아생전 충청도 단양 땅에 두고온 연인 "두향" 이를 보는듯 그리워 했으리라.

 

< 도산서원으로 올라가는 길가에서 만나는 정원과 "매화나무" >

 

몇단의 돌계단을 올라서면 도(道)를 향하여 나아가라는 뜻을 가진 중문인 진도문(進道門)에 이르면서 좌우측에 기둥으로 받치고 있는 건물이 보이는데, 이 건물이 "동광명실(東光明室)" 과 "서광명실(西光明室)" 이라 한다.

양쪽 광명실에는 퇴계 선생님의 서책을 보관하는 서고(書庫)인데, 땅에서 발생하는 습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2층 형태로 건립된 건축물로써 현판이 퇴계 선생님이 직접 쓴 친필이라고 한다.

 

<  전교당 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진도문" >

 

< 진도문 좌우에 동일한 형상으로 건립된 "광명실" >

 

이 진도문을 통과하고 나서 넓은 마당에 올라서며는 좌우 2채의 건축물이 있는데, 우측에는 양반의 자재들이 공부하는 "동재(東齋)" 건물이고 좌측에는 평민의 자재들이 공부한 "서재(西齋)" 건물이 나타나는데, 동재에는 "박약재(博約齋)" 라는 현판이 붙어 있고, 서재에는 "홍의재(弘毅齋)" 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 양반 제자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동재 "박약재" 전경 >

 

< 평민 제자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서재 "홍의재" 건물 >

 

이 동재와 서재 건물 호령하면서 기단 위에서 위용을 뽐내는 도산서원의 중추적인 건물인 "전교당(典敎堂)" 이 고즈늑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이 전교당은 선조 7년(1574년)에 건립된 매우 소박한 형태의 건축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건립된 보물 제 210호로 지정되어진 문화재이다.

 

< 도산서원의 중추적인 건물 보물 제 210호 인 "전교당" 전경 >

 

도산서원 정면 처마 밑에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사액서원 "陶山書院" 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이 현판의 글씨가 우리들에게 너무나 친숙한 "한석봉" 선생님의 필적이다.

 

< "한석봉" 선생님의 글씨인 도산서원 >

 

아울러, 도산서원 좌측 앞에 약 2m 높이의 "정료대" 라는 기다란 돌기둥이 놓여 있는데, 이 정료대 위쪽에는 밤에 불을 밝히는데 유용하도록 오목하게 그릇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 매우 특색을 가진 조형물이다.

 

< 서원의 불을 밝히는데 사용하는 "정료대" >

 

전교당 기단에서 내려와 오른편 쪽문 방향으로 들어서며는 이곳에서도 또 다른 "장판각(藏板閣)" 이라는 서고를 만나는데, 이 서고에는 퇴계 선생님이 작성한 문집, 도산십이곡, 언행록, 병서 등을 찍어내기 위한 목판 2790장 보관하였던 장소이지만, 현재 목판은 인접 지역인 "한국 국학 진흥원" 으로 이관되어 있다고 한다.

 

< 지금은 비어있는 목판 보관소인 "장판각" >

 

다시, 전교당 뒤편으로 돌아가며는 오른편으로 높은 돌계단 위쪽으로 내삼문이 보이는데, 이 내삼문에는 열쇠로 굳게 잠겨져 있어 내부를 돌아 볼 수는 없지만, 그 내삼문 안에는 퇴계 선생님의 위폐를 모시고 있는 보물 제 211호인 "상덕사(尙德詞)" 라는 사당이 있지만, 출입이 제한 되어지므로 인하여 관람이 불가능 함이 매우 아쉽다.

 

< 퇴계 선생님의 위폐를 모신 "상덕사" 로 들어가는 내삼문 전경 >

 

또 다시, 전교당 뒤쪽 왼편으로 또 다른 돌계단을 타고 올라가 쪽문 내부에 들어서며는 동서로 마주보는 2채의 건물이 나타나는데, 이 건물이 "전사청(典祀廳)" 이라고 하며, 여기서 상덕사에서 재례 등의 행사를 주관 할 때 사용하는 재수품을 장만하는 곳이라고 한다.  

