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30일
"경북 북부지역 산업발전 방향과 낙동강 수운 개발계획" 이라는 과제로 대구에 있는 모 단체에서 주관하며, 안동대학교에서 세미나를 개최하기 위하여 행사를 주관하는 한 친구 권유로 아침 일찍 소형버스로 10여 명의 행사요원과 함께 안동으로 떠난다.
세미나는 오후 늦게 시작하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으므로, 안동대학교에서 마중 나온 교수님 한분의 안내로 먼저 안동시내를 잠깐 들려본다.
점심식사를 예약하여 놓는 식당이 안동댐 근교의 한 식당이므로, 댐 주위에 있는 문화재를 관광하여 보기 위하여, 승용차는 조용한 안동 시내를 벗어나자 마자 낙동강 거슬러 올라가면 이내 안동댐 밑에 있는 보조댐이 이른다.
이곳 보조댐 중간 정도에서 소형버스는 왼쪽 방향의 중앙선 철길 밑으로 통과하는데, 통과하는 길이 너무나 좁아 작은 버스도 겨우 들어간다.
철길과 기와집 높은 돌담 사이에 끼여 있으면서 몸을 잔뜩 움추리고 있는 전탑 한개가 서 있는데, 그 전탑 앞에 소형버스를 세우니 이 전탑이 국보 제16호 "신세동7층 전탑" 이다.
< 기차 철로와 고성이씨 종택 사이에 있는 국보 제16호 "신세동7층 전탑" >
선비의 고장 안동을 다녀온 사람들은 대개 하회마을이나 퇴계선생의 도산서원 방문하는 것이 최상의 관광코스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안동시내에 국보급 문화재가 있어도 외지 사람들은 이런 보물이 있다는 것 자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본다.
이 전탑은 아무런 보호 방책도 없이 높이 16.7m의 우람한 체구를 가진 탑이지만, 그냥 방치되어 있고 관광을 하려 오는 사람 아무도 없다.
벽돌로 쌓은 탑이 이렇게 거창한 규모로 신라시대에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1.300여 년 세월을 견디면서 사람의 무관심 속에 살아 왔다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묻어난다.
탑 뒤쪽으로는 첫눈에 봐도 탄탄한 살림의 양반가 집 고성이씨(固城李氏) "탑동파(塔洞派)" 종택이 거대한 면적을 점유하고 있다.
본래에는 이 전탑 전후 좌우에 "법흥사" 라는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법흥사 절은 형상도 없이 살아지고 고성이씨의 탑동파 종택만이 외롭게 남아있다.
한 때 종택은 99칸의 대저택이었다고 하나, 추측컨대 고성이씨의 종택이 법흥사 부지를 상당부분 침범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이곳 세신동7층 전탑은 고성 이씨의 후견인처럼 생각도 되고, 아니면 반대로 이 탑이 양반가를 비호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전탑(塼塔)은 흙으로 구워 만든 벽돌로 쌓은 탑이다.
탑 주위에 바짝 붙어 중앙선 철길이 지나가고 있어 하루에도 수십차례 철마의 진동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고한 기상으로 솟아 있으나, 기차의 진동으로 많은 곳에서 파손이 일어나고 있어 탑이 한쪽으로 점점 기울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통일신라, 고려, 조선, 대한제국, 일제시대를 거치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꿋꿋이 견뎌온 삶, 그 기적 같은 삶에 빛나는 훈장을 달아 준 것이 바로 이 전탑의 영예이니라.
전탑에는 큰 관심 가지지 않았던 내가 벽돌로 만든 거창한 탑이 천년의 세월을 넘어 내 앞에 불쑥 솟아있는 것 보니, 탑앞에 서는 순간 흥미로운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 물고 이어졌다.
왜 벽돌로 지었을까? 벽돌로 처마 모양의 옥개석을 만들기란 지금도 어려운데 어떻게 만들었을까?
사람들은 탑 쌓기를 좋아하여, 우리는 굳이 사찰에 가지 않아도 곳곳에서 돌탑을 볼 수 있다.
산행을 하다 보면 가파른 산길 옆 바위 위에 세운 돌탑, 고갯마루에 이정표 처럼 서 있는 돌탑, 또 한 개인의 집념이라고 보기엔 믿기지 않는 마이산의 거대한 원뿔형 돌탑도 있다.
대개 돌탑은 한 두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곳을 지나가는 숱한 행인들이 보시하듯 한 두 개씩 돌 위에 돌을 올려놓아 탑으로 된 것들이다.
젊은이들이야 장난삼아 돌을 얹기도 하지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마치 기도하듯 돌을 얹는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벨 탑 이야기도 탑의 축성으로 많이 유명한데, 따지고 보면 이것도 인간의 본능적인 탑 쌓기 성향을 나타내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아직도 전국 방방곡곡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탑들이 남아 있는데, 이들 탑의 대부분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조상된 것들이 많다.
억불숭유 정책으로 일관한 조선조 500년에도 사찰은 허물어져도 탑은 온전히 살아남은 곳이 많은데, 유명한 곳으로는 경주 "감은사지" 쌍탑과 분황사 모전석탑, 그리고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 등이 있다.
이어 소형버스는 안동댐으로 가는데, 구비구비 돌아가는 산길에는 새롭게 거대한 관광단지를 개발하기 위하여 온 야산을 다 파해치고 있다.
안동댐은 1971년에 착공해서 1976년 준공되었으며, 댐의 길이 612m에 높이 83m, 총 저수량은 12억 5천만톤, 발전용량 9만kw이다.
이 댐은 낙동강 하류의 홍수조절과 농업, 공업용수 및 생활용수 목적으로 건설된 다목적 댐이며, 남한에서 소양댐 다음으로 크며 댐 내부로 들어가면 유람선을 탈 수 있는 선착장과 더불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본 안동댐을 관찰하여 보면 아름다운 풍광보다는 댐 내부에는 저장하고 있는 물이 바닥에만 깔려있어 걱정이 앞 선다.
댐의 용량에 30% 미만 물이 댐에 남아 있어 오늘 세미나 주제를 발표하는 교수님의 이야기에 경북 북부에 더 이상 가을비가 오지 않으면, 금년 겨울 낙동강 하류에 생활하고 있는 대구나 부산 등의 사람과 공장에 심각한 물 부족 현상이 발생되어 많은 고통이 일어난다는 비관적 이론을 낸다.
안동댐 상부 지역에 100mm 비가 와도 댐의 수위에는 1.6m만 올라가므로, 지금 수위로는 수천 mm가 동시에 쏟아져도 문제가 전연 없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댐 내부로 내려가면 드라마 '왕건" 촬영장이 원형으로 보존하고 있는데, 특히 물속에 띄어놓은 Set 장을 댐 가장자리에서 내려보니 정겹게 보인다.
< 안동댐 내부에 있는 태조 "왕건" 영화 Set 장 >
스치듯 댐을 구경하고 나서 보조댐 주위에 예약한 식당에 주차를 하고 보조댐을 가로 질려 놓여있는 "월영교(月影橋)" 을 건너보는데, 월영교는 바닥과 난간 모두 목재로 만든 인도교로써 폭 3.6m에 길이 387m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나무다리 이라고 한다.
다리 중간에 정자를 지어 놓고서 관광객 휴식처와 추억의 사진 찍기에 최상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고, 야경에는 다리 난간 부스에 분수물이 흐르게 하여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 분수 쇼를 하도록 하여 관광객을 머물도록 한다.
< 낙동강 물에 비친 "월영교" 와 다리 중간에 있는 정자 >
이곳 안동댐 유역에는 예로 부터 전해오는 명칭이 "달골" 이었으며 다리 건너면 "엄달골" 마을과도 연결 되는데, 유난히 달과 연관이 많은 이 지역에 유래되는 것을 착안하여 건설하였다고 한다.
또한 월영교 건너편 산자락에는 새롭게 건립한 "안동박물관" 에 수 많은 인파들을 불러모우고 있다.
안동박물관에는 실내박물관과 야외박물관으로 구분되는데, 실내박물관에는 입장료 1.000원 지불하고 들어가면 예향의 고을 안동 선비들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옛 조상들의 발자취가 되는 관례, 혼례, 상례, 재례 등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살아져 가는 유뮬, 유적 및 생활품을 모아 년도별로 전시가 잘 되어 있는데. 선비들이 이루어 놓은 전통적인 문화 유산인 의(衣)생활, 식(食)생활 등을 모형이나 밀랍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러므로 조상들의 생활을 이해하는데 편리하게 하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면서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도록 하고 있다.
< "실내박물관" 에 있는 전시물 전경 >
야외박물관은 낙동강 강변 따라 산속의 호젖한 산책로 길을 만들고, 그 주위에 건물이 만들어져 있어 휴식과 더불어 산림욕을 겸하는 관광의 최상 조건 구비하고 있다.