 

 < 제수 음식을 장만하는 "전사청" >

        

이상으로 도산서원의 오른편으로 치우쳐 있는 건물과 풍경을 관람하고 나서, 서원을 내려 서면서 왼편으로 배치하고 건축물을 관람하여 보는데, 먼저 전교당 왼편에 있는 "상고직사(上庫直舍)" 와 "하고직사(下庫直舍)" 건물로 들어가 보는데, 이 고직사는 도산서원을 관리하는 수호인들이 생활하는 살림집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 도산서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기거하는 "고직사" 건물 >

 

하고직사 집 담장을 벗어나 아래로 조금 내려서며는 퇴계 선생님의 제자들이 공부하면서 기숙하는 "농운정사(瓏雲精舍)" 라는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건물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며는 "장인 공(工)" 자로 형상하고 있는 매우 독특한 양식의 건물이다.

 

< 한자 공(工)자 모양으로 건축된 "농운정사" 전경 >

 

건물 동편 마루에는 "시습재(時習齋)" 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서편 마루에는 "관란헌(觀瀾軒)" 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이 관란헌의 뜻은 "제자들이 마루에 서서 도도히 흘러가는 낙동강 물을 바라보면서 여가를 즐긴다" 라는 뜻이 숨어 있는데, 저 멀리 물길을 잡고 있는 낙동강 풍경 감상이 용이하도록 담장을 낮게 축조한 것도 퇴계 선생님의 정서적인 배려가 숨어 있다.

 

< 서쪽 마루 서까래 아래 붙착되어 있는 "관란헌" 현판 >

 

이 농운정사 뒤편에는 현대식 건축물이 한채 건립되어 있는데, 이 건물이 퇴계 선생님의 발자취와 더불어 서책 및 유물품을 전시하고 있는 "옥진각(玉振閣)" 건물이다.

 

< 퇴계 선생님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옥진각" >

 

내부에 들어가니, 퇴계 선생님의 사상인 "이기이원론적 주리론(理氣二元論的 主理論)" 을 근간으로 하는 사단칠정의 이(理)로써 기(氣)를 다스려 "인간은 선(善)한 마음을 간직하면서 바르게 살아가고, 모든 사람은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한다" 는 학설을 펼친 내용이 보관되어 있지만, 한문과 보는 안목이 멍통이라 입구만 돌아보고 무지의 발로로 인하여 고개만 푹 숙이고 내부 통로만 배회하다가 떠나야만 했다.

 

< 한자와 퇴계 선생님 학문 뜻을 몰라 그냥 지나가는 통로 >

 

< 퇴계 선생님이 남긴 교육의 "교훈" 한마디 읽으면서 >

 

이상, 도산서원 영역 내에 있는 건축물과 역사를 조명하여 보면서 도산서원을 벗어나는 또 다른 문인 "도산서원거경대학(陶山書院居敬大學)" 쪽문으로 나와, 서원의 영역 밖 왼편에 건립되어 있는 "역락서재(亦樂書齋)" 로 들어가는 작은 문으로 들어서며는 퇴계 선생님이 직접 쓴 현판 "亦樂書齋" 라는 한자가 먼저 눈이 머문다.

 

< 서원의 경계를 표시하는 또 다른 도산서원거경대학으로 출입하는 "쪽문" >

 

< 도산서원 테두리 밖에 있는 "역락서재" >

 

이 역락서재는 퇴계 선생님이 도산서당에서 학문을 강론 할 때, "정사성" 을 비롯한 뜻 있는 제자들이 힘을 합하여 세운 집이라고 한다.

오늘도 수박 걷 핥키로 그 많은 도산서원 건물과 퇴계 선생님 유품을 단시간 내로 돌아보고 나와서 오솔길 따라 도산서원을 탈출하여 보는데, 과연 오늘 내가 도산서원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얻었는지 생각하니 머리가 혼미스러워 진다.

 

< 머리를 껄적이고 나아가는 친구는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

 

무지한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금일 얻는 수확품은 사진 몇장 찍었는 것 밖에......  - 전편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