산 골짝 곳곳 지형 따라 댐공사로 인하여 살아져 가는 옛 마을, 집, 생활도구 등을 옮겨 놓고 있어, 관광의 편리성 부여하고 있다.
< 수몰지역에서 이전한 "야외박물관" 전경 >
특히 산속 내부 깊숙한 골짝기로 들어가면 넓은 공터를 이용하여 많은 궁궐과 집을 만들어 놓아 "KBS 야외 촬영장" 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그 곳을 찬찬히 돌아 볼려면 하루를 다 소비하여도 시간의 부족을 느낀다.
< KBS 영화 Set 장 건축물 : 1회성 건물이라 파손이 심함 >
KBS 야외 Set장 건너 편에는 영양 천(千)씨 증시조부가 되는 사암 "천만리(千萬里)" 선생님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는 "동산서원" 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어 야외박물관을 더욱더 빛내고 있다.
< "동산서원(東山書院)" 의 전경 >
특히 예안에서 이전한 보물 제305호 "석빙고" "월영대" "선성현객사" 등 문화적 가치를 뽐내고 있는 유물들을 한 곳으로 옮겨져 있고, 단 시간내 일괄 관람이 가능하도록 하여 놓아 매우 편리하다.
< 보물 제305호 안동 예안에서 옮겨온 "석빙고" >
< "선성현객사" 전경 >
월영교 입구에 많은 음식점이 있는데, 그 중 안동 특색음식으로 유명한 헛제사밥, 양반밥상, 안동간고등어으로써 유명한 식당들이 즐빈하게 도열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이름이 있는 한 간고등어 식당에 들려 안동 특산품이 되는 "간고등" 정식을 먹어보니 참 맛깔 스러운 점심이다.
푸짐한 식사를 마치고 나서 안동대학교로 이동하여 세미나 개최하는 건물 주위에 주차하고 나서 학교 교내 걸어보는데, 안동대학교는 약 30여 만평 부지에 약 7천명 학생들이 공부하는 조용한 상아탑이라고 한다.
< 국립 "안동대학교" 교정 정문 >
학교 제일 깊숙한 곳에 올라가면, 조그만한 동산의 야산 기슭 앞에 우탁 선생님을 기리는 "역동서원(易東書院)" 이 자리 잡고있다.
역동서원은 선조 3년(1570년)에 유림의 뜻을 모아 "우탁(禹倬)" 의 학문과 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으로서, 숙종 때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조치로 훼철되었다.
원래는 낙동강 상류가 되는 안동시 예안면에 창건하였으나, 1969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여 복원하였고 서원의 옛터는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 되었다.
그 후 안동대학교 교지로 편입되면서 1992년 부터 안동대학교가 위임하므로, 대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서원에는 우탁의 위패를 모신 상현사(尙賢祠), 명교당(明敎堂), 전사청(典祀廳), 장서각(藏書閣), 동재와 서재, 주소 등이 있다.
< 안동대학교 교내에 있는 "역동서원" 전경 >
상현사는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집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고,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모임이나 강론하는 명교당은 정면 5칸에 측면 2칸 팔작지붕이다.
동재와 서재는 원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곳이고, 주소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庫子)가 거처하는 곳이다.
우탁(禹倬) 선생은 고려 원종 4년(1263년) 충북 단양군에 있는 금수산 칠성봉 아래에서 태어나 진사 등 벼슬을 하다가 말년에 안동시 예안에 은거하면서 후진 양성하다가 81세에 사망했으며, 묘지는 안동 예안면 지삼리에 있다.
예안에 있을 때, 당시 원나라에서 새롭게 유입된 "역경" 의 정진을 아는 사람이 없어 우탁 선생님이 손수 연구하여 후진에게 가르키므로 "성리학" 의 시초가 된다.
이에 중국의 학자들이 중국의 역(易)이 동(東)으로 옮겨갔다 하여, 우탁선생을 역동(易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우탁 선생님은 성리학의 선구자가 되면서도 시조 문학의 효시로서 탄로가(嘆老歌)가 유명한데, 고등학교 국정 교과서에 나오는 "탄로가" 다시 한번더 적어본다.
< 우탁 선생님의 "탄로가" 시조비 전경 >
- 한손에 막대잡고, 또 한손에 가시쥐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
세미나는 이 대학교 공대 학장님 등 귀빈을 모시고 다수의 교수와 수십 명의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진행하고 나서, 학장의 배려로 학교 귀빈실에서 안동 "한우" 로 만든 저녁식사와 더불어 간단한 뒤풀이 행사로 마무리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